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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106화 (106/272)

106화

“얘기는 들었다. 계약직에 있는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네.”

나는 아버지하고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 일도 없구나. 그 많은 인원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다니.”

“내부 의견을 토대로 조율해서 반영했을 뿐입니다.”

“그래?”

예전보다 수척해지시긴 했지만, 여전히 눈빛은 살아있는 아버지였다.

그 눈빛을 볼 때면, 마치 깊은 고요한 바다와도 같으면서도 때론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영신그룹이란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의 역할을 해내려면 그에 맞는 기백이 필요하겠지.

그런 면에서 지금도 나는 아버지의 눈을 볼 때면, 조금은 겁이 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기업에서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일은 단순히 ‘고용’하는 정도가 아니다.”

“…….”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아느냐?”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고용된 직원들은 기업을 위해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바친다. 기업은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대가가 ‘돈’으로 나타나지만, 보이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

“전부가 아니라면, 그게 무엇입니까?”

“그 사람들의 ‘인생’이다.”

인생?

내 눈이 크게 뜨였다.

그와 동시에 정신이 든다.

“기업의 오너인 네가 그 사람들의 인생을 다루는 거다. 그 사람들은 너를 믿고 인생을 거는 셈이지. 그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네가 져야 한다.”

“……!”

“한 조직의 수장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단순히 명예와 물욕을 충당하기 위한 그런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들을 속으로 곱씹어 보았다.

그러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잘못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내 말에 아버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나는 네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너는 잘하고 있다.”

그러고는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들 사이로 뜨거운 태양이 남은 열기를 태우며 서서히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걸 나도 볼 수 있었다.

“저 태양이 보이느냐.”

“네.”

“사람의 인생은 저 태양과도 같은 법이다. 찬란하게 빛나던 때가 있다면 서서히 저물어가는 때도 있는 법이지.”

“……아버지.”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나직하면서도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태훈아. 지금 네가 보내고 있는 시기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시기가 될 것이다. 나는 네가 그 시기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으면 싶구나.”

나는 순간 볼 수 있었다.

서서히 저물어져 가는 태양과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보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아버지는 마지막을 위해 불태우고 있는 모습을.

나는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여전히 대단하세요. 평소처럼…….”

“너를 믿는다. 태훈아.”

“…….”

믿는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 어느 때보다 울림 있게 다가왔다.

* * *

새 시즌 준비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와중에 대단한 손님이 찾아왔다.

“나의 형제여!”

“오셨습니까, 왕자님.”

바로 칼리드 왕자였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극비’야.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요.”

그는 지난번 지태완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흘렸던 일이 들통났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합리적인 보상을 요구했었다.

칼리드 왕자는 그 보상을 위해 직접 한국까지 온 것이다.

“지난 일은 다시 한 번 사과함세.”

그는 정말 미안한 마음을 한가득 담아 사과했다.

아랍 왕자라는 직위 때문에 허리를 숙이면서까지 사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자세로 마음을 전했다.

“뜻하지 않게 자네를 실망하게 한 점, 그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을 찾느라 시간이 좀 걸렸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어떤 보상인지 궁금한데요.”

“들어보면 아마 꽤 괜찮은 보상이라고 생각이 들 거야.”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이번 일로 칼리드 왕자를 제대로 우리 편으로 삼을 생각이 더 컸다.

그런데 칼리드 왕자는 기대 이상의 선물 보따리를 들고 왔었다.

“사우디 국부펀드를 담당하는 무함마드가 우리와 손을 잡기로 했어.”

“오, 그건 엄청난 일이네요. 그런데 사우디에서 왜 왕자님과 손을 잡으신 겁니까?”

“그쪽도 최근 왕권 쟁탈전으로 시끄럽거든. 내가 그쪽 일을 도와줄 테니, 그쪽도 내 일을 도와달라고 했어.”

“그렇군요.”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사우디 국부펀드에서 받기로 한 자금의 일부를 자네에게 투자하지.”

“……!”

“규모는 약 10조 정도 돼. 거기서 10%를 자네에게 넘기지.”

“……!”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잘못들은 게 아니다.

그렇다고 칼리드 왕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아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낸 칼리드 왕자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 상황이 꿈같은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한 자세로 말문을 열었다.

“그만한 금액을 저에게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네를 그만큼 아끼기 때문이지. 미안한 마음도 있고.”

“단순히 그 이유로 그만한 금액을 준다는 겁니까?”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칼리드 왕자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칼리드 왕자가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어.”

그러면서 그는 솔직하게 상황을 털어놓았다.

“사우디 왕자 측과 동맹을 맺으면서 비밀 조약을 맺은 부분이 있네. 자네에게까지 상세히 말할 수는 없네만, 대략적으로만 말해 주자면 자금 융통 과정에서 한번에 많은 금액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야.”

“들킬 수 있기 때문이군요?”

“그렇지. 그래서 자금을 분산해서 운용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과정에서 1조 정도 되는 금액이 붕 뜨게 되었어.”

“…….”

“주인 잃은 1조였지. 사우디 왕자도 골치 아파하더군. 그래서 내가 냉큼 물어서 가져온 거야. 자네를 위해서.”

엄청난 일이다.

로또에 당첨되었어도 수십 개를 당첨된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1조라는 금액을 자네가 운영하는 축구팀에 그대로 줄 수 없어.”

“네?”

“회사를 새로 만들게.”

“……!”

“자네가 주인인 회사를 하나 만들면 그곳에 돈이 들어올 수 있게 해주지. 어떤가?”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안 그래도 지태완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상당한 군자금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1조?

어마어마하다.

