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16화 (116/272)

116화

3월 A매치가 치러지는 동안,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은 걱정이 앞섰다.

“박형우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햄스트링이래. 축구 오래 봐서 알잖아. 햄스트링 부상은 최소 4주는 잡아야 해. 돌아온다 해도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위험도 있고.”

“아, 큰일이네. 박형우 빠지면 빈자리를 누가 채우냐.”

“그래도 영입한 선수들 있잖아. 예를 들면 한석원이라던가.”

“한석원은 K리그에서 뛰어 본 적이 없잖아. 아무리 라리가에서 오래 뛰었다고 해도 검증 기간이 필요하고.”

“라리가에서 뛸 정도면 K리그 정도는 별거 아니겠지.”

“야, 예전에 바르셀로나 출신 선수 중에 몇 명이 K리그 와서 고전한 거 모르냐?”

“그건 그렇지만. 아씨, 너는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말하냐? 우리 팀 팬 맞냐?”

“아! 나도 일부러 이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일부 팬들은 한석원에게 기대를 모았다.

스즈키 안도를 영입한 이후 고양은 몇 명 더 추가 영입을 진행했다.

그중에서 ‘한석원’은 나름 대형 영입으로 꼽혔다.

이제 겨우 24세인 그는 포스트 강철인이라 불리며, 2선 중앙과 측면에서 다양한 플레이를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21살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며 병역까지 면제받아서 미래가 상당히 기대됐다.

하지만 최근 레알 베티스 감독이 바뀌면서 마찰이 생겼고, 이적이 여의치 않아서 임대로 고양 유나이티드까지 오게 됐다.

고양 입장에서 한석원 같은 인재를 잘 써먹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곽찬구 감독은 3경기 연속 그를 명단에서 제외했고, 그걸 본 팬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박형우가 부상 당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박형우가 부상 당했어도 우리에게는 한석원 같은 인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빈자리를 잘 채워 줄 겁니다.”

A매치 기간에 인터뷰를 진행한 곽찬구 감독이 한석원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이 인터뷰로 인해 팬들은 한석원의 선발을 예상하며 다음 경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 * *

모처럼 나는 구단 훈련장을 방문했다.

“대표님!”

정식으로 구단주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훈련장에 방문했다.

선수단의 모든 이들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나는 훈련장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한 명씩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정식으로 구단주가 된 이후 처음 방문하네요. 모두 수고가 많으십니다. 구단주 지태훈입니다.”

짝짝짝-

K리그 역사상 최초로 개인 구단주로 이름을 올린 나를 향해 선수들이 뜨겁게 박수를 쳐줬다.

“재작년, 제가 처음 부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건 없습니다. 아니, 있다면 앞으로 여러분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겠죠.”

“오오.”

선수들은 눈을 빛냈다.

“저는 여러분들을 지원사격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 3년 이내에 K리그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팀이 될 겁니다.”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들 모두 내 말에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원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

“그것은 바로 ‘결과’입니다. 당장 우승트로피를 가져다 달라고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적어도 3년 이내에 트로피를 제 손에 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은 내가 주는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다.

내 아버지가 병원에서 해준 말이다.

나도 그 말에 상당 부분 동의하고 있었다.

선수들에게 최고의 지원을 해주는 대가로 나는 저들로부터 트로피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서로에게 윈윈 할 수 있는 결과이니까.

“여러분이 저를 믿는 만큼, 저도 여러분을 믿겠습니다.”

그렇게 선수단 훈련장 방문 일정을 마친 나는 돌아오는 길에 피로를 느꼈다.

“피곤하네.”

“많이 힘드세요?”

옆에서 운전하고 있던 김 비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으음. 오늘 유독 피곤하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아마 누적됐던 피로가 몰려오시는 것 같네요.”

“후우. 많은 일이 있긴 했지.”

짧은 시간 동안 새 시즌을 준비하고, 칼리드 왕자를 만나서 법인도 준비하고, 아버지를 간호하고, 영신건설 인수 건도 있었다.

그 외에 많은 일이 더 있었지만, 슬슬 한계로 다가오고 있었다.

“도련님.”

“응?”

“저하고 놀러 가실래요?”

“갑자기?”

김 비서가 운전대를 돌렸다.

* * *

우리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바다로 이어지는 항구에 와있었다.

출렁이는 바닷물과 정박 되어 있는 선박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야?”

“소래포구요.”

인천 남동구에 있는 소래포구.

평일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김 비서. 우리 이래도 되는 걸까?”

“풋.”

“뭐야. 왜 웃어?”

“뭔가 이상해서요. 예전에는 제가 그런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았는데 말이죠.”

나는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예전에 멋대로 땡땡이를 치고 돌아다닌 적도 많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귀 이전의 상황이었을 뿐.

“도련님은 열심히 일하셨으니, 그만큼 쉴 자격도 있으세요.”

“쉬는 것도 자격이 있어야 해?”

“물론이죠. 매번 놀거나 쉬기만 하는 것도 안 좋아요.”

봄바람이 섞인 바닷바람이 내 머리와 뺨을 기분 좋게 건드렸다.

머리 위로 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 비서.”

“네, 말씀하세요.”

“김진철 이사님 말이야.”

“아빠요?”

“그분을 조만간에 이번에 새로 새운 법인 회사로 모셔오려고.”

“……!”

김 비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아빠가 오실까요?”

그녀도 김진철 이사가 나를 싫어하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아. 이미 합의했어.”

“네!?”

