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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86화 (86/272)

86화

일산동구 라페스타에 있는 어느 고깃집.

그곳에 고양 유나이티드 관계자들 모두 모여 회식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때 종수가 PK 내줄 때 진짜 가슴이 철렁했다니까!”

“형, 그 얘기 하지 마세요. 저 지금도 심장 떨려요.”

“자식! 그래도 형 아니었으면, 너 오늘 대역죄인 될 뻔한 거 알지?”

“알죠.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고마우면 우리 콜라 한잔 먹자!”

“네!”

박지원과 백종수를 포함한 선수단 전원 모여 있었다.

선수단 외에도 프런트도 다 함께하고 있었다.

“진호야. 고기 좀 팍팍 구워 봐라. 아직도 고기를 이렇게 구워서 쓰겠나.”

“아, 부장님.”

“됐다, 인마. 그 집게나 줘 봐라.”

“아앗!”

신진호가 들고 있던 집게를 잽싸게 뺏은 천지원 부장이 고기를 구웠다.

이에 신진호는 바로 울상이 되었다.

“분위기 좋구만.”

한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내 곁으로 정소영 부장이 쓱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대표님. 건배사 안 하십니까?”

“건배사요?”

“네! 이런 날에 대표님께서 건배사 한번 하셔야죠!”

조용히 고기나 먹을 생각이었던 나는 졸지에 건배사를 하게 생겼다.

“자자! 모두 잔 채웁시다! 대표님 건배사 들어야죠!”

정소영 부장을 비롯한 부장단들이 나서서 모두의 잔을 채울 수 있게 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잔으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음료로 잔을 채웠다.

그렇게 모두의 잔이 채워진 후,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나로 향했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한 손에 술잔을 쥐고 주변을 스윽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감회가 새롭네요.”

이 한 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도 이 첫마디가 주는 의미가 뭔지 알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때는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

“우리는 엉망진창이 된 늪지대 같은 곳에 있었죠. 과연 이런 구단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

“하지만 저는 해냈습니다. 아니, 우리가 해냈습니다.”

“…….”

“어렵고 고된 시간 속에서 결국 우리는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네요.”

사람들이 미소 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향해 나는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아직 우리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고난과 시련이 올지 모릅니다. 그 고난이 여러분에게 미치는 영향은 모두 다 다르게 적용될 거고요.”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에 듣던 사람들도 웃음기를 거두고 집중해서 들었다.

“제가 여기 있는 동안, 저는 여러분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겁니다. 그러니 저라는 울타리 속에서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가감 없이 해보세요.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과연 어떤 구단의 대표이사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책임을 진다는 것.

그것은 결코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다.

사실 나도 무언가 책임을 진다는 행위에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회귀 이후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과정을 밟았다.

그러면서 내가 완전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임질 수 없다면 원하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

‘큰형을 밀어내고 총수가 되는 그날까지. 책임을 지고 움직이겠어!’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갖고, 나는 웃으며 얘기했다.

“제가 너무 진지한 얘기를 했죠? 자,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다 같이 즐겨봅시다! 자, 그럼 건배할까요?”

신호에 맞춰서 내가 잔을 머리 위로 올리며 외쳤다.

“고양 유나이티드!”

“위하여!”

후창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배.

우리의 입가에는 한껏 미소가 드리워졌다.

* * *

시간이 흐르고 슬슬 회식 분위기가 마무리되는 무렵, 사람들이 하나둘 고깃집에서 빠져나왔다.

“대표님! 2차 가시죠! 어떠십니까?”

“2차? 그거 좋은데요? 음! 같이 2차 가실분 계십니까!”

“저요!”

“저도 갈래요!”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2차에 합류할 사람과 집에 갈 사람으로 나누어졌다.

“자, 그럼 집에 들어가실 분은 들어가시고, 2차 가실 분은 저와 함께 가시도록 하죠!”

“네!”

“아, 맞다! 내일부터 휴가인 거 아시죠? 우리 구단 전체 휴가입니다!”

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나면서 고양 유나이티드의 공식적인 시즌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일부 팀은 승강 플레이오프와 FA컵 일정 등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정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고한 프런트와 선수단을 위해 휴가를 부여했다.

선수단이야 시즌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휴가를 보내러 떠나지만, 직원들은 달랐다.

직원들은 휴가를 받고 상당히 기뻐했다.

“휴가는 일전에 말씀드렸듯 일주일이고, 휴가 끝나고 복귀하시면 됩니다!”

단순히 휴가만 주는 게 아니다.

이번 휴가는 특별 휴가이기 때문에 선물도 함께 따라온다.

“여기에 구단 대표의 보너스! 우리 직원분들 계좌로 내일 인당 200만원씩 특별 보너스 지급됩니다! 휴가비다 생각하시고 받으시면 됩니다!”

“우와! 대표님 최고!”

“대박!”

회계팀인 정소영 부장과 사전에 얘기해서 깜짝 선물로 직원들에게 주는 보너스였다.

선수단에 들어가는 보너스는 별개로 지급된다.

여기저기서 직원들의 충성도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2차를 즐기기 위해 이동하던 중 뜻밖의 인물들과 마주쳤다.

“어라? 저거 우리 팀 서포터스들 아니야?”

“어? 맞네!”

