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109화 (109/272)

109화

지태완의 행동은 신속했다.

작정하고 준비한 듯 그가 시행하는 일에는 막힘이 없었고 또 순식간에 일어났다.

지태완은 회장이 된 첫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앞으로 계획들을 밝혔다.

그 자리에서 그는 프로구단 매각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지난 영신그룹은 과거 정부의 3S 정책으로 어쩔 수 없이 자금을 들여 프로스포츠에 투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기업의 사회적 봉사처럼 인식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영신그룹은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은 프로구단을 모두 처분할 계획입니다.”

“회장님! 그럼 영신그룹은 프로스포츠 쪽에서는 발을 모두 빼겠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저희는 올림픽, 국가대표 경기들의 후원은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나온 발언으로 인해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이 발칵 뒤집혔다.

지태완이 회장이 된다는 썰이 돈 후에 함께 돌았던 이야기가 바로 ‘고양 유나이티드 매각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태완이 공식적으로 발표함으로써 고양 유나이티드의 매각이 현실화한 것이다.

그러자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이 모두 난리가 났다.

어렵게 1부 리그로 올라간 팀이 한순간에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분 좋게 시즌을 기다리던 팬들 입장에서는 날벼락인 셈이다.

“새 시즌이 불과 1달 정도 남은 상태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고양 유나이티드 해체되는 거야?”

“지금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인수하겠냐?”

일각에서 프로축구에 관심 있는 일부 대기업 쪽에서 고양 유나이티드를 인수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뚜렷하지 않았다.

일단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당장 새 시즌을 앞둔 상태에서 인수가 진행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고양 유나이티드는 가장 기대받던 구단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구단이 되었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소식이 K리그 전체를 강타했다.

【오피셜】지태훈 대표, 고양 유나이티드 인수 합의.

* *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다, 애송아.”

“감사합니다, 이사님.”

김진철 이사는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내가 고양 유나이티드를 인수할 수 있게 도와줬다.

“회장님도 보이지 않게 너를 도왔어. 회장님을 지지하던 이들이 너를 도울 수 있게 했거든.”

“조만간에 아버지께 감사 인사를 해야겠네요.”

지태완은 빠르게 나를 내치려고 했다.

그 상황이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되었다.

나는 칼리드 왕자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을 가지고 법인 회사를 만들었다.

[㈜ TH투자회사]

내가 만든 법인 회사명이다.

100% 내가 지분을 갖고 만든 이 회사를 통해 붕 떠버린 고양 유나이티드를 인수할 수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 인수 비용도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았다.

거의 무일푼 인수나 다름없는 액수로 인수하며 사실상 나는 정식 구단주가 되었다.

【오피셜】지태훈 대표, 고양 유나이티드 인수 합의.

이광진 기자를 통해 공식 기사를 발표하면서 K리그 전체가 요동쳤다.

이 모든 과정이 주변에 있던 관계자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아주 은밀하고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K리그에서는 역사적인 날이기도 했다.

【오피셜】K리그 최초 개인 구단주를 두게 된 고양 유나이티드.

전에는 모기업인 영신그룹에서 파견한 형태였다면, 이제부터 고양 유나이티드는 온전히 내 스스로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팀이 되었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 있는 팀들처럼 말이다.

“애송아. 이제 너를 지켜줄 수 있는 영신 그룹의 울타리는 사라졌다.”

“알고 있습니다.”

“너는 너만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해. 그건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거다. 무엇보다 영신 그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정확히는 지태완이겠죠.”

“그렇지. 하지만 지태완은 지금 영신 그룹 내 모든 계열사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그래도 김진철 이사님 같은 분이 제 편에 서준다면 해볼 만하겠죠.”

“흥.”

김진철 이사는 고민 끝에 내 편이 되기로 했다. 물론 완벽한 내 편은 아니다.

그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도 그가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

김유리.

그녀가 내 곁에 있는 이상, 아버지인 김진철 입장에서 지켜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도 그런 관계를 이용하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대표실 창문 바깥을 보았다.

해는 아직 중천에서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 * *

얼마 남지 않은 개막전을 남겨두고 박창훈이 천지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개막전을 좀 더 화려하게 꾸밀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요?”

“네. 아무래도 창훈 님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 좀 더 경험이 많을 것 같으니까요.”

“흐음.”

박창훈은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치어리더는 어떠십니까?”

“치어리더요?”

“네. 보통 치어리더가 야구나 농구에서 많이 쓰이기는 하는데, 축구팀들 중에서도 최근 치어리더를 쓰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그렇네요. 아마 서울이 치어리더를 쓰죠?”

“네, 맞습니다.”

“좋은 의견이긴 하지만 치어리더를 어디서 섭외하죠?”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하고 친한 치어리더 동생들이 있거든요.”

“그래요?”

박창훈이 스마트폰을 꺼내 인별그램을 실행해서 천지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친구거든요?”

“누구…… 헉! 정말 이분하고 친하십니까?”

“네. 지금 이 친구도 계약이 끝나서 FA로 나왔거든요. 혹시 괜찮은데 있으면 섭외 좀 해달라고 며칠 전에 연락이 오긴 했었죠.”

SNS 프로필에는 귀여운 외모에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애쉬 그레이로 염색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바로…….

“어, 현지야. 저번에 오빠한테 섭외 부탁했잖아. 그거 아직 유효해? 어, 어어. 여기 고양 유나이티드. 응. 여기서 치어리더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어. 어어. 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은 박창훈이 환하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김현지, 이 친구 가능하데요.”

