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28화 (128/272)

128화

“대표님. 저희 유소년 선수들이 레버쿠젠을 상대로 이겼다고 합니다!”

“오! 정말입니까?”

“네! 레버쿠젠에게 2:1 승리를 거두었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와 레버쿠젠은 유소년 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친선 경기를 가졌었다.

자고로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다.

가서 많은 것을 얻고 오기 바랐지만, 독일에서 치른 1차전은 대패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려 5골이나 내주는 참패를 겪으며, 자라나는 어린 선수들은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온 어린 선수들의 절치부심(切齒腐心)은 대단했다.

내가 부임하고 대대적으로 바뀐 백송고등학교 축구부.

박동혁이라는 젊은 감독의 지휘 아래 유소년들은 독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뼈를 깎듯 노력했다.

그렇게 여름에 다시 맞붙은 2차전은 고양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고양 유나이티드는 놀랍게도 레버쿠젠을 2:1로 꺾는 기적을 보여줬다.

상대적 열세를 ‘One Team’으로 깨부순 것이다.

“이게 바로 축구죠!”

“맞습니다! 하하하!”

어린 선수들의 승전보는 우리 팀을 자극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1군 선수들도 어린 선수들의 승리 소식에 축하하면서도 자극을 받았다.

“우리도 더 잘해야겠다.”

“당연하지. 애들도 저렇게 잘해줬는데, 우리는 더 잘해야지.”

여름 휴식기에도 1군 선수들은 다가올 후반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자극을 받은 그들의 각오는 남달랐다.

그렇게 여름 휴식기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 * *

여름 휴식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 팀에 새로운 영입이 발생했다.

【오피셜】울산 오세진, 고양 유나이티드 완전 영입! 계약 기간 2년 6개월.

지난 시즌, 우리 팀에 임대로 와서 활약한 뒤 다시 울산으로 돌아갔던 오세진이 다시 우리 팀으로 합류한 것이다.

그것도 임대가 아닌 완전 영입으로.

“돌아왔구나!”

“세잔아! 반가워!”

오세진은 고양 선수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환영받는 그를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곽찬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오세진 선수가 우리 팀에 합류했군요.”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세진이라면 분명 우리 팀에게 큰 도움이 될 선수입니다.”

시즌이 끝나고 완전 영입을 제안했지만 당시 오세진 측은 이를 거절했다.

야망이 컸던 그는 울산이라는 K리그 최상위권 팀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가고 싶은 의지가 컸기 때문이다.

구단 입장에선 아쉽지만 그런 선수의 의지를 존중해서 원소속팀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울산에 돌아간 시즌 초반, 간헐적으로 교체 선수로 기회를 받으며 출전했던 오세진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해 버렸다.

경쟁의 주인공은 바로 권태훈.

지난 시즌 리그에서 그는 선발보다 주로 조커 역할로 활약했었다.

그랬던 그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대활약을 펼쳤고, 이후 올 시즌에 포텐이 엄청나게 터져 버린 것이다.

29살의 권태훈은 울산 공격의 첨병 역할을 하며 공격을 주도했고, 본인 또한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를 쌓고 있었다.

7골 3도움.

권태훈이 전반기에 기록한 공격포인트였다.

뒤늦게 만개하는 포지션 경쟁자의 엄청난 활약에 오세진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결국 고민 끝에 오세진은 자신이 뛸 수 있는 곳을 알아보게 되었고, 이번 여름 휴식기에 곽찬구 감독에게 SOS를 요청했다.

작년에 자신을 중용했던 스승에게 다시 도움을 받고자 했던 오세진은 결국 우리 팀에 합류했던 것이다.

“지금 오세진 선수하고 경쟁하는 선수가 누가 있죠?”

“작년과 비슷하게 장현우 선수가 있고, 석종호, 스즈키, 김지우 그리고 한석원까지 이렇게 있겠네요.”

“여기도 쉽지 않겠는데요?”

“그렇겠죠. 하지만, 울산에서는 세진이가 뛸 전술적 자리가 전혀 없습니다. 울산은 많이 뛰고 수비도 많이 참여하는 선수를 좋아하거든요.”

“오세진 선수가 수비가 좀 약하죠?”

“그렇죠. 만약 현우처럼 수비도 좀 할 수 있었다면, 울산에서 자리 잡았을 겁니다.”

“흐음.”

“뭐, 우리 팀에는 세진의 합류가 천군만마입니다. 시즌 전체를 현재 선수들로만 뛰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후반에 힘이 크게 빠질 확률도 크고요.”

“그렇죠.”

“게다가 세진이는 작년에 우리하고 발을 맞춘 경험이 있습니다.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거죠. 따로 적응 시간 없이 즉시 전력으로 바로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죠.”

“그렇네요.”

후반기 준비는 확실하게 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의 목표를 좀 바꿔야겠군요.”

시즌 초반 ‘생존’과 ‘잔류’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상위 스플릿으로 올라갑시다.”

현실적으로 리그 우승까지는 어렵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홈&어웨이로 치러지는 정규리그 30라운드 이후 치러지는 상하위 스플릿 시스템에서 충분히 상위 스플릿까지 노려볼 수 있었다.

현재 리그 4위인 우리가 후반기도 잘만 버텨준다면 가능하다.

“후반기도 잘 부탁드리죠. 감독님.”

“네.”

* * *

나는 모처럼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여기가 부산이구나.”

부산 해운대에서 가장 비싸다는 최고급 호텔에서 투숙하게 된 나는, 아름다운 바다와 도심을 눈에 담았다.

그런 내 곁에 김 비서가 다가왔다.

“좋으세요?”

“물론!”

어린아이처럼 들뜬 기분을 드러내는데 어디선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표가 돼서 체면 좀 챙기지 그러냐.”

