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15화 (115/272)

115화

“괜찮아?”

“으으으!”

의무팀이 바로 박형우의 상태를 살폈다.

“통증 어디야? 여기?”

“네, 악!”

“아, 이거 상태 안 좋은데? 그냥 대기만 한 건데도 아파?”

“네, 거기-으읏!”

의무팀이 박형우의 상태를 살피는 동안 팀 동료들도 쓰러진 그를 안쓰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사이, 곽찬구 감독은 스즈키 안도를 불렀다.

“스즈키!”

“하잇!”

곽찬구 감독은 곁으로 온 스즈키에게 전술적인 설명을 했다.

“스즈키. 네가 더글라스가 중거리 슈팅을 못 하게 막아줘야 해. 저 10번 녀석. 보이지? 그놈 막아야 한다고. 이해해?”

“네, 이해했스므니다.”

통역사가 그들 사이 끼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스즈키는 곽찬구 감독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렇게 스즈키에게 전술 설명을 끝낸 사이, 의무팀에게서 사인이 왔다.

“아.”

의무팀이 양팔로 크게 엑스자를 표시했다.

뛸 수 없다는 사인이었다.

‘큰일이야.’

박형우는 현재 고양 유나이티드 전력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이탈하면, 남은 시간에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전반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고민은 길게 가져갈 수 없었다.

“사무엘! 준비하자!”

곽찬구 감독의 호출을 받은 사무엘이 바로 투입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들것에 실려 나간 박형우를 대신해 사무엘이 금방 교체로 들어갔다.

‘전술을 모두 바꿀 수밖에…….’

곽찬구 감독은 코치들과 상의해서 빠르게 전술을 바꿨다.

그렇게 사무엘을 최전방 원톱으로 세운 4-4-1-1로 바꿨다.

침투가 좋은 박요한을 세컨 스트라이커로 세웠다.

사무엘이 전방에서 버티면서 박요한이 침투해 가는 플레이로 바꾼 것이다.

이러한 전술 변경은 의외로 전북에게 잘 먹혔다.

『장현우가 전방으로 길게 올려줍니다! 버텨 주는 사무엘! 사무엘이 공을 찔러 줍니다! 박요한이 쇄도하는데요! 박요한 슈웃! 하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힙니다.』

『박형우 선수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고양이 전술을 바꿨는데요. 사무엘과 박요한의 조합도 나쁘지 않네요.』

『박형우가 나간 뒤로 고양 선수들이 무언가 자극을 받은 것 같네요. 여전히 기세가 좋은 고양입니다!』

『허허. 네. 여기가 전북의 홈인지, 고양의 홈인지 모를 정도로 두 팀 모두 용호상박의 모습을 보여 주네요!』

양 팀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그리고 결국 그 노력은 결과로 증명되었다.

삑! 삐익! 삑!

『결국 경기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전북과 고양은 승점 1점씩을 나눠 가집니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아쉬울 수 있는 스코어였지만, 이 경기의 승자는 사실상 고양이었다.

전년도 챔피언인 전북을 상대로, 그것도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둔 일은 대단한 성과였다.

『고양의 기세가 매섭습니다! 3경기 연속 패배하지 않는 고양이 여전히 리그 1위를 유지하고 있고요. 다음 경기는 3월 A매치가 끝난 이후에 진행하겠습니다!』

같은 시각 선두 다툼을 벌인 울산도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고양, 전북, 울산 3팀 모두 2승 1무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득점 차이로 고양이 선두를 유지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의 MVP는 박지원이 받았다.

비록 실점하기는 했어도, 더글라스의 PK 선방을 비롯하여 상당히 많은 슈퍼세이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경기 후 수훈 선수로서 인터뷰를 진행한 박지원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승부가 아쉽기는 한데요. 그래도 저희 팀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봅니다. 전북 원정 경기가 쉽지 않은데, 승점 1점이면 충분히 만족할 결과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형우 선수가 부상을 당했는데요. 박형우 선수는 어떻던가요?”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형우가 크게 다치지 않은 상태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경기 이후로 3월 A매치가 치러지는데요. 고양 유나이티드 입장에서는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이 기세를 A매치 이후에도 계속 이어나가고 싶네요. 저희는 A매치 기간에 또 열심히 준비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 *

박형우가 부상 소식에 우리는 날벼락을 맞았다.

