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마침내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독일로 출국했다.
독일 출국에 맞춰 국내에는 고양 유나이티드 관련 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고양Utd, 작년 스페인에 이어 이번에는 독일로 향한다!』
『고양 유나이티드 vs 레버쿠젠, 중계는 언제?』
『압도적인 2부리그 우승팀의 스파링 상대는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와, 기대된다!
-작년 스페인에 이어서 독일. 캬.
-진짜 대단하다. 고양. 내년에는 설마 영국으로 가려나?
-중계 시간 언제예요?
-중계 한국시간으로 오후 11시, STV에서 독점 중계한데요.
국내 팬들의 기대감은 상당히 높았다. 이미 작년에 한 번 스페인 전지 훈련을 경험했던 팬들은 이번에 독일 원정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런 기대감에 맞춰 작년과 달리 STV에서 거액을 지불하고 독점 생중계를 진행한다.
STV는 스포츠 전문 중계 채널로 이미 수많은 축구 팬을 거느리고 있는 방송사였다.
“왔다!”
“오! 저 사람 박형우야!”
“월드컵 때 그 박형우?”
“맞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하는 레버쿠젠.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기 바빴다.
독일 사람들에게는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낯설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박형우였다.
작년 월드컵에서 스타반열에 오른 박형우는 독일 사람들도 알아볼 정도로 인지도가 있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는 레버쿠젠에서 단장을 맡고 있는 크리스티안입니다.”
“지태훈입니다.”
공항에서 영접을 기다리던 크리스티안 단장이 지태훈 대표와 만나 악수를 나눴다.
두 사람의 악수 장면을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선수단은 지정된 호텔로 이동하고, 대표님께서는 저와 함께 회장님을 만나러 가시지요.”
“그러도록 하죠.”
선수단은 레버쿠젠에서 파견 나온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지정된 호텔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태훈 대표는 회장을 만나기 위해 크리스티안 단장의 안내를 받아 구단으로 향했다.
* * *
레버쿠젠 구단에 도착한 나는 크리스티안 단장의 안내를 받아 구단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여기가 입구입니다. 들어가시면 좌우에 선수들이 사용하는 드레싱룸이 있고…….”
레버쿠젠은 특별히 우리에게 전문 통역사를 붙여줄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나는 통역사를 통해 크리스티안 단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며 내부를 찬찬히 둘러봤다.
“확실히 역사가 깊은 명문 팀답게 시설 또한 그 명성에 버금갈 정도로 훌륭하네요.”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칭찬을 들은 크리스티안 단장이 기분 좋은 표정을 드러냈다.
“구경은 이 정도면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이쪽으로 가면 회장님을 만나뵐 수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단장은 마침내 나를 회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구단 내 공식 접견실에서 나는 레버쿠젠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살짝 주름진 얼굴이지만 상당히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노인이 나를 향해 미소를 드러내며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레버쿠젠의 회장을 맡은 스테판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디 펠러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직에 오른 스테판 회장.
오랜 시간 레버쿠젠에서 헌신해 온 인물이었다.
“저희는 아시아, 그것도 대한민국에 아주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이름을 날렸던 한국 출신 선수들 중에 레버쿠젠 소속도 많았으니까요.”
“하하하. 맞습니다. 저희도 그런 한국 선수들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지요.”
스테판 회장은 시종일관 우리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회장의 태도는 우리에게도 좋은 기분을 심어주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회장님. 어째서 저희를 연습경기 상대로 초대하신 겁니까? 솔직히 수많은 팀이 있음에도 굳이 저희를 초대한 이유가 궁금하더군요.”
직설적인 질문에 스테판 회장은 가볍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다가 대답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요. 그중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고양 유나이티드가 작년에 스페인에서 보여준 퍼포먼스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퍼포먼스?”
“네. 작년 스페인에서 치러진 고양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봤었거든요.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그저 아시아 2부리그 팀이라고 얕보기에는 퍼포먼스가 대단했습니다.”
“…….”
“그리고 그때 보여준 퍼포먼스로 최근 2부리그에서 우승해서 1부리그로 올라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관련 영상들을 저희 쪽에서도 흥미 있게 보기도 했고요.”
스테판 회장의 말을 들어보니 레버쿠젠이 이번 연습경기를 위해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에게는 고마운 일이군요.”
“하하. 저희도 아시아의 유능한 팀과 연습경기를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실 레버쿠젠보다 우리가 더 이득이다.
어쨌든 우리 팀이 쌓을 수 있는 경험치가 더 많았고, 레버쿠젠이라는 팀이 가진 명성을 통해 우리의 인지도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었으니까.
“레버쿠젠이 지금 분데스리가 4위인 것으로 압니다.”
“맞습니다. 전반기를 4위로 마쳤죠.”
“제가 보기에 레버쿠젠은 충분히 우승경쟁도 가능해 보입니다.”
“하하. 고양 유나이티드도 내년 1부리그에서 충분히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더군요.”
덕담도 오고 갈 정도로 우리의 사이는 훈훈했다.
“그런데 고양 유나이티드는 우리 말고 또 다른 팀하고 연습경기를 진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독일 출국 전에 급하게 잡힌 상대였다.
그 상대의 주인공은 바로 도르트문트.
현재 분데스리가 2위 팀이다.
그들이 갑작스럽게 우리를 연습경기 상대로 초대한 이유가 있었다.
‘장현우 때문이겠지.’
『장현우, 고양 유나이티드 완전 이적! 계약기간 3년.』
독일 출국 전에 우리는 장현우를 완전 영입에 성공했다.
전북 모터스에게 적절한 이적료를 주고 장현우를 데려왔다.
