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인별그램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이 하나씩 올라오고 있었다.
업로드되는 사진들의 컨셉은 다양했다.
일상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업무 관련 내용이 담긴 사진도 올라갈 때도 있었다.
찰칵.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와 붉은 레드 와인이 담긴 잔을 스마트폰으로 찍는 내 모습을, 김 비서가 멋쩍은 얼굴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는 능숙하시네요.”
“어? 어. 이것도 해보니까 재밌기는 하더라고.”
“처음에는 되게 싫어하시는 것 같더니.”
“아무래도…… 조금 무섭기도 했거든. 경험이 없다 보니까.”
나는 말하면서 잽싸게 인별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했다.
[(v)지태완] : 오늘 저녁은 스테이크입니다~^^ 와인도 한잔 먹어요.
#저녁메뉴 #스테이크 #냠냠쩝쩝
대충 문구와 해시태그 남겼다.
“어? 그러고 보니까 나 무슨 파란색 인증마크 떴네? 이게 뭐지?”
“아, 그거 검증된 인플루언서들에게 붙여주는 인증마크라고 해요.”
“나는 뭐 인증한 게 없는데?”
“인별그램이 바보가 아닌 이상, 도련님을 보고 그냥 해준 거죠.”
“오, 내가 꽤 유명하긴 한가 보네.”
인별그램 팔로워도 어느덧 30만을 넘겼다.
팔로워는 매일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팔로워들 덕분에 사진을 업로드하면 빠르게 좋아요와 댓글이 늘었다.
볼 때마다 새삼 신기하다.
그런 나에게 김 비서가 말했다.
“도련님. 얼른 드세요. 스테이크 식겠어요.”
“아, 맞다. 맞다. 얼른 먹자고.”
나는 김 비서와 모처럼 단둘이 고급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김 비서는 일하다가 힘들거나 하지 않아?”
“딱히 없네요. 업무도 이제 손에 익었고, 인력도 늘었고요. 지금이 딱 적당한 것 같네요.”
“그래? 다행이네.”
우리는 스테이크를 한 입 먹었다.
우물우물하며 스테이크를 씹어 넘긴 김 비서가 말했다.
“그럼 도련님은 요즘 힘들지 않으세요? 벌려놓은 일이 엄청 많잖아요.”
“뭐, 힘들지 않으면 거짓말이기는 한데, 그래도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할만해. 아직은 말이지.”
“그런가요?”
“어. 그리고 김 비서가 늘 옆에 있어 주니까 늘 힘이 나지.”
“…….”
김 비서가 갑자기 말없이 손에 나이프를 쥐고 움직였다.
“김 비서? 왜 허공에다가 칼질해?”
“네? 아, 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 잠깐 침묵이 돌았다.
“그건 그렇고 김 비서는 여름 휴가 안 가?”
“휴가요?”
“응. 지금 휴식기라서 다들 쉬러 갔잖아.”
“글쎄요. 도련님의 비서인 제가, 혼자만 달랑 휴가를 가도 괜찮나요?”
“뭐, 김 비서가 원한다면…….”
늘 내 옆에서 함께 고생하는 김 비서다.
김 비서도 쉴 땐 쉬어줘야 한다.
그리고 너무 부려 먹으면 김진철 이사가 아마 날 죽일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김 이사가, 왜 자신의 딸에게 쉬는 날이 없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도련님이 쉬지 않으면 저는 쉴 생각이 없는데요?”
“엥? 안 돼! 쉴 땐 쉬어야지!”
내가 펄쩍 뛰며 이야기하자 김 비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저를 이렇게 휴가를 보내게 하려는 거죠? 혹시 제가 모르는 여자가 생기신 건가요? 아니면 벽수그룹?”
“그럴 리가 있나! 김 비서, 내 사생활 다 알고 있으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김 비서에게 어이없다는 듯 반응했다.
그러자 김 비서가 살포시 웃었다.
“농담이에요. 도련님은 옛날부터 여자한테 약했잖아요.”
“……뭐?”
“저는 다 아는걸요. 술을 그렇게 마셔도, 온갖 망나니짓을 저질러도, 절대 여자는 건드리지 않았잖아요.”
“그건 그냥 뭐…….”
내가 여자들을 건드리기보단, 여자들이 재벌가라는 겉모습을 보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여자들이 싫어서 일부러 멀리했었다.
