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바이아레나에서 펼쳐지는 고양 유나이티드와 레버쿠젠의 경기인데요. 예상과 달리 전반전에 고양이 레버쿠젠을 상대로 0:3으로 크게 실점했습니다.』
『고양이 2부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을 했어도, 객관적인 전력상 레버쿠젠이 몇 수 위가 맞습니다.』
실시간으로 중계를 진행하는 STV 해설진들의 목소리는 실망감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레버쿠젠이 몇 수 위의 팀인 것은 맞았다.
그저 그간 고양 유나이티드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강렬했기 때문에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었다.
『후반전을 맞이하고 레버쿠젠 쪽에서 대거 교체가 이루어졌는데요. 성현민 선수를 포함해서 2~3명 정도를 제외하고 다 바뀌었단 말이죠. 이렇게 되면 고양도 조금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대거 교체했어도 결코 얕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고양이 결정적인 기회를 맞이했다.
『아! 기회입니다! 고양이 모처럼 기회를 맞이합니다!』
『아~ 열리죠! 박형우입니다!』
『순식간에 레버쿠젠의 수비를 흔드는 플레이가 나옵니다! 박형우, 일대일인데요! 그대로 슈우우웃!』
『가나요오오오!』
미사일처럼 날아간 슈팅이 레버쿠젠 골망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 골키퍼의 선방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손끝에 걸리면서 골라인 아웃 됩니다!』
『아깝네요! 모처럼 제대로 된 플레이가 나왔던 고양인데요. 여기서 결과를 만들지 못한 부분이 아쉽네요!』
하지만 박형우가 보여준 이 회심의 슈팅 한 방은 고양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할 수 있어!”
슈팅 후 박형우가 동료들을 향해 외친 이 한마디가 선수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자, 고양의 코너킥입니다. 장현우 선수가 찰 준비를 하는데요. 올립니다!』
장현우의 발끝을 벗어난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레버쿠젠 골문 앞으로 툭 떨어졌다.
양 팀 선수들이 떨어지는 공을 바라보고 움직였다.
하지만 공은 절묘하게 경합하는 선수들 사이로 떨어진 다음 한 번 크게 튀어오르며 뒤로 빠졌다.
“어!?”
『굴절됩니다! 여기서 잡았는데요! 누구죠!』
『박요한입니다! 박요하아아아안!』
혼란스러운 가운데 운 좋게 공이 발끝에 걸린 박요한.
오늘 선발 출전했지만 제대로 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던 박요한이 이를 악물고 공을 찼다.
팡!
『들어갑니다! 박요한의 골입니다!』
『이야아아! 완벽한 세트피스였습니다!』
『박요한의 골로 만회하는 고양인데요! 아직 시간 남았습니다!』
박요한은 세리모니할 겨를 없이 골문 안에 있는 공을 옆구리에 들고 빠르게 하프라인 쪽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선수들도 서둘러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삑!
그리고 곧 다시 한번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재개되었다.
* * *
후반 이른 시간에 만회골이 터지면서 나는 한결 나은 얼굴로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비록 지고 있지만, 이번 경기는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내실을 가져갈 수 있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레버쿠젠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돌연 옆에 있던 통역사가 쓱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표님. 아까 박형우 선수의 플레이와 코너킥 상황 등에서 보여준 고양 선수들의 활약이 제법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요?”
“네. 주변에 레버쿠젠 팬들이 전반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칭찬하네요.”
오랜 시간 축구의 시간을 보낸 유럽 현지 팬들의 시각은 상당히 높은 편.
그런 팬들이 칭찬했다고 하니 나름 기분은 좋았다.
그때였다.
“어어어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경악한 목소리.
황급히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리니, 이번에도 고양이 레버쿠젠을 상대로 빠른 역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엄청 빨라!”
“뭐야!”
2부리그를 뒤흔들었던 엄청난 속공 전개가 바이아레나에서 펼쳐졌다.
절묘한 라인브레이커로 수비를 부수고 들어간 박요한이 함께 따라들어온 박형우를 향해 패스했다.
레버쿠젠 선수가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황급히 중간에서 발을 길게 뻗었지만 공이 좀 더 빨랐다.
