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네놈이 알려줬다고?”
아마 김진철의 성격상 연락받은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연락받은 사실을 아는 건 김진철 이사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그가 나를 보고 놀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연락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증명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더 수상한데?”
“네?”
“어떻게 회장님이 공격받을 거란 것을 알고 있었던 거지?”
아놔.
욕설이 터져 나올 뻔했다가 간신히 참았다.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론 나 같아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생각을 가다듬고 말했다.
“일전에 형이 저를 공격했던 적이 있습니다.”
“계승 싸움에서 형제들 사이에 다툼이 있을 수는 있지. 그런데 그게 어떻게 회장님 사건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거지?”
“형, 아니, 지태완 사장이 지닌 욕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인간은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죠.”
“…….”
“재작년에 벌어진 박종수 이사 사망 사건도 큰형이 개입되어 있을 겁니다.”
“뭐?”
“당시 큰형이 자신의 입지를 공고하게 하려면 둘째 형의 세력을 줄여야 했죠. 그런데 둘째 형에게는 박종수라는 가장 강력한 우군이 있었죠. 그 날개를 부러뜨리지 않은 이상 상대가 힘들었을 겁니다.”
“믿을 수가 없군. 단순히 그런 얘기로 믿기에는…….”
“실제로 둘째 형은 박종수 이사가 사망한 이후 입지가 크게 줄어든 상황입니다. 거의 명맥만 유지할 정도죠.”
김진철의 얼굴은 잔뜩 굳어졌다.
“나는 누구의 편을 들 생각이 없다. 당장 이 말도 정황적으론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걸 뒷받침할 만한 증거나 물증이 없어. 네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맞습니다.”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면서 형이 얼마나 영악한 존재인지를 덧붙였다.
“형은 흔적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영악하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그래서 형을 조심해야 합니다.”
나는 알고 있다.
김진철 이사도 여기에 있는 나도 모두, 회장님 사후 모두 형으로부터 숙청당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런 결말을 막기 위해서라도 형에 대한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그건 김진철 이사에게도 해당하는 부분이다.
“아버지, 아니, 회장님께서 돌아가시면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이 될 겁니다. 아무리 이사님이라면 형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때 돼서 제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생각이 들면 늦은 겁니다.”
내 말이 끝나고 한동안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을씨년스런 겨울바람이 우리 둘 사이를 강하게 훑고 지나가면서 머리카락과 코트 끝자락이 바람으로 인해 거칠게 흩날렸다.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뺨을 도려낼 것처럼 아프게 불어왔지만, 우리는 그 고통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
“네 말이 진짜라면, 너는 어떻게 할 셈이지?”
내 말을 믿어주는 건가?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김진철의 두 눈은 전혀 신뢰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그를 보니 나 또한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제가 그룹의 총수 자리를 목표로 하는 것은, 오로지 형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형을 막기 위해?”
“네. 형을 막을 수 있다면, 저도 무엇이든 할 생각입니다.”
회귀 이후 완벽하게 달라진 삶을 살아가는 건, 오로지 형을 막기 위해서였다.
복수를 꿈꿨지만, 그 안에 내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돌연 김진철이 몸을 돌렸다.
뒤를 돈 상태에서 그가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지.”
“믿어 주시는 겁니까?”
그 말에 조금은 희망적으로 말을 걸었지만, 김진철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너를 믿는 게 아니야. 내 딸을 믿는 거지.”
“……네?”
“이 일로 인해서 내 딸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너는 그날 나한테 죽는 거다.”
김진철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난 후, 한동안 나는 그곳에 홀로 남아 있었다.
* * *
차를 몰고 돌아가는 김진철은 아까 일을 떠올렸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지태완 사장에 대해 경고하는 지태훈의 모습.
그 모습이 김진철에게는 묘하게 다가왔다.
“정말 지태훈이 범인이 아니었던 것인가.”
지태완이 보여주는 대외적인 이미지.
그것 때문이라도 김진철은 전혀 범인이라 떠올릴 수 없었다.
오히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는 지태훈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변했다고 한들, 망나니의 행태가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언젠가 지태훈이 미친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번 일이 터졌을 때, 당연히 지태훈을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했던 것이다.
그런 자신에게 지태훈은 이번 사건 범인으로 지태완 사장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증거나 물증은 부족했다.
하지만 지태훈의 태도나 말투에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아빠. 도련님, 아니, 지태훈을 좀 더 믿어 주면 안 돼요?
“젠장.”
문득 기억난 딸의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울렸다.
절로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딸만 아니었다면, 지태훈을 계속 의심했을 것이다.
“도대체 유리는 그런 놈을 왜 신뢰하는지 모르겠군.”
-아빠가 자꾸 도련님을 의심한다면, 나도 아빠를 믿을 수 없어.
“제길.”
더 추궁하고 싶었다.
그랬다간 딸과의 관계마저 틀어질까 참았다.
“만약 지태완이 범인이라면…….”
지태훈의 주장대로 지태완 사장이 범인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난리다.
가만히 있어도 회장직을 물려받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지태완이다.
이미 상당한 업적들을 쌓았고, 그를 지지하는 임원들이 상당하다.
주요 계열사 대표들도 지태완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를 지지하지 않은 인물은 자신을 비롯하여 회장단의 실질적인 심복들뿐.