평범한 사람이 하루에 1억씩 써도 사라지기 어렵다.

그뿐인가?

영신 그룹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신전자의 작년 영업이익이 30조가 조금 넘었다.

1조는, 영신전자가 발생시킨 영업이익의 1/30이나 된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물론 이 금액만 가지고는 영신 그룹 전체와 맞붙기는 힘들다.

하지만 내 울타리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내 선물이 마음에 드는가?”

“물론입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그렇게 나는 칼리드 왕자로부터 1조를 받기로 합의했다.

“회사를 새로 만들면 연락하게. 바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연락드리죠.”

“그건 그렇고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칼리드 왕자가 사인을 보내자 아흐메드가 서류 한 장을 꺼내서 내게 건넸다.

“이건…….”

“현 UAE 국왕이자 내 아버지이기도 한 알 나흐의 건강이 좋지 않아.”

“……!”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측근들 사이에 나오는 이야기야.”

“그 이야기하고 이 서류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 거죠?”

“우리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일을 수주받을 수 있는 정식 허가증이라네.”

“……!”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후계 구도를 끝을 내야 해.”

아랍 국가들, 특히 왕이 있는 국가들은 왕실의 허가가 없으면 어떤 사업도 진행하기 어렵다.

공산 국가와 비슷하다.

그래서 원활한 업무 수주를 위해 왕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죠?”

솔직히 동북아시아에 조그마한 축구팀 정도만 운영하는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내 형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나바드가 최근 한국의 어떤 건설 기업과 협력하기로 했더군.”

“……!”

“나바드는 그 기업과 협업해서 신도시 사업을 진행할 요량인 모양이야.”

“신도시라면…… 설마?”

“그래, 두바이 같은 새로운 도시를 만들 셈인 거지.”

“……!”

절로 두 눈이 부릅떠졌다.

하지만 의문이 있었다.

“두바이 정도 사이즈로 계획한다면 결코 작은 파이가 아닐 텐데요? 그걸 왕자와 기업 하나가 다 먹을 수 있습니까?”

“내 생각도 같네. 그래서 우리가 그 사업에 끼어드는 걸세.”

“…….”

“내가 자네에게 주는 1조. 그걸 활용해서 나를 지원해주게.”

축구 접고 건설사 대표라도 해야 하나?

아니다. 그건 아닐 거다.

“제 뒤에 있는 영신그룹을 끌어들이기를 원하십니까?”

“자네의 목표가 총수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을 거라고 보네.”

그는 거두절미하고 순순히 인정하며 말했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영신그룹에 건설사가 없는 건 아니다.

영신건설이라는 기업이 하나 있는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애초에 영신그룹은 건설에 비중이 높지 않다.

그저 경쟁 기업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어거지로 만들었을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내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어쩌면…….

“다 노리셨군요.”

“글쎄…….”

아무리 붕뜨는 금액이라고 해도, 1조는 1조다.

그런 금액을 공짜 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역시 칼리드 왕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마 1조 정도면 영신그룹이 가지고 있는 건설사를 가져오는 데 무리가 없겠죠. 부족한 자금은 다른 총알을 이용하면 되고.”

머릿속이 활발히 돌아간다.

내 말에 칼리드 왕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그저 자네에게 판을 깔아줬을 뿐이네. 그저 자네가 성장할 수 있는 그런 판을 말이야.”

맞다.

그는 정말 나를 위한 판을 깔아줬다.

그는 내가 1조를 가지고 판을 더 키워서 더 큰 걸 먹을 수 있게 만들어줬다.

“도대체 저한테 원하는 것이 뭡니까?”

내 물음에 칼리드 왕자가 싱긋 웃어 보였다.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좋습니다. 한번 해보도록 하죠.”

“자네라면 잘 해결할 수 있을 걸세.”

그렇게 나와 칼리드 왕자의 만남이 마무리되었다.

* * *

“회장님, 아니, 아버지.”

“무어냐.”

지태완이 지종윤을 찾아왔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무엇을 그리 속에 감추고 왔느냐. 피곤하게 할 생각이거든 이만 돌아가거라.”

“아버지. 회장 자리를 넘겨주시지요.”

“…….”

단도직입적인 지태완의 말에 지종윤은 입을 꾹하고 닫았다.

지태완은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눈 만큼은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룹 내 사장단과 주주들이 모두 회장의 교체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말에 지종윤 회장이 눈을 매섭게 번뜩였다.

“회장의 자리란 그저 인기 투표로 얻어지는 자리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저는 그동안 많은 부분에서 증명해 왔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입니까?”

“너는 아직 회장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두 사람 사이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보이지 않은 기 싸움이 거의 천재지변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태훈이 때문입니까?”

“……그게 무슨 말이더냐?”

“태훈이가 아니라면 저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없겠죠.”

“이번에는 내가 묻고 싶구나. 정말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그렇습니다.”

“허!”

어이없어하는 지종윤.

그런 그가 지태완을 향해 호통을 쳤다.

“이놈아! 태훈이나 너나 똑같이 천둥벌거숭이다! 너희들은 아직 회장이 될 자격이 없어!”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지태완은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차갑게 통보했다.

“이사회를 열 겁니다. 그리고 진행할 겁니다. 회장 교체를.”

“이놈!”

“아버지.”

분노하는 지종윤을 향해 지태완이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2달 정도 남았다고 했던 가요?”

“그걸 어떻게…….”

놀라는 지종윤을 무시하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지종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쩌면 좋게 끝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죠. 아버지. 그럼, 이만.”

지태완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병실을 떠났다.

그런 그가 떠나고, 지종윤은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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