그리고 여자가 없어도 세상에 즐길 건 많았고.
“흠흠. 그 얘기는 그쯤 하지.”
“네.”
그렇게 대화하며 식사를 하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김 비서도 술을 마셨다. 차를 미리 두고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 비서, 이제 들어갈 거지?”
“도련님은요?”
“음. 집에 가야지. 내일 일도 있고.”
아직 평일이기 때문에 편하게 쉴 수가 없다.
내일 일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들어가는 게 맞지.
그런데 김 비서가 나를 놀라게 했다.
“도련님. 조금 더 이따가 들어갈래요?”
“응?”
“소화도 시킬 겸, 같이 걸어요.”
“아아. 그럴까?”
나는 김 비서와 천천히 길을 걸었다.
도심에는 아직 많은 사람이 길을 걷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사이로 나와 김 비서가 나란히 길을 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옆에서 흘깃 쳐다봤다.
내 어깨에 살짝 못 미치는 키에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그녀의 사슴 같은 목덜미와 어깨가 보였다.
그 순간 헛된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크흠.”
나는 바로 고개를 획 돌렸다.
“도련님?”
“어? 왜?”
나를 부르는 김 비서에게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아버지가 저보고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어보셨어요.”
“어?”
“영신그룹에서 나오시고, 뭔가 불안하신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전에는 이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
“도련님,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도련님은 제가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어?”
갑작스러운 그녀의 물음에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내가 멈추자 그녀도 같이 멈췄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여쭤보는 거예요. 제가 다른 남자하고 결혼하면 어떨 것 같아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김 비서가?
회귀 전에도 김 비서는 결혼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연애도 안 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김 비서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왜 대답이 없으세요?”
묘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
그런 그녀를 보며,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굉장한 불쾌감이 속에서 치고 올라왔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하면 안 되는 질문이야.”
“싫으세요?”
“당연히 싫지. 김 비서가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 하! 나도 솔로인데 김 비서가 다른 남자를 만나? 절대 안 돼!”
“…….”
이제는 살면서 내 모든 감정에 솔직해질 수 없었다. 하지만 김 비서에게는…….
“그럼 반대로 묻지. 김 비서는 내가 다른 여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긴다면,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생각지도 못한 역공에 그녀가 당황했다.
“죄송해요. 제가 실수했네요.”
그녀가 곧 내게 사과했다.
사과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
놀라서 쳐다보는 그녀에게 말했다.
“김 비서에게 남자가 생긴다면,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건 경고야.”
“알았어요.”
조금 화난 듯한 내 말에 김 비서가 웃으며 대답했다.
“가죠, 도련님.”
김 비서는 내가 잡은 손을 풀지 않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나도 덩달아 그녀의 손을 잡고 걷게 됐다.
걸어가는 김 비서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여름 휴식기와 함께 중간 이적시장이 열렸다.
흔히 여름 이적시장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구분하기 위한 명칭일 뿐, 실제로 공식 명칭은 아니다.
하여튼 중간에 열린 이적시장 때, 유지원 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그러니까 장현우 선수를 영입하고 싶다고 한다고요?”
“네. 저번 이적시장 때도 제안을 넣었는데 이번에도 또 넣었네요.”
“하아. 도르트문트 애들 왜 이래?”
도르트문트가 이번에도 장현우 영입을 문의했다.
이미 임대에서 완전 이적으로 넘어온 장현우를 노린다는 것은 조금은 상도덕이 없긴 했다.
그럼에도 도르트문트가 장현우를 탐내는 이유는 단순했다.
잘하니까.
“지금 K리그 전반기 도움 1위가 장현우였죠?”
“네. 장현우 선수가 현재 도움 9개로 전반기 도움 1위입니다.”
올 시즌 박형우를 비롯한 공격진들의 엄청난 활약에는 장현우라는 특급 도우미의 활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도움 2위이자 지난 시즌 도움왕이었던 산드루가 도움 5개로, 1위인 장현우와 무려 4개나 차이가 났다.
득점보다 어려운 것이 도움이다.
장현우는 전반기에만 무려 5골 9도움으로 공격포인트가 14개나 됐다.
“도르트문트 외에도 다양한 국내 및 해외 구단에서 문의를 넣고 있습니다.”
“선수는 반응이 어떤가요?”
