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도 다가올 새 시즌 준비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여보자!”
“그거 하나 못 견디나! 좀 더 버텨봐!”
곽찬구 감독과 휘하 코치들은 강도 높은 훈련으로 선수들의 훈련을 지도했다.
훈련이 끝나면 입에서 단내가 나고 온몸이 땀으로 샤워한 것처럼 젖었다.
매일 이런 훈련이 반복되고 있지만 선수들은 그 누구도 불평불만 하지 않았다.
다가올 1부 리그에 대한 도전.
그것이 선수들의 정신력을 깨우고 움직이게 했다.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행동하며 ‘One Team’으로 함께했다.
“오늘 훈련 끝! 모두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할당량을 채웠다고 판단한 곽찬구 감독이 금일 훈련을 종료했다.
훈련이 끝나자 선수들이 너도 나도 바닥에 누워 힘겨워하며 호흡을 골랐다.
코치들이 그런 선수들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요한이 너는 오늘 마시지사한테 가서 마사지 한번 받아야겠다.”
“네.”
“지우, 네가 요한이하고 같이 가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구단에 전문가가 있으니 좋네요.”
원래 피지컬 코치가 따로 마사지를 배워 선수들에게 해주곤 했지만, 전문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보니 세밀한 부분을 챙겨주진 못했었다. 이런 점을 알고 지태훈 대표에게 곽찬구 감독이 선수들을 위한 전문 스포츠 마사지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건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기억한 지태훈은 이후 시즌을 마치고 선수단 경력이 있는 마사지 전문가를 영입하여 훈련 중에 바로 투입시킨 것이다.
힘든 훈련 후 마사지를 받으면서 선수들은 누적된 피로를 풀고 활력을 증진시킬 수 있었다.
“오늘 식사는 준비됐나?”
“네. 세팅을 마쳤다고 좀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좋아. 그럼 선수들 식사할 수 있게끔 하자고.”
“네.”
구단 내에 전문 요리사도 고용했다. 요리사들은 코칭스태프에게 전달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선수마다 기호에 맞춰 식사를 제공했다.
실제로 식당에 가면 선수마다 지정된 자리가 있고, 그 선수에 맞는 음식들이 제공된다.
“감독님, 저도 축구 한 30년 넘게 했는데 이렇게까지 해주는 구단은 처음 보네요.”
“그러게. 유럽 최상위 팀들은 이렇게 하긴 하던데 그걸 한국의 팀이, 그것도 우리 구단이 해줄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이러한 변화에 곽찬구 감독과 코치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변화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생각보다 컸다.
선수단은 이러한 변화와 배려 속에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 *
서울의 한 커피집.
그곳에서 남녀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지원 씨, 요즘 잘나간다며?”
“그렇기는 하나 보네. 유정이 네가 만나자고 먼저 연락도 하니까 말이야.”
천지원의 말에 장유정의 두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하는 거지.”
“유정아. 나는 네가 다시 합칠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야.”
“…….”
장유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때 불같이 사랑했었다. 그리고 주변에 축복을 받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도 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랐다.
그것이 두 사람을 갈라지게 만들었다.
“지원 씨. 나는 오늘 사적으로 만나러 온 게 아니야.”
“그럼?”
장유정은 조금 머뭇거렸다.
“힘들면 얘기 안 해도 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지원 씨. 우리 구단으로 올래?”
“……뭐?”
장유정도 천지원처럼 프로축구팀 프런트로 일하고 있었다.
한때 같이 일하면서 은밀하게 사랑도 속삭였던 여자가 그에게 스카웃 제안을 하는 것이다.
“우리 팀의 이사회에서 당신을 굉장히 주목하고 있어. 당신이 지금 연봉을 얼마를 받든 그 연봉 이상의 대우를 해줄 거야.”
“…….”
“상당히 좋은 기회야. 우리한테 오면…….”
“그만.”
천지원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모처럼 얼굴 봐서 좋았어.”
“지원 씨.”
“그리고 오늘 이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할게. 나는 지금 충분히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거든.”
“지원 씨, 잠깐만!”
“다음에 또 보자.”
미련 없이 떠나 버린 천지원의 자리를 멍하니 바라만 보던 장유정.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표님!”
“반갑습니다. 박창훈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박창훈.
수많은 행사들을 뛰며 자타공인 최고의 MC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최근 전북에서 장내 아나운서를 진행하면서 우리 쪽에도 이름을 날렸다.
“솔직히 의외였습니다. 전북에서 상당히 명성을 쌓으셨다고 들었는데, 굳이 저희 쪽으로 오신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하하.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대표님 때문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네? 저 때문에요?”
“네! 대표님은 지금 국내 축구계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저도 대표님 관련 소식은 꾸준히 확인하고 있었거든요.”
“그, 그러셨군요.”
박창훈은 상당히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 앞에서 들뜬 얼굴로 말하며 에너지를 뿜어냈다.
“제가 봤을 땐 대표님은 상당히 축구에 대해 애정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리고 똘끼도 있어 보이고.”
“또, 똘끼요?”
“하하! 네, 그 뭐냐, 4차원 기질이 조금 있으시다 그런 말이죠. 네. 하하!”
한 구단의 대표한테 4차원이라고 말하다니.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이야말로 4차원이 분명하다.
