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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89화 (89/272)

89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고양시에 있는 영신 병원.

영신 그룹 자본으로 설립한 대학병원이다.

도착하자마자 VIP 병실로 향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진정하세요, 도련님.”

병실 앞에서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는 박준후 팀장과 마주쳤다.

그는 특유의 침착한 얼굴을 유지하며 얘기했다.

“회장님께서는 현재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소란스러우면 회장님께 해가 됩니다. 우선 진정부터 하시지요.”

“갑자기 쓰러지신 이유가 뭡니까?”

“평소처럼 회장실에서 업무를 보신 다음 화장실로 가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

“다행히 근처에 있던 저희 비서팀과 직원들이 빠르게 발견해서 초동 조치를 완료하고 바로 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버지는 괜찮으신 겁니까?”

“의사 말로는 심혈관 쪽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당분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맥이 탁 풀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지만 겨우 버텼다.

그때, 옆에 있던 김 비서가 슬며시 내 팔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정신적으로 조금 진정이 되었다.

“아버지 얼굴을 봐야겠어.”

“도련님.”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박준후 팀장이 막아섰다.

그러한 행동에 내가 험악한 표정을 드러내며 박준후 팀장을 쳐다보았다.

그런 나를 향해 박준후 팀장이 말했다.

“도련님께서 첫째 도련님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십니까?”

갑작스러운 물음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것도 잠시, 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못 이길 게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할 말이 없으면 비키시죠.”

“저는 회장님을 오랫동안 곁에서 보좌해온 사람입니다. 솔직히 피붙이인 도련님보다 더 많이 안다고 자부하고 있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회장님은 그 누구보다 그룹의 미래를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그 안에는 태훈 도련님도 있고요.”

“…….”

“회장님에게 누가 되는 행위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박준후 팀장의 어깨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박준후 팀장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런 그를 사납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날 믿든 안 믿든 그건 내 알 바 아냐. 지금 중요한 건 쓰러진 내 아버지의 얼굴을 보겠다는데 자꾸 방해하는 그쪽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다고.”

“…….”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이만 꺼져.”

팍!

나는 박준후 팀장을 거의 밀치다시피 했다. 휘청거리는 그를 지나쳐 병실 안으로 향했다.

뒤따라오던 김 비서가 박준후 팀장을 향해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바로 나와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복잡한 감정들이 솟구쳤다.

“내가 실수했어.”

회귀하고 돌아와서 큰형에 대한 복수만 생각하고 움직였다.

아버지가 쓰러진다는 것도 알고 있던 주제에 미처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순전히 이건 내 잘못이다.

“도련님 잘못이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김 비서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저 입술을 깨물고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밖에 하지를 못했다.

“돌아가자.”

“네.”

병실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계속 있다가는 내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아버지만 홀로 남겨둔 채 병실 밖을 나왔다.

“태훈아.”

“……!”

병실 밖으로 나오자 지태완과 그의 비서가 서 있었다.

노려보는 나를 향해 지태완이 비웃듯 얘기했다.

“이제 아버지도 없이 네가 뭔가를 하기 힘들게 됐구나.”

“형이 신경 쓸 부분은 아닌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

“지금 네가 누리는 호사가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어.”

“그래?”

형의 도발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나도 똑같이 얘기해 줄게.”

“……?”

“형도 지금 누리고 있는 그 자리. 거기서 나오는 부귀영화. 그게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뭐?”

“나중에 보자고.”

일그러진 형의 얼굴을 뒤로 하고 떠나려는데, 갑자기 형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곧 내게 경고하듯 이야기했다.

“조만간 사장단을 포함한 이사회가 소집될 거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지태완이 몸을 돌려 내 뒤통수를 향해 말했다.

“형은 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마치 큰 자비를 베푸는 듯 말하고 있는 태도를 보였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보다 못한 김 비서가 지태완을 향해 한마디 했다.

“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저희 대표님에게……!”

“김 비서. 괜찮아.”

“하지만……!”

나는 손으로 잔뜩 화가 나 있는 김 비서를 제지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형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나도 경고 하나 할게. 형.”

“…….”

“나는 형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

“……!”

“나는 형이 원하는 걸 절대 손에 넣지 못하게 만들 거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김 비서에게 말했다.

“가자.”

그렇게 우리는 자리를 떠났다.

우리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날카로운 시선이 뒤통수에서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 * *

“괜찮을까요?”

병원에서 나와서 돌아가는 길에 김 비서가 걱정하며 말을 꺼냈다.

“뭐가?”

“지태완 사장이요. 저쪽이 작정하고 나서면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김 비서도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와 큰형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총수가 되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경쟁 상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마 이 정도로 적대적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괜찮아. 이미 우리는 보이지 않은 사이에 많은 위협을 받았었어.”

“네?”

나는 이제야 그간 우리가 어떤 위협을 받아왔는지 얘기했다.

“우리가 시즌 내내에 받아왔던 온갖 루머들. 그리고 갑자기 취소된 후원들. 이게 다 누가 했을 것 같아?”