커다란 노란색 깃발을 들고 있거나 북을 들고 있는 우리 팀 서포터스들이 보였다.

그들은 라페스타 입구 쪽에서 모여 있었다.

노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지나가기도 했다.

“저 사람들도 이 근처에서 회식했나 본데요?”

천지원 부장이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아직 우리를 못 본 모양이었다.

그때, 무리 속에 있는 익숙한 인물이 앞으로 나오며 외쳤다.

“자, 오늘 우리 고양 유나이티드가 우승했습니다! 승격한 것도 기쁜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까지 했습니다!”

노란 확성기를 손에 쥐고 외치는 박태준의 말에 서포터스들이 열혈이 반응했다.

그러자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도 호기심을 갖고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우리도 가던 길을 멈추고 조용히 그 상황을 지켜봤다.

“30년 만에 첫 우승인데! 이렇게 기쁜 날 그냥 헤어질 수 없죠?”

“네에에에에!”

서포터스의 반응에 박태준이 씩 웃으며 외쳤다.

“자, 그럼 계속 즐겨볼까요! 길거리에 계신 분들! 오늘 저희가 조금 실례 좀 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북을 쥐고 있던 사람이 북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들은 한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며 방방 뛰기 시작했다.

우리의 고양~

승리의 고양~

신나게 북을 치며 깃발을 흔들며 즐겁게 응원가를 부르는 서포터스들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정말 즐거워 보여요.”

내 옆에 있던 김 비서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단 관계자들도 그 광경을 보며 즐거움을 드러냈다.

나도 속에서 무언가 들끓어 올랐다.

“아, 못 참겠다!”

“어? 대표님?”

지켜보던 나는 참지 못하고 후다닥 서포터스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막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서포터스들은 내가 갑작스럽게 등장하자 화들짝 놀랐다.

“어? 대표님?”

“같이 즐기시죠!”

그러자 눈치 빠른 박태준이 씨익 웃더니 바로 나와 어깨동무를 하며 외쳤다.

“즐겨!”

“오오오!”

그렇게 구단 대표이사와 서포터스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며 응원가를 불렀다.

응원가를 부르던 나는 여전히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직원들에게 손짓했다.

“지켜만 보지 말고 같이 와요! 어서!”

내 말에 직원들이 망설였다.

그런 직원들 사이에 있던 신진호가 제일 먼저 후다닥 내 곁으로 뛰어오며 외쳤다.

“역시 대표님! 즐길 줄 아신다니까!”

그렇게 신진호가 합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직원들도 서포터스 사이에 합류했다.

“얼른 오세요!”

“반갑습니다!”

서포터스들도 직원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즐겁게 응원가를 불렀다.

고양! 너희는 우리의 자랑~

뜨거운 가슴으로~

앞으로 오직 앞으로~

그런 우리의 모습은 누군가가 멀리서 찍은 동영상 촬영에 그대로 찍혀 다음 날 세상 밖으로 공개되었다.

* * *

“아오, 머리야.”

다음 날, 나는 숙취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눈을 떴다.

“지금 몇 시…… 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찾으려던 나는 순간 섬짓한 기분을 느끼고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 웬 여인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나체로.

“어?”

뭐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잠깐 사고 회로가 정지되었다.

이 여자는 누구지?

그것보다 왜 여자가 알몸으로 누워 있는 거야?

어제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여자가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헉!”

굉장히 아는 얼굴이다.

“기, 김 비서가 왜?”

“으음.”

때마침 자고 있던 김 비서가 눈을 떴다.

“…….”

“…….”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

곧 김 비서가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며 황급히 이불을 둘둘 말았다.

“꺅!”

“헉! 기, 김 비서! 으악!”

나는 거의 침대 밖으로 내쳐지듯 굴러떨어졌다.

뒤통수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고통을 억누르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여전히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는 김 비서를 향해 말했다.

“김 비서, 혹시 내가…….”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설마 그런 실수…… 어?”

“그런 거 아니라고요!”

술 먹고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싶어 바로 석고대죄하려는데, 김 비서가 아니라고 외쳤다.

“그럼 도대체……?”

“도련님, 기억 안 나세요?”

“기억?”

“……하아.”

김 비서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그걸 듣던 나는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어제 술에 만취된 나를 김 비서가 집까지 데려와 줬는데, 돌아가려던 김 비서에게 내가 토를 했다?”

“네. 여벌 옷도 없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인데, 도련님은 그대로 기절하시고, 침구도 도련님이 쓰는 것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잤던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

아.

더 수치스럽다.

진짜 미쳤나 보다.

어떻게 김 비서에게 그런 짓을…….

“미안해.”

“괜찮아요. 그것보다 옷을 좀 주실래요?”

“옷? 아, 알았어! 잠시만!”

나는 후다닥 김 비서에게 건조대에 걸린 옷을 건넸다.

더러워진 옷을 밤에 김 비서가 세탁해 놓았던 것이다.

“킁킁. 음.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네요. 으~”

“어쩌지?”

눈살을 찌푸리는 김 비서의 반응에 나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유심히 보던 김 비서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풉!”

“…….”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

“그건 그렇고 옷을 새로 구해야 할 거 같아요. 혹시 제가 입을 만한 옷을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아, 알았어! 바로 구해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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