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라시모프의 어머니가 쓰러지셨다고요?”
“네. 그래서 선수가 많이 불안해합니다.”
곽찬구 감독으로부터 라시모프의 소식을 듣게 된 나는 화들짝 놀랐다.
“어머니는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진다고 합니까?”
“그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치료가 어렵다고 합니다. 비용도 비용이고.”
“라시모프가 받는 연봉이 적은 액수는 아닐 텐데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물어보니까 라시모프의 집은 대가족이더군요. 사실상 가장은 라시모프고요.”
“그랬군요.”
“축구 선수 중에 이런 경우 많습니다. 특히, 남미나 아프리카 쪽 선수들의 경우 이런 일들이 심한 편이죠.”
곽찬구 감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야기가 흠칫 놀랐던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선수는 무엇을 원합니까?”
“구단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도움이라…….”
라시모프는 현재 우리 팀의 주축 선수다.
현재로서 그를 대체할 선수가 없다. 게다가 이적시장도 끝난 상황.
그렇다면…….
“라시모프의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셔오게 하세요.”
* * *
일은 굉장히 신속하게 진행됐다.
유지원 부장이 직접 우즈베키스탄으로 날아가서, 라시모프의 어머니 상태를 확인했다.
확인한 후 한국으로 모셔왔다.
한국 땅까지 밟게 된 라시모프의 어머니. 자미나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아들아!”
“어머니!”
감격적인 모자 상봉을 지켜본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어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대표님.”
“…….”
“대표님!”
“네? 크흠. 말씀하시죠.”
라시모프는 통역사를 통해 내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구단에서 지원해 준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합니다.”
“당신은 우리 팀에 있어 중요한 선수입니다. 응당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해야죠.”
나는 라시모프의 어머니를 즉각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했다.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은 전 세계 톱을 달린다.
병원에서도 다행히 시기가 늦지 않아 완치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장기 치료와 입원은 불가피했다.
그러자 자미나가 난색을 표했다.
비싼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돈은 걱정 마세요. 어머니의 치료비는 저희 쪽에서 모두 부담할 예정이니까.”
의사에게 문의해 보니 병원비는 우리가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라시모프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런 금액을 지원해 준다고 하니, 라시모프와 어머니 모두 감격했다.
“당신은 정말 하늘이 내려준 인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자미나는 내 손을 잡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맞잡아주며 말했다.
“모두 아드님 덕분입니다.”
라시모프가 잘해 주기 때문에 나도 이렇게까지 해줄 수 있었다.
만약 연봉만 축냈다면, 이렇게까지 해주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자미나는 우리 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 * *
나는 서울의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국회의원인 지태선을 만났다.
“그래, 마음은 좀 괜찮나?”
“네. 돌아가신 아버지만 신경 쓰기에는 제게 주어진 일이 많아서 말이죠.”
“허허. 하긴, 너도 요즘 제법 잘 되고 있으니까. 그리고 완장을 찼으니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거고.”
지태선의 말에 나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회장님은 생전에 내게 은혜로운 분이셨어. 내가 이렇게 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회장님의 은밀한 지원 덕분이었지.”
“그랬군요.”
지태선은 나에겐 친척으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현 시민당 소속 국회의원이면서 동시에 시민당 대통령 후보 이현승 캠프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대선은 좀 어떻습니까? 윤곽이 좀 드러납니까?”
“별문제 없다면 후보님이 당선될 확률이 커. 현 대통령의 지원도 받고 있으니까.”
“그렇습니까?”
“이건 외부에 얘기하지는 말았으면 좋겠군. 뭐, 이쪽에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말이지만, 직접적으로 말이 퍼지는 건 다른 문제니까.”
이태호 대통령의 오른팔로 활동하며 국무총리까지 지내던 이현승.
마침내 대선까지 도전하게 된 그는 현재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다.
