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유명 축구 커뮤니티에 게시글이 올라왔다.
【개념】속보, 지태훈 대표 sns 만들었다!
-엥? 지태훈 대표가 SNS 계정을 만들었다구?
-어? 진짜네! 인별그램에 만들었네. 올린 지 아직 10시간도 안 됨.
-솔까 축구팬이라면 팔로우 가즈아!
그동안 공식 계정이 없었던 지태훈의 공식 계정 생성 소식에 국내 축구팬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팬이 올린 게시글은 단숨에 베스트글로 올라갔고, 게시글을 본 축구팬들이 해당 계정을 팔로우했다.
그런데 단순히 축구팬들만 반응하지 않았다.
【아이돌 갤러리】
[언니들! 지태훈 대표 인별그램에 계정 만들었데!]
어떤 축구팬이 장난 삼아 ‘아이돌 월드’라는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올렸다.
아이돌 월드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이 활동하는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지태훈이 누군데?
-그 왜 있잖아 우리나라 존잘 축구 구단주.
-아! 그 미녀 비서 언니하고 같이 다니는 분?
-ㅇㅇ
-세상에! 대박! 개존잘! 나 바로 팔로우했어! ㅋ
지태훈이 찍어올린 셀카를 본 일부 아이돌 팬들이 그의 계정을 팔로우했다.
그렇게 지태훈의 첫 공식 개인 계정은 눈 깜빡할 사이에 팔로우 숫자가 늘어났다.
* * *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엄청나게 늘어난 팔로워 숫자를 보고 손이 덜덜 떨렸다.
“대표님! 대박이네요! 팔로워 숫자가 하루 만에 10만 명을 찍었어요!”
“역시 우리 대표님이야!”
천지원 부장이 신난 얼굴로 외쳤다. 옆에 있던 김 비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도련님이 이렇게 인기가 많았다니.”
처음에는 이런 인기가 상당히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은 금방 사라졌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제법 나를 좋게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존잘 구단주님
-이제 우리 구단주님을 인별에서도 볼 수 있구나ㅠㅠㅠ!
-개행복해! 사진 많이 올려주세요!
-고양 유나이티드 만세! 대표님 만세!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들을 모두 확인한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더 올릴까?”
하지만 이런 인기라면 평범한 사진을 올릴 수는 없다.
약간의 서비스가 필요하겠지?
“천 부장님.”
“네?”
“마케팅 직원들 모두 모이라고 하세요. 사진 하나 찍읍시다.”
“사진이요?”
“지태훈표 인별그램 사진이 뭔지 보여주겠습니다.”
그렇게 마케팅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약간의 보정을 거쳐서 업로드됐다.
업로드된 사진을 본 팔로워들이 깜짝 놀랐다.
-대박!
-미쳤다. 역시 금수저 구단주 클라스를 보여주네!
-이건 진짜 지태훈만 소화할 수 있는 사진이다ㄷㄷ
마치 왕이 앉는 고급스러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나는 한 손에 묶음으로 된 신사임당을 쥐었다.
그리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내 뒤로 돈다발이 뿌려졌다.
사진 컨셉은 ‘돈 많은 구단주’
의도를 제대로 보여준 나는 업로드된 사진 밑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남겼다.
[나에게 총알은 많다!]
이 사진은 훗날 나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 *
순항 중이던 고양 유나이티드는 6라운드에서 강원을 만나 2:1 승리를 거두었다.
강원을 홈으로 불러들인 고양은 전반전에 먼저 실점을 당했다가 이후 후반전에 연달아 2골을 넣으며 짜릿한 역전에 성공했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한석원이 K리그 데뷔골을 신고했는데, 이 골이 결승골이 되었다.
그렇게 파죽지세로 질주하던 고양에게 암초가 나타나고 말았다.
바로 울산과 포항이었다.
K리그의 명품 더비로 손꼽히는 동해안 더비의 주인공인 울산과 포항을 연달아 만나게 된 고양.
그리고 이 두 팀에게 고양은 연패를 당했다.