“어쨌든 전북에서 저에게 재계약을 요청하긴 했는데, 마침 고양 유나이티드가 새로운 장내 아나운서를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부리나케 달려왔죠!”
“그럼 지금 집은 어디세요?”
“아! 집은 서울에 있습니다. 은평구 쪽.”
“가깝네요.”
“네. 제가 자차가 있으니까 금방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하하!”
“그러면 전북에서 계실 땐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아, 그땐 전북에서 원룸 하나 마련해 줬어요. 그래서 경기 있는 전날에 내려가서 숙박하고 그랬죠.”
“그러셨군요.”
“사실 지금 은평구에 있는 집을 팔고 고양시로 올까도 생각했었는데, 마누라가 절대 팔면 안 된다고 그래서 말이죠. 하하하!”
“아, 결혼하셨습니까?”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겉으로 보기에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아, 제가 이래도 내년에 마흔입니다. 아이도 둘 있고요. 첫애가 이번에 초등학교 들어갔네요.”
놀랍다.
역시 사람은 겉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다.
“제가 보내드린 서류에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을 텐데 확인 안 해보셨나요?”
“아~ 확인했었는데 제가 잊었네요. 죄송합니다.”
“아이쿠!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하하하!”
제발 저 뒤에 ‘하하하!’ 좀 어떻게 안 될까.
뭔가 이 사람하고 함께 있으면 절로 분위기가 흥해진다.
“면담을 좀 하고 평가를 하려고 했는데, 보면 볼수록 대단하시네요.”
“하하! 그런가요? 하하하!”
“웃는 걸 좋아하시나봐요?”
“하하하! 제가 웃지 않으면 어떻게 남들을 즐겁게 해주겠습니까! 제가 이래도 MC 짬밥이 19년 차입니다!”
“20살 때부터 하셨나요?”
“그렇죠! 대학교도 MC 관련 학과로 전공했고요.”
나는 슬슬 마무리 지어야 할 때를 느꼈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저희 구단 잘 부탁드립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표님! 제가 더 잘 부탁드립니다!”
“네.”
그렇게 우리는 박창훈을 영입했다.
* * *
나의 일정은 쉼 없이 이어졌다.
박창훈을 만나고 그날 저녁, 나는 서포터스 간담회를 진행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반갑습니다.”
서포터스 회장인 박태준을 비롯하여 수십 명의 서포터스가 모였다.
“오늘 간담회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구단에서 먼저 이렇게 소통의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하죠.”
보통 서포터스 측에서 요구해서 간담회가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좋은 쪽보다 나쁜 쪽인 이유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비시즌 기간을 활용해서 우리가 먼저 간담회를 연 것이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상당히 오랜 시간 어려운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랬다가 이번에 다시 1부 리그로 올라오는데 성공했습니다.”
내 말에 서포터스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저희가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역시 여기 계신 팬 여러분의 공이 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을 위한 박수 한번 가시죠!”
“와아아아!”
짝짝짝짝.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번 간담회를 통해서 다가올 시즌에서 팬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자 합니다. 또한,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도 공유할 예정이고요.”
나는 미리 준비한 PPT 화면을 띄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우선 다가올 저희 목표가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PPT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K리그1 생존
“저희 목표는 오로지 ‘생존’입니다.”
“……!”
“작년 시즌을 포함해서 최근 5년 동안 K리그1으로 올라온 2부 리그 팀들 대부분이 한 시즌을 버티지 못하고 다이랙트로 강등당하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나는 실제 사례들을 모아둔 자료를 서포터스들에게 보였다.
자료를 본 그들이 술렁였다.
“여기 보시면 다이랙트로 강등된 팀들이 모두 K리그2 우승팀이라는 점입니다.”
향간에 ‘2부 우승팀 잔혹사’라는 말이 돌 정도다.
“저희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하지 못하면 어떤 꿈도 이룰 수 없죠.”
아무리 우리가 엄청난 시즌을 보내며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한들, 또다시 강등당하면 의미가 없다.
“대표님, 그렇다면 생존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박태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히 준비되었습니다.”
나는 바로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러자 우리가 생존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지 나왔다.
“우선 저희는 기존에 2부 리그를 평정했던 선수단을 거의 그대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 맞아요.”
“그리고 장현우 선수를 완전 영입했고, 비록 오세진 선수가 떠나긴 했지만 그 자리에 스즈키 안도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하지만 영입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요? 팬들 사이에서 스쿼드가 얉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팬의 질문에 나는 그 팬을 보며 차분히 대답했다.
“아직 이적시장은 열려 있고 저희는 언제든지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또 새로운 소식이 여러분의 곁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오오오!”
팬의 입장에서 선수 영입 소식은 즐겁다. 아무래도 스쿼드가 강해진다는 뜻이기에.
“단순히 선수단 스쿼드 강화뿐만이 아닙니다. 여기에 저희는 선수들이 좀 더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한 서포트를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선수들이 먹는 음식을 보여줬다.
“최근 전문 요리사들을 고용하여 선수들의 건강 상태에 맞춰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집에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조리도 해주고 있죠.”
“와.”
“또한, 전문 스포츠 마사지사와 구단 의료팀 강화로 선수들이 부상 위협에서 최대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었죠.”
그야말로 구단에서 해줄 수 있는 건 다해주는 셈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내 말에 서포터스들이 어리둥절했다.
그러다가 곧 이어지는 내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올해 고양 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를 지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