시민당의 라이벌이자 제1야당인 공화당은 이번에 야심차게 정권 교체를 외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공화당 후보로 나온 우재철이 스스로 무덤을 파더군요.”
“너도 알고 있군.”
“알죠. 매일 기사에 나오는데.”
우재철은 사업가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하였다가 이번에 공화당 대선으로 나왔다.
사업가 출신답게 나름의 수완을 뽐내기는 했지만, 문제는 대결 상대가 이현승이었다.
이현승은 오랜 시간 정치 활동을 해왔다. 우재철과 비교도 되지 않은 노련함으로, 상대를 쥐고 흔들었다.
“자네는 대선을 어떻게 보고 있나?”
은근한 기대가 느껴지는 지태선의 질문에 나는 조금 생각했다가 대답했다.
“매번 대선 때가 다가오면 누구를 위한 대선인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어떤 이상적인 목표를 내세우는 것도 좋지만, 국민들 입장에서 당장의 현실이 더 중요하죠.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챙겨줄 수 있는 그런 리더가 필요합니다.”
내 말에 지태선이 놀라워했다가 곧 작게 웃었다.
“놀랍구만. 자네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러더니 이번에는 좀 더 과감하게 말을 꺼냈다.
“자네는 누가 이겼으면 좋겠는가?”
“글쎄요.”
아마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현승이 되면 좋겠다고 대답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이 흐름대로 간다면 대통령은 이현승이 될 겁니다. 지나가는 어린 이를 붙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대답할 겁니다. 한쪽은 무덤을 파고, 한쪽은 노련하게 이 상황을 이용하고 있고요.”
“…….”
“그러니 저는 이현승이란 사람이 대통령이 된 상황을 가정하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러자 지태선이 흥미롭다는 눈길을 보냈다.
“궁금하구만. 얘기해 보게.”
“우선, 이현승이 대통령이 된다면, 현 정부를 계승하는 구도로 갈 겁니다. 현 정부가 추진하려고 했다가 멈췄거나 아니면 추진했어도 애매하게 진행했던 정책 사업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모두 이현승 정부에서 계승하겠죠.”
“맞네. 이태호 대통령도 그렇고 시민당에 있는 대부분이 그러기를 바라네.”
“주요 정책들을 제가 모두 알지 못하지만, 이현승 정부는 지난 정부 덕분에 조금은 안정적으로 국가를 이끌어 갈 겁니다.”
지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이현승이란 인물은 본인이 가진 야망에 비해 큰일을 주도적으로 진행하지 못한다는 평이 있습니다. 그래서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말이, ‘끽해야 총리 수준이다.’라는 말이고요.”
지태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실제로 이현승은 지금도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이현승은 자신이 대통령에 어울리는 것을 입증하려고 할 겁니다. 그래서 꽤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고요.”
실제로 이현승 정부는 대학교까지 무상 교육을 진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 공약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도 있지만, 점차 줄어드는 인구수를 생각하면 실천 가능한 공약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과거의 어떤 정부가 무리하게 부동산 관련 정책을 건드렸다가 그동안 쌓아놨던 공든 탑이 한방에 무너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설마 자네는 이현승이 그러한 실수를 할 거라고 보는가?”
“네.”
“흐음.”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중요합니다. 리더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결국 리더도 사람입니다. 저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실수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죠.”
너무 깠나?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태선의 빈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그래도 의원님 같은 분이 곁에 있으시다면, 충분히 이현승 정부도 잘 굴러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허허. 말은 참 고맙구만.”
립서비스를 받은 지태선이 허허 웃으면서 내 잔을 채워줬다.
그러고는 우리는 잔을 가볍게 부딪친 뒤 술을 쭉 마셨다.
잔을 깨끗하게 비운 지태선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놀랍네.”
“……?”
“나는 오늘 그냥 같은 집안사람으로서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내 생각이 실수였군.”
그 말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당신, 나를 너무 쉽게 봤어.
