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82화 (82/272)

82화

선수단 입장 전, 오늘 선발로 출전하는 골키퍼 박지원의 각오는 남달랐다.

‘이번에는 반드시 실점하지 않겠어!’

제주와 붙었던 앞선 두 경기에서 모두 선발 출전했던 박지원.

그는 그 2경기에서 모두 3실점을 했다.

서브 골키퍼가 출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곽찬구 감독은 박지원에게 믿음을 주었다.

‘내 선방 하나에 우승이 걸려 있어.’

프로 경력 24년.

골키퍼는 늦게 데뷔하는 편이지만, 박지원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데뷔한 편이다.

K리그1, 2부 합쳐 350 경기 이상을 치렀다.

수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오늘 경기가 그 어느 때보다 부담이 컸다.

‘모든 걸 걸어보자.’

손에 낀 골키퍼 장갑을 매만지며 각오를 다졌다. 그때, 그런 그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형. 걱정마요. 오늘 1골 먹히면 2골 넣는다고 생각하고 뛸 테니까.”

“형우야.”

박형우는 미소를 보였다.

“그렇다고 너무 실점하지 마시고요.”

“물론이지. 내가 누군지 몰라? 나 박지원이야!”

“당연히 믿죠. 믿으니까 하는 말이에요.”

“짜식!”

동료의 믿음이 느껴졌던 것일까?

박지원의 부담감은 조금이나마 덜어졌다.

그러던 중 슬쩍 건너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제주FC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FC 선수들도 상당히 굳은 얼굴로 일렬로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선수들 뒤로 두 남자가 만났다.

바로 곽찬구 감독과 강석훈 감독이었다.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 짧은 침묵과 함께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런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곽찬구 감독이었다.

“강석훈이. 너하고 또 이렇게 우승트로피 두고 맞붙게 됐네.”

“찬구 형. 나, 형한테 별로 악감정 갖고 싶지 않거든? 근데 형은 매번 자꾸 내가 악감정 들게끔 기회를 줄까?”

가시가 있는 강석훈의 말에 곽찬구는 피식 하고 웃었다.

“야, 그럼 네가 더 잘하면 되잖아.”

“…….”

“선수 때도 그렇고, 감독 때도 그렇고, 너는 나 따라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지랄. 형은 오늘 피눈물 흘릴걸?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거니까.”

“그래. 그래. 기대할게.”

두 감독의 기 싸움이 대단했다.

대기하던 선수들과 곁에 있던 코칭스태프들도 모두 침만 꿀꺽 삼키면서 지켜볼 뿐이었다.

“어쨌든 잘해 보자. 석훈아.”

“어. 잘해 보자고. 형.”

그때, 중앙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양 팀 선수들을 향해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수단 이이이이입자아아앙!』

입장 소리와 함께 양팀 선수단이 마침내 필드로 향했다.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들의 눈에는 관중석을 채운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우승트로피 들고 고향으로 올라가자!]

서포터스석에서 펼쳐진 대형 현수막에는 K리그2 우승트로피와 함께 해당문구가 적혀 있었다.

고향으로 올라가자는 말은, 몇 년 동안 올라가지 못했던 K리그1을 뜻했다.

고양 선수들도 그 모습을 보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승리를 위해!

진군하라 고양!

너희들의 뒤에는 우리가 있다!

승리를 위해!

계속 진군해!

홈팀 서포터스들의 힘찬 응원가가 경기장을 넘어 주변까지 다 들릴 정도로 우렁찼다.

이제 우승을 건 마지막 승부가 얼마 남지 않았다.

* * *

『경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우승트로피를 든 두 팀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했습니다!』

주심의 휘슬과 함께 시작된 최종 라운드 전반전.

이미 예고했던 대로 오늘 이 경기는 메인 생중계로 진행된다.

『양 팀 모두 최정예 멤버들이 모두 출격했습니다. 홈팀 고양은 박형우 선수를 비롯해서 오세진, 김지우, 장현우 등이 모두 출전했고요. 제주FC도 온주현, 장지원, 박한빈 등이 모두 출격했습니다.』

『양 팀은 오늘 아주 사소한 실수 하나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실수 하나가 올해 농사를 모두 망칠 수 있거든요!』

“현우야! 이쪽으로!”

