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개막전 경기를 며칠 안 남은 상태에서 파주FC가 발칵 뒤집혔다.
【속보】파주FC 이재신 단장, ‘부정 청탁·직권남용’ 혐의로 긴급 체포!
파주FC에게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내부 밀고로 밝혀진 이재신 단장의 혐의가 밝혀져 경찰에 긴급 체포된 것이다.
이번 일로 파주FC는 이재신 단장을 포함하여 임원 모두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불과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이 일은 선수단에게도 좋지 않은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반코비치 감독은 경기 전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다가올 새 시즌에만 집중하고 있다.”라고 밝혔지만,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파주FC는 개막전 경기에서 승리해서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최근 구단 매각 이슈가 있었지만, 지태훈 대표의 발 빠른 대처 속에 문제없이 지나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표이사의 주도로 고양 유나이티드는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같은 K리그 팀들이 봤을 땐 ‘혁명’ 가까운 변화였다.
누가 봐도 상승 곡선을 타는 팀과 맞붙게 된 파주FC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 * *
오늘 위해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끝냈다.
“대표님! 경기장 티켓이 모두 매진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58,000좌석이 모두 매진했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티켓이 모두 매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작부터 좋았다.
이미 인터넷 예매가 열렸을 때부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즌 티켓 판매도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고, 단일 경기 티켓 또한 무섭도록 판매했다.
오죽하면 인터넷 판매분에 제한을 걸었을까.
그런데 오프라인 판매도 불과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모두 매진한 것이다.
“관객은 모두 모였고, 이제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되겠군요.”
고양 유나이티드 역사상 유례없는 개막전 경기가 될 가능성이 컸다.
“모두 출격하세요.”
“네!”
내 말 한마디에 퍼포먼스는 제대로 시작했다.
장내 아나운서 박창훈이 중앙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를 받고 제일 먼저 입장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시즌부터 고양 유나이티드의 장내 아나운서를 맡게 된 박창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우와아아아-!
박창훈도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꺼내어 오늘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저희 고양 유나이티드가 힘든 시기를 모두 이겨내고 마침내 5년 만에 K리그1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저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곧 웅장한 BGM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박창훈의 멘트가 이어졌다.
-저희는 팬 여러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습니다. 그중에 첫 번째 프로젝트를 이 자리에서 선보이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레전드’입니다!
경기장 한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레전드’ 세 글자가 크게 나타났다.
-우리는 그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레전드들과 함께했습니다! 그 레전드는 단순히 선수만 있지 않습니다. 바로 팬분들도 저희에게 있어서 레전드입니다!
그 말에 서포터스가 북을 치며 환호했다.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함성 속에서 마침내 레전드의 실체가 공개됐다.
-오늘 이 자리에 두 분의 레전드를 모셨습니다! 바로 ‘전태호’ 선수와 ‘한정수’ 선생님이십니다!
경기장에 설치된 조명과 카메라가 모두 중앙 게이트로 향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큰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여러분!
홈팬들이 모두 기립해서 박수와 함성을 쏟아냈다.
그러자 중앙게이트에서 천천히 골키퍼용 유니폼 상의를 입은 전태호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 팬이 천천히 모습을 등장했다.
짝짝짝짝-.
홈팬들의 박수가 더욱 짙어졌다.
그 순간 서포터스 앞에서 응원을 주도하던 박태준이 노란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전태호!
그러자 서포터스들이 전태호의 이름을 외쳤다.
전태호! 전태호! 전태호!
이번에는 박태준이 할아버지 팬의 이름을 외쳤다.
-한정수!
한정수! 한정수! 한정수!
경기장을 가득 울리는 두 사람의 이름.
센터서클 중앙까지 걸어온 두 사람을 향해 박창훈이 말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았던 우리 전태호 선수와 그와 함께 가장 오랜 시간 우리 팀을 응원해 주신 한정수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전태호는 2000년대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골키퍼였다. 클럽 역사상 전무후무한 원클럽맨이기도 했다.