“오!”

인별그램 팔로워 100만.

현재 국내 치어리더에서는 원탑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천지원도 잘 알고 있는 유명인이었다.

“조건은 어느 정도면 될까요?”

“글쎄요. 이 친구가 돈보다는 자기 마음에 드는 곳에서 일하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래요?”

“네. 제 생각에는 대표님하고 만나게 해줘야 할 거 같아요.”

“대표님이요?”

“아마 나중에 보면 아실 겁니다.”

* * *

김현지는 박창훈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고양 유나이티드로 향했다.

‘그 지태훈 대표를 직접 만날 수 있다니.’

김현지는 지태훈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치어리더를 하면서 스포츠쪽 관련 소식은 꾸준히 확인하고 있는데, 최근 ‘지태훈’이란 인물은 종목을 떠나서 화제였다.

“언니, 정말 지태훈 대표 만나러 가요?”

“부럽다.”

친한 치어리더들 단톡방에 지태훈 대표 만나서 고양 유나이티드로 간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대다수의 치어리더들이 부러워할 정도다.

이유가 있었다.

‘젊은 대표에 잘생겼어.’

젊고 능력 있는데 잘생겼다.

어지간한 모델의 싸대기를 날릴 정도로 지태훈은 잘생겼다.

김현지도 지태훈에 대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지태훈을 실제로 만나는 순간, 김현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헉! 뭐야! 뭐야! 왜 이렇게 잘생겼어!?’

사실 김현지는 얼빠다.

그런데 여태까지 정말 많은 잘생긴 사람을 봐왔지만 지태훈 같은 미남은 처음이었다.

‘슈트가 이렇게 어울리다니. 저 얼굴에 슈트 미남, 하, 남자를 보면서 이렇게 기분 좋은 건 오랜만인걸.’

별별 생각을 하던 중, 지태훈이 말을 걸었다.

“반갑습니다. 지태훈입니다.”

“네!? 아, 넵. 김현지입니다.”

지태훈이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자 김현지가 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맞잡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어디선가 날아오는 싸늘한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린 김현지가 눈을 부릅떴다.

‘헐, 이 언니는 누구야? 왜 이렇게 예뻐?!’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유리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김현지는 본능적으로 그가 누군지 알게 됐다.

‘늘 사진에 같이 찍히던 그 비서 언니구나!’

지태훈 못지않게 김유리도 유명했다. 당사자는 알지 못할 뿐.

“제가 둘러대는 말을 잘 못해서 그러는데, 혹시 원하시는 금액이 있으시면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어, 음. 네.”

평소 같으면 조건 같은 부분을 또박또박 이야기했었던 김현지는 이번만큼은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주변에 일거리 찾는 다른 치어리더분들도 계신가요? 아무래도 혼자서 할 수는 없을 테고.”

“네? 네. 연락 가능한 아이들 많아요. 아마 부르면 다 올 거에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럼 그분들도 원하는 액수는 조건이 있으면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물론 너무 비싸면 어렵고요.”

그렇게 말하는 지태훈이 싱긋 웃어 보이자 김현지의 뺨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최, 최대한 맞는 조건으로 해볼게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웃고 있는 지태훈을 보며 김현지는 속으로 다짐했다.

‘여기가 내 다음 직장이야!’

* * *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흘러 새 시즌이 다가왔다.

춘추제로 진행하는 K리그는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 사이에 있는 묘한 시기에서 시작한다.

시즌 전부터 고양 유나이티드를 둘러싼 수많은 관심은 1라운드 홈 개막전과 함께 제대로 나타났다.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고양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을 찾는 홈팬들로 인해 구름 관중을 이루었다.

고양 유나이티드에 대한 관심도에 5년 만에 치르는 K리그1 개막전 경기의 상대가 무려 ‘파주FC’라는 점이 엄청난 파급효과를 나타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눈앞에서 증명됐다.

[매진. 감사합니다.]

인터넷과 현장에서 판매하는 티켓이 모두 매진됐다.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려던 일부 팬들은 매진 소식을 듣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티켓을 사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둥! 두둥! 둥!

고---! 양---!

노란색의 새 시즌 유니폼을 맞춰 입은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이 북을 치며 외쳤다.

그 외침은 경기장 안을 넘어 주변 바깥까지 울릴 정도로 컸다.

그리고 경기장 곳곳을 수놓은 노란 깃발들.

마치 도르트문트의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볼 법한 홈 관중들의 모습을, 이곳 고양 유나이티드 홈경기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와 달리 경기장 한쪽에서는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바로 원정팀 ‘파주FC’의 팬들이었다.

그들도 기세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경기 전부터 북을 치며 팀 이름을 외쳤다.

둥! 두둥! 둥!

파주! 파주!

우리가! 이긴다! 우리가! 이긴다!

경기북부 더비는 과거 FIFA에서도 주목받을 정도로 굉장히 치열했다.

그 치열함에는 양 팀 팬들의 응원도 한몫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 인물이 마이크를 쥐고 천천히 필드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중앙 센터서클에 선 그는 자신 앞에 선 카메라맨의 카메라에 시선을 두고 말문을 열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시즌부터 고양 유나이티드의 장내 아나운서를 맡게 된 박창훈입니다! 반갑습니다!

우와아아아-!

그 순간 우레와 같은 환호가 터져 나오면서 경기장 전체를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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