“흥미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최소한 이번 시즌은 팀에 남겠다는 입장입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이적에 있어서 선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선수가 이적 대신 팀에 남겠다고 선택해 주니 우리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장현우 선수가 우리와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아쉽지만 더 좋은 선수들을 데려와야죠.”
“맞습니다.”
장현우 외에도 다른 선수들에 대한 문의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박요한 선수에 대한 영입도 들어왔다고 들었는데요?”
“아, 네.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 있는 제니트에서 박요한의 영입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어우, 여기 일산도 추운데, 그보다 더 추운 북쪽에서 연락이 오다니.”
“제니트가 차기 시즌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따면서 선수 보강에 열을 올리는 모양입니다. 특히 측면 공격수가 취약한데, 감독이 박요한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모양입니다.”
“선수도 아나요?”
“에이전트 통해서 연락이 왔으니, 아마 알고 있을 겁니다.”
“어휴. 따뜻한 곳으로 보내면 모를까, 여기보다 더 추운 곳으로 선수를 보내고 싶진 않은데 말이죠.”
내 말에 유지원 부장이 허허 웃었다.
“박요한 선수를 보낼 생각은 있으십니까?”
“물론 없죠.”
지금 한창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를 함부로 보낼 생각은 없다.
선수라면 응당 해외에 더 좋은 상위 리그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나는 경영가다.
경영하는 입장에서 대책없이 선수를 내보내는 일은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선수에게 이적은 안 된다고 전달할까요?”
“제가 직접 얘기하죠.”
나는 박요한 선수를 찾아가서 직접 이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박요한이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저 추운 곳은 싫어서 갈 생각 없어요.”
“그래요?”
“네. 그리고 지금은 떠날 상황이 아니라고 보고요. 욕심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긴 한데, 여기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이룬 다음에 떠나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박요한도 당장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박요한은 장현우보다 나이가 더 어렸다.
장현우는 26살.
박요한은 아직 24살이다.
1살이라도 어릴 때 해외에 나가면 좋겠지만, 아직 시간은 있었다.
“예전에 대표팀에서 뛰었던 우민재 형도 26세에 터키 갔다가 EPL 갔잖아요. 분명 기회는 있을 거라고 봐요.”
박요한은 굉장히 자신만만했다.
그런 그가 기특하면서도, 조금 미안했다.
“다음에 좋은 기회가 오면, 그때 도와줄게요.”
“고맙습니다. 대표님.”
* * *
여름 휴식기가 끝나지 않은 어느 날. ㈜요를의 대표 신성한이 나를 찾아왔다.
“이야~ 대표님! 요즘 잘 되고 계시다면서요?”
“오랜만입니다. 대표님도 회사가 엄청 커졌던데요?”
“아휴. 그래도 대표님네만큼이겠습니까?”
“곧 상장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으, 될지 안 될지 모르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요. 무슨 놈의 심사가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네요.”
㈜요를은 유리구슬의 인기로 1년 만에 엄청난 이익을 창출했다.
그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신성한 대표는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했고 성공적인 결과로 이끌었다.
현재는 매출 1,000억대로 회사를 키웠다.
그 결과 최근 상장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아! 저희가 이번에 새로운 작품 하나를 만들까 하는데요.”
“오, 어떤 작품이죠?”
“고양 유나이티드를 소재로 작품을 만드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대표님께 허락을 받고 싶네요.”
“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신성산이 덧붙여 설명했다.
“웹소설과 웹툰의 장점이 뭐겠습니까? 다양한 OSMU로 확장할 수 있는 원천 소스로서의 가능성!”
“으음. 네. 그렇죠.”
“고양 유나이티드가 가진 브랜드 가치를 저희가 준비하는 웹소설과 웹툰으로 연결한다면 분명 좋은 시너지를 낼 겁니다!”
“저희야 그렇게 되면 좋긴 한데, 그렇게 작품을 만들어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죠! 우리나라에서 배출한 세계적인 가수를 소재로 웹소설하고 웹툰도 만들었는데, 불가능한 건 없죠!”
“리스크는 없구요?”
“음. 최대한 리스크를 줄여보게끔 만드는 게 저희 역할이죠.”
신성한 대표의 제안은 꽤 흥미진진했다.
요를에서 출시하는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해외수출까지 진행한다.
잘하면 해외까지 우리 팀을 홍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나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좋은 작품으로 부탁드리죠.”
“고맙습니다! 반드시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