또한 한정수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원년 팬이었다.
무려 30년 동안 팀을 응원해 왔다.
심지어 그 기간 거의 매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기도 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 사이에서 한정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정식으로 구단의 레전드로 초대된 것이다.
-구단의 역사를 함께 해준 분들을 위한 감사패 증정이 있겠습니다. 이 감사패는 지태훈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님께서 직접 수여하겠습니다.
중앙 게이트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내가 직접 상패를 들고 나타났다.
내가 등장하자 홈팬들의 환호는 더욱 컸다.
나는 밝은 얼굴로 전태호와 한정수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감사패를 받은 한정수는 눈물을 흘렸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선물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수여식이 끝나고 우리는 기념촬영을 진행했다.
이 모습은 오늘 경기를 생중계하는 STV에서도 고스란히 잡혔다.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기획한 ‘프로젝트 레전드’라고 하는데요. 상당히 뜻깊은 행사가 아닐 수 없네요.』
『그렇죠. 외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광경이긴 한데, 보통 구단 선수를 대상으로 이런 이벤트를 진행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팬들에게까지 하는 경우는 처음이네요.』
『한정수 선생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네요.』
『눈물 나오죠. 제가 저 팀의 팬이라도 저 상황이면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죠.』
이 광경을 본 수많은 사람은 고양 유나이티드의 행사를 두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여태 그 어떤 K리그 팀들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광경이었다.
“자, 그럼 자리로 가시죠.”
구단 레전드로 초대된 이들은 VIP좌석에서 함께 경기를 관람하게 된다.
나와 두 사람은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VIP좌석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리가 떠나고 박창훈이 여전히 남아 다음 행사를 진행했다.
-자, 지금부터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 소개가 있겠습니다! 선수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홈팬 여러분의 힘찬 응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또다시 웅장한 BGM과 함께 선수단 소개가 이어졌다.
-절대 방벽! 고양 유나이티드의 거미줄! 수문장! NO.1 박! 지! 원!
유니폼을 입은 골키퍼 박지원의 모습이 대형 전광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창훈의 호명에 맞춰 홈팬들이 모두 기립한 상태로 박수와 함께 박지원의 이름을 외쳤다.
이후 선수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홈팬들은 더욱 열렬히 환호했다.
-날쌔고 오래가는 꾀돌이! NO.2 이! 진! 수!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단단한 철벽! NO.3 라- 시모프!
-고양의 철벽! NO.4 백! 종! 수!
-신인답지 않은 패기와 질주본능은 이어진다! NO.5 정! 성진!
-국가대표 패스마스터! NO.6 장! 현! 우!
-바다 건너온 빌드업 마스터! NO.7 스~즈키 안도!
-중원의 지배자! 고양의 캡틴! NO.8 김! 지! 우!
-상대 수비를 부수는 라인 브레이커! NO.9 박! 요! 한!
-이거 하나로 설명됩니다. 월드 클래스! NO.10 박! 형! 우!
-고양의 날개! NO.13 나~ 탈!
-돌보다 단단하고 강력하다! NO.14 석! 종! 호!
-머리만큼 눈부신 공격수! 브라질리언! NO.72 사~~무엘!
선수들이 소개될 때 나오는 문구는 모두 선수들이 직접 작성한 것이었다.
여기서 김지우의 ‘고양의 캡틴은’ 박창훈이 임의로 붙여줬다.
“이거 장난 아닌데?”
홈팬들은 처음 겪는 구단의 퍼포먼스에 놀라워했다.
지금까지 선수 호명을 이렇게까지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구단에서 이미 이런 식의 선수 호명을 해왔지만, 고양 유나이티드는 그동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선수단 호명까지 진행된 후, 본격적인 경기만을 앞두게 됐다.
* * *
STV에서도 생중계되고 있었다.
오늘 중계를 맡은 이형욱 캐스터와 한정희 해설위원은 들뜬 목소리로 중계를 진행했다.
