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그, 제가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말이죠.”
“네, 말씀하세요.”
“KBO 평균 운영비는 어느 정도 되죠?”
“리그 평균 운영비요? 잠시만요. 제가 여기에 적어 둔 게 있는데…….”
류진호 팀장은 스마트폰을 꺼내 관련 자료를 찾아본 다음에 말했다.
“아, 여기 있네요. 해가 바뀐 지 얼마 안 돼서 작년꺼는 아직 안 나왔고, 재작년 기준으로 320억 정도 되네요. 이것도 조금 줄은 거고요.”
나는 숨이 턱 막혔다.
확실히 프로야구는 대단했다.
재작년 K리그1 평균 운영비는 250억 정도 되었다.
이것도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K리그2에 있었던 우리 입장에서는 다르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가 실제 사용한 운영비만 보면 약 220억 정도.
K리그2 역사상 역대 단일시즌 최다 운영비로 보고 있었다.
K리그2 평균 운영비가 100억 안팎인 것을 볼 때 상당한 액수다.
고양 버팔로는 그런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액수를 매년 운영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액수 보고 놀라셨습니까? 그래도 이게 많은 건 아닙니다. 저희는 딱 평균치 정도로 쓰고 있습니다.”
“솔직히 구단 대표로서 조금 부럽네요. 매년 그만한 액수를 쓰신다니.”
“제가 듣기로는 고양UTD도 매년 쓰는 액수가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번에도 운영비를 늘린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고요.”
아마 정소영 팀장으로부터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가 보다.
둘이 부부인데다, 정소영 팀장은 우리 팀 회계를 맡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겠지.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딱히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습니다.”
구단 예산과 관련된 부분은 기밀이기에 함부로 유출돼서는 안 된다.
류진호 팀장은 그 부분을 우려하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음, 처음 이야기했던 부분으로 돌아가자면 일단 지역 친화적인 이벤트 정책이 필요합니다.”
“지역 친화적인 이벤트라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고양특례시에 연고를 두고 있는 입장에서, 이곳에 사는 시민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서 마케팅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죠.”
“오, 그렇죠.”
류진호 팀장은 내 말을 듣고 바로 수첩에 뭔가를 받아 적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라면…… 그게 뭐죠?”
“성적입니다.”
“아.”
류진호 팀장이 탄식했다.
사실 성적만큼 좋은 효과는 없긴 했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또한 지역친화적 마케팅과 성적 두 가지 부분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그 결과로 꽤 괜찮은 수익과 인지도 확보에 성공했던 것이고.
“혹시 흑자 보셨나요?”
류진호 팀장이 은근히 기대하는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쉽게도 흑자는 아닙니다. 그래도 적자 폭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적자였죠.”
“아!”
류진호 팀장은 메모하던 행동을 멈추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대표님. 그럼 능력 있는 선수들을 영입해야 할까요? 네임드 선수들을 영입해서 성적을 올리면 상황이 해결되겠습니까?”
그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름값만 보고 선수를 영입하면 큰일 납니다. 이건…… 팀 내 스카우터나 단장의 역할이긴 합니다만, 저희 같은 경우 일전에 황석호 같은 선수를 영입했다가 연봉만 날리는 일도 겪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네. 같은 네임드라고 해도, 실력이 확실하게 보장된 선수를 데려와야 효과를 봅니다.”
“으음, 혹시 박형우 선수 같은 경우가 그런 것일까요?”
“어떻게 보면 그렇죠. 현재 저희 팀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데, 이미 실력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었죠.”
“오오.”
“그리고 실력 있는 선수를 영입하려면 분명 많은 돈이 들 겁니다. 모기업이나 스폰서에서 투자해 줄 수 있는 금액도 한정되어 있을 거고요.”
“아무래도 그렇죠.”
“종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프로팀이 겪는 일일 겁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야 합니다.”
“자생이라…….”
“저희는 우선 감독부터 바꿨습니다. 선수단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곽찬구 감독이 우리 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꽤 건실하게 팀 운영이 가능했다.
나이가 어리거나 포텐이 터질 것 같은 선수들은 완전 영입으로 묶어 놓고, 즉시 전력감 선수들은 필요하면 임대 형태로 돌려서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박요한과 장현우, 오세진 등이 그랬다.
게다가 능력 있는 감독은 성적으로도 증명해준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나도 회귀하고 여기까지 오면서 깨달았다.
“하긴, 대표님 말씀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공감은 됩니다. 저희도 현재 내부에서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거든요.”
“그런가요?”
“네. 현재 감독으로 계신 분이 워낙 한쪽만 고집하다 보니, 저희 프런트나 팬들하고도 충돌이 좀 많았거든요.”
“그랬군요.”
“원래 경질 여론이 강했는데, 준플레이오프까지 갔던 터라 한 시즌 더 유임시켜 보자는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흐음.”
확실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금은 곤란한 상황으로 들렸다.
하지만 일을 처리할 때는 때론 냉정하게 판단하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그 감독님께서 감독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3년 정도 됐습니다.”
“3년. 3년이면 충분한 결과를 보여주고도 남았을 기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
“고양 버팔로의 목표가 중상위권 정도가 목표였다면 유임시키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글쎄요, 저였으면 자르고 바꿨습니다.”
애매한 부분은 계속 가져가면 언젠가는 그것이 골병으로 터진다.
상대팀에게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팀이었다면 당장에 잘랐다.