화들짝 놀라는 그녀의 반응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사실 얼마 전에 합의했거든. 김진철 이사님이 우리 쪽으로 합류하기로.”

김 비서에게 말하지 않았다가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그간 바쁜 일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할 타이밍이 맞지 않았었다.

“지태완이 회장직에 오르고 아버지가 이끌었던 사람들을 향한 숙청이 진행되고 있어. 김진철 이사도 조만간 그 숙청 대상으로 오를 거야.”

“……!”

“그렇게 되기 전에 김진철 이사를 우리 쪽으로 합류하게 진행했었고,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어.”

김진철 이사의 합류는 철저하게 비밀로 붙여지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하고 김진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김 비서.

딱 3명뿐이다.

“이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로 해야 해. 아버지도 김진철 이사가 내 쪽으로 합류하는 것을 모르고 계셔.”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김 비서는 상당히 놀라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김진철 이사는 아버지 입장에서 김 비서를 위해 내 편이 되어준 것뿐이다.

그는 언제든 딸이 위험해진다면 나를 쳐낼 것이다.

그런 일이 없게끔 만드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역할이기도 하다.

‘마치 영화 테이큰에 나오는 브라이언 밀스 같은 사람이지.’

그에게도 가족은 소중했고, 특히 딸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도련님.”

“응?”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김 비서의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했다.

살며시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김 비서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저는 도련님의 선택을 존중해요.”

“…….”

“그리고 저에게 아빠도 중요하지만, 도련님이 더 중요해요.”

“……!”

어느샌가 입가에 작게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며 나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언제나 저는 도련님 편이에요. 잊지 마세요.”

* * *

김 비서와 비밀을 나누고 다음 날, 나는 천지원 부장과 한 고급 일식집에서 단둘이 자리를 가졌다.

“천 부장님. 한잔 받으시죠.”

“넵.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두 손으로 잔을 받은 그는 곧 내 잔을 채워 주었다.

“한잔하시죠.”

“네.”

잔을 부딪친 천지원 부장이 고개를 돌려 술을 쭉 비웠다.

그런 그를 흘깃 보면서 잔을 빠르게 비워냈다. 그러고 나서 손에 쥔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천 부장님이 옆에서 저를 도와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대표님께서 대단하시죠. 젊고 어린 나이에 구단주로서 팀을 이끌고 계시니까요. 이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죠. 그건 저나 천 부장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죠.”

“하하하.”

천지원 부장은 부끄럽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에게 나는 다시 빈 잔을 채워주었다. 천지원 부장도 곧바로 내 잔을 채워줬다.

가득 채워진 잔을 슬쩍 바라보던 내가 말문을 열었다.

“부장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대표님.”

“부장님이 목표하는 바는 어디까지입니까?”

“네? 목표요?”

“그렇습니다. 부장님의 야망이 어디까지인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천지원 부장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조금은 가라앉은 눈으로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어릴 땐 대통령이 되고 싶었습니다.”

“오, 대단하네요. 대통령이라니.”

“네. 그런데 나이를 먹다 보니 대통령에 대한 꿈은 저하고 맞지 않더군요. 대신,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대통령에서 사업가라.

확실히 노선이 다르긴 하다.

천지원 부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업도 쉽지 않더군요. 무엇보다 무슨 사업을 하느냐가 정해지지 않았거든요.”

“그랬군요.”

“그런 와중에 축구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축구가 보여준 그 퍼포먼스가, 제 가슴을 뛰게 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더라고요. 살면서 그런 감각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왠지 천지원 부장의 말이 이해가 갔다.

회귀 이후,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팀을 위해 뛰는 선수단과 그런 선수단을 미친 듯이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이 나를 뜨겁게 만들었다.

최근 개막전 경기에서 경기장을 가득 채운 그 모습은 지금도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때 생각했죠. 내가 만약 사업을 한다면 축구와 관련된 사업을 해야겠구나.”

“그래서 리버풀대학교로 가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떻습니까?”

나는 그가 지금도 사업을 할 생각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천지원 부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굳이 제가 사업을 할 필요는 없겠더라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거죠?”

“바로 대표님 때문입니다.”

“제가요?”

“네. 대표님께서 그려 나가시는 방향이 평소 제가 사업을 하면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았거든요.”

“…….”

말을 하는 그의 눈빛과 말투는 한없이 진지했다.

그러다가 슬쩍 잔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조금은 굳어 있는 얼굴을 확인한 내가 말했다.

“천 부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저는 부장님을 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 제 생각이 틀립니까?”

그 말에 그가 강하게 말했다.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저도 스스로 대표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대표님께서 지금 여기서 죽으라고 한다면, 죽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죽는 시늉은 할 수 있습니다.”

천지원 부장이 나를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군요. 그럼 제가 천 부장님을 믿고 꽤 괜찮은 그림을 하나 공유할까 하는데, 한번 들어 보시렵니까?”

“네, 듣고 싶습니다.”

나는 그에게 향후 세운 계획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에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내 계획을 들은 천지원 부장의 눈이 점점 커졌다가 곧 경악한 반응을 보였다.

“저, 정말 그렇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는 결코 저 혼자서만 진행할 수 없습니다.”

천지원 부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대표님! 오늘 일은 제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대표님! 저는 언제든지 대표님의 사람입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써 주십시오!”

천지원의 확고한 믿음이 나를 기분 좋게 했다. 더불어 그와 함께 그려나갈 미래가 어느 정도 보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잔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 한잔하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