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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98화 (98/272)

98화

연수대학교.

학교는 방학에 돌입해서 한산한 편이었다.

나는 그런 교내 길을 걷고 있었다.

“음. 내 인생에 있어서 학교하고는 앞으로 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하하.”

그러자 옆에 있던 중년의 여자 교수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 여자의 이름은 박이연.

연수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에서 학과 교수를 맡고 있었다.

“흔쾌히 이번 특강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네. 그런데 제가 학생들을 상대로 뭔가 얘기할 그릇이 될지 모르겠네요. 이런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회귀 전이나 후나 내가 대학교에서 특강을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할 수도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내가 대학 특강을 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사실 이유가 있었다.

“최근에 저희 학과 학생들을 상대로 듣고 싶은 특강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대표님이 1등으로 뽑히셨거든요.”

“의외인데요.”

“사실 저희 학생들 사이에는 유명해요. 젊은 나이에 구단 대표로서 상당히 잘 운영해오고 계시잖아요? 최근 1부리그로 승격도 하셨고요.”

“아, 뭐, 그렇기는 했죠.”

“어쨌든 학생들의 기대가 상당히 커요.”

“부담되는데요?”

“하하.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가서 학생들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뭐, 업계에 관한 이야기라던가, 평소 어떻게 구단을 운영하는가, 뭐 이런 이야기들이요.”

“흐음.”

재벌가 망나니가 대학 특강이라니.

참으로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 비서도 내가 특강을 요청받았다는 걸 알고 상당히 기뻐하던 눈치던데.

거절할까 싶었지만 기뻐하는 김 비서 얼굴을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학생들은 어디에 있죠?”

“아!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저희 학과 건물이 나옵니다. 학생들은 모두 거기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과 건물은 학교 중앙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오, 건물이 꽤 크네요?”

“아, 넵. 저희가 스포츠경영학과 쪽이 강세다 보니 지원이 좀 많거든요.”

“하긴.”

연수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는 축구계에서도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개설된 지 이제 겨우 20년이 조금 안 됐지만, 졸업생들이 축구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저희 구단에도 신진호 대리라는 분이 있는데, 아마 그분이 여기 출신인 걸로 압니다.”

“오! 그렇습니까?”

우리 쪽에 모교 출신 관계자가 있다는 말에 교수가 반색했다.

“박 교수님. 오늘…… 어?”

중년 남자가 건물 입구에서 흡연을 하다가 우리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는 서둘러 담배를 끄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박이연 교수는 나를 향해 남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박춘식 교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여기는 아시죠? 고양 유나이티드 지태훈 대표님.”

“반갑습니다. 지태훈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박춘식 교수는 어쩐지 내게 껄끄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곧 내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박춘식입니다.”

어딘가 상당히 떨떠름 하는 목소리.

그런 어색한 기운을 느껴버린 나는 머쓱해졌다.

순간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에 박이연 교수가 서둘러 말문을 열었다.

“박 교수님. 학생들 안에 다 있죠?”

“예. 기다리고 있어요. 가서 일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죠. 대표님.”

나는 박춘식 교수를 지나치며 눈이 마주쳤다.

“…….”

뭐지?

어째서인지 적대적이기까지 하는 그의 눈빛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학생들이 있는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아아아!

내가 들어가는 순간, 학생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제 갓 20대가 된 학생들부터 조금은 나이 들어 보이는 학생까지.

다양한 분위기를 가진 학생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이연 교수가 그런 학생들을 향해 나를 소개했다.

“오늘은 다들 알다시피 특강이 있는 날이죠?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던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님을 정말 어렵게 모셔왔어요. 모두 반갑게 맞이해 주세요.”

짝짝짝-.

학생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나는 말문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입니다. 오늘 이런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자 박이연 교수가 말했다.

“지 대표님. 이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면 됩니다. 중간중간에 질문하고 싶은 학생들이 있으면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막상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려니 갑자기 긴장됐다.

아주 잠깐이지만 나와 학생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정적은 길지 않았다.

“무엇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첫 마디는 솔직한 심정을 표현했다.

그렇다고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순서를 정할 필요가 있는 법.

“여기 혹시 앞으로 축구 쪽으로 일하길 원하시는 분들 계십니까?”

내 질문에 학과 학생 중 1/3이 손을 들어 올렸다.

대략 50명 정도 되는 학생 중 1/3이 손을 든 셈이다.

“그럼 나머지 분들은 어떤 걸 하기를 원하시는 거죠?”

내 물음에 중간 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배구계에서 일하고 싶어요!”

그러자 대각선 앞에 있는 남학생이 외쳤다.

“저는 야구요!”

배구, 야구, 농구 등등 분야는 다양했다.

하지만 축구가 제일 많았다.

“좋습니다.”

어떤 학생들이 왔는지 파악한 나는 학생들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

그러다가 한 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학생의 얼굴.

그런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금방 개의치 않고 나는 강의를 위해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현재 축구만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스포츠 산업은 드뭅니다.”

내 말에 일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 축구는 완벽하게 산업화되었죠. 이건 저보다 여기 계신 학생분들이 더 잘 아실 거라고 보고요.”

“…….”

