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83화 (83/272)

83화

주심이 길게 휘슬을 불며 손가락으로 PK박스를 가리키는 순간, 중계하던 캐스터와 해설위원 모두 소리를 지르며 외쳤다.

『아! 찍었습니다! PK! 페널티킥입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인데요! 이거 고양에게는 위기고 제주에게는 기회입니다!』

고양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가 주심에게 항의했다.

“이게 어떻게 PK입니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백종수를 대신해서 같은 수비 동료인 이진수가 주심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주심은 왼손을 귀에 대고 오른손을 손바닥이 보이게끔 펼쳐 이진수를 비롯한 선수들을 향해 오지 못하게 행동했다.

“진정해 봐. 지금 VAR하고 교신 중이니까.”

이 장면을 지켜보던 중계진도 반응했다.

『오늘 경기를 맡은 김현태 주심이 VAR 심판진들과 교신하고 있습니다.』

『리플레이 화면을 좀 봐야겠는데요.』

리플레이를 봐야겠다는 한정희 해설위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이전 상황이 화면으로 나왔다.

『리플레이가 나오네요. 고양의 공격 상황 이후, 바로 제주의 역습이 이어졌는데요. 여기서 온주현 선수의 패스 한 방이 고양의 수비를 흔들었고, 장지원 선수가 마무리 슈팅을 하는데…… 아, 여기서 백종수 선수의 팔에 닿았군요.』

『PK 선언에 대해서 이야기드리자면, 무조건 팔에 맞았다고 해서 PK가 되는 건 아닙니다! 고의성 여부도 같이 판단해야 하는데, VAR과 주심이 이걸 어떻게 판단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리플레이 화면은 다양한 각도로 장지원의 마지막 슈팅과 이를 막으려는 백종수의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공이 백종수의 팔에 닿기 전후의 장면을 360도로 돌려가며 보여줬다.

팔에 공이 닿은 백종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황급히 팔을 빼려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봤을 땐 PK가 조금 애매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한정희 위원의 읖조리듯 그렇게 말하는데, VAR과 교신하던 주심이 휘슬을 살짝 분 다음 양쪽 검지손가락으로 크게 네모박스를 그렸다.

『아! 온 필드 리뷰 들어가네요!』

『아무래도 우승트로피가 걸려 있는 경기다 보니 주심도 좀 더 정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긴장된 상황 속에서 온 필드 리뷰를 하는 주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경기 내내 쉼없이 응원하던 양 팀 서포터스들도 이 순간만큼 모두 침묵하고 상황을 주시했다.

그렇게 2분 정도가 더 흘렀을 무협, 주심이 다시 필드로 돌아왔다.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양 팀 선수단과 서포터스 모두가 주심의 판단에 주목했다.

그 순간, 김현태 주심이 다시 한번 고양의 PK박스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삐이익!

『아! PK로 선언합니다!』

와아아아아!

VAR 끝에 다시 한번 주심이 PK를 선언하자 제주FC 선수단과 서포터스들은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반면 고양 선수단과 서포터스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특히 PK의 빌미가 된 백종수는 낙담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우우우우-.

곧 홈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그사이, 양 팀 선수는 PK를 준비했다.

『화면에 박지원 선수의 모습이 보이는데요. 고양 유나이티드는 박지원 선수의 손끝을 믿어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제주FC는 온주현 선수가 키커로 나서네요.』

공을 가운데 둔 두 선수 사이에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삑!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주심이 짧게 휘슬을 불었다.

곧 온주현이 공을 차기 위해 자세를 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팡!

온주현의 오른발이 공에 닿았다.

모두의 시선이 발끝을 벗어난 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박지원이 몸을 날렸다.

이 모든 상황은 찰나에 벌어졌다.

영원할 것 같은 찰나의 시간이 지나가는 순간, 경기장에 함성이 거대한 울려 퍼졌다.

