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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90화 (90/272)

90화

아버지가 쓰러지고 지태완이 회장 대리역을 수행하게 되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고양 유나이티드는 여전히 제 앞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지태완 사장, “회장님의 경영 복귀는 한동안 어려울 듯.”』

“흐음.”

대문짝만 하게 찍힌 기사를 잠깐 확인하던 내 곁으로 천지원 부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표님. 유럽 원정 경기 일정이 세부 계획까지 모두 잡혔습니다.”

“그래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직원들이 유럽 원정 계획을 마무리 지었다.

레버쿠젠 쪽에서 최대한 우리의 편의를 봐줬기 때문에 계획은 순조롭게 만들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혹시 제가 안 괜찮아 보이나요?”

“그건 아닙니다만, 혹시나 싶어 여쭤봤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버지가 쓰러지시긴 했지만 저는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입니다.”

천지원 부장을 포함해서 수많은 직원이 나를 향해 걱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 직원들로부터 따로 연락이 오기도 했었다.

‘출근했을 때도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들이었지.’

솔직히 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주저하거나 힘들어하면 큰형은 단번에 내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도저히 힘들어할 수 없었다.

“대표님. 곽찬구 감독님께서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래요?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한창 휴가를 보내고 있어야 할 곽찬구 감독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곽찬구 감독의 등장에 천지원 부장이 자리를 비켜줬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일 보세요.”

천지원 부장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몸을 돌려 나가려다가 들어오려던 곽찬구 감독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오, 천 부장님. 오늘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하하, 네. 그럼 일 보십시오.”

“네.”

천지원 부장과 짧게 대화를 주고받던 곽찬구 감독이 내 앞으로 왔다.

“대표님. 휴가를 잘 보내셨습니까? 아,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죠?”

“괜찮습니다. 오늘 여러 번 괜찮다고 말하네요.”

“하하. 어쩔 수 없지요. 그만큼 대표님을 신경 쓰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주세요.”

“그러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곽찬구 감독이 조금 머뭇거렸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온지 대번에 깨달았다.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대표팀 감독 제안받으셨죠?”

“헉. 그, 그걸 어떻게?”

“사실 저번에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정보를 줬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 그랬군요.”

당황하던 곽찬구 감독이 모자를 살짝 벗고 흐르던 땀을 닦았다.

내가 먼저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 담담하게 한 마디 툭 던졌다.

“혹시 팀을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곽찬구 감독과 계약기간은 꽤 남아 있는 상태다. 그가 혹여 대표팀 감독으로 떠나고 싶다면 구단과 상의해야 한다.

상호합의가 없으면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니 곽찬구 감독 입장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오히려 곽찬구 감독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이쿠! 떠난다니요! 저는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대표님.”

“그래요?”

혹시나 떠난다고 말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그 말에 환환 표정을 드러냈다.

“제가 왜 떠납니까. 저는 지금 고양 유나이티드라는 팀에 상당히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그건 다행이네요.”

“네. 대표님께서 저를 먼저 경질하지 않은 이상 제가 먼저 떠날 일은 없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충성(?) 발언에 나는 속으로 좀 놀랐다.

솔직히 얘기해서 아무리 내가 잘해줘도 받는 쪽에서 생각은 다를 수가 있다.

그래도 곽찬구 감독은 우리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솔직히 대표팀 감독 제안에 혹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요?”

“네. 아시겠지만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입니다. 실력이 출중해도 잘해야 본전치기죠. 국가를 대표하는 팀을 이끄는 자부심을 느낄지는 몰라도, 제약도 많습니다.”

“그렇군요.”

“무엇보다 현재의 제가 대표팀 감독을 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몰라도요.”

곽찬구 감독은 분명 재능 있는 감독이 맞다.

그것을 증명하듯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거기에 맞는 계획을 수립해서 운용했다.

앞으로 성장 가능 폭이 높은 감독이니, 훗날 더 많은 것을 기대해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기대치는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 끌어올리면 된다.

“그럼 오늘 이 이야기를 하려고 오신 건가요?”

“그것도 있고, 사실 차기 시즌과 관련해서 대표님과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긴…….”

시즌이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차기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1위로 승격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기대가 크다.

그런 기대에 어울리는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이걸 좀 봐주시겠습니까?”

곽찬구 감독은 미리 준비한 서류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서류에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차기 시즌에 데려갈 선수와 방출 대상 선수들 목록을 작성해봤습니다.”

“흐음.”

서류를 쭉 읽어보던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이름들이 방출 목록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정말 이 선수들을 방출할 생각입니까?”

“저도 속으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허나 1부 리그는 2부 리그와 차이가 존재합니다.”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1부와 2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선수나 감독이 아니다 보니 그 차이를 명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1부는 2부에 비해서 기술적인 플레이가 많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2부 리그는 기술보다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고요.”

“그렇군요.”

“저희가 2부 리그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피지컬도 갖췄지만 1부 리그에서 먹힐 만한 기술적인 플레이를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1부는 다릅니다. 기술적인 플레이 외에 상당히 빠른 템포로 경기를 진행하죠.”

“확실히 지난번 FA컵에서 마주쳤던 파주나 전북의 경기력을 보면 차이가 크긴 하더라고요.”

“네. 저희가 기술적인 요소는 충분해도 빠른 템포로 경기력을 운영할 수 있는 부분은 부족합니다. 이에 대한 보충이 필요합니다.”

“흐음.”

