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새 시즌을 위한 준비로 직원들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에서 천지원 부장은 다가올 새 시즌을 위한 마케팅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마케팅팀이 모두 모인 상황에서 천지원 부장이 회의를 진행했다.
“새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들 어떻게 되고 있지?”
“우선 대표님께서 기획하셨던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팀 레전드들을 섭외하고 있고, 그에 관련된 보도자료와 행사 상품들 모두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진호 대리의 보고에 천지원 부장은 흡족한 표정을 드러냈다.
“잘하고 있군. 그럼 그건 계속 그대로 진행하면 되겠어. 대표님께서 가장 많이 기대하고 있는 프로젝트니까.”
“넵.”
“그건 그렇고, 이번에 우리가 장내 아나운서를 뽑는 일은 어떻게 됐지?”
“각 후보군을 추려 봤습니다. 한번 보시죠.”
천지원 부장은 직원이 건네주는 서류를 받아서 프로필들을 확인했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지난 시즌까지 함께 했던 장내 아나운서가 계약 만료로 떠난 상태였다.
팀에서 재계약을 요청했지만 이미 다른 곳과 계약을 맺어 붙잡을 수 없었다.
“박창훈? 이 사람이 매물로 나왔어?”
프로필을 쭉 확인하던 천지원 부장이 깜짝 놀랐다.
“네. 지난 시즌까지 전북하고 함께 일을 했다가 계약이 만료된 모양인 것 같습니다.”
“이 사람 되게 잘한다고 소문난 사람 아닌가?”
“네. 축구에 관한 관심이나 이해도가 높아서 각종 축구 관련 행사 진행은 깔끔하게 진행한다고 정평이 나 있죠.”
“전북에서 안 잡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지난번 장내 아나운서 공고문을 냈을 때, 이 사람이 프로필을 제출한 걸 보고 놀랐으니까요.”
“신기하네. 그럼 이 사람한테 연락해 봐. 아무래도 검증된 베테랑이 낫겠지.”
약 5년 만에 다시 입성하는 1부 리그다.
어설픈 신인보다 깔끔한 베테랑으로 무대를 꾸미는 게 낫다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장내 아나운서 섭외 건도 빠르게 정리했다.
“자, 마지막 안건인데, 다가올 개막전에서 우리가 뭔가 큰 걸 보여줘야 해. 왜 그러는지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안다 생각해.”
천지원 부장의 말에 모두가 말없이 눈을 빛냈다.
다가올 첫 리그 경기는 홈 개막전으로 치러진다.
그것도 ‘파주FC’ 하고.
오랜 시간 지역 라이벌 관계로 형성된 두 팀의 역사를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선수단은 무조건 승리를 외치면서 훈련에 임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만 가만히 있는다? 그건 말이 안 되지.”
마케팅팀도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
축구에서 라이벌과의 경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파주FC는 우리보다 팬들이 더 신경 쓰는 존재야. 게다가 우리가 2부를 전전하는 동안 파주는 1부에서 나름대로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팬들 입장에서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이겠어. 안 그래?”
“그렇습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과감하게 말해 봐.”
그러자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너도나도 아이디어들을 내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참여도가 높으니 회의는 빠르게 진전됐다.
이렇게 빠르게 상황들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지태훈 대표의 영향이 컸다.
어느 날, 지태훈 대표가 부장급 인사들을 모두 모아놓고 대뜸 이야기했다.
-회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건 여러분 스스로 무능하다는 증거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충격받았다.
여지껏 누구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부분을 지태훈 대표가 지적하니 충격받은 것이다.
-나는 무능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무능하지 않다면 회의 시간으로 증명하지 말고, 과정과 결과로 증명하세요.
직원들은 이런 부분을 두고 지태훈 대표를 어려워했다.
실제로 지태훈 대표는 뚜렷한 결과 없이 회의 시간만 오래 가져가는 평가를 받은 부장급 인사들 일부를 과감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이로 인한 반발이 조금은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지태훈 대표가 추진하는 업무 방향성으로 업무 효율이 늘고 그에 맞는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원들 사이에서 월급 루팡이 벌어지는 일이 대폭 줄었다.
-일을 빨리 끝내는 사람은 먼저 가서 쉬면 됩니다.
-열심히 일한 자! 당연히 놀아야 하지 않습니까? 저도 일 끝나면 놀러 다닙니다!
지태훈 대표는 직원들이 일한 만큼 합리적인 휴식과 보상을 제공했다.
그러니 그 누가 게을리 일을 하겠는가.
그게 현재 고양 유나이티드를 만든 비결이기도 했다.
* * *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일이란 것은 하나가 해결되면 새로운 것들이 연달아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쏟아지는 일거리들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쉽고 빠르게 처리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나는 견딜 만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업무량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사람을 추가로 뽑아야겠어.”
“추가로요?”
내 말에 김 비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력은 한계가 있고 업무량은 늘어나. 이대로 가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야.”
“어느 정도 뽑으시려고요?”
“현재 상황과 미래에 닥쳐올 일들을 모두 고려해 보면, 못해도 10명 이상은 뽑아야 하지 않을까?”
“음. 그 정도면 현재 재정 상태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10명.
겉으로 보면 적은 인원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팀 내 프런트가 50명 정도 된다는 것을 안다면, 적은 인력 충원이 아니다.
