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누가 찰래?”
박한빈의 퇴장으로 경기장이 소란스러울 때, 박형우, 장현우, 김지우, 오세진 4명의 선수가 공 앞에 모여 있었다.
“제가 차도 될까요?”
“현우, 네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할 수 있어요.”
“그래?”
키커를 정하기 위해 모여 있던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키커로 나서겠다는 장현우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아. 그럼 네가 해봐.”
나머지 세 사람도 프리킥 키커로 재능이 있지만, 전반전에 있던 실수를 만회하고 싶은 장현우의 마음을 알고 한발 물러난 것이다.
“잘해 봐.”
오세진의 짧은 격려에 장현우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렇게 세 사람이 물러나고, 공 앞에는 장현우만이 남았다.
‘멀지 않아. 왠지 가깝게 느껴져.’
왠지 골문이 커 보인다.
키커에게 골문이 커 보인다는 것은 그만큼 득점할 수 있는 감각이 올라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후후.”
장현우는 작게 웃었다.
그렇게 그가 프리킥을 준비하는 사이, 제주FC도 소란을 멈추고 다급히 벽을 쌓았다.
“꼼꼼하게 막아!”
“주현아! 조금만 오른쪽으로!”
박한빈의 퇴장 이후 인원이 부족해진 제주FC.
위기의 상황에서 이번 프리킥을 막아내야만 했다.
절대 뚫리지 않을 벽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제주FC 선수들의 모습을 본 장현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어떤 벽이든 다 부숴 주마!’
장현우의 의욕이 솟아올랐다.
때마침 고양 유나이티드 홈팬들의 응원 소리가 들려왔다.
두둥!
골-!
두둥!
골-!
득점을 바라는 홈팬들의 염원이 한가득 느껴졌다.
그사이 벽을 쌓은 제주FC.
모든 준비를 끝냈다고 여긴 주심이 짧게 휘슬을 불며 차라고 신호를 주었다.
‘부숴 버린다!’
장현우는 몇 걸음 물러섰다가 단숨에 뛰어가 공을 강하게 찼다.
팡!
그의 발끝을 벗어난 공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며 벽으로 향했다.
한편 벽으로 서 있던 온주현은 이를 악물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막아내겠……어?’
정확하게 자신의 얼굴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본 온주현이 당황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공을 본 온주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마, 맞으면 죽는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 온주현의 머리 위로 공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순간 온주현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
‘C8! 큰일났다!’
그가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종결된 후였다.
출렁-.
우와아아아아!
강하게 출렁이든 제주FC의 골망.
그리고 어이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동료 골키퍼의 얼굴.
“아…….”
온주현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 * *
장현우의 환상적인 프리킥 골이 터진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이야아아아!”
“꺄아아아!”
옆에 있던 김 비서와 천지원 부장도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기쁨을 드러냈다.
“해냈어! 해냈다고!”
너무 기쁜 나머지 옆에 있던 김 비서를 강하게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득점을 기록한 장현우는 벤치로 뛰어갔다.
벤치에서 대기하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 모두 우르르 뛰어나와 장현우를 끌어안고 소리 지르며 기뻐했다.
이 1골로 경기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래! 계속 이렇게만 가자고!”
정말 줄기차게 안 터졌던 득점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득점이 터지자 나는 사막을 횡단하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갈증을 해소했다.
“이제 얼마나 남았지?”
나는 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17분 정도 남은 건가.”
후반 28분에 극적으로 터진 득점.
과연 이 득점이 앞으로 남은 시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렇게 득점 이후 경기는 더욱 치열해졌다.
수적 열세에 놓인 제주FC는 의외로 공격적인 교체를 진행했다.
제주FC 입장에서 무승부라도 하면 우승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준우승으로 밀려날 수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도 이런 제주FC에 맞서며 격렬한 승부를 펼쳤다.
시간은 흘러갔고 점점 양 팀 선수들은 정신력으로 버텨내며 이를 악물고 뛰었다.
“악!”
