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최종전까지 4일 정도 남았다.
나는 최종전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방송사와 인터뷰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 지태훈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그러자 카메라 뒤에 서 있던 여자 스태프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방송을 통해서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정말이다.
기자들과 개인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던 적은 있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고양 스포츠같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언론사 통해서만.
그렇게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필요한 만큼의 이미지메이킹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방송사에서 먼저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던 것이다.
그전에도 몇 번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적이 있었지만,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거절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선수단의 사기 증가 차원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내부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인터뷰를 수락한 것이다.
“요즘 고양 유나이티드가 굉장히 핫하죠? 그런 고양의 중심에는 지태훈 대표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대표님은 이러한 관심에 대해서 어떠신가요?”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아나운서 출신의 남자 MC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는 팬분들의 관심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관심은 정말 황송할 만큼 감사하죠. 저를 포함한 프런트 그리고 선수단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대표님께서 작년 시즌 도중에 부임하셨잖아요? 그때는 상황이 어떠셨나요?”
그 말에 절로 부임 초기 때가 떠올랐다.
허재우와 임태무가 망쳐놨던 구단의 모습.
비단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그 두 사람과 협력하던 모든 이들이 공범이었다.
회귀 직후, 정신을 차리고 그 상황을 깨달았을 때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왠지 씁쓸한 뒷맛이 올라왔다.
“어지러운 상황이었죠.”
“어지러웠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모든 사실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 당시 구단 내부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어느 하나 좋은 것 하나 없더군요. 재정도 불안정했고, 있던 팬들도 거의 다 떠나고. 정말 당장 오늘 문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죠.”
“그랬군요.”
“솔직히 막막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겨 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대표님이 부임하시고 상당히 많은 구조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제일 많이 바뀐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적폐 처단.”
“네?”
“구단 내에 있던 오래된 적폐들은 모두 내보내거나 도려냈습니다.”
“…….”
나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기세로 대답해 버렸다.
그러자 남자 MC와 촬영하던 스태프들 모두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런.
나는 바로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곧 다시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모두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뭐,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하하, 네. 그렇죠.”
멋쩍은 표정을 드러내던 MC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준비했던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 인터뷰가 있기 바로 전에 대표님께서 선수단에게 우승 보너스를 내걸었는데요.”
“아, 그렇죠.”
“그런데 그 액수가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보너스 총액이 무려 20억인데요. 현재 K리그2 우승 상금은 1억이 조금 넘는 금액인데요. 대표님께서 제안한 포상금은 무려 20배 가까이 더 많습니다.”
“…….”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긍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이런 의견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파격적인 포상금 때문에 말이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일부 관계자들은 리그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부정적인 의견들에 있어서 나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다.
“제가 하는 모든 행위는 팀을 위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리그 흥행을 위한 행위기도 하고요.”
“…….”
“MC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번 시즌에 저희가 보여준 파격적인 퍼포먼스 덕분에 K리그2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상당히 많이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내 말은 진실이다.
실제로 K리그2는 작년보다 전체 시청률이 0.5% 정도가 올랐다.
월드컵 특수 효과도 있었지만, 시즌 초반부터 작년보다 높은 시청률이 나왔었다.
그런 시청률의 지분 대부분을 우리팀이 가져갔다.
프리시즌 때 스페인 원정 평가전을 치르고, 이후 시즌 중반까지 무패 행진을 이어왔다. 거기에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박형우와 장현우라는 월드컵 스타까지 배출하면서 우리에 관한 관심이 빠르게 증가했다.
이러한 관심의 영역은 곧 K리그2 전체로 퍼져 나갔다.
“지금 다른 K리그 팀들은 우리 덕분에 낙수효과를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승격을 확정 지었습니다. 내년에 우리가 없는 빈자리를 과연 어느 팀이 채울 수 있을까요?”
내 말에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모두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모쪼록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그렇게 말했다.
* * *
나는 모처럼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아빠! 아니! 회장님!”
“아이쿠!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나 귀 안 먹었다!”
“승격 확정했는데, 혹시 뭐 선물 같은 거 없습니까?”
내가 아버지를 찾아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약속대로 승격을 확정지었다.
아직 최종전이 남아 있지만, 이번 시즌 K리그2는 1, 2위는 다이랙트 승격이 가능했다.
이미 3위와 격차가 커서 승격은 애초에 확정지었다.
남은 것은 우승하느냐 못 하느냐만 남았을 뿐.
“뭐, 좋다. 네가 약속을 지켰으니…… 뭐, 바라는 게 있느냐?”
“음. 역시 돈이겠죠?”
나는 주저하지 않고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궁금한 표정을 드러냈다.
“얼마나?”
“얼마까지 가능합니까?”
