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20화 (120/272)

120화

영국, 맨체스터.

“정말로 그만둘 생각인가?”

“네. 제가 여기서 할 역할은 끝난 것 같습니다.”

“끝났다니. 여전히 자네가 해줄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를 대신해서 호르헤가 잘 해줄 겁니다.”

두 명의 대머리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하늘색 계열의 맨체스터 시티 로고가 박혀 있는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바로 현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콘라드였다.

과르디올라 이후 맨체스터 시티를 정상급으로 이끌고 있는 감독으로,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콘라드 감독이 명장이 될 수 있게 옆에서 도운 이들 중 한 명이 눈앞의 또 다른 대머리 미하엘이었다.

미하엘 코치는 팀의 피지컬과 전술 보조 코치를 도맡아서 콘라드 감독을 곁에서 도왔다.

그런 그가 그만두는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안 되겠나? 시즌이 끝난 후에라도…….”

“아닙니다. 박수 칠 때 떠나야죠. 지금이 적기입니다.”

“허어.”

콘라드 감독은 어떻게든 떠나려는 미하엘 코치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미하엘 코치의 의지는 강력했다. 이미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 그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어려웠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후우. 알겠네. 어쩔 수 없지. 자네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바라겠네.”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을 깨달은 콘라드 감독은 그를 보내줘야만 했다.

“그런데 궁금하군. 앞으로 어디로 갈 생각인가? 프리미어리그에 계속 있을 생각인가?”

감독의 말에 미하엘은 고개를 저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미 모든 걸 이루었습니다. 감독님과 함께 말이죠.”

“그러면 라리가? 분데스리가? 아니면 세리에A?”

“아닙니다.”

“……정말 이야기 안 해줄 생각인가?”

실망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는 감독에게 미하엘은 작게 웃었다.

“저는 아시아로 갈 겁니다.”

“아시아? 하필 그렇게 먼 곳까지 가려는 이유가 뭔가?”

“네. 그곳에서 제가 새롭게 도전할 길을 찾았거든요.”

“흐음.”

콘라드 감독은 알고 있었다.

미하엘이 상당히 똘끼가 있다고.

하지만 그만큼 축구에 있어 진심이었다.

그런 그가 아시아로 간다고 하니,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아시아 어디로 가려고 하나? 중국? 거기는 최근 위태로운 곳이고, 아니면 중동? 사우디?”

“아닙니다.”

“……?”

“저는 한국으로 갈 겁니다.”

“한국?”

“네. 그곳에서 저만의 길을 걸어갈 겁니다.”

미하엘 코치의 포부에 콘라드 감독은 할 말을 잃었다.

* * *

상암 월드컵 경기장.

『경기는 어느덧 후반전으로 넘어가고 있는데요. 양 팀 모두 아직 0:0의 균형을 깨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와 서울 드래곤즈의 경기는 어느덧 후반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막걸리로 유명한 박하윤 해설과 이형욱 캐스터가 함께 했다.

박하윤 해설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올 시즌 고양의 공격 스타일은 확고하거든요. 중원에서 킥 좋고 시야 넓은 장현우를 가운데 딱 두고, 좌우 측면에 발이 무척 빠른 박요한하고 나탈이 우당탕탕 뛰어가서 상대 수비를 흔들면, 하프스페이스와 최전방을 오고 가는 박형우와 사무엘이 득점으로 만들어 주는데…… 박형우가 지금 없죠?』

『네? 아, 네. 부상으로 계속 결장 중이죠.』

『그래서 지금 박형우 자리에 보시면 한석원 선수가 대신하고 있는데, 스타일이 다르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오늘 전반전에도 그렇고 서울이 계속 내려앉아서 수비한단 말이에요. 뒷공간 안 주려고.』

박하윤의 설명대로 서울은 계속 주저앉는 수비를 했다.