7라운드 울산에게 2:3 역전패.
8라운드 포항에게 0:1 패배.
2경기 연속 패배로 1위를 질주하던 고양의 순위는 단숨에 3위까지 내려앉았다.
“아쉽지만, 그래도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았다.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수치니까 끝까지 집중하자!”
곽찬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은 실망하는 선수들을 위로와 격려로 북돋아 주었다.
그러는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고양 유나이티드를 방문했다.
“어, 그러니까 당신 이름이 미하엘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맨체스터시티에서 콘라드 감독을 보좌했고요?”
“네. 맞습니다.”
눈앞에 대머리 남자는 자신을 미하엘이라고 소개했다.
그와 동시에 화려한 과거들을 지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왜 이런 사람이 우리 구단에 방문한 걸까?
이유가 있었다.
“혹시 이곳에서 일을 해볼 수 있겠습니까?”
“네?”
“나는 봤습니다! 이 팀이 가지고 있는 야망을! 이런 팀이라면 새로운 도전을 원하는 저와 딱 맞을 거라 봅니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포부를 밝히는 미하엘을 바라보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에 쥔 서류를 내려놓고 짧게 말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안 됩니다.”
“뭐요!?”
“저희는 이미 코칭스태프가 모두 구성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엄연히 헤드 코치가 존재합니다.”
“이곳 헤드 코치와 이야기해 볼 수 있겠습니까?”
헤드 코치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감독이다.
미하엘 코치는 곽찬구 감독과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다.
멀리서 온 손님을 무작정 내쫓기도 그랬다.
“어쩔 수 없나.”
“네?”
“아닙니다. 곽찬구 감독하고 이야기하시죠.”
그렇게 호출을 받은 곽찬구 감독이 미하엘 코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분은!?”
“아는 분입니까?”
“모를 수가 있나요. 그 유명한 맨시티의 콘라드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인데?”
명장으로 평가받는 콘라드 감독.
그의 휘하에는 꽤 대단한 코치들이 있는데, 미하엘이 그런 코치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지난 시즌인가? 콘라드 감독이 경고받고 부재중이었을 때, 미하엘 코치가 경기를 지휘한 걸 봤습니다. 그때 첼시를 3:2로 누른 것도 봤고요.”
“……라고 감독님께서 이야기합니다.”
“오, 저에 대해 잘 알고 있군요!”
곽찬구 감독의 말에 미하엘이 눈을 빛냈다.
나는 가운데서 통역을 하면서 두 사람이 대화할 수 있게 도왔다.
그러면서 미하엘 코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저는 맨체스터시티에서 근무하면서 콘라드 감독과 함께 선수단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그 체계 안에는 선수들의 몸 상태를 포함한 개별 관리 시스템을 다뤘고요.”
“호오.”
“작년에 맨시티는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가 만든 체계 덕분이었죠.”
“그렇다면 우리 팀에도 그런 체계를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저에게 기회를 준다면, 고양에도 맨시티와 같은 체계가 적용될 수 있게 활동할 생각입니다. 그게 제 장점이기도 하고요.”
“그거 좋군요.”
미하엘과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던 곽찬구 감독이 나에게 말했다.
“대표님. 이런 분이 저희와 함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다른 코치분들하고 일해도 괜찮겠습니까?”
“아마 다들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프리미어리그, 그것도 맨시티라는 빅클럽의 경험치는 엄청난 도움이 될 거니까요.”
“그렇군요.”
곽찬구 감독마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나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미하엘 코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미하엘 코치.”
“감사합니다. 보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미하엘 코치의 합류 소식을 언론에 알렸다.
【오피셜】맨체스터시티 미하엘 코치, 고양 유나이티드 합류!
-선수 등록 기간도 끝났는데 뭔 오피셜인가 했더니 완전 띠용이네!
-와, 그 콘라드 밑에 있던 그 미하엘 코치가 온다고?
-강철인이 고양 유나이티드 추천해준 거 아냐? ㅋㅋ
-개쩐다. 갑자기 팀 퀄리티 높아져버렸네.