“설마…… 말도 안 되요.”

“그치? 근데 다 사실이야.”

“세상에!”

운전하던 김 비서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으니 당분간 회사 업무는 혼란스러울 거야.”

“회장님께서 회복하고 돌아오시면 아무 문제 없지 않을까요?”

“글쎄…….”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어쩌면 아버지가 깨어나셔도 이대로 회사에서 손을 떼야 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아버지는 복귀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

“네!?”

“아버지가 복귀하지 못한다는 최악의 상황을 두고 행동해야 해.”

“무슨 그런…….”

상황은 심각했다.

예상했던 미래가 닥쳐왔지만, 그게 생각보다 너무 불쑥 튀어나왔다.

원래 아버지가 쓰러질 시기는 지금보다 한참 뒤였다.

“이대로 가면 지태완 사장이 총수가 될 확률이 커요. 그렇게 되면…….”

“내가 총수가 되기는 어렵게 되겠지.”

“…….”

나도 안다.

과거, 아니 존재했었던 미래에 그랬으니까.

지태완이 영신그룹 총수가 된 이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형제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은 모두 제거했다.

이후 완벽하게 그룹을 장악한 그는 그간 숨겨왔던 야망을 드러냈다.

“예전이라면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이제는 아니야.”

“네?”

예전과 달리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두고 봐. 누가 과연 웃게 될지.”

* * *

얼마 후, 나는 칼리드 왕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우리를 각자 양옆에 통역이 가능한 김 비서와 아흐메드를 두고 화상 대화를 나눴다.

-나의 형제, 지태훈. 소식은 들었네. 회장님께서 쓰러지셨다고?

“그렇게 됐네요.”

-상태는 어떠신가?

“치료 중이기는 한데, 회복하는데 시일이 제법 걸릴 듯합니다.”

-그렇구만.

화면 속에 칼리드 왕자의 안타까운 표정이 그대로 보였다.

-듣자 하니 자네 큰형이 이사회를 열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되었나?

“형이 작정하고 나왔더군요.”

이사회 대부분이 지태완 사장의 회장 대리 역할을 적극 지지했다.

현재 지종윤 회장이 사망하거나 공식적으로 회장직에 물러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사실상 이사회의 결정은 큰형이 만들어놓은 판이었다.

이런 상황도 마치 예견하고 있듯 미리 준비했던 시나리오를 꺼내서 진행한 것이다.

-위험하지 않은가?

“제가요? 아니면 형이요?”

칼리드 왕자는 침묵했다.

물론 이 질문이 나를 향한 질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위험하겠죠.”

-방도는 있는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지태완이 회장 대리를 맡게 된 순간, 아마 나부터 공격할 확률이 컸다.

지금까지 얍삽하게 물밑에서 작업을 쳤다면 앞으로 대놓고 큼지막하게 일을 저지를 확률이 컸다.

“대비책은 있습니다만, 그전에 왕자님으로부터 한가지 듣고 싶은 대답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왕자님은 진심으로 제 편이 맞습니까?”

-…….

조금 전까지 호의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칼리드 왕자의 기세가 바뀌었다.

경계심을 드러낸 그가 말했다.

-무슨 이유로 그걸 묻는 건가? 설마 형제는 나를 의심하나? 자네를 형제라고 부르는 나를?

“왕자님께서 저에 대한 정보 일부를 큰형에게 뿌린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진즉에 왕자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그쪽의 진심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기 때문이죠. 제가 직접.”

-…….

칼리드 왕자가 나에게 보여준 호의에는 분명 진정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뒤통수를 친 이유가 궁금했다.

칼리드 왕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평소 여유와 자신감이 넘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침묵 끝에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자네와 자네 형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네.

쿵.

나와 지태완을 두고 저울질을 했다고?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목에 핏대를 내세우며 욕설을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간의 과정에서 배운 인내심으로 참았다.

-자네를 뒤통수칠 계획은 없었네. 이 모든 건 자네를 위해서였네.

“저를 위해서였다니. 그게 무슨 궤변입니까?”

-말 그대로일세. 자네가 단기간 내에 내가 원할 정도로 그릇을 키우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네.

칼리드 왕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지태완 측에 일부러 특정 정보를 뿌려서 자극을 주려고 했단다.

그로 인해 내가 지태완과 더욱 치열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그릇을 키울 수 있게 판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 칼리드 왕자의 설명이다.

“하, 씁. 이런 씨, 하아.”

절로 욕이 나오려는 것을 계속해서 참았다.

옆에 있던 김 비서의 표정도 어두웠다.

어쨌든 칼리드 왕자 때문에 지태완이 내 계획 일부를 알게 되면서, 서로가 더 경계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절대로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

“칼리드 왕자.”

-말씀하시게. 형제여.

“아무래도 이번 일에 관한 보상을 받아야 되겠는데요.”

-……무엇이 필요한가?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내 입장을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런 칼리드 왕자의 태도에 나는 좀 더 과감하게 요구했다.

“당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제게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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