어떻게 보면 소극적인 플레이로 보일 수 있으나, 상대 전술에 맞는 전략적 선택이라 볼 수 있었다.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서울에게도 아주 큰 문제가 있어요.』

『스트라이커가 없다고 말씀하시려는 거죠?』

『역시, 이형욱 캐스터가 뭘 좀 아시네요. 서울은 최근 요 몇 년 동안 스트라이커가 없어서 득점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이형욱은 중계하다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그러다가 금방 진지한 자세로 돌아와서 그의 말에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박하윤 해설님 말씀대로 서울은 최근 제대로 득점해 줄 수 있는 선수가 부족한 상태인데요. 이번 시즌도 좌우 측면에서 뛰는 조진우와 카라박 선수에게 의존하고 있는데요. 둘 다 완벽한 스트라이커는 아니죠.』

『이번 경기 어쩌면 1골 싸움으로 끝날 수도 있는데요.』

필드에서 뛰는 고양 선수들은 경기가 쉽게 풀리지 않아서 답답함을 느꼈다.

‘형우가 없는 게 정말 아쉽긴 하네.’

곽찬구 감독은 속으로 아쉬움을 삼키고 있었다.

박형우가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개인 플레이로 승부를 뒤집는 능력을 보였을 것이다.

‘석원이가 못해 주는 건 아니지만 아직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이고. 이걸 어쩐다.’

지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분명 경기의 주도권은 고양이 쥐고 있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여기서 승점 3점이 아닌 1점만 가지고 간다면 아쉬움은 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곽찬구 감독을 놀라게 하는 장면이 나왔다.

『장현우가 짧게 패스를 합니다. 한석원이 받습니다. 한석원, 앞으로 전진하는데요!』

『오늘 한석원 선수의 역할이 큽니다! 여기서 하나 보여 줘야죠!』

『한석원, 드리블 돌파! 아니고, 로빙패스!』

『이야아아 찬쓰죠!』

지켜보던 고양 팬들과 벤치에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석원이 시도한 로빙패스가 서울의 뒷공간을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물어진 공간에는 라인브레이커 박요한이 어느새 뛰어가 있었다.

『아잇! 빡요한인데요!』

『박요한 때립니다--! 슈우웃!』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순식간에 결정적인 찬스를 만든 박요한이 서울의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슈팅을 때렸다.

팡!

빨랫줄처럼 낮고 빠르게 날아간 슈팅이 서울의 골키퍼를 제쳐 골문 구석 안으로 정확하게 빨려 들어갔다.

출렁-.

『이거죠! 이게 바로 롸인 브뤠이커! 빡요한이에요! 써울이 가장 조심해야 했던 부분인데! 결국 실점하네요!』

박요한의 득점에 해설하던 박하윤이 침을 튀기며 흥분했다. 그 옆에 있던 이형욱도 마찬가지였다.

『팽팽한 균형에 기름을 붓는 골이 나왔습니다! 박요한의 이번 시즌 리그 4호 골이 나왔습니다!』

『이야~ 제가 박씨거든요? 정말 같은 박씨로서 자랑스러운 플레이네요!』

『네? 아하하하!』

후반 32분쯤에 터진 박요한의 골로 경기의 균형은 고양 쪽으로 급격하게 흘러갔다.

검붉은 물결을 이룬 서울은 침묵에 휩싸였다.

한편, 원정팀 좌석은 노란 물결로 출렁이고 있었다.

『진짜 고양이 대단합니다. 어떻게든 결과를 만드네요. 이번 시즌에 왜 고양 유나이티드가 부각되는지 증명해 주네요.』

『라리가 클래스를 보여준 한석원의 결정적인 패스도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박요한과 한석원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웃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한석원 선수도 대단하네요. 박형우 선수가 부상당한 이후 2경기 연속 선발로 출전하면서 2도움을 기록합니다!』

『아마 박형우 선수가 지금 TV로 경기를 보고 있을 텐데, 긴장 좀 하겠어요.』

실제로 집에서 생중계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박형우는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깜짝 놀랐다.

“어우 씨, 깜짝이야! 갑자기 내 이름이 왜 나와?”

그러면서도 상승세를 타는 팀을 보며 꽤 자극을 받고 있었다.

“늦게 돌아가면 내 자리가 없겠는걸.”

경기를 보던 박형우가 주먹을 쥐었다.