미하엘 코치 합류 소식에 축구팬들은 환호했다.
종종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얼굴을 비췄던 미하엘 코치는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미하엘 코치의 합류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주장이자 에이스, 강철인의 어시스트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한국행을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강철인이었습니다.”
“강철인 선수가요?”
“네. 자신이 국가대표에서 활동하면서 함께 뛴 팀 동료가 고양 유나이티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들을 들은 강철인이 저에게 한국행을 추천했고요.”
강철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우리 팀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은 미하엘은 주저하지 않고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인데…… 고맙네. 나중에 밥 한 끼 산다고 얘기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미하엘 코치가 말했다.
“고양에는 생각보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더군요.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린다면 향후 더 좋은 리그에서 뛸 수 있을 겁니다.”
“오, 그거 좋은 말이네요.”
상당히 긍정적인 미하엘 코치의 평가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죠. 미하엘 코치.”
“물론입니다.”
* * *
박형우가 드디어 햄스트링 부상을 회복하고 선수단에 복귀했다.
선수단에 복귀한 그는 축 처진 팀 분위기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다들 분위기가 왜 그래?”
“형우야, 네가 없는 동안 우리가 너무 힘들었던 거 알아?”
주장 김지우의 말에 박형우는 피식 웃었다.
“고작 2게임 졌다고 그런 겁니까? 나 없을 때 잘만 뛰더만.”
“뭐?”
“하하하! 이제 제가 돌아왔으니 서로 잘해보죠!”
“그래! 얌마! 너 믿는다!”
“믿어보세요!”
박형우의 합류로 선수단은 다시 밝은 분위기를 되찾아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말 리그 경기에서 박형우는 엄청난 존재감을 선보였다.
『부상에서 복귀한 박형우가 바로 선발로 나왔는데요! 기용되자마자 득점까지 만들어 냅니다!』
『대단합니다! 이번 득점으로 리그 5호 골을 기록합니다!』
홈에서 인천을 상대로 깔끔하게 선제 득점을 만들어낸 박형우.
와아아아!
그야말로 왕의 귀환이었다.
홈팬들은 박형우의 이름을 외치며 기뻐했고, 동료들도 골을 넣은 그를 축하했다.
박형우의 활약 덕분에 고양은 인천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박형우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벤치에 있던 한석원이었다.
‘저 형은 미쳤다.’
과거 유럽에서 실패했던 박형우.
한석원은 그가 왜 유럽에서 실패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당장 유럽으로 가도 먹힐 실력인데?’
팀에서도, 국가대표에서도, 박형우는 차원이 다른 클래스를 보여줬다.
특히 지난번 월드컵을 기점으로 그는 확실하게 달라졌다.
그런 그를 곁에서 보는 한석원은 느끼는 게 많았다.
‘언젠가는 내가 넘어야 할 부분이겠지.’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런 한석원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박형우였다.
“어? 형우 형?”
“석원아.”
“네?”
“너 충분히 잘하고 있다. 너만 신경 써. 그럼 더 잘 될 거야.”
“……!”
“그럼 힘내라. 간다.”
박형우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쳐주고 자리를 떠났다.
한석원은 주먹을 쥐었다.
‘뭐야. 저 형, 엄청 멋있잖아!’
언젠가 박형우처럼 되겠다고 다짐하는 한석원이었다.
* * *
고양 유나이티드가 순항을 거듭하고 있는 무렵, 기사 하나가 떴다.
【(주)TH투자 회사, 영신건설 인수!】
소문만 무성했던 영신건설 매각이 현실로 드러났다.
그리고 영신건설을 인수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내가 있는 ㈜TH투자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도련님, 예정대로 기사가 떴습니다.”
“아아. 시간 맞춰서 잘 떴네.”
“칼리드 왕자가 사람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어디에 있는 걸까요?”
“글쎄…… 두고 보면 알겠지.”
그리고 나는 김 비서와 함께 지금 UAE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