절묘하게 발앞으로 패스받은 박형우가 과감하게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아크정면에서 때린 파괴력 있는 중거리 슈팅이 궤적을 그리며 레버쿠젠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출렁-.
그대로 골키퍼를 지나쳐 골망을 강하게 흔들었다.
순간 바이아레나에 정적이 흘렀다.
그러한 정적 속에서 작은 환호가 들려왔다.
와아아아!
박형우의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이 터진 순간 고양 유나이티드 벤치에서 환호가 터진 것이다.
지켜보던 나도 벌떡 일어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짝짝짝.
그때 옆에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스테판 회장이 미소를 드러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그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 치고 들어오다니.”
“저희가 할 땐 좀 합니다.”
스테판 회장은 말없이 웃었다.
그렇게 스코어는 2:3이 되었다.
이제 1골만 더 넣으면 동점이 되는 상황.
시간은 아직 20분 이상 남은 상태였다.
이대로만 간다면 동점을 넘어 역전도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것은 레버쿠젠이었다.
아무리 친선경기라고 해도 홈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굴욕적인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뷔른 감독이 터치라인 앞으로 가서 다급하게 선수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레버쿠젠 선수들은 위험한 상황을 자각하고 전과 다른 플레이를 보였다.
이렇게 양 팀 분위기가 크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경기는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진행됐다.
카앙!
오우우우-
후반전, 동료로부터 패스를 받은 성현민이 모처럼 기회를 잡았다.
박스 외곽에서 때린 회심의 중거리 슈팅이 골대 위쪽을 맞고 튕겨 나왔다.
“오우, 큰일 날 뻔했네!”
고양 벤치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린 한방이었다.
분위기가 오른 상태에서 만약 실점을 더 내주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레버쿠젠의 공격 이후 고양이 바로 반격에 나섰다.
팡!
순식간에 이루어진 역습 과정에서 나온 나탈의 슈팅이 몸을 날린 수비수의 선방에 막혔다.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교체가 있습니다. 박형우 선수가 나오고 사무엘이 들어옵니다.
때마침 이어지는 교체.
두 번째 골의 주인공인 박형우가 나오고 사무엘이 투입됐다.
교체로 들어온 사무엘은 레버쿠젠 수비수들을 잡아끄는 역할을 했다.
그와 동시에 고양은 전과 달리 좀 더 크로스를 통한 붙이기 전략으로 갔다.
키가 큰 사무엘을 이용한 롱볼 전술이었다.
쿵!
“으윽!”
사무엘이 노장이라고 해도 기본 피지컬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피지컬만큼은 유럽 선수들과 비교해서 밀리지 않았다.
그런 그와 부딪친 레버쿠젠 수비수들이 놀라거나 고전했다.
그렇게 생긴 틈으로 박요한이 나타났다.
첫 골을 넣은 이후 박요한의 몸놀림이 상당히 좋아졌다.
자신감을 되찾은 그는 과감한 플레이로 상대를 여러 차례 흔들었다.
사무엘 투입 후 그 효과는 더 극대화 되었다.
팡!
“아!”
사무엘이 만든 틈으로 비집고 들어간 박요한이 만든 회심의 슈팅.
또다시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하지만 상당히 위협적인 슈팅이었다.
박요한의 활약 속에 고양 유나이티드는 동점골을 향한 의지를 안고 이 악물고 뛰었다.
하지만 여러 번 기회를 만들었음에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 결과,
삑! 삐익! 삑!
경기는 더 이상 점수 없이 2:3으로 끝났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모든 것을 쏟아낸 고양 선수들이 그 자리에서 모두 주저앉았다.
짝짝짝짝짝-.
레버쿠젠 홈팬들은 후반전에 보여줬던 투혼이 담긴 고양 선수들의 플레이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모두가 기립한 채 박수를 보내는 상황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레버쿠젠 선수들도 고양 선수들에게 다가가 격려했다.
같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한 상대에게 진심이 담긴 리스펙을 보여준 것이다.
“유니폼 교환하자.”
“그래.”
몇몇 선수들이 유니폼 교환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양의 첫 독일 원정 친선경기의 막이 내렸다.
* * *
친선경기를 마치고 나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팬들 반응을 살폈다.
-전반전에 내가 알던 그 고양이 맞냐?