* * *

고양 유나이티드는 5라운드에서 서울마저 잡으며 파죽지세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이번 시즌 최대의 이변이나 다름없었다.

2부에서 막 올라온 팀이 쟁쟁한 우승 경쟁 팀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표님! 이것 보세요!”

“음?”

“트리위키에 대표님과 관련된 정보가 올라왔어요!”

천지원 부장이 내게 트리위키를 보여주었다.

“헉!”

정말 그의 말대로 트리위키에 내 신상정보가 올라와 있었다.

“근데 트리위키가 뭐죠?”

“그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인데요. 여기에 기록될 정보면 꽤 많은 대중에게 관심받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오, 그 정도군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좀 더 자세히 트리위키를 봤다.

대충 간략한 프로필과 목록들이 나와 있었다.

“뭐야. 이거 내 사진도 있잖아? 이거 누가 올린 겁니까?”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인터뷰할 때 찍혔던 사진을 누군가가 큼지막하게 올려놨다.

사진은 잘 나왔군.

어디 보자… 개요?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K리그 고양 유나이티드의 구단주[1].

영신그룹의 고(古)지종윤 회장의 망나니 막내아들[2]이며 서자 출신이다.

2025년 당시 K리그2 소속이던 고양 유나이티드의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현재는 모기업이던 영신그룹으로부터 고양 유나이티드를 완전하게 인수해서 구단주[3]가 되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는 ㈜TH투자회사[4]의 대표이기도 하다.

한국의 아브라모비치[5]로 불린다.

“신기하네.”

개요만 읽었을 뿐인데 뭔가 되게 신기했다.

“잠깐만. 내가 한국의 아브라모비치? 이거 진짠가요?”

“모르셨습니까?”

내 반응에 오히려 천지원 부장이 더 놀라고 있었다.

“K리그 팬들 사이에서 이미 대표님은 오래전부터 첼시의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많이 비교되었습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요.”

“뭐랄까. 영광이네요.”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사이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과 비교될 정도라니.

내가 그만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근데 이왕이면 만수르하고 비교되면 더 좋을 텐데.”

“곧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 말에 김 비서가 끼어들었다.

“도련, 아니, 대표님은 대표님이 되어야죠. 언젠가는 지태훈이란 이름 그 자체로 말이죠.”

김 비서의 말에 나는 놀랐다가 곧 멋쩍은 표정을 드러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나머지는 나중에 시간 나면 읽어봐야겠군요.”

“네.”

“그건 그렇고 이것 때문에 저를 찾아오셨나요?”

“아, 그건 아니고요. 대표님께 사실 제안 드릴 부분이 있어서 왔습니다.”

“제안이요?”

천지원 부장은 마케팅팀 직원들과 회의 끝에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저보고 SNS 계정을 만들라고요?”

“네. 요즘 보면 대표님처럼 재벌가 출신들이 SNS를 만들어서 대중들과 소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SNS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으음. 일부러 만들지 않은데…….”

“세간에 대표님을 향한 관심이 큽니다. 그러한 관심을 SNS를 통해 적극 활용하는 겁니다.”

“팀에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마케팅 팀에서 자체적으로 대표님의 SNS 계정을 함께 관리할 겁니다. 그러면 리스크는 적어질 겁니다.”

“으음. 고민 좀 해볼게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기는 했다.

내가 고민하는 기색을 드러내자 천지원 부장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건 좋은 기회입니다. 팀과 대표님에게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고민 끝에, 결국 결단을 내렸다.

“좋아요. 한번 해보죠. 대신 문제가 생기면 바로 계정 폐쇄하는 걸로 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 이름으로 된 공식 SNS 계정이 만들어졌다.

지태훈 [relife]

안녕하세요.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 지태훈입니다. 공식 계정이고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직접 찍은 내 얼굴 사진과 함께 첫 게시글을 올렸다.

계정 영문 아이디는 ‘relife’로 지었다. 한번 회귀하면서 인생을 한 번 더 살게 된 나를 위해 지은 것이다.

물론 이 뜻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그저 망나니의 ‘개과천선’의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SNS 계정에는 당연히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뭐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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