『오! 막아 냅니다! 고양의 수문장! 박지원이 막아 냅니다!』

『이야아아! 이걸 막네요!』

박지원은 정확하게 공이 날아오는 방향을 읽고 두 손으로 잡아 냈다.

실축한 온주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벤치에서 지켜보던 강석훈 감독은 거의 절규하는 몸동작을 보였다.

반면, 방어에 성공한 박지원은 크게 포효했다. 동료들은 그런 박지원을 향해 다가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고양 유나이티드 벤치에서도 곽찬구 감독은 거의 비명 같은 환호를 지르며 기뻐했다.

홈팬들도 방어에 성공한 골키퍼를 향해 환호했다.

『이야, 오늘 경기는 진짜 반전에 반전입니다! 누가 이길지 모르겠는데요!』

『경기 분위기가 굉장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종수야! 아까 실수는 이제 잊어버려! 형이 날려버렸으니까!”

멋지게 PK 방어에 성공한 박지원이 움츠러들었던 백종수를 향해 외쳤다.

백종수는 그런 박지원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고마워요, 형!”

“고마우면 경기에 계속 집중해!”

“네!”

곧이어 고양의 역습이 시작됐다.

탄력받은 고양의 역습은 매서웠다.

『빠릅니다! 박형우가 공을 받고 측면으로 빼주는데요! 이번에는 이진수입니다! 측면에서 이진수가 달립니다!』

측면 수비수 이진수의 폭발적인 스피드 앞에 제주FC 수비수들이 추풍낙엽처럼 흔들렸다.

그런 이진수 곁에는 박요한과 나탈, 장현우가 쇄도하듯 상대 진영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이진수는 무리하지 않고 절묘하게 전방 횡패스를 시도했다.

팡!

이진수의 패스는 빠르고 깔끔했다.

공은 단숨에 박요한 앞으로 향했다.

『박요한 받았습니다! 또다시 결정적인 기회를 잡는 고양입니다!』

『자, 제주는 지금 2명밖에 없습니다!』

빠르게 제주의 PK박스 안까지 들어가는 순간, 박한빈이 몸을 날려 태클을 시도했다.

하지만 박한빈의 태클을 예상했던 박요한은 공을 먼저 툭 건드린 후, 일부러 발을 살짝 내밀었다.

그러자 박한빈은 공이 아닌 박요한의 발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악!”

박요한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잔디 위를 굴렀다.

그리고 그 광경을 뒤따라가며 지켜보던 주심이 이번에는 제주FC의 PK박스를 가리키며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익!

『오! PK입니다!』

『조금 전 PK에 이어서 또 PK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PK의 주인공은 제주가 아닌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한 파울이 맞죠.』

『박한빈 선수는 옐로카드를 받습니다.』

위기 이후 금방 절호의 기회를 잡은 고양 유나이티드.

“키커 누가 찰래?”

“당연히 형우 아냐?”

현재 팀의 PK 키커는 박형우 또는 사무엘이 맡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박형우가 PK를 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돌연 박형우가 장현우에게 공을 내밀었다.

“자, 네가 한번 차 봐.”

“네? 갑자기요?”

“그래. 이거 넣으면 너 오늘 주인공이다.”

박형우는 이번 시즌 곁에서 장현우를 봐왔었다. 그는 장현우가 미래에 충분히 대성할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랬기에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그에게 멋진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는 저물어가는 태양이라면, 현우는 떠오르는 태양이야. 이제는 이런 후배에게 기회를 줘야 해.’

자신이 주목받는 것보다 능력 있는 후배가 더욱 주목받기를 원했다.

이런 생각은 월드컵 이후 더 확고하게 변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박형우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장현우는 당황했지만, 곧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했다.

“좋아요. 제가 찰게요.”

그렇게 장현우가 키커로 나섰다.

곽찬구 감독도 공을 넘겨준 박형우의 태도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형우가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구나. 현우야. 기회를 잘 살려봐라.’