“하긴 이상했어.”
문득 지태완의 과거를 돌이켜보니 수상한 부분들이 생각났다.
예전부터 지태완과 경쟁을 하던 사람들은 묘하게 스스로 무너지거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곤 했었다.
“설마 그 모든 게 다 지태완 사장의 계략이었나?”
어린 시절부터 지태완이 철저하게 준비한 그림들이라면, 그는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인물이 분명했다.
“가면을 쓰고 있는 건가?”
애초에 김진철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룹 내에 그가 유일하게 믿음을 주는 인물은 ‘지종윤’ 회장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회장님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더욱 주변 인물들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지태완 쪽도 조사를 해봐야겠어.”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은 김진철은 좀 더 액셀을 길게 밟았다.
* * *
고양 유나이티드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아이고, 반갑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뿔 달린 황금색 황소가 그려져 있는 야구 모자를 쓴 사람들이 고양 유나이티드를 방문했다.
“인사드립니다. 고양 버팔로에서 홍보·기획을 맡은 류진호 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천지원 부장입니다.”
같은 고양특례시를 연고로 두고 있는 지역 프로 야구팀인 고양 버팔로에서 프로스포츠 교류 차원에서 구단을 방문한 것이다.
“대표님도 곧 오실 겁니다. 잠시 외부 업무가 있어서 나가셨다가 돌아오시는 중이시거든요.”
“그렇군요.”
“대표님 오시기 전까지 제가 구단을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네.”
천지원 부장이 직접 그들은 인도했다.
고양 버팔로 사람들은 고양 유나이티드 경기장과 훈련장 등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그들 앞에 정소영 부장이 나타났다.
“여보!”
“오!”
정소영 부장이 류진호 팀장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류진호 팀장 옆에 서서 천지원 부장에게 설명했다.
“저희 남편이에요.”
“아! 예전에 고양 버팔로에 남편분이 일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분이 류진호 팀장님이셨군요.”
류진호 팀장은 조금 쑥스러워했다.
“부담 안 주려고 몰래 온 건데 들켜버렸네.”
“어떻게 몰라. 이미 공문으로 전달받았는데.”
“어? 그래? 아, 그건 몰랐네.”
공문을 작성하는 직원이 류진호 팀장의 이름을 넣는 바람에 정소영 부장이 알게 된 것이다.
“어쨌든 일 잘 보고, 끝나면 연락 줘요.”
“응. 알았어. 연락할게.”
정소영 부장은 사적인 감정은 집어넣고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류진호 팀장도 조금 아쉬운 마음을 뒤로했다.
“대표님께서 오셨다고 하네요. 만나 뵈러 가시죠.”
“오, 그러죠.”
* * *
나는 고양 버팔로에서 온 류진호 팀장과 마주했다.
“반갑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 지태훈입니다.”
“류진호입니다. 굉장히 잘 생기셨네요.”
“감사합니다.”
류진호 팀장은 상당히 덩치가 있는 거구였다.
나보다 조금 작아 보였지만 180은 넘어 보였다. 거기에 벌크업 된 몸을 가지다 보니 상당히 위협적인 신체를 가졌다.
하지만 그런 몸과 달리 얼굴은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아저씨의 푸근함이 담겨 있었다.
“저희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선뜻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아닙니다. 안 그래도 저희 쪽에서 한번 연락을 드릴 참이었는데, 먼저 연락하셔서 감사합니다.”
고양 버팔로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긴 했지만, 야구도 축구와 비슷하게 시즌이 끝났기 때문에 크게 문제없이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을 하셨나요?”
“아, 그게 말입니다.”
류진호 팀장은 고양 버팔로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양 버팔로는 이번 시즌 아슬아슬하게 와일드카드로 합류하여 가을 야구에 참여하긴 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탈락하며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아시겠지만 저희가 과거에 우승도 여러 번 하던 팀이긴 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성적이 그리 썩 좋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야구는 관심이 많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많이 힘드신가요?”
“아무래도 좀 그렇습니다. 이번에 그래도 몇 년 만에 가을 야구를 나가면서 약간의 체면을 살리기는 했는데, 여전히 부족하죠.”
우리가 삽질하고 있을 때, 고양 버팔로는 승승장구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비슷하게 삽질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최근에 같은 연고를 두고 있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굉장히 선전하고 있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저희도 많이 궁금해하던 참이었거든요.”
“그러셨군요.”
“그래서 말인데, 팀이 이렇게 살아난 방법을 좀 공유받을 수 있을까요?”
“흐음.”
“염치없는 말이긴 합니다만, 저희도 워낙 상황이 급박해서 말이죠. 부탁드립니다.”
류진호는 내게 고개 숙여 진심으로 부탁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매몰차게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나도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음, 제 설명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돈이 좀 있어야 합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고양 버팔로의 한 해 예산이 어느 정도 될까요?”
“예산이요?”
“네.”
야구단 예산이 축구보다 많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지 나도 잘 알지 못한다.
아무리 많아 봤자 우리하고 뭐 얼마나 차이 나겠어 싶었다.
그런데…….
“저희는 매년 약 330억 정도 되겠네요. 운영비만 그렇고, 연봉은 250억 정도 되겠네요.”
“……뭐, 뭐요? 얼마요?”
나는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