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대표님! 차기 시즌 일정이 발표됐습니다!”
“올 것이 왔는가.”
차기 시즌 일정 발표에도 나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달랐다.
“홀리 쉿!”
“뭐야!”
“일정 왜 이래!”
“아주 작정을 했구만!”
발표된 일정을 본 직원들의 반응은 충격과 놀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오피셜] 프로축구연맹, 2027시즌 K리그1 일정 발표!……개막전 1R ‘경기북부 더비’ 성사!
[고양 유나이티드 VS 파주FC]
개막 첫 경기부터 형성된 두 팀의 맞대결에 모두가 놀랐다.
“대표님, 이걸 어쩌죠?”
“어쩌긴요. 준비해야죠.”
나는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발표하기 며칠 전에 이 같은 상황을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어제 석정원 회장이 갑자기 보자 해서 뭔가 했더니, 이 얘기를 꺼냈지.’
* * *
“시간 내줘서 고맙네. 많이 바쁠 텐데 내가 너무 눈치 없이 연락을 한 게 아닌가도 싶군.”
“아닙니다. 석 회장님이라면 없던 시간도 만들어야죠.”
“하하하! 말이라도 정말 고맙군!”
“그런데 어쩐 일로 보자고 하신 건가요?”
종로 근처에 있는 어느 조용한 한식당에서 나와 석정원 회장이 만났다.
그는 조금 뜸을 들였다가 용건을 얘기했다.
“차기 시즌과 관련돼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네.”
“네?”
갑자기 보자고 한 이유가 차기 시즌 때문에?
의아할 틈도 없이 그는 바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가올 차기 시즌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네.”
“매번 그렇지 않나요?”
“그렇지.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라. 바로 지 대표가 이끄는 고양 유나이티드 덕분이지.”
“에이.”
“정말이네.”
석정원 회장은 고급스러운 접시에 올려진 음식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이어지는 석정원 회장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개막전에서 고양과 파주의 맞대결이 성사됐네.”
“네!?”
“우리가 세운 규칙에 의거해서 대진표를 작성하긴 했지만 그런 결과가 나왔다네. 뭐, 이사회가 반쯤 의도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
“자네가 보기에는 우리가 흥행을 위해 의도적으로 형성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걸세. 그렇게 생각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고.”
석정원 회장의 말대로였다.
프로축구연맹은 규칙에 맞춰 차기 시즌 일정을 구성하는데, 의도가 어떻든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시즌 중에 1번은 붙어야 하니까요.”
“자네라면 그렇게 얘기할 것 같았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먼저 알려주시는 걸 보면 저한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원하는 거라…… 역시 자네는 눈치도 빠른데다 생각의 크기가 다르군.”
“그런가요?”
석정원 회장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나도 덩달아 웃어 보였다.
“판을 깔아줬으니, 나는 자네가 보여줄 퍼포먼스를 기대하네.”
“퍼포먼스라……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석정원 회장은 지난 시즌 내가 보여줬던 역량을 1부리그에 맞게 다시 보여주기를 바랐다.
“자네가 구단을 운영하면서 보여준 퍼포먼스. 그 결과로 지난 시즌 2부 리그 흥행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기여했네.”
“얼핏 들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시청률 상승에 스폰서도 추가로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네. 덕분에 K리그2는 차기 시즌에선 더 나은 환경에서 운영할 수 있게 되었어.”
“그걸 제가 K리그1에서도 고스란히 보여 주기를 바라시는군요.”
“그렇지.”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우리 입장에서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물론 경기 중 대패를 하거나, 엉성한 모습을 보여주면 망신 당하기 딱 좋은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팀의 실력을 믿었다. 그리고 이미 시즌 중에 다양한 것들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잘됐다.
“아마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게 되실 겁니다.”
“기대하겠네.”
석정원 회장은 비워진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술을 받은 내가 곧바로 석 회장의 잔을 채웠다.
그렇게 채워진 잔을 석정원 회장이 한 손으로 쥐고 내 앞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지 대표, 그럼 한잔할까?”
“좋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잔이 부딪쳤다.
* * *
고양 유나이티드가 차기 시즌 준비로 한창일 때, 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안컵 대회를 치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용수 감독을 선임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아시안컵을 위해 카타르 도하로 향했다.
“최선을 다해 보자!”
“네!”
김용수호는 우승을 위해 또 한 번 도전을 선언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장현우와 박형우가 있었다.
두 선수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치른 독일 원정 경기를 치르고 바로 대표팀에 합류한 상태였다.
독일 팀과의 스파링을 통해서 몸상태를 끌어올린 뒤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한 김용수가 그렇게 진행한 것이다.
“형우야.”
“네, 감독님.”
김용수는 대표팀에 합류한 박형우와 개인 면담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불태울 준비가 되었나?”
“물론입니다.”
박형우, 그는 이번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한다.
“나도 오랜 시간 대표팀에서 활약을 했었지. 하지만 마지막이 다가올 땐, 남다른 기분이었다.”
김용수는 과거 자신이 선수로서 국가대표에서 활동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형우, 네가 이번 월드컵에서 미친 활약을 보인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어. 그리고 네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한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주변에서 상당히 많이 만류했다는 것도 알고.”
“…….”
“하지만 너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러니까 한 번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줘. 지난 월드컵 때처럼.”
“알겠습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이번 아시안컵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B조에 편성되었다.
B조에는 대한민국, 태국, 레바논, 필리핀이 포함되었다.
객관적인 전력상 대한민국과 레바논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모두 방심은 금물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대회를 치르면서 방심하는 순간 당했던 일들이 많았다!”