“너무 앞쪽으로 줄 필요 없어! 천천히 해! 천천히!”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전반부터 급한 플레이를 보이지 않았다.

아군진영에서 볼을 돌리면서 무리한 플레이를 삼갔다.

그걸 본 이형욱 캐스터가 말했다.

『고양에서 볼을 가지고 있기는 한데, 초반부터 상당히 조심스럽게 경기를 운영하네요.』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사소한 실수가 큰 위기를 일으키면 큰일나니까요.』

『제주FC 선수들도 지역 방어를 펼치면서 어지간하면 잘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선수들이 조심스럽게 플레이를 진행하는 사이 중계 카메라가 양 팀 벤치의 모습을 잡아주었다.

『양 팀 감독 모두 굳은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두 감독에게 오늘은 단순히 우승 트로피 차지하는 정도 수준의 경기가 아닙니다.』

『왜 그렇죠?』

『강석훈 감독은 선수 시절에 곽찬구 감독과 같은 포지션 경쟁자였거든요. 곽찬구 감독에게 주전으로 밀리다 보니 주로 서브로 나왔었고요.』

『그런 과거가 있었군요.』

『그렇죠. 거기다 두 사람 모두 감독이 된 이후에는 FA컵 결승전에서 강석훈 감독이 패배하면서 곽찬구 감독이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고요.』

『이거 참, 두 사람 다 어떻게 보면 악연이네요?』

『네. 오늘 강석훈 감독은 어떻게든 이기고 싶을 겁니다. 강석훈 감독 입장에서는 오늘 이 악연의 고리를 끊어야 하거든요!』

두 사람이 양 팀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진행하던 중, 잠잠하던 제주FC가 움직였다.

『자~ 온주현이 패스를 끊는데요! 제주FC가 역습합니다! 빠르게 올라가는 제주!』

오른쪽 측면에서 오세진과 나탈 사이에 들어가던 패스를 온주현이 타이밍을 잡고 정확히 끊어냈다.

그 순간 제주FC의 빠른 반격이 시작되었고, 놀란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서둘러 역습을 대비했다.

『순식간에 파고드는 제주의 역습입니다! 장지원이 공을 받습니다. 다시 측면으로 향하는데요. 온주현이 받습니다! 온주현 크로스!』

팡!

온주현의 발끝을 벗어난 공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고양 유나이티드 골문 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문전 앞에 있던 고양 선수들과 제주FC 선수들이 서로 엉겨 붙었다.

『라시모프, 헤딩으로 절묘하게 끊어냅니다! 이진수가 빠르게 공을 걷어냅니다!』

『방금 제주FC의 공격 좋았습니다! 제주FC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양 팀 모두 조금만 틈이 있으면 바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걷어낸 공을 다시 제주FC가 잡았다. 어느샌가 깊게 올라온 제주 센터백 박한빈이 공을 잡고 뒤에서 앞쪽으로 길게 차올렸다.

팡!

『뒤에서 붙여주는 크로스입니다! 다시 한 번 문전 경합인데요! 장지원 헤디이이잉!』

정확하게 장지원의 이마에 맞은 공이 방향을 틀어 고양의 골문 구석으로 향했다.

경합하던 라시모프가 장지원과의 경합에서 순간 밀리면서 생긴 틈이 바로 득점 찬스로 이어진 것이다.

‘큰일이다!’

라시모프를 비롯한 모두가 위기라고 느꼈다.

하지만 고양에는 명품 수문장 박지원이 있었다.

『고오오올!…이 아닙니다! 박지원의 선방입니다!』

『이야아아 엄청난 선방이네요!』

『골문 구석으로 들어가는 공을 박지원 선수가 가까스로 쳐냅니다!』

손끝으로 공을 기가 막히게 쳐낸 박지원. 공은 골대 뒤 라인 바깥을 벗어나며 제주의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할 수 있어!”

슈퍼 세이브에 성공한 박지원이 동료들을 향해 포효하며 외쳤다.

『이런 세이브 하나가 팀에게 굉장히 힘이 되죠?』

『당연하죠. 상대도 이런 세이브를 보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 바로 코너킥으로 이어지는데요! 온주현 선수가 준비합니다!』

팡!

