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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92화 (92/272)

92화

K리그 팬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는 한 시즌을 끝내면서 나타난 후폭풍으로 요동쳤다.

-울산 준산될 뻔했다가 막판에 아시아 정복했네.

-울산이 겁나 신기한 팀임. 리그, FA컵에서는 그렇게 죽 쓰는데 아시아 정복은 벌써 몇 번째냐?

-ㅅㅂ, 눈물난다. 내년에도 2부라니.

└성남이 너무 말도 안 되게 잘했음.

이러한 후폭풍도 오래가지 않았다.

비시즌 기간마다 찾아오는 이적 루머가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포항의 FA컵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외국인 선수가 이적할 예정인 듯. 수도권 1팀과 최근 1부로 올라온 팀이 구체적인 제안 해 온 듯. 포항은 재계약을 원함.

-K리그에서 중국으로 나갔던 수비 출신 A선수가 군복무 때문에 K리그 복귀를 원함. 지방 2팀과 수도권 1팀이 영입을 노리는 중.

└라울 이적할 생각인가보네.

└막판에 터지기는 했는데, 이번 시즌 라울 존재감 너무 없었음. 포항은 그냥 적당한 가격 오면 팔고 새 선수 영입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재작년에 라울 터진 거 생각하면, 재계약도 나쁘지 않아보임.

└중국 간 수비수면 임재원 아닌가? 임재원이 벌써 군복무할 나이 됐음?

└임재원 이 새끼 올림픽 망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놈 아니냐?

└수도권이면 서울 드래곤즈려나? 이번 시즌 중앙 수비들 구멍난 거 생각하면 서울이 영입할 거 같은데.

이적 루머 시즌은 K리그 팬들에게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루머의 출처는 알 수가 없다.

구단 관계자, 에이전트, 선수의 지인 등이 익명으로 뿌렸다.

이러한 정보들이 겨울 이적 시장 루머로 확장되는 것이다.

서로가 갑론을박을 펼치며 실제로 얼마만큼 이적이 이루어질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 이게 뭐야?”

나도 그런 루머들을 모은 사이트를 보다가 한 이적 루머를 보게 되었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 팀과 관계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 고양 유나이티드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던 미드필더 A 선수가 완전 이적을 고심하고 있다고 함. 구단은 어떻게든 이 선수를 잡을 예정임.

“엥?”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드필더 A?

이게 누구지?

완전 이적이라면…….

“장현우인가?”

그래, 장현우도 슬슬 어떻게 할지 정해야 되는구나.

장현우는 시즌이 끝나고 현재 원소속팀인 전북 모터스로 복귀한 상태였다.

아직 완전 이적과 관련돼서 정식으로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현우도 데려가야지. 곽 감독이 어떻게든 데려갈 선수라고, 꼭 잡으라고 얘기했으니까.”

곽찬구 감독이 나에게 준 살생부 명단에 장현우는 반드시 잡아야 할 선수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보아하니 장현우도 우리 팀 생활에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던데.”

겉으로 보이기에는 그랬다.

실제로는 어떤지 선수 본인만 알겠지.

“아! 맞다. 오세진도 임대였지?”

후반기에 임대로 데려온 오세진도 있었다.

“오세진도 데려가자고 하던데…… 응?”

“도련님. 뭘 보고 계세요?”

잠시 외부 업무를 보고 돌아온 김 비서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아, 커뮤니티에 돌고 있는 루머들을 보고 있었지.”

“루머요?”

김 비서는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와서 모니터를 봤다.

그녀의 긴 머리에서 나는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순간 불끈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참았다.

“비시즌 기간에만 돈다는 이적 루머라고 하더라고.”

“재미있네요. 어? 여기에 우리 팀도 있네요?”

“응. 저기 문구에 나온 A선수는 아무래도 장현우 선수인 거 같아.”

“그러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이 돌고 도는 거죠? 루머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네요.”

“그러게. 정보 출처를 알 수가 없네.”

나도 궁금하긴 했다.

어디서 이런 정보들이 새어나가는지.