그렇게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PK를 찼다.

그런데…….

『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공이 골대 뒤로 날아갑니다!』

『조금 전에 제주가 실축했는데 이번에는 고양이 실축하네요!』

“…….”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장현우가 찬 공은 골대 뒤 서포터스들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홈런을 쳐버린 장현우의 슈팅을 본 동료들도 순간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박형우는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미안하다. 현우야,’

한편 실축한 당사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C8.”

* * *

결국 전반전은 치열한 공방 끝에 0:0으로 마무리되었다.

휴식을 위해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VIP 좌석에서 지켜보던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아~ 열라 긴장되네.”

손바닥과 발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이토록 긴장한 적이 있을까?

“도련님, 저는 화장실 좀.”

“어? 응. 다녀와.”

김 비서가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반응들이 어떠려나.”

현장에서 이 정도 경기력이면 분명 중계로 보는 팬들 반응도 뜨거울 것이라 생각했다.

커뮤니티에 접속하자 내 생각이 어느 정도 맞았다.

그런데…….

-축구 아니고 예능인 듯 ㅋㅋ

-사이좋게 실축한 거 실화냐? ㅋㅋ

-내가 해도 저거보단 잘할 듯

-ㅈㄴ 노잼이네.

-또 주작질 하네. 하여간 주작 리그!

-여기서 언더 간 흑우 없제?

반응을 확인하던 내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이 새끼들 불법 토토충이 분명하다!

순간 울컥한 나는 익명으로 글을 남겼다.

-토쟁이 놈들 부들부들 하는 거 꼴사납구요.

그러자 바로 반응들이 나왔다.

-개리그 돈 안 걸고 보는 사람이 있음? ㅋ

-돈 안 걸면 누가 개리그 봄? ㅋ

“아니, 이 새끼들이!?”

울컥해서 반응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반응한 이들이 존재했다.

-나다 이 새끼야. 내가 돈 안 걸고 보는 놈이다.

-무개념 토쟁이 새끼들 극혐이네! 경기 열라 재밌구만!

-꺼져 새끼들아! 네놈들 때문에 수준 떨어진다!

“아직 세상은 살 만하구나.”

마치 개0스콘을 먹은 것처럼 속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도련님, 뭐하세요?”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어떤 거 같아?”

“경기요? 재밌네요. 중간에 실축한 건 아쉽긴 한데, 전체적으로 재미있어요.”

“그래? 다행이네.”

김 비서도 재미있게 봤으면 됐다.

“라커룸에 안 가보셔도 돼요?”

“됐어. 지금 내가 가면 괜히 불편해져.”

옛날처럼 분위기 파악 못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내가 끼어들 때가 아니다.

“그럼 콜팝 리필은요?”

“그거는 땡큐지.”

* * *

라커룸에 들어온 고양 선수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아~ 아쉽다!”

“잘하고 있어! 우리 좀 더 잘해 보자!”

전반전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서로 힘내자고 격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

결정적인 PK를 실축한 장현우는 구석에서 말없이 물만 마시고 있었다.

그런 장현우 곁으로 박요한과 박형우가 다가왔다.

“현우야. 혹시 아까 일 때문에 신경 쓰는 거야?”

“현우 형,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두 선수의 위로에 장현우는 굳은 얼굴을 풀고 대답했다.

“조금 기분이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면 다행이고. 아까 보니까 제주 녀석들 생각보다 엉성한 부분도 있더라고. 후반전에는 분명 우리에게 더 좋은 기회가 올 거야.”

“그러면 좋겠네요. 그리고 요한아, 미안해. 네가 만들어준 기회인데 내가 날려버렸네.”

“에이, 형. 저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형이 지금까지 팀에서 해준 게 얼만데. 것보다 형우 형 말대로 우리 후반전에 더 잘해봐요.”

“그러자.”

세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때, 곽찬구 감독이 라커룸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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