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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126화 (126/272)

126화

검은색 고급 승용차 한 대가 해안가를 따라 질주하고 있었다.

차 안에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핸들을 잡은 누군가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

[품격이 만든 안정감.]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고 굵직한 목소리와 함께 편안한 얼굴로 운전을 하는 김 비서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나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그랬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고.]

그다음 운전하는 김 비서 뒤에 어떤 실루엣이 나왔다.

다리를 꼬고 편안한 얼굴로 뒷좌석에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는 남자, 바로 나였다.

그리고 달리는 차의 앞, 옆, 뒤를 번갈아 보여주었다.

끼익.

절벽 위 해안가에 멈춘 차.

차에서 내린 나와 김 비서가 드넓은 바다를 쳐다보는 사이 또 문구와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라세라티, 클래스에 클래스를 더하다.]

[포르테27]

영상은 그것으로 끝났다.

“어떠십니까?”

영상을 보여준 한국인 직원이 환한 얼굴로 어떠냐고 물어봤다.

나는 영상을 보고 신기해했다.

“오, 우리 분명 초록색 배경에서 하지 않았나요? 언제 해안가를 달렸데?”

“하하. 이거 전부 CG입니다.”

오, 이게 CG라는 거구나.

직접 겪어보니 신기하다.

내 옆에 있는 김 비서도 많이 놀라고 있었다.

“근데 이거만 있나요? 되게 다양하게 찍었는데…….”

“아! 하나 더 있습니다. 버전은 총 2가지이고, 방금 나간 영상은 TV에 나갈 거고요. 이제 보여드릴 영상은 영화관하고 너튜브 같은 플랫폼 광고로 나갈 겁니다.”

직원이 또 다른 영상을 틀어줬다.

이번에는 검은 배경 속에서 차가 한 대가 질주하며 나타났다.

어떤 터널 속을 질주하는 차의 뒷좌석에서 내 실루엣이 천천히 드러났다.

그러면서 문구와 함께 성우가 더빙한 목소리가 나왔다.

[품격과 품격이 만난 기적.]

[라세라티X지태훈]

[지태훈X포르테27]

마지막 문구가 끝날 때, 나는 포르테27의 보닛에 앉아서 카메라를 쳐다보며 영상이 끝났다.

“오!”

영상은 짧았지만 임팩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앞에 영상도 좋았지만, 뒤에 영상이 더 임팩트가 크게 느껴지네요?”

“하하. 그런가요? 영화관이나 플랫폼 광고는 짧고 굵게 가야 해서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손을 비비며 이야기하는 직원의 말에 나는 작게 웃었다.

운전면허도 없던 나는 그래도 광고는 찍을 수 있었다.

대신 나 혼자 단독으로 하지 말고 김 비서도 함께 출연하는 것으로 협의를 보고 진행했다.

“확실히 대표님께서 와꾸… 아니, 잘생기셔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화면이 좋게 나왔습니다!”

“좋네요.”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저희와 또 광고 진행하시죠.”

“언제든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찍은 광고였다.

그것도 자동차 광고로.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좋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광고를 찍고 난 다음에 알베르토 지사장을 만나서 식사를 했다.

“광고가 상당히 잘 나왔더군요.”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저희가 더 감사하죠.”

알베르토는 한국말을 능숙하게 했다.

“지사장님은 한국말을 굉장히 잘 쓰시네요. 혹시 따로 배우셨나요?”

“학생 시절에 이탈리아로 유학왔던 한국인 친구를 사귀면서, 그 친구에게서 한국어를 조금 배웠습니다.”

“오, 그랬군요. 그래도 조금 배운 수준이 아닌데요?”

“라세라티에도 한국인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교류하려면 한국어를 배워야만 했죠. 그리고 일 때문에 한국에서도 몇 년 생활했었고요.”

“아, 이해했습니다.”

나는 알베르토와 식사하면서 그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쩌다 보니 축구 얘기도 나왔다.

“대표님이 K리그 구단주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K리그는 어떤 곳입니까?”

“나름 경쟁력 있는 리그입니다. 한국 축구의 시작점이기도 하고. 적어도 아시아에서 K리그를 능가하는 리그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축구를 좋아하십니까?”

“좋은 걸 넘어서 그냥 인생이죠. 이탈리아 사람들 중에서 축구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오, 그렇군요.”