김 비서와 함께 루머들을 쭉 훑어보다가 어떤 게시글을 보게 됐다.

『고양 유나이티드 관련 이적루머 모음.』

“이게 뭐야? 심지어 베스트 글이네?”

눈에 들어오는 제목과 압도적인 조회수와 반응들.

게시글을 클릭해서 들어가기 전부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서로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우스로 게시글을 눌렀다.

딱.

-K리그2 우승에 성공한 수도권 A팀의 구단주가 다가올 1부 리그 성공을 위해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할 예정.

-전북 모터스에서 고양으로 임대해온 A선수의 완전 이적이 거의 성사 직전. 선수와 구단 모두 완전 이적에 대해 호의적.

-고양이 공격적인 영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번 시즌 1부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A선수부터 도움왕을 차지한 B선수, J리그와 유럽 중소리그에서 활약하는 C, B 선수까지 고양의 영입 레이더에 포착.

-경기 북부에 있는 수도권 A팀이 압도적인 자금력으로 선수단을 구성할 예정. 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방출도 있을 예정.

-포항의 라울이 고양으로 이적한다고 함. 이미 구단과 선수는 합의 완료한 상태.

-울산의 아시아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권태훈이 고양과 연결되고 있음.

“헐. 이게 다 뭐냐?”

엄청나게 많은 이적루머들.

“도련님, 정말 이렇게 진행하시려고요?”

“그럴 리가! 이건 나도 모르는 내용이라고!”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서 순간 내가 이런 일들을 계획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위에 투자 많이 할 거고 장현우 완전 이적하는 얘기 빼고 나머지는 나도 모르는 이야기야.”

“그럼 이런 이야기가 왜 도는 거죠?”

“나도 알고 싶다.”

게시글을 쭉 내리다가 밑에 달린 댓글들이 툭 튀어나왔다.

게시글에 적힌 루머도 놀랍지만, 댓글도 그에 못지않았다.

└대 고 양

└와,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 이렇게 된다고?

└고양 장난없네. 내년에 진짜 전북, 울산, 고양 3파전 되는 거 아냐?

└ㅅㅂ 진짜 미쳤다 ㅋㅋㅋㅋ

└2부 득점왕 박형우 + 2부 도움왕 김지우 + 1부 득점왕 강민규 + 1부 도움왕 페시치 + J리그 1위팀 주전 수비수 현재형 + 벨기에 앤트워프 측면 수비수 박건혁 + 축신 린가드 못지않은 라울 + 울산 국대 권태훈 ㄷ ㄷ 스쿼드 미쳤네

“이야, 내가 봐도 미쳤다. 미쳤어.”

구단 대표인 내가 봐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스쿼드다.

진짜 이 루머대로 진행되면 우리팀 스쿼드는 당장 내년에 우승 도전해봐도 될 정도다.

“아무래도 저희 팀에 대한 기대가 큰 거 같아요.”

“그렇네.”

단순히 기대만 큰 게 아닐 거다.

우리 팀이 워낙 이번 시즌에 주목을 크게 받다 보니 이걸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대표님, 저 천 부장입니다.”

“아, 천 부장님.”

“응? 두 분 뭘 그렇게 보고 계신 겁니까?”

“아아. 이적 루머요.”

보고를 위해 대표실로 들어온 천지원 부장이 이적 루머라는 말에 가볍게 웃어보였다.

“벌써 루머가 돌 시즌이 왔군요.”

“그러고 보니 천 부장님은 잘 알고 있겠네요.”

“네. 이런 일은 하도 겪어서요. 그런데 평소에 저희팀 이적 루머 관련해서는 방출 정도만 있거나 거의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천지원 부장이 슬쩍 내 모니터를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뭐야? 개 많네!”

“놀랍죠?”

“어후, 이게 전부 저희 팀 루머라니.”

평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천지원 부장도 이번만큼은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그건 그렇고 보고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아! 스폰서 관련해서 외부 업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디서요?”

그는 내게 서류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벽수그룹입니다.”

“엥?”

벽수 그룹이란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옆에 있던 김 비서도 마찬가지.

“서류 한번 보시지요.”