하다못해 곽찬구 감독처럼 체계를 잡아서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움직인다면 또 모를까.
그렇게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데.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팬과 프런트들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자기 고집대로만 간다?
아무리 감독의 권한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해도 소통까지 차단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대표님께서는 냉정하시군요.”
류진호 팀장이 놀란 표정을 드러내었다.
“글쎄요. 한 조직을 이끄려면 이 정도 결단력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동의합니다.”
그렇게 대답한 류진호 팀장은 수첩과 볼펜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덕분에 궁금했던 부분들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또 뵙고 조언을 듣고 싶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감사하네요.”
“그럼 저희도 돌아가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결론을 지어야겠습니다.”
“덕분에 오늘 저도 좋은 시간 가졌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서로 악수를 하고 일정을 마무리지었다.
* * *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류진호 팀장.
“아빠!”
“오이구! 우리 아들! 학교 잘 다녀왔나?”
“응! 오늘 시험 봤는데 받아쓰기 100점 받았어!”
“오! 역시 내 아들이야! 하하하!”
류진호의 아들은 이제 겨우 8살이었다.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데, 100점을 받아왔다며 자랑했다.
어쩌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류진호 팀장에게 있어 아들과 관련된 일 중에 그 어떤 일도 사소한 것은 없었다.
“왔어요?”
“어, 먼저 왔나 보네?”
“네. 일은 어떻게 됐어요?”
“응. 가서 보고하고 검토 회의 진행하고 했지.”
류진호 팀장은 간단하게 씻고 편안하게 옷을 갈아입은 다음, 가족과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을 먹던 도중 류진호 팀장이 말했다.
“자기는 좋겠어.”
“뭐가요?”
“자기가 일하는 구단 대표 말이야. 지태훈 대표.”
“네. 그런데요?”
“솔직히 부럽더라고. 젊은 친구가 생각보다 자기 생각도 뚜렷하고, 목표하는 부분이 명확해. 자기가 왜 그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다녔는지 이해가 돼.”
“그죠? 다른 팀들 대표들하고 다르다니까요.”
“응. 내가 야구가 아니고 축구로 길을 잡았다면, 당신 대표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을 정도야.”
“그 정도예요?”
정소영 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류진호 팀장은 고양 버팔로의 실질적인 핵심 인재로 평가받았다.
야구계에서 류진호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재능 넘치는 사람이었다.
매년 여러 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가족이 머무르는 고양특례시를 벗어날 생각이 없던 그는 수많은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고 팀에 남아 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하니, 정소영 부장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던 것이다.
“혹시 그 대표님은 야구 쪽에는 관심없데?”
“안타깝게도…… 사실 축구도 잘 모르시는 분이세요.”
“그래?”
“네. 그런데 구단 대표가 되고 나서 엄청나게 노력해서 구단을 운영하고 있고요. 처음에 용어도 잘 몰라서 버벅였는데…….”
정소영은 문득 지태훈 대표가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을 떠올렸다.
-저는 장현우나 김지우 선수에게 메짤라(Mezz’ala) 역할을 부여해서…….
-예? 뭘 잘라요?
-메짤라(Mezz’ala)요.
-…….
곽찬구 감독이 회의 때 등장해서 전술에 대한 설명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메짤라 얘기를 듣고 멍하니 반응했던 지태훈 대표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왔다.
-곽 감독님. 김지우를 메짤라로 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네?
-김지우 선수가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하고 있지만 주로 후방 빌드업을 맡는데, 차라리 장현우 선수나 석종호 선수를 이용해서 측면 인사이드를 활용한 메짤라 역할을 부여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다.
-오, 대표님.
그때 감동하는 곽찬구 감독의 모습이 볼만했지.
명색이 프로축구 구단을 이끄는 대표라는 사람들 중에 의외로 전술 용어 하나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지태훈 대표는 그사이 자신이 모르는 것을 공부하고 실제로 적용까지 시켜왔다.
어쩌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러한 대표의 행동 하나로 직원들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의 영양도 신경 써야 됩니다. 영양사를 고용하죠.
-네? 정말입니까?
-당연하죠. 경기를 뛰는데 그냥 밥만 먹으면 다 뛰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대로 먹이고 제대로 뛰게 해 줘야죠! 그게 우리의 역할입니다!
-오, 대표님.
전문 영양사마저 고용할 정도로 그는 공부하고 배려했다.
그런 보이지 않은 노력이 모여서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기야?”
“후후, 앞으로 볼만할 거예요.”
“엉?”
“그건 그렇고 자기는 어떻게 됐어요? 감독을 자르니 마니 했잖아요.”
“아, 그거…….”
돌아오는 류진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소영도 상황을 눈치챘다.
“그냥 데리고 가는 모양인가 봐요?”
“응. 후, 이사회 결정이 답답해. 분명 데이터로 다 나와 있고, 충분히 3년이면 시간을 줬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사실 류진호는 감독을 경질하는 데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고양 버팔로 이사회는 감독 경질에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류진호로서는 팀의 가장 문제점이 결단력 없는 프런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프런트는 애매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로 인해 현장에서 뛰는 직원들도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팀 이사회가 지태훈 대표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이렇게까진 되지도 않았겠지.’
낭비가 계속되고 있다.
돈과 시간이 낭비되면서 팬들까지 소모되고 있었다.
이러다가 향후 5년 이내에 구단에 대형 위기가 찾아올 수 있었다.
류진호는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부럽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류진호의 입맛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