김용수는 선수들에게 방심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우승까지 단 1초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이것이 이번 대회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네!”
그렇게 방심하지 않은 마음으로 조별리그를 치르게 된 대한민국 대표팀.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첫 경기에서 태국을 만난 대한민국은 전반전에 살짝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전에서 득점 릴레이가 터졌다.
후반전에만 무려 4골을 터트린 대한민국은 이 경기에서 박형우가 멀티골을 넣고, 강철인이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어서 레바논과 필리핀을 상대로 2:0, 3:0 승리를 거두며 무실점으로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쾌조의 행진을 보여준 김용수호는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다음 상대와 맞붙었다.
그렇게 마주한 16강.
상대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1승 1무 1패를 기록하고 가까스로 조3위 와일드카드로 16강에 올라온 상태였다.
그런 중국을 상대로 대한민국은 잔인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중국이 무너집니다!”
“좌절하는 중국팬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경기 시작 1분 만에 상대 수비 반칙으로 PK를 만들어낸 대한민국은 거듭 골폭죽을 터트리며 3골을 만들어냈다.
이어지는 후반에는 2골을 더 넣어, 최종 스코어 5:1로 중국을 대파한 대한민국은 8강에 진출했다.
* * *
“아, 어제 중국 깨지는 거 보고 속이 시원하더라.”
“김용수 호가 생각보다 잘하던데요?”
“어. 이번 대회 기대가 좀 되더라.”
“그래도 몰라요. 지금까지 16강까지는 잘했다가 8강에서 고꾸라진 적도 많잖아요.”
“에이, 부정 타는 소리 하지 마라.”
출근하니 직원들이 어제 있던 아시안컵 경기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기본적으로 국가대항전 경기인데다 우리 팀 선수들이 2명이나 대표팀으로 활약하고 있으니, 구단 차원에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도 어제 경기 보셨나요?”
“봤지. 김 비서는?”
“저는 전반전만 보다가 잠들었어요. 피곤해서 그만.”
“그랬구만. 다음 경기는 오늘 경기 치르는 카타르하고 베트남 경기 결과에 따라 상대가 정해진다고 하던데.”
귀화 선수들로 단단한 스쿼드를 구축한 카타르와 한국인 감독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베트남의 맞대결.
이 경기의 승자가 다음 우리 대표팀의 상대로 정해진다.
“도련님 표정이 좋아 보이네요. 대표팀이 이겨서 그러신가요?”
“뭐, 그런 것도 있고.”
사실 오늘이 굉장히 기념비적인 날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오직 나에게만은 기념비적인 날.
‘회귀 전 이날 나는 체포되었지.’
회귀 전에 장부 조작의 주모자로 체포되던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이후 나는 혐의를 인정받고 그대로 형을 받아 감옥으로 향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감옥이 아닌 어엿한 구단 대표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굉장한 변화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그저 행복해 할 수는 없었다.
‘감옥에 가지 않은 상황을 만들었지만, 아버지는 회귀 전처럼 쓰러졌고 큰형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영신 그룹을 장악했어.’
내가 감옥에 가지 않은 상황만 바뀌지 않았을 뿐, 다른 부분은 회귀 전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갈 길이 멀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그러자 김 비서가 그 말을 듣고 반응했다.
“멀죠. 그래도 잘 가고 있어요.”
“응?”
“도련님의 지난 2년이 조금 넘는 행보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어요.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은 구단을, 적어도 K리그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구단으로 만들었잖아요.”
“어우,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까 덥네.”
김 비서는 조용히 웃었다.
그때였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어디선가 전화가 온 것이다.
“전화 왔는데?”
“저는 아닌데요? 도련님 확인해 보세요.”
“어? 잠시만. 어? 뭐야? 박준후 팀장인데?”
무뚝뚝한 박준후 팀장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도련님. 회장님께서…….
“네? 회장님이 왜요? 무슨 일인데요!”
평소와 달리 상당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박준후 팀장 때문에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회장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뭐라고요!?”
* * *
탁탁탁.
아버지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오늘 예정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분 회사의 주요 임원들과 직계 가족들이었다.
“아버지!”
“조용히 해라. 이것아.”
상당한 시간 동안 누워있던 아버지가 깨어나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본 나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곁에 있던 지태완의 모습을 본 나는 순식간에 차올랐던 마음이 식었다.
“회장님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마라.”
“바쁘신 분이 용케 오셨네.”
지태완은 나를 무섭게 쳐다봤다.
나도 지지 않고 쳐다봤다가 금방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싸워 봤자 득 될 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깨어난 자리다.
“내가 너희들에게 걱정을 끼쳤구나.”
아버지는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본 나는 놀랐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박 팀장님. 아버지의 상태는 어떻다고 합니까?”
지태완의 물음에 박준후 팀장이 대답했다.
“의사 말로는 거동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당분간 치료를 더 받아야 한다고 하고요.”
“흐음.”
한 번 쓰러졌다가 일어난 상태다.
젊은 사람도 아니고, 연세가 있는 상황에서 바로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서 퇴원하기는 쉽지 않다.
병실에 있던 모두가 침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는 사이, 갑자기 아버지가 말문을 여셨다.
“방금 일어나서 그런지 힘이 없구나. 모두 이만 나가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아버지의 축객령에 사람들이 망설였다. 그러자 지태완이 말했다.
“회장님께서 피곤하실 겁니다. 이만 물러나지요.”
지태완의 주도하에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떠났다.
나도 조용히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태훈이. 너는 잠깐 남아라.”
“네?”
“할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