“중요한 건, 이곳에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점입니다. 축구 산업에는 단순히 선수와 감독, 구단 프런트만 있지 않습니다. 선수를 활용한 에이전트도 있고, 축구용품을 다루는 이들도 있죠. 그뿐만 아니라 심판도 있고, FIFA 같은 축구 산업의 틀을 제공해 주는 단체에서 일을 하는 방법도 있죠.”

내 말에 학생들의 눈이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모양인 것 같았다.

“여러분은 좀 더 다양하게 이 산업을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장은 단순하지 않아요. 현장에는 늘 인력 부족을 외치죠.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다양하지 않거든요.”

현장을 겪어본 사람만 아는 인력 부족의 현상.

그것을 학생들이 알 방법이 없다.

본래 현장에서의 일은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만 공유하는 법이니까.

그건 내가 구단 대표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여러분의 목적이 축구 산업에 진출하는 거라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 외에 직접 발품을 팔아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안면을 트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 대표님! 현장 사람들하고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떤 여학생이 눈웃음을 보이며 질문을 던졌다.

그 학생을 향해 살짝 웃으면서 답변을 해줬다.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현장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죠.”

나와 눈이 마주친 채 대답을 들은 여학생의 양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곳은 여러분이 노력하는 만큼 달렸습니다.”

* * *

강현수도 지태훈 대표의 특강을 듣고 있었다.

그는 교수들에게 부탁해서 자신이 이번 특강을 듣는다는 것을 비밀로 해줄 것을 부탁했다.

특별히 엮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이번 특강을 들은 이유는 하나였다.

‘이번 특강을 들은 학생들에게 추가 점수 준다고 했지.’

이번 학기에 점수가 살짝 모자라서 어쩔 수 없이 특강을 듣게 된 것이다. 보충 수업보다는 차라리 특강 한 번 듣는 게 나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특강을 들었다.

‘저 사람이 지태훈.’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을 은퇴한 이후, 더 이상 그쪽 관계자들과 엮일 일이 없었다.

일부러 동료 선수들과의 연락도 끊고 지내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취임한 지태훈 대표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엄청 잘생겼네.’

첫인상은 굉장히 잘 생겼다고 느꼈다. 같은 남자가 봐도 훌륭한 외모다.

하지만 그뿐이다.

‘형식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들뿐이네.’

그래도 학생들 입장에서는 현장에서 파견한 사람이 얘기해 준다는 의미가 있었다.

같은 이야기라도 교수와 현장 관계자가 이야기하는 무게는 다르다.

“와, 강의 끝나고 번호 달라고 물어볼까?”

“주겠어? 기사에 뜬 거 보니까 늘 옆에 엄청 예쁘게 생긴 비서하고 같이 다니던데.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관심도 없을걸?”

“그래도 혹시 모르지.”

강현수 옆자리 앉은 여학생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질문이 있냐고 묻는 지태훈 대표.

그는 학생들을 쭉 훑어보다가 강현수와 눈이 마주쳤다.

오늘 들어 몇 번이나 눈이 마주치고 있다.

강현수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거기 학생분?”

“……?”

처음에 누구를 가리키나 싶었다.

그런데 박이연 교수가 갑자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현수 학생?”

“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모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데, 지태훈 대표가 그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뭔가 할 말이 있으십니까?”

“…….”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혹시 그쪽도 축구 쪽에 관심이 있나요?”

지태훈 대표의 물음에 순간 강의실 전체에 정적이 흘렀다.

당황한 박이연 교수가 황급히 지태훈 대표에게 말을 걸었다.

“저, 대표님? 아무래도 강현수 학생은…….”

“강현수 선수.”

“……!”

지태훈 대표의 한 마디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현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순간 두 사람 사이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감히 열면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다.

일부 학생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강현수의 상황을 아는 이들은 모두 당황스러워했다.

강의실에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지태훈 대표가 돌발행동을 표출했다.

그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외쳤다.

“죄송합니다!”

“……!”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사죄드립니다!”

* * *

특강이 끝나고 박이연 교수 방에 나와 강현수 그리고 박이연 교수, 이렇게 3명이 모였다.

벌컥!

“현수야!”

그러다 뒤늦게 온 박춘식 교수까지.

졸지에 4명이 모였다.

방에는 잠시나마 정적이 흘렀다.

그런 정적을 먼저 깬 건 나였다.

“강현수 선수. 얼굴이 낯이 익었습니다. 분명 어디서 봤던 기억이 있었는데, 박 교수님으로부터 이름을 듣는 순간 기억이 났습니다.”

강현수.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고양 유나이티드가 그에게 엄청난 죄를 저질렀다.

전임 단장과 감독 그리고 대표, 이 세 명이 재능 있는 선수 한 명을 매장했다.

이건 두고두고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선수라고 부르지 마시죠. 저는 이제 선수도 뭣도 아닙니다.”

“강현수 선수. 저에게 있어서 그쪽은 선수입니다.”

“…….”

강현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나라도 이런 자리가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우연히 형성된 기회다.

이 기회에 나는 대표로서 그에게 사과해야만 했다.

“지난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전임 대표이사와 단장 감독의 일이긴 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양 유나이티드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

머리 숙여 사죄했다.

하지만 강현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떠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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