오늘 사방팔방 열심히 뛰어다녔던 박요한이 갑자기 쓰러졌다.
드러누운 박요한은 오른쪽 정강이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온주현이 후다닥 뛰어가 고통스러워하는 박요한의 다리를 붙잡고 풀어주었다.
비록 서로 적이기는 해도 다리에 쥐가 난 상황에서 보여준 페어플레이 정신이었다.
수적 열세에 팀은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온주현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칭찬받을 만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제주FC 팬들 입장에선 분통이 터졌다.
“야 이 새끼야! 어디서 침대 축구야!”
“일어나 새끼야! 시간 없어!”
정말로 고통스러워서 드러누웠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지고 있는 팬들 입장에서는 1분 1초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요한은 교체되어 벤치로 물러났다. 교체아웃된 박요한을 대신해 석종호가 들어갔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석종호를 투입함으로서 수비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벤치로 물러난 박요한은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한편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은 후반 40분이 넘어가자 상의를 벗고 응원하는 팬들이 등장했다.
꽃가루가 뿌려지고 깃발이 흔들리는 가운데, 서포터스 회장인 박태준과 송영훈은 입고 있던 유니폼 상의를 탈의하고 어깨동무하며 신나게 응원가를 불렀다.
다른 서포터스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축제를 만끽했다.
챔피언! 챔피언! 챔피언!
서포터스들은 팀의 우승을 바라며 챔피언을 외쳤다.
그리고 후반 45분이 되었다.
『추가 시간은 5분이 주어집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팬들은 볼멘소리를 냈다.
“5분? 너무 긴 거 아냐?”
경기에 몰입하던 나도 추가 시간 5분이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사실 박한빈의 퇴장과 박요한의 교체아웃 등으로 나온 적당한 추가 시간이지만, 우승을 코앞에 둔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길었다.
추가 시간 1분.
제주FC가 동점골을 위해 모처럼 공격적으로 나섰다.
정말 투혼으로 고양의 공격을 막아낸 그들에게 찾아온 기회였다.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제주FC의 모든 선수들이 고양 진영으로 넘어왔다.
팡!
회심의 슈팅이 라시모프의 몸에 맞고 골라인을 벗어났다.
이어지는 코너킥 상황.
팡!
온주현이 빠르게 차올린 공이 고양의 PK 박스 안쪽으로 향했다.
혼전 상황 속에서 양 팀 선수들이 떨어지는 공을 보고 움직였다.
“으쌰!”
하지만 공은 정확하게 박지원의 품속으로 향했다.
가볍게 공을 손에 쥔 박지원은 빠르게 앞쪽으로 공을 던졌다.
힘껏 날아간 공은 측면에 있던 이진수 쪽으로 향했다.
이진수를 공을 받고 거침없이 뛰었다.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닌 이진수는 지치지 않은 것처럼 뛰었다.
제주FC 선수들이 우당탕탕 자신의 진영으로 복귀하기 바빴다.
팡!
이진수가 측면에서 중앙 쪽으로 길게 횡패스를 시도했다.
그렇게 공은 중앙에서 쇄도하던 사무엘 앞으로 떨어졌다.
사무엘은 바로 제주FC의 골문으로 슈팅을 때렸다.
팡!
하지만 공은 빠르게 뛰어나온 제주 골키퍼에게 막혔다.
아쉬워하는 사무엘을 뒤로 하고 제주 골키퍼는 다시 길게 공을 차올렸다.
어느덧 추가 시간도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제주FC에게는 마지막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선수가 단 한 골을 위해 불사질렀다.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도 1골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1분이 지나자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 쪽에서 구호가 튀어나왔다.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
승리를 직감한 고양 유나이티드 홈팬들.
반면 절박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는 제주FC의 팬들.
서로 엇갈린 상황 속에서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를 주시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벤치에서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모두 일렬로 도열에서 어깨동무하며 지켜보았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기세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대로 제주FC의 벤치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벤치에 앉아 있던 제주FC 선수들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겨우 눈물을 참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추가 시간이 5분을 막 넘어갔다.