-아니, 수비 구멍이네? 패스 한 방에 다 뚫려!
-ㅋㅋㅋㅋ 국뽕놈들 뭐? 레버쿠젠따윈 밥이라고?
-K리그 수준 잘봤구연.
-성현민 잘하는데?
-경기 끝나고 데르마빈 유니폼이나 받아올 생각인 듯.
국내 팬들의 전반전 반응은 상당히 안 좋았다.
충분히 이해했다. 내가 봐도 답도 없던 전반전이었으니까.
하지만 후반전부터는 팬들 여론이 좋아졌다.
-후반전에 내가 알던 그 고양이 맞는 듯
-그래 이거지!
-첫 골 박요한 얻어걸린 거 같은데?
-박형우 중거리 미쳤다!
-와, 박형우가 다했다!
-미친 갓형우 ㅅㅅ
-후반전에 엄청 달라졌네? 곽찬구 감독이 빠따로 때렸나?
-빠따 곽 ㄷㄷ
“그래도 후반전에 다들 잘해줘서 다행이네.”
“분데스리가 팀들 상대로 이 정도면 선방 아닌가요?”
“그렇지. 사실 그게 맞는데, 우리가 작년에 아틀레티코 잡았던 임팩트가 너무 커서 그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잡은 건 사실 운이 많이 따랐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번 레버쿠젠 전은 상대가 제대로 각 잡고 실력을 보였다.
그런 상대와 대결해서 2:3 스코어면 선방한 게 맞다.
축구란 단순히 승패만 놓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다.
물론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건 친선경기다.
승패보다 내실이 중요하다.
“다음 경기는 3일 뒤에 도르트문트 전이네요?”
“응.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도르트문트 쪽으로 이동해야 해.”
“도련님. 도르트문트는 아무래도 레버쿠젠보다 더 강하겠죠?”
“그렇지. 도르트문트는 우승을 다투는 팀이니까.”
급하게 잡힌 것치고 굉장히 강한 상대와 잡혔다.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그럼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 또 움직이자고.”
“네.”
* * *
레버쿠젠과 같은 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한 도르트문트.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 있기에 이동 거리에 부담이 되지 않았다.
미리 대여한 선수단 버스를 타고 도르트문트에 도착한 선수들은 감탄했다.
“이야~ 여기가 도르트문트구나.”
“좋은 팀 만나서 독일도 와보고. 호강하네.”
“그러게. 내가 평생 독일에 올까 싶었는데 말이야.”
일부 감탄하는 선수들 틈에 묘한 눈으로 도시를 감상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장현우였다.
‘만약 고양으로 가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여기에 있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걸었다.
“현우야. 혹시 후회하고 있냐?”
“앗. 지우 형.”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김지우가 그를 보고 씨익 웃고 있었다.
“형은 말이야. 예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었어.”
“네? 아, 맞다. 형 예전에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다고 했죠?”
“그래. 비록 도르트문트는 아니고 옆 동네였긴 했지만 말이야.”
과거 보훔에서 잠깐 뛰었던 김지우.
분데스리가2에서 막 승격한 보훔은 김지우를 영입했었다.
20대였을 때, 그는 보훔에서 2시즌 정도를 뛰면서 8골 8도움을 기록했다.
스텟만 보면 그리 좋은 활약은 아니었지만, 선수층이 얕은 보훔에게 있어서 공수 연결고리의 핵으로 움직였다.
그런 그가 속했던 보훔은 바로 도르트문트 옆 동네에 있었다.
“지그날 이두나 파크는 정말 대단해. 경기장에 들어가면 죄다 노란색이야. 눈이 아파.”
“그래요? TV로 볼 때도 되게 강렬하던데.”
“어. TV로 볼 때보다 더 심해. 팬들도 상당히 격렬하게 응원해주고, 뛰는 선수들도 수준이 다르긴 하더라.”
“…….”
“그런데 말이야.”
김지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곳저곳 다 뛰어보니까 알겠는데, 여기도 나쁘지 않더라.”
“……!”
김지우는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너는 아직 젊으니까 분명 또 나갈 기회가 생길 거야. 그러니 이번에 잘해 봐라.”
“……형.”
진심이 담긴 김지우의 말에 장현우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분명 다시 기회가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