확실히 축구 얘기가 나오니까 알베르토의 태도가 달라졌다.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땐, 딱딱한 사람인 줄 알았다. 때론 차갑게도 느껴졌다.

그래서 원래 그런 사람인가 싶었다.

그런데 축구로 물꼬를 트니 내가 전혀 잘못 생각했던 걸 알았다.

“저는 평생 나폴리를 응원하고 있죠. 부모님이 나폴리를 응원하셨거든요.”

“그렇군요.”

알베르토의 이야기를 들으니 신기한 점들이 많았다.

뭔가 이들에게는 축구는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로 축구를 좋아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제가 라세라티에 들어왔을 때, 제 사수가 유벤투스 팬이었죠.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수는 자신이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유벤투스가 나폴리보다 한 수 위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저를 자극했거든요.”

“조금 그렇네요.”

“하하. 하지만 우리에게는 늘상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렸죠.”

“제가 알기로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걸로 아는데요. 나폴리가 더 잘하죠?”

“그렇죠. 유벤투스가 한때 우승을 많이 하긴 했어도 지금은 우리보다 밑이고요.”

“오, 그렇군요.”

“사수는 한참 전에 회사를 그만뒀지만, 아마 이제 제 앞에서 축구 얘기는 꺼내지도 못할 겁니다. 하하하!”

나는 축구 얘기로 알베르토 지사장과 좀 더 친밀해질 수 있었다.

앞으로 유럽 사람들을 만나면 축구 얘기부터 꺼내 봐야겠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습니까?”

“저희 부모님을 포함한 대다수의 나폴리 사람들은 마라도나를 좋아하지만 저는 함식을 좋아합니다.”

“함식?”

“모르십니까? 마렉 함식. 나폴리의 레전드입니다.”

“좀 더 자세히 알려 주실까요?”

“마라도나가 나폴리의 영광을 함께 했다면, 함식은 나폴리가 어려울 때 팀을 위해 크게 헌신한 선수죠. 나는 그가 나폴리에서 은퇴해주기를 바랐지만, 그저 바램만 되었군요.”

“그랬군요. 그래도 그렇게 팬들이 기억해줄 수 있는 선수가 있다는 것도 팀에 굉장히 좋은 일이네요. 부럽습니다.”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럼 싫은 선수도 있습니까?”

내 질문에 알베르토가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

“곤살로 이과인.”

“…….”

“아주 쓰레기……크흠. 아무튼 싫습니다.”

“아, 네.”

순간 울컥하며 대답하던 알베르토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대표님의 팀에는 레전드들이 있습니까?”

“저희도 있죠.”

나는 현재 팀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알베르토가 눈을 빛냈다.

“오, 그거 엄청 좋은 행사인데요? 그건 나폴리에서도 없던 행사입니다.”

“그래요?”

“네. 레전드를 대우하는 행사라. 선수를 대우해주는 일은 종종 있지만, 팬까지 챙겨주는 경우는 못 봤습니다.”

알베르토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대표님은 정말 팬을 위해 운영하고 있군요. 축구팬으로서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네요.”

어느샌가 우리 사이에는 훈훈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그러자 알베르토가 말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와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네?”

“이렇게 간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기쁘네요.”

“저도 좋지요. 그럼 한잔하시죠.”

그날 우리는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마셨다.

* * *

우리가 찍은 광고는 금방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광고를 본 팬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어떤 남자가 이렇게 고급 차와 어울릴 수 있을까?

-찢었다.

-최고다!

칭찬 일색이었다.

내 개인 SNS에 일부러 댓글까지 남겨주며 칭찬하는 팬들도 있었다.

각종 커뮤니티에도 광고를 보고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보고 흡족했다.

아무래도 잘 찍은 것 같다.

그렇게 흐뭇해하고 있는 나에게 소식이 들려왔다.

“지 대표.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자네가 찍은 광고도 봤네. 굉장히 멋있더군.”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자네를 부른 건, 앞선 조사 결과 때문일세.”

“어떻게 됐습니까?”

나는 석정원 회장과 단둘이 만났다.

늘 만나던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조사 결과, 누군가가 버스 엔진과 브레이크에 손을 댄 흔적이 발견됐네.”

“…….”

“문제는 사건 현장에서 누군가가 이미 블랙박스를 탈취해서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네.”