“햄스트링 부상이요?”

“네. 병원 검사 결과 그렇게 나왔습니다. 최소 4주는 경기를 뛰지 못합니다.”

“허어.”

“다행히 A매치 기간이 겹치긴 했지만, A매치 이후 박형우가 돌아올 때까지 최소 5경기는 결장입니다.”

“리그에 FA컵까지 끼어서 그렇죠?”

“그렇습니다.”

곽찬구 감독으로부터 부상 보고를 받은 나는 미간을 좁혔다.

“박형우 선수가 없어도, 우리가 흔들리지는 않겠죠?”

“흔들리지 않게 해야죠. 분명 형우의 실력은 증명됐습니다. 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허나, 저희 팀에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

“그리고 아직 투입되지 못한 뉴페이스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차라리 형우가 빠진 틈을 이용해 뉴페이스들을 기용해 볼 기회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뉴페이스는 새로 영입한 선수들을 뜻한다.

스즈키 안도 외에 우리는 이적 시장 마감 전에 추가로 영입한 선수들이 있었다.

그 선수들이 아직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서 출격 대기만 하고 있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리죠.”

“네, 걱정 마세요. 대표님.”

곽찬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나에게 김 비서가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후우. 진짜 방심할 수 없는 나날들이야.”

“……회사 일이 그렇죠.”

작게 한숨을 내쉬는 나를 김 비서가 위로해줬다.

그래도 그동안 겪어왔던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박형우 선수 병문안 가실 건가요?”

“뭐, 병문안까지야. 곽찬구 감독하고도 얘기했어. 굳이 올 필요 없대.”

입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일단 나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무엇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

“회사 인수 진행을 하려면, 형하고 만나기는 해야 해.”

“괜찮으시겠어요?”

“글쎼.”

용준형 사장이 자신이 직접 지태완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신건설 인수를 진행하려면 내가 직접 지태완을 만나긴 해야 한다.

“기업 인수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움직여야 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어.”

“하지만…….”

솔직히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내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언제 연락하실 건가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나는 바로 지태완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나야. 얼굴 한번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 * *

“이렇게 볼 줄은 몰랐다.”

“나도 형을 이렇게 마주할 줄은 몰랐어.”

나는 영신그룹 회장실에서 지태완을 만났다.

과거 아버지가 사용했던 집무실은 이제 형이 차지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끼는 가운데, 지태완이 말했다.

“무슨 일로 온 거냐.”

“오래간만에 형 얼굴도 볼 겸해서 왔지. 형이 그동안 나한테 준 선물이 고맙기도 했고.”

“하하하!”

지태완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곧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건 다 너를 위한 선택이었어.”

“나를 위한 선택? 흥, 형을 위한 선택이었겠지.”

“좋을 대로 생각해.”

부정하지 않은 지태완의 태도가 거슬렸다. 예전 같으면 욱해서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은 침착하게 상황을 만들어갈 때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하며 말했다.

“요즘 한창 구조조정 중이라며?”

“그룹에 워낙 쓸데없는 지방 덩어리들이 많아서 말이야. 쓸모없는 지방은 도려내야지.”

“그러네. 형 생각도 맞아.”

내 말에 지태완이 눈을 빛냈다.

“호오. 너한테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너도 경영자가 되어 보니까 내 마음을 이해하는 거냐?”

“그럴 수도 있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지태완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여기 온 진짜 목적이 뭐냐. 용돈이라도 달라고 온 거냐?”

“그건 아니고.”

지태완도 내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온 걸 알고 있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영신건설. 그거 처분할 생각이지?”

“…….”