지금 인원에서 20% 이상은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 비서, 정소영 부장하고 유지원 부장을 불러줘.”
“네.”
호출을 받은 정소영 부장하고 유지원 부장이 대표실로 왔다. 그들에게 현 상황에 대해 말하고 인력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반응이 조금 엇갈렸다.
“재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굳이 여기서 더 추가로 뽑아야 할까요?”
“저는 괜찮다고 봅니다.”
정소영 부장은 조금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 반면, 유지원 부장은 인력 충원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흠. 두 분의 의견이 엇갈리는군요. 각자 의견을 좀 더 말씀해 보시죠.”
그러자 유지원 부장이 먼저 의견을 밝혔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죠. 각 부서에서 최근 들어 인력 충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희도 1부 리그에 올라선 이상 해야 할 업무량도 많아졌고, 그로 인한 각 부서의 인력 충원은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정소영 부장님의 의견이 궁금하군요.”
그러자 정소영 부장이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의견을 피력했다.
“업무량이 늘어난 만큼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해결해야 할 부분? 그게 무엇입니까?”
“지금 각각의 부서별로 계약직 인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정규직 전환을 희망하고 들어온 계약직 직원들이죠. 이들의 숫자만 해도 약 20명 정도 됩니다.”
“…….”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직원을 키워야 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혹시나 직원이 중간에 퇴사라도 한다면 구단 입장에서 돈과 시간이 낭비가 된다 보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현재 계약직으로 있는 직원들을 우선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시도한 후, 이후 새로운 직원들을 채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지적이다.
정소영 부장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그냥 인력 충원만 생각했지, 기존에 있던 직원들의 상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지원 부장이 그 부분에 있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계약직 인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부수적인 비용들이 더 많이 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신규 채용할 수 있는 예산마저 추가 소모가 될 수 있고요. 취지는 좋지만, 무작정 진행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유 부장님. 최근 구단 내에 정규직 채용이 3년 동안 없었습니다. 대부분 계약직이었죠. 그것도 그 이전에 들어온 정규직들 대부분은 낙하산 인사들이었고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정소영 부장은 평소와 달리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어필했다.
나는 그녀의 의견에 호기심이 동했기에 말리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런 사이 그녀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이 부임하신 이후 과거 전임 대표이사나 허 단장을 통해 입사한 낙하산 인사들은 모두 정리가 됐습니다. 그 빈자리를 기존에 남아 있는 정규직 인사들이 채웠고요. 하지만 계약직 직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혜택을 받아야 우리 구단은 더 큰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 부장, 그건…….”
나는 한쪽 손을 들어 올려 유지원 부장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분명 일리 있는 말입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유지원 부장처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는 현실에 안주할 생각이 없었다.
남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큰 그림을 그리는 상황에서 때론 불확실하고 어렵고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정 부장님의 의견대로 진행하죠.”
“……!”
“신규 직원 채용보다 내부 직원들을 먼저 챙겨 주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대표님.”
“유 부장님. 계약직 직원들도 우리 구단에 있는 이상, 우리 직원들입니다. 혹시 부장님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유지원 부장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도 안다.
유 부장이 계약직 직원들을 싫어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유 부장의 단점은 늘 현재의 시선에서만 본다는 점이다.
가진 재능에 비해 보는 시야가 좁은 안타까운 인물.
그렇기에 나는 좀 더 과감하게 밀고 가야했다.
“내부 계약직 직원들 모두 정규직 전환할 수 있게 진행하겠습니다.”
나의 파격적인 인사 진행은 곧 구단을 넘어 K리그 전체 그리고 기업들마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피셜】고양UTD, 계약직 직원들 모두 ‘완전 영입’ 성공!
마치 오피셜 기사처럼 보도자료가 터져 나오자 반응은 뜨거웠다.
-뭐? 계약직을 전부 정규직으로 바꿨다고?
-와, 지태훈 대표 진짜 대단하다!
-진짜 이 시대의 참된 경영인!
-타 구단에서 일하는 계약직인데 진짜 ㅈㄴ 부럽다.
-인원이 20명이나 된다는데?
-총알 많다더니, 그 총알을 제대로 쓰네.
고양 유나이티드는 단순 보도자료로 끝내지 않았다.
내가 계약직 인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자, 소식을 들은 천지원 부장이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이다.
“대표님, 저희 마케팅 팀에서 나온 아이디어입니다만, 계약직 직원들에게 각자 본인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지급하고 오피셜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게 어떻습니까?”
“그거 아이디어 좋은데요? 당장 시행하죠.”
어차피 유니폼은 남아돈다.
그렇게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 20명의 직원은 각자 본인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들고 단체 오피셜 사진을 찍었다.
20명의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찍은 오피셜 사진이 구단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오자 많은 사람이 뜨겁게 반응했다.
-올해 최고의 영입입니다!
-선수 영입 오피셜만 보다가 이런 영입 오피셜은 처음보네요.
-이 팀이 내 팀인 게 정말 자랑스럽다!
-지태훈 대표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다!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 충성맹세 한다!
그리고 이 일로 구단 내부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대표님을 위해 평생 목숨 바쳐 일한다!”
“3년을 죽어라 일하면서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몰라서 불안했거든? 근데 정말 꿈 같은 일이 벌어졌어!”
“대표님,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비록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많은 금액을 쏟게 됐지만, 이번 일로 고양 유나이티드는 한 발자국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