서류를 쭉 훑어보니 벽수 그룹이 우리와 정식으로 스폰서 계약을 맺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어떤 방식으로 스폰을 진행하고 싶은지 함께 적혀 있었다.

“기간은 3년에 유니폼 앞쪽 메인스폰서 자리를?”

“네. 대신 금액적으로 3년간 60억을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

60억!

1년에 20억씩 지원을 해준다는 말인가?

이 정도 금액이면 절대로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일전에 K리그 모 구단이 연간 20억 금액으로 스폰 투자를 받았는데, 그 금액이 역대급이라고 했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요구한 것이 있었습니다.”

“네. 벽수그룹에서 만든 유니폼을 사용해 주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벽수그룹이 유니폼? 그게 무슨 말이죠? 그쪽은 원래 그런 사업하는 곳이 아닌데?”

“자세한 건 벽수그룹과 직접 이야기해 봐야겠습니다.”

“흐음.”

그때 김 비서가 말을 걸었다.

“벽수그룹이면, 전에 그 손지영이란 분이 계신 그곳 맞죠?”

“어? 어. 맞아.”

나는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김 비서는 개의치 않은 듯 얘기했다.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 저희에게는 꽤 좋은 제안이니까요.”

“어, 응. 그럼 바로 연락해 볼게.”

어디 보자.

연락은 손지영에게 하면 되려나.

그런데 마침 손지영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엇?”

김 비서와 천지원 부장도 내 전화기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두 사람이 얼른 받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작게 침음을 흘리고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곧 손지영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지냈어?

“어, 음. 잘 지냈지. 너는?”

-나야 뭐. 그건 그렇고 우리 제안을 잘 받았어?

“어. 안 그래도 연락하려던 참이었어.”

손지영이 작게 웃었다.

-우리 이번에 스포츠용품 사업 시작하기로 했어.

“뭐?”

-후후. 우리 지태훈 씨가 하는 걸 보니, 나도 흥미가 생겨서 말이야.

“그 말은 설마…….”

-맞아. 그룹에서 진행하는 스포츠용품 사업은 내가 진행하게 됐어. 그리고 당신 쪽 스폰서 투자도 내가 진행하는 거고.

인테리어 하는 벽수 그룹이 스포츠 산업으로 뛰어든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사업적으로 흥미가 있으니까. 그리고…….

“……?”

-이렇게 하면 그쪽하고도 더 좋은 관계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어?

“…….”

이게 무슨 말이지?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도움 되는 일이라면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잘 됐어. 어차피 우리도 이번에 유니폼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거든.”

-오, 이렇게 타이밍이 좋을 때가. 역시 우리는 뭔가 좀 맞나봐?

“그건 지켜봐야겠지.”

-그래. 지켜보자고.

그렇게 손지영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 후, 우리 셋 사이에는 짧은 침묵이 돌았다.

그 침묵을 깨는 인물은 바로 김 비서였다.

“잘됐네요.”

“으음.”

“안 그래도 영신그룹에서 내년에 집행할 지원금을 절반으로 줄인 상황이었잖아요. 모그룹 메인스폰서도 빠진 상태고.”

“그렇지.”

김 비서의 말대로 불과 며칠 전에 영신그룹으로부터 일방적인 통보가 내려왔다.

내년 지원금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만약 우리가 사전에 대비하지 않았다면 1부 리그에 올라간 상황에서 시작부터 초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영신 그룹의 지원이 없어도 당분간 자생할 수 있는 여력을 갖췄다.

여기에 벽수 그룹의 스폰까지 더해지면, 우리는 더없이 완벽한 운영이 가능해진다.

그걸 본 천지원 부장이 말했다.

“현재 K리그 1, 2부 통틀어서 저희처럼 이렇게 자생 가능할 정도로 자금을 마련한 구단은 거의 없습니다.”

“방심할 수 없습니다. 총알을 많이 모아도 방심하면 총알만 버리는 셈이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총알이 넉넉하게 있어야 압박받지 않고 팀을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그건 맞죠.”

간결하게 대답하는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렇게 계속 가자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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