향후 선수단 구성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들을 곽찬구 감독이 명확하게 제시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웠다.

“대표님. 혹시 저희 팀이 내년에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기를 희망하십니까?”

뜬금없는 물음을 하는 곽찬구 감독.

하지만 중요한 물음이기도 했다.

“글쎄요. 마음 같아서 내년에 곧장 1부에서도 1위를 기록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무리겠죠?”

“그럴 겁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2부 리그 팀들이 승격하면 다음 시즌은 ‘1부 리그 잔류’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잔류라. 그러기에는 너무 목표가 낮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2부 리그 팀이 단번에 1부 리그 분위기에 완벽히 적응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높게 잡던 목표가 점점 하향 곡선을 타기도 하고요.”

“흐음.”

나는 조금 생각했다가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우선 잔류 이상의 목표를 권해 드립니다.”

“……?”

“기본적으로 잔류 이상의 목표를 잡되, 현실적으로는 잔류를 노리시고, 차기 시즌 상위 스플릿을 목표로 잡을 것을 추천 드립니다.”

곽찬구 감독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좀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그런 감독의 태도가 나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좋습니다. 물론 저도 직원들과 이야기를 해 봐야겠지만, 감독님의 의견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근데 이렇게까지 얘기하시니, 개인적으로 감독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군요. 도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계시는 겁니까?”

마치 이런 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곽찬구 감독이 씩 웃더니 손가락 3개를 펼쳤다.

“3년 이내에 트로피 하나 들어 올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3년?”

“네. 다음 시즌은 적응 기간으로 잡고, 그다음 시즌에 상위 스플릿과 더불어 FA컵 우승 트로피를 노려볼 생각입니다.”

“…….”

“그리고 3년째에 아시아챔피언스리그와 리그를 병행하면서 구단 내 역대 최고 성적을 만들 계획이고요.”

대단하다.

곽찬구 감독 머릿속에 꽤 거창한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원하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과감한 개편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럼 제가 무엇을 해드리면 되죠?”

“단단하게 선수층을 구축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 되어야 하고, 이후 이 선수들을 운영할 수 있는 세부 인프라 또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책상을 톡톡 두드리다가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한 번 해봅시다!”

그렇게 차기 시즌 준비는 시작되었다.

* * *

『김용수 감독,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계약기간은 4년.』

마침내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이 선임되었다.

북중미 월드컵 이후 한동안 감독 대행 체제로 평가전을 치렀던 대한민국 대표팀이었다.

김용수 감독은 최근 전북에서 감독 생활을 했었다.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막판 대역전을 이끌며 전북의 리그 우승을 이루게 한 감독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수많은 후보와 교감을 나누다가 김용수 감독에게 적극 러브콜을 보냈고, 고민 끝에 대표팀 감독을 수락했다고 한다.

마침 전북과 계약기간도 1년 정도 남은 상태였고, 재계약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전북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약간의 위약금을 받고 김용수 감독을 보내 주었다.

『김용수 감독, 부임 후 1월 아시안컵 무대에서 시험대 오른다!』

당장 1월에 진행할 아시안컵까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수십 년간 아시안컵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한 상태였다.

매번 기대를 안고 대회에 참여했지만 씁쓸한 결과표를 받아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탄생한 김용수 호가 과연 어떤 결과를 이루게 될지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아시안 컵에 나설 김용수 호의 명단이 발표됐다.

『고양 유나이티드 듀오 박형우&장현우, 나란히 대표팀 발탁!』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두 선수가 자연스럽게 아시안컵에 참여할 대표팀 명단에 뽑혔다.

그런데 이 명단이 발표된 다음 날,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오피셜] 박형우, 아시안컵 끝나면 대표팀에서 은퇴한다!』

그것은 바로 박형우의 대표팀 은퇴 소식이었다.

* * *

“정말 괜찮겠습니까?”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밝힌 박형우와 나는 일대일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아쉬움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쉽기는 하네요. 박형우 선수가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이제 얼마 못 본다고 생각하니.”

“하하.”

“1월에 있을 아시안컵에서 최선을 다해 주세요.”

“그럴 생각입니다. 모든 걸 보여 주고 당당하게 은퇴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랄게요.”

우리를 서로를 향해 미소를 드러냈다.

“대표팀에서 은퇴하면 지도자 교육 과정을 밟고 싶습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지만 이해는 됐다.

황혼기에 접어든 축구 선수가 선수에서 완전히 은퇴하기 전에 미리 지도자 교육을 받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까.

대표적으로 우리 팀에 김지우도 비시즌 기간을 활용해서 지도자 교육을 받는 중이다.

“그건 걱정 마세요. 처음 계약한 대로 저희 쪽에서 최대한 지원을 해드릴 테니까요.”

“고맙습니다.”

어차피 계약할 때 박형우의 코치 과정을 지원해 주겠다는 내용이 함께 있었다.

이것은 칼리드 왕자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박형우의 에이전트이면서 열혈 팬이기도 하는 칼리드 왕자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대신 우리 쪽에서 해주기로 한 결과물이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칼리드 왕자님하고는 요즘 어떠십니까?”

“음?”

“칼리드 왕자가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대표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요?”

“네. 그 위풍당당하던 칼리드 왕자가 눈치를 살피면서 저에게 물어보던데, 혹시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하하하!”

그 말에 나는 그저 호탕하게 웃기만 했다.

“별일 없었습니다. 아무렴. 별일 없었죠.”

“……?”

크게 웃는 나와 달리 박형우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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