선수도 우리 팀으로 오는 것에 동의했고, 전북도 선수단 교통정리를 위해 빠르게 협상을 진행하면서 금방 이적이 성사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장현우를 노렸던 도르트문트가 붕 뜨게 되었다.
마침 우리가 독일에서 전지훈련 겸 연습경기를 진행한다고 하니, 도르트문트 측에서 바로 연락이 온 것이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강팀들과 연달아서 연습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대표님께서 능력이 아주 좋으시군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
“운도 실력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운을 본인에게 맞게 사용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능력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하하하.”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어쨌거나 모래 있을 연습 경기가 무척 기대되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좋은 경기 기대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회장의 첫 만남이 마무리되었다.
* * *
레버쿠젠과의 친선경기 날이 밝아왔다.
경기를 앞둔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단에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각자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그런 선수들을 모아놓은 곽찬구 감독이 말문을 열었다.
“작년 스페인에서 겪어봐서 알지? 원정 경기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많다. 우리가 하는 만큼 가져가는 거야. 알겠어?”
“넵!”
“그리고 상대가 유럽에서 잘 나가는 팀이라고 해서 쫄 필요 전혀 없다. 작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을 기억하지? 그때 어땠냐? 분명 그 녀석들은 대단했어. 하지만 우리도 잘했어. 쫄지 마. 알았지?”
“넵!”
“좋아. 그럼 이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를 경기장에서도 제대로 펼쳐 보자.”
일장 연설을 마친 곽찬구 감독이 라커룸을 잠시 빠져나왔다.
그는 주변을 살핀 다음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휴. 선수들한테는 긴장하지 말라고 했지만, 오지게 긴장되네.’
감독으로서 지켜야 하는 체면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떨고 싶어도 떨면 안 되는 것이 감독이다.
갑자기 레베쿠젠과 초청 경기가 잡힌 다음부터 지금까지, 곽찬구 감독의 머릿속은 오늘 이 경기를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유럽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유럽 무대를 누비는 한국 선수들은 많다.
하지만 한국인 감독은 아예 없었다.
유럽 무대에서 갖는 선입견. 그리고 실제로 세계 무대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는 아시아 감독들의 수준.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곽찬구 감독도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경기에 거는 기대감이 있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아시아 출신 감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을지 몰라. 그렇게 되면…….’
곽찬구 감독도 나름대로 성공적인 야망을 꿈꾸고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로 오기 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야망.
그것은 바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향해가는 감독이 되는 것.
그것이 지금 곽찬구 감독이 원하는 큰 그림이었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고양 유나이티드와 레버쿠젠의 중계를 맡은 캐스터 최형욱입니다. 박재형 해설위원과 함께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박재형 위원님. 고양 유나이티드가 작년 스페인에 이어 이번에는 독일 분데스리가로 향했습니다.』
『맞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젊은 지태훈 대표를 선임한 이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작년 스페인 원정이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이번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과 원정 초정 경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구단주가 바뀌고 나서 완벽하게 달라진 고양 유나이티드인데요. 그 결과 압도적인 실력으로 2부리그에서 우승도 했고요.』
『이미 파주FC에서 검증된 곽찬구 감독과 박형우와 장현우 같은 수준급 선수들을 영입했던 고양 유나이티드인데요. 이러한 바탕 속에서 향후 고양 유나이티드는 더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자, 그럼 오늘 경기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분데스리가 등 다양한 유럽 리그 경기를 생중계하는 방송사답게, 프리뷰 구성도 깔끔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상대하게 될 레버쿠젠은 현재 분데스리가 4위입니다. 전반기에 라이트와 데르마빈, 케빈을 주축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는데요. 특히 데르마빈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맞습니다. 데르마빈이 이번 시즌 레버쿠젠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인데요. 전반기에 무려 13골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라이베르트 선수와 2골 정도 차이가 납니다.』
『분데스리가 득점 순위 2위인 데르마빈에게는 라이트와 케빈이라는 든든한 미드필더들이 존재하는데요.』
『레버쿠젠 감독인 에릭 뵈른 감독이 쓰는 전술이 주로 4-2-3-1입니다. 라이트와 케빈은 공격 상황 시 중앙과 측면을 자유롭게 스위칭 플레이하면서 상대 후방을 노리는 패스를 뿌리거나 본인이 직접 개인 기술로 돌파해서 찬스를 만드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라이트는 현재 5골 5도움, 케빈은 3골 6도움을 올렸는데요. 사실상 이 두 선수가 레버쿠젠 공격의 핵심이라고 봐도 될 정도죠?』
『맞습니다.』
올해 26살인 데르마빈은 2시즌 전에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첫 시즌 때는 적응 기간이 필요했는지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다.
하지만 적응이 끝난 2번째 시즌부터는 달랐다.
리그에서만 18골 4도움을 올린 데르마빈은 3번째 시즌인 현재 전반기에만 13골 2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데르마빈의 활약 뒤에는 라이트와 케빈이라는 걸출한 미드필더가 있었다.
라이트는 공수 연결해 주는 짧고 긴 패스플레이가 가능하다. 슈팅 능력이 좋아서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케빈은 찬스메이커다.
이타적인 플레이로 동료가 기회를 만들 수 있게도 하지만 필요하면 본인이 직접 드리블로 돌파해서 마무리를 짓기도 한다.
특히 상대 라인을 무너뜨리는 후방패스는 분데스리가 톱이다.
『중요한 건 이 선수들이 오늘 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레버쿠젠이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들과 기존 주전 선수들로 선발 명단을 구성했는데, 이 세 선수가 모두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현지에서도 이번 두 팀의 경기에 관심이 높은데요. 과연 어떻게 될지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