『2027 더블은행 K리그1 1라운드 고양 유나이티드 대 파주FC의 경기가 진행됩니다. 정말 기다렸던 순간입니다. 매번 새 시즌이 올 때마다 긴장되고 설레기도 했는데요. 오늘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K리그1 1라운드 경기가 경기북부 더비라니. 여태 수많은 경기북부 더비가 있었지만 두 팀이 1라운드에서 맞붙는 일은 처음입니다.』
『지난 시즌 두 팀이 FA컵에서 맞붙었는데, 그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고양이 파주를 2:1로 꺾었습니다. 』
『아, 그때 대단했죠. 아마 그때도 이형욱 캐스터님하고 함께 중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맞습니다. 그때도 저희가 현장에서 중계를 했었죠.』
『하하, 네. 그때 고양 유나이티드가 정말 잘했어요. 고양이 당시 2부 리그인데다 심지어 파주의 홈에서 치러진 경기였거든요? 이 경기를 고양이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곽찬구 감독의 용병술도 돋보였고, 전술 또한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그 경기 이후 파주FC가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결국 아챔 티켓마저 따지 못했죠.』
『파주FC 입장에서는 상당히 상처가 됐을 겁니다. 게다가 최근에 사건도 하나 있었죠?』
『네. 파주의 이재신 단장이 경찰에 긴급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오늘 경기도 양 팀 모두에게 중요한 한판이 되겠습니다.』
『그렇죠. 우선 파주는 지금 팀에 벌어진 일로 추락한 분위기를 잡아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오늘 경기 이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반면 고양의 경우에도 5년 만에 치르는 첫 1부 리그 경기다 보니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겠구요.』
『맞습니다.』
『자, 그럼 양 팀 대결에 앞서 선발 명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중계 화면에 양 팀 선발 명단이 나타났다.
『먼저 홈팀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발 명단입니다. 골키퍼 장갑은 박지원이 꼈습니다. 그리고 백스리입니다. 라시모프, 김지우, 백종수. 미드필더는 5명의 선수가 배치됩니다. 이진수, 장현우, 스즈키, 박요한, 정성진 그리고 최전방에는 박형우와 사무엘이 있습니다.』
『오늘 경기에 두 명의 스즈키 선수가 선발로 나왔는데요. 고양의 스즈키는 이번에 영입한 스즈키 ‘안도’ 선수입니다. 파주는 이따 설명드릴 거지만 스즈키 ‘타츠’구요.』
『네.』
『지난 시즌 포백을 사용하던 고양이 오늘은 스리백으로 나섰는데요. 이 변화가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봐야겠습니다.』
『이어서 원정팀 파주FC의 선발 명단입니다. 골키퍼 윤태준. 백포입니다. 곽두일, 나정호, 레오나르도, 천명훈. 미드필더는 3명입니다. 차성진, 박기주, 세비치. 최전방에 전태진, 산토스, 스즈키입니다.』
『4-3-3 포메이션인데요. 파주에게는 조금 불행한 일이지만, 용성훈 선수가 개막전을 앞두고 훈련 중에 부상을 입었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 경기에서 명단이 제외됐고요.』
『그래도 파주에 박기주 선수가 선발로 나왔는데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영입이 되었죠?』
『맞습니다.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박기주 선수가 이번에 파주FC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헤르타 베를린에서 뛰다가 왔죠. 오늘 경기에서 박기주 선수의 활약이 엄청 중요합니다.』
『자, 양 팀 선수단이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양 팀의 선발 선수들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곧 각자 지정된 위치에 서서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그때 센터서클에 선 주심이 입에 휘슬을 물고,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
일순간 경기장은 고요해졌다.
격렬하게 응원하던 양 팀 서포터스들마저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손목시계의 바늘이 지정된 시간에 정확히 닿는 순간 주심이 길게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익-!
그 순간 폭죽이 터지면서 양 팀 선수들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