“그거 처분할 생각이면 나 줬으면 해서.”

“뭐?”

“내가 형 생각을 어느 정도 알거든. 그러니까 길게 얘기 안 할게. 나한테 넘겨.”

영신건설.

시공순위 50위 정도 되는 건설사다. 결코 낮은 순위는 아니지만, 다른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건설사들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대기업 건설사 중에서 그보다 낮은 건설사는 없다.

연 매출 8,000억 정도 나오고 있지만, 야망이 가득하고 자존심 강한 형이 이 상황을 썩 마음에 들리 없다.

사실 이에 관한 정보는 용준형 사장이 나에게 직접 전달해준 것도 있다.

“네가 영신건설을 가져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 뭐, 이제 건설사 대표 놀이에 꿈이라도 가진 거냐?”

“응. 맞아. 구단주하면서 건설 쪽에도 취미를 좀 붙여 보려고. 새로 하나 만들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굳이 내가 새로 만들 필요가 없겠더라고.”

지태완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늘어진 그의 눈에서 내가 무슨 계획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것이 훤히 보였다.

“싫으면 마. 나는 그저 형을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형이 싫으면 관둬야지.”

상대에게 패를 보이지 않으려면 때론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나는 정말 필요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자 형도 조금은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내가 뭘 믿고 너에게 영신건설을 넘기지?”

“글쎄? 그건 형이 판단할 몫이 아닐까?”

“영신건설에는 용준형 사장이 있다. 아버지의 충실한 심복이지. 설마 그 사람이 제안했냐? 함께하자고?”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그 사람하고 뭘 할 게 있다고. 그리고 그렇다고 문제가 될 게 있나? 어차피 영신그룹은 형이 먹었잖아. 아버지 사람들은 형 입장에서 정리대상에 불과할 텐데 뭐.”

“…….”

형은 고민하고 있을 거다.

정리하려고 했던 패를 갑자기 먹겠다고 달려드니, 이게 갑자기 뭔 일인가 싶겠지.

나는 그런 형의 심리를 역이용하는 셈이다.

나 때문에 형이 영신건설을 다시 손에 쥘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형이 쥐면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

그럼 나한테 주면?

불안하겠지.

내다 버렸던 고양 유나이티드를 되살렸던 나를, 혹시나 영신건설마저 흡수해서 확장한다면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 되겠지.

“생각해 보고 얘기해 주마.”

“응. 잘 생각해 봐.”

“그만 가 봐라. 나는 다음 일정들이 있어서 말이야.”

“아아.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수고해, 형.”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 형은 나중에 대답해 주겠다고 말하며 나를 내보냈다.

* * *

곽찬구 감독은 한 선수와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다부진 체격에 각진 얼굴을 지닌 남자가 굳은 눈매로 곽찬구 감독에게 대답했다.

“한석원.”

“네.”

“네가 스페인 리그에서 경험을 쌓아 온 것은 분명 K리그에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K리그는 스페인 리그와 또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3경기를 지켜보니 확실히 스타일이 다르더군요.”

한석원.

스페인 라리가에 소속되어 있는 레알 베티스에서 유소년부터 성인 무대까지 뛴 선수였다.

청소년부터 성인 국가대표까지 경험이 있는 그가, 스페인 생활을 접고 K리그로 유턴한 것은 오로지 곽찬구 감독 때문이었다.

곽찬구 감독과 고양 유나이티드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1년 임대 후 완전 이적 형태로 오게 됐다.

“어렸을 적에 널 봤을 때부터 너의 재능은 믿어 의심치 않았어.”

“덕분에 저도 스페인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죠.”

“그래. 그렇기에 네가 최고의 환경에서 데뷔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감독님 마음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한데, 상황이 많이 바뀌었구나.”

“형우 형의 부상 때문이죠?”

“그래.”

한석원의 두 눈이 번뜩였다.

“걱정 마세요. 형우 형의 빈자리는 제가 채우겠습니다.”

“믿겠다.”

“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