“내 생각이 짧았네. 자네가 가진 식견 덕분에 나도 도움이 되었어. 조금 답답했던 부분들도 해결되었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러다가 곧 지태선이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왜 회장님이 자네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는지 알겠군.”
“아버지께서요?”
“그래. 회장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부탁을 했었지. 자네와 자네의 형 중에서 선택하라고.”
“…….”
“그런데 말이야. 내가 보는 지태완은 굉장히 위험해 보였어. 어릴 때부터 무언가 숨겨오는 것처럼 행동했고……. 그래, 쉽게 말하면 가식덩어리였지.”
지태선은 사람을 정확하게 보고 판단했다.
그래서 말없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데 자네는 다르더군. 자네의 말에는 진심이 느껴져. 어쩌면 그게 자네와 자네의 형의 차이일 수 있겠고.”
“칭찬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아, 물론 칭찬 맞네.”
지태선은 웃으면서 내게 술병을 보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계속 한잔하지.”
“좋습니다.”
* * *
내가 업무를 소화하는 동안 팀은 평일 경기에서 FA컵 경기를 치렀다.
우리의 상대는 천안축구단이었다.
이번 시즌에 우리는 K리그2 우승 및 승격팀으로서 3라운드부터 FA컵에 참여하게 됐다.
천안축구단은 2라운드에서 김해풋볼FC를 2:1로 꺾고 올라왔다.
K3 소속인 천안축구단을 상대로 곽찬구 감독은 과감하게 로테이션을 사용했는데 전략이 잘 먹혔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3:0 승리를 거두었다.
4라운드 경기인 16강전은 5월 중에 진행된다.
그렇게 성공적인 로테이션을 거둔 우리는 주말에 상당히 까다로운 팀을 만나게 됐다.
바로 서울 드래곤즈.
K리그가 시작될 때부터 존재했던 서울 드래곤즈는 2010년대 초반 리그 우승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하며 대단한 존재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강등을 당할 뻔한 위기도 겪으며 위태로운 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근자에 들어서 다시 상승세를 조금씩 타고 있었다.
“상암은 한때 원정팀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혹독했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명성은 어디 가지 않아.”
곽찬구 감독은 유독 서울 원정을 싫어했다.
이유가 있었다.
이전 팀에서 상암에서 서울을 상대할 때의 전적이 무려 3승 8패로 열세였기 때문이다.
경기 전에도 곽찬구 감독은 서울 원정에 대해 까다로움을 강조했다.
선수들도 단단히 마음먹고 경기를 준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경기 당일이 되자,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우리가 사랑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그 자랑스러운 이름, 서울! 크게 외쳐라!
홈팀 서포터스석을 가득 채운 검붉은 물결.
서울 드래곤즈 팬들이 만들어낸 퍼포먼스가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위축되게 했다.
서울의 서포터스는 수원 블루의 서포터스와 양대산맥을 이룰 정도로 대단했다.
특히 이 두 팀이 맞붙는 슈퍼매치는, 경기 북부 더비와 더불어 역대 최고의 흥행을 이루고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둔 게 있었지.”
나는 오늘 경기를 위해 버스를 빌렸다.
고양과 상암은 차량으로 30분이면 오고 갈 정도로 가깝다.
나는 최대한 많은 팬을 운송하기 위해 버스를 불렀다.
무려 40인승 버스 20대.
‘승리버스’라 명명한 이 버스가 상암으로 향했다.
그러자 정확히 800명에 이르는 서포터스들이 상암에 집결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팬들까지 합치면 약 1,000명 정도 되었다.
이렇게 되자 원정 서포터스는 고양을 상징하는 노란색 물결로 가득했다.
우리의 고양~
승리의 고양~
약 1,000명의 서포터스들이 부르는 응원가에 마치 우리가 홈에서 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 기죽었던 선수들도 금방 정신을 차리고 몸을 풀며 경기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