“주변 CCTV로는 확인이 어렵습니까?”

“조사 중이기는 한데, 경찰도 쉽게 찾지 못하는 모양이야. 상대가 굉장히 용의주도했어.”

결국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이 쉽게 찾지 못할 것이다. 지난번처럼 지태완이 경찰 내부 관계자들을 포섭했다면.

미간을 좁히는 나에게 석정원 회장이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말대로, 어쩌면 자네 형이 이번 일을 벌인 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회장님, 혹시 이 일을 이진호 회장도 알고 있습니까?”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네. 지금 자네에게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세.”

“그럼 이진호 회장에게는 이야기하지 말아주십시오.”

“어째서인가?”

“이걸 알면 자칫 태조그룹과 영신그룹이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일로 태조그룹이 영신건설의 힘을 빼놓으면 좋겠지만, 나는 지금 큰그림을 그리고 있다.

태조그룹이 이번 일로 UAE 신도시 사업에서 빠지기라도 한다면, 내 계획에도 큰 차질이 생긴다.

적어도 지금은 안된다.

“알겠네. 일단 자네 뜻대로 이진호 회장에게는 말하지 않겠네. 하지만 이진호 회장도 이번 일과 관련하여 따로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게.”

“이진호 회장이 뒷조사를 하고 있다고요?”

“다른 일도 아니고 아들 일이야. 그것도 끔찍이도 아끼는 장남의 일인데.”

그 말에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진호 회장과 그의 아들은 서로 관계가 안 좋은 거 아니었습니까?”

내 말에 석정원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이태수 선수 입장에서의 일이고. 이진호 회장은 성격이 좀 그래서 그렇지, 아들에 대해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어.”

“…….”

“아버지라면 응당 자식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지. 그건 자네 아버지도 마찬가지지 않았는가.”

“그건… 그랬죠.”

“어쨌든 이 일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네.”

석정원 회장도 프로축구연맹 회장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서울 드래곤즈는 어떻습니까?”

“이태수 선수를 포함한 몇 명의 선수를 제외하면 다들 신체적으로는 멀쩡하네만, 문제는 정신이지.”

“그렇죠. 오래갈 겁니다.”

“하마터면 모두가 죽을 뻔한 대형 사고를 겪었네. 실제로 모두 죽지는 않았지만 동료 선수가 강제로 선수에서 은퇴할 대형 악재고.”

사고의 충격으로 서울 드래곤즈는 전반기 일정을 먼저 종료했다.

선수단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아 제대로 경기를 소화할 수 없었다.

그래도 1경기만 남겨 두고 있던 터라, 못 치른 경기는 후반기에 치르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현재 리그는 여름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서울 프런트 말로는 현재 선수단 모두 정신과 심리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더군.”

“……하아.”

나는 서울 선수들과 태조그룹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죄송합니다. 못난 형 때문에 이런 일이…….”

“자네가 잘못한 것은 없네. 그러니 자네가 사과할 것도 아니야. 그저…… 자네 형이 제대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맞겠지.”

석정원도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어도 지태완을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든 힘을 다해 돕겠네. 그러니 함께 해결해 가지.”

“알겠습니다.”

* * *

내가 아무리 영신그룹이라는 재벌가 출신이라고 해도, 현실은 그저 작은 구단주와 건설사 대표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영신그룹 회장으로 있는 지태완을 단번에 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무사히 잘 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계속 가져갈 생각은 없었다.

“내가 더 빨리 성장해야 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는데, 내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김 비서.”

그녀가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순간 복잡한 마음도 잠깐이지만 잊을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 생각하고 있었지.”

“하여간. 도련님도.”

“김 비서.”

“네?”

“오늘 시간 괜찮으면 같이 저녁이나 먹을래?”

“네?”

“모처럼 오붓하게 둘이서만 먹자.”

내 말에 김 비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미소를 보였다.

“좋아요. 그럼 이거 데이트 신청인 거죠?”

“으음. 데이트인가?”

“데이트 신청하셨으니, 오늘 밥은 도련님이 사세요.”

“언제는 내가 안 샀나?”

“회사가 샀죠? 늘 법인카드로 긁으셨으니.”

“…….”

내가 황당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김 비서가 웃었다.

“히히. 농담이에요. 알았어요. 그럼 빨리 남은 업무 마무리 짓고 저녁 먹으러 가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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