“이사님, 지금은 저희밖에 없는데 뭐 문제 있겠습니까?”

김진철 이사도 나와 함께 있었다.

왜 그가 따라왔느냐.

“뭐? 내 딸이 저 애송이하고 함께 휴가를 떠난다고!?”

김 비서가 나에게 여름 휴식기가 끝나기 전에 짧게 휴가를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인 나는 그녀와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했는데, 어디선가 이야기를 들은 김진철이 노발대발하며 함께 따라온 것이다.

물론 김진철만 있지 않았다.

“아~ 여기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좋군요.”

중간보고 겸 휴식 차원에서 잠깐 한국으로 돌아왔던 용준형 사장도 우리 휴가길에 동행한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딱히 이 파티원과 함께한 거에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다.

혼자 보내는 것보다는 다 같이 보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김 비서의 표정이 많이 불편해 보였다.

“김 비서. 괜찮아?”

“네? 아, 후. 아니에요. 그냥 좀.”

“같이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글까?”

“그럴까요?”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들은 김진철이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이야기하자 용준형이 그런 그를 붙잡고 말했다.

“허허. 이사님. 노땅은 노땅끼리 놉시다.”

“뭐? 용 사장, 이거 놔!?”

“허허. 대표님,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허허허.”

“야!”

용준형이 강제로 김진철을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렇게 나와 김 비서 둘만 덩그러니 남게 됐다.

“그럼 갈까?”

“네.”

아까보다 밝은 얼굴로 바뀐 김 비서였다.

그렇게 바닷가로 나온 우리는 발을 담갔다.

“앗! 차가!”

평소와 달리 편안한 하늘색 계열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환한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앗!”

깜짝 놀란 김 비서에게 나는 미소를 보였다.

“미안. 그냥 찍고 싶어져서.”

“뭐에요. 그게. 예쁘게 나와야 하는데.”

“괜찮아. 김 비서는 예뻐.”

“제가 좀 예쁘… 네?”

동그랗게 눈을 뜨며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획 피해버렸다.

“김 비서, 우리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그럴까요?”

우리는 아무 횟집에 들어가서 회를 시켰다.

푸짐하게 한 상 차려져서 나오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나를 향해 김 비서가 쌈을 싸서 내게 건넸다.

“도련님. 드세요.”

“어? 어. 고마워.”

김 비서가 싸준 쌈을 냉큼 먹은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건 마치 연인 사이 같…….

“크헉! 뭐야! 이거! 으웩!”

갑자기 입안에서 엄청난 매움이 느껴졌다.

혓바닥에 불이 난 것 같은 맵기에 놀란 나는 황급히 물을 찾았다.

“무, 물!”

허겁지겁 물을 마시는데 김 비서가 웃었다.

“하하하! 도련님! 너무 웃겨요!”

“…….”

알고 보니 김 비서가 장난을 친 거였다. 나도 모르게 생마늘과 고추를 잔뜩 집어넣어서 준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당한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언젠가 복수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그녀와 오붓하게 식사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신도시 사업 건은 잘 되고 있는 거죠?”

“어. 용 사장하고 어제 단둘이 얘기 좀 했는데 크게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태조건설은 괜찮데요?”

“확실히 프로는 달라.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거든.”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군요.”

“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어.”

“네?”

말을 하던 내가 미간을 좁혔다.

“지태완.”

“…….”

내 말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지태완은 내가 상대하기 큰 존재야. 그 새끼는 호시탐탐 내가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고.”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 상황에서는 버티면서 한 계단씩 올라가는 방법밖에 없어.”

회귀했어도, 고작 3~4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왔을 뿐.

고작 이 시간으로는 지태완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이미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뭔가요?”

“지태완이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하면서 튕긴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을 우리 쪽으로 데려올 생각이야.”

“그게 가능할까요?”

“김 이사님이나 용 사장의 말로는 그렇게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대부분 영신에서 오랜 시간 충성을 했던 사람들이었데. 그런데 그 충성을 배신당한 셈이니 충분히 우리 쪽에 합류할 명분이 된다고 말했어.”

김 비서는 회를 한 입 먹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회를 삼킨 다음 말했다.

“그럼 제가 움직여 볼까요?”

“김 비서가?”

“네. 제가 이래도 그룹 내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까요. 도련님이 움직이면 보이는 눈이 너무 많을 거에요.”

“괜찮겠어?”

“네. 이 정도는 괜찮아요. 무엇보다 도련님에게 도움 되는 일인데 제가 더 움직여야죠.”

나는 김 비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언제든지 위험하거나 힘들면 이야기해.”

“네. 그럴게요.”

* * *

여름 휴식기가 끝나고, 고양 유나이티드는 후반기에 돌입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내 사업 때문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네, 늘 똑같이 지냈습니다.”

모처럼 박종찬 코리아네트워크 대표를 만났다.

“두바이와 손잡고 신도시 사업을 진행하신다구요?”

그는 내 소식을 들었는지 신도시 사업에 대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 말에 나는 작게 웃었다.

“UAE도 아니고 두바이라고 말씀하시네요? 칼리드 왕자가 무슨 이야기를 해주던가요?”

“칼리드 왕자가 저에게 부탁을 했거든요. 우리 지 대표님을 옆에서 좀 도와달라고.”

“저를요?”

“네. 이번 사업은 결코 혼자 하기 어렵다고,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도움을 주라고 부탁하더군요.”

박종찬 대표의 본업은 건설업이 아니다. 그는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투자회사 대표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당장에 떠올리는 건 없다.

하지만 사업은 결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만큼 협업하고 나에게 이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박종찬 대표도 나에게 그런 존재다.

“그나저나 대표님. 제가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요?”

“네. 영신그룹과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혹시 괜찮으시면 들어 보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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