전담키커 온주현이 코너킥을 차올렸다. 하지만 공은 박지원 바로 앞으로 향했고, 박지원은 손쉽게 공을 잡아냈다.

그걸 본 장내 아나운서가 외쳤다.

-명품 수문장! 박! 지! 원!

박지원! 박지원! 박지원!

짝짝짝짝!

지켜보던 고양 서포터스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지원의 이름을 외치며 박수를 보냈다.

박지원의 안정적인 세이브로 힘을 받은 것일까?

이번에는 고양 선수들이 반격했다.

“진수야!”

박지원은 바로 이진수에게 공을 보냈다. 측면 수비수 이진수가 공을 받고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제주FC 선수들이 질주하는 이진수를 막기 위해 태클을 시도했지만, 이진수가 한발 먼저 공을 전방으로 길게 보냈다.

하프라인을 살짝 넘어 올라간 공이 가운데로 뚝 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지는 공을 향해 박형우와 박한빈이 경합했다.

“어딜!”

박한빈이 박형우의 옷깃을 잡았다.

하지만 박형우는 그런 박한빈과의 몸싸움에서 이겨낸 뒤, 이마로 공 방향을 꺾었다.

“앗!”

“위험해!”

공은 텅 빈 뒷공간으로 빠져흘러갔다.

그걸 본 제주FC 선수들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했다.

반대로 고양에게는 엄청난 기회로 다가왔다.

『빠지는데요! 박요한이 잡습니다! 달리는 박요한!』

『왔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정면에 골키퍼와 일대일인데요! 일대일!』

오늘 선발로 나온 제주FC 골키퍼 정동영이 이를 악물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튀어나오는 상대 골키퍼를 본 박요한이 그대로 칩슛을 때렸다.

팡!

『키를 넘기는 슈팅! 들어가나요!』

정동영의 키를 넘긴 공.

모두의 시선이 흘러가는 공을 향했다.

당황하는 정동영 골키퍼.

뒤따라오다가 놀란 표정을 짓는 박한빈.

벤치에서 굳은 얼굴의 강석훈 감독.

좌절과 절망으로 얼룩진 제주FC의 서포터들.

그런데…….

『아! 이게 뭔가요! 공이 아슬아슬하게 라인 밖으로 벗어납니다!』

『이야! 이게 안 들어가네요! 하늘이 제주FC를 돕네요!』

절묘하게 골문을 벗어나 골대 옆 라인 바깥으로 벗어나 버렸다.

그걸 본 박요한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두 눈을 부릅뜨며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은 손에 쥐고 있던 메모장을 바닥에 던지며 크게 아쉬워했다.

홈팀 서포터스들도 아쉬운 탄성을 터트렸다.

반면, 행운이 따른 제주FC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 들어가는 줄 알았네.”

“정신 차려! 지금 방심할 때가 아니야!”

“알고 있어!”

제주FC 선수들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말을 걸었다.

반면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아쉬움을 뒤로하며 다시 경기에 집중해야 했다.

* * *

“아오! 저게 안 들어가냐!”

VIP 좌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나는 크게 탄식했다. 탄식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곁에 있던 김 비서나 천지원 부장도 상당히 안타까워했다.

“아! 진짜 아깝네요!”

“그래도 우리가 더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조금만 더 하면 우리가 먼저 득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경기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른 상태였다.

확실히 두 팀 모두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장군 멍군하듯 서로 결정적인 기회를 1번씩 만들어가며 위기를 넘겼다.

“제발.”

도저히 예측 불가능한 경기 상황에 나는 간절하게 승리를 기도했다.

그러면서 콜팝 하나를 먹으려는 찰나…….

“어어!”

“위험해!”

홈팬들 사이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나도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뭐야!”

제주FC의 공격 상황.

온주현이 절묘하게 수비 사이를 가로지르는 킬패스를 보였다.

공은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장지원이 있었다.

바로 슈팅을 시도하려는 장지원을 향해 고양의 센터백 백종수가 황급히 몸을 날렸다.

팡!

장지원의 발끝을 벗어난 공이 그대로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바로 앞에서 날아온 공에 백종수가 황급히 몸을 틀어 막으려 했고, 거기에 스친 듯 공이 꺾였다.

그 순간,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주심이 길게 휘슬을 불고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삐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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