그런데 주심은 경기를 끝내지 않았다.
곽찬구 감독이 터치라인 앞으로 나가서 손목에 찬 시계를 가리키며 외쳤다.
“끝났잖아! 빨리 끝내! 빨리 끝내라고!”
그에 맞춰 고양 서포터스들도 반응했다.
끝!
끝!
끝!
얼른 끝내라고 외치는 서포터스들.
하지만 주심은 제주FC의 마지막 코너킥 상황까지 기다렸다.
정말 마지막 코너킥 기회를 맞이한 제주FC.
이 한 방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땀으로 온몸을 적신 온주현이 이를 악물고 공을 찼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가던 공이 다시 한번 고양의 PK박스 안쪽으로 떨어졌다.
“엇!”
그런데 공이 골문 바로 앞에 있던 장지원 앞으로 떨어졌다.
순간 상황을 지켜보던 고양의 서포터스들과 선수단 모두 얼어붙었다.
장지원이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며 공을 찼다.
팡!
모두가 위기 또는 기회로 느낀 순간, 고양에게는 명품 수문장이 존재했다.
팡!
멋지게 공을 쳐내며 세이브를 보이는 박지원의 모습에 일순간 고양의 홈 경기장이 다시 한번 들썩였다.
와아아아아!
코앞에서 벌어진 슈퍼세이브.
박지원이 포효했다.
절호의 기회가 날아간 장지원은 무릎을 꿇고 땅을 쳤다.
그 순간,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다.
삑! 삐익! 삐이이익!
우와아아아아!
마침내 들려온 경기 종료 휘슬.
고양 유나이티드 홈 경기장에는 팬들과 선수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들썩였다.
“해냈다! 해냈다고!”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아아아아!”
김지우는 해냈다며 기뻐했고, 박지원은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벤치에 대기하던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들 모두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쁨을 함께 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고양 유나이티드의 한 노인 팬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흑! 흐흑! 흑!”
그 노인은 고양 유나이티드가 창단한 직후부터 응원해온 1세대 팬이었던 것이다.
수십 년 만에 본인이 응원하던 팀이 우승하는 감격적인 상황에 기어코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우리의 고양~
나의 고양~
승리의 고양~
창단 첫 우승에 감격한 서포터스들이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마침내 우승을 달성한 고양 유나이티드의 대표인 나에게도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그토록 원했던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게 된 나는 마음껏 기쁨을 드러냈다.
“도련님, 축하해요.”
“고마워, 김 비서.”
축하해주는 김 비서가 고마웠다.
모두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까지 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순간만큼 나를 도와준 이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저길 보세요!”
“응?”
고개를 돌리자 경기장 전광판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2026시즌 K리그2 우승팀
[고양 유나이티드]
* * *
경기 종료 후 곧 간이 시상대가 만들어졌다.
우승팀 시상을 위해 우리는 시상대 앞에 모였다.
『우승팀에게는 우승 메달과 함께 트로피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시상대 앞에 줄을 선 선수들은 곧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로부터 메달을 수여 받았다.
나도 대표이사 자격으로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과 같이 나란히 섰다.
“우승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우승 메달을 받으러 온 선수들에게 돌아가며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행복해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감독님, 축하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마지막으로 곽찬구 감독과 축하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모든 메달이 전달된 후, 마지막 우승 트로피 수여가 있었다.
주장 김지우가 대표로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빛나는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고 선수들 앞에 나타난 김지우.
모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김지우를 쳐다봤다.
그런 그들을 향해 김지우각 씩 웃으며 말했다.
“준비됐지?”
“오!”
“좋아, 셋하면 들어 올린다!”
김지우가 카운트하자 선수들이 그에 맞춰 발을 구르면서 함께 반응했다.
“하나, 둘, 셋!”
힘차게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순간, 무대 뒤에 있던 폭죽이 터졌다.
펑! 퍼펑! 펑!
와아아아아!
지켜보던 팬들도 함성을 질렀다.
그렇게 고양 유나이티드는 역사적인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