“흠. 이놈아. 너는 직접 컴퓨터 사본 적 없지?”
“…….”
갑자기 컴퓨터 얘기가 왜 나오는 거지?
“됐다. 한 100억이면 되냐?”
100억?
10억만 해도 땡큐라 생각했다. 그런데 100억이라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100억을 불렀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지 몰랐다.
“400억.”
“없던 걸로 하자.”
“아!”
“에잉! 누굴 만만하게 보고, 감히 400억을 불러! 내가 누군 줄 알고!”
아버지는 진짜 그만둘 것처럼 행동했다.
순간 당황함이 몰려왔지만, 본능적으로 나도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결단은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다.
“좋아요. 저도 장사 접죠. 뭐.”
“뭐?”
“돈 구할 때가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너 설마 그 아랍 왕자 놈 믿고 그러는 거냐?”
“그럴 리가요. 저 돈 나올 데 많아요.”
“네가 어디서 돈 나올 구석이 있다고? 끽해 봤자 아랍 왕자 놈 아니면 백가 놈 둘 중 하나지.”
“그래요? 정말 그래 보여요?”
“그래, 이놈아!”
순간 나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표정을 드러내었다.
“아버지. 조금 실망스럽네요.”
“뭐, 뭐?”
“전 세계를 호령하시는 아버지의 정보망이 겨우 이 정도라니. 진짜 많이 죽으셨네요.”
“뭐!?”
자존심이 상하신 걸까?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난 아버지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 지금 네가 어떤 말을 한지 아는 거냐?”
“뭐, 제가 틀린 말 했나요?”
나는 좀 더 뻔뻔스럽게 행동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의 살벌한 기세를 눈앞에서 받아내느라 덜덜 떨렸지만, 어떻게든 속으로 이 악물고 버텼다.
“저, 한 5년 정도는 걱정 안 할 정도로 자금을 좀 모아 뒀어요. 아시죠? 제가 이번에 20억 뿌리는 거.”
“…….”
“제가 돈이 없으면 그짓거리를 했겠어요?”
“그건 백가 놈이 준 돈이 아니냐?”
“백태현이가 저한테 준 돈은 겨우 5억뿐인데요?”
“……!”
“나머지 15억은 제가 가진 돈으로 하는 거고요.”
극대노하셨던 아버지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그는 다시 자리에 털썩 앉더니 곧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말없이 생각에 잠기던 그가 허허 웃음을 흘렸다.
“제법이구나.”
“누구 아들인데요.”
“그렇지. 누구 아들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아버지는 박 팀장을 호출했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준후 팀장이 빠르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어~ 박 팀장. 그 내 계좌에서 400억 꺼내서 고양 유나이티드로 입금하게.”
“예?”
갑작스러운 회장의 말에 박준후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담이지만, 나 저 아저씨가 저렇게 놀라는 거 처음 봐.
“막내 아들놈이 약속을 지켰으니, 소원 하나 들어줘야지. 명목상 회사 돈으로는 줄 수 없고, 내 개인 계좌로 주는 건 문제없겠지. 법무팀하고 이야기해서 문제없이 입금할 수 있게 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와, 우리 아버지 대박이다.
역시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님은 통이 다르시구나.
개인 계좌로 400억이라니.
그리고 진짜로 400억 불렀다고, 그 액수를 그대로 줄지는 몰랐다.
“태훈아.”
“예?”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만 하거라.”
“…….”
아버지의 말이 뭔가 느낌있게 다가왔다.
이 알 수 없는 묘한 느낌.
이게 뭔지는 잘 알지 못했다.
“걱정마세요. 잘할 거니까요.”
“그래. 믿으마.”
믿는다고 얘기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환했다.
* * *
아버지와 만나고 돌아가는 길.
“후, 사실 5년 동안 쓸 돈 있다는 건 거짓말이긴 했는데…….”
당장 내년에 운용할 자금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뻥카를 만들어 보인 것인데, 오히려 그게 먹혀들었다.
‘아니면 아버지가 일부러 속아 주신 걸까?’
아버지는 결코 만만한 분이 아니시다.
세계적인 기업을 운영하며 수많은 성과를 올린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 분이 내 거짓말을 모를 리 없다.
아마 당장 속았어도 금방 알아차렸겠지.
“그래도 다행이야. 400억이면 당장 내년에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
여기에 칼리드 왕자와 박종찬 코리아네트워크의 지원을 포함해 우리와 협업하는 협업 기업들의 투자금이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여러모로 잘된 일이다.
“고생한 직원들 보너스도 줄 수 있겠어.”
내년에도 열심히 일하게 하려면 직원들 보너스도 필수다.
언론에는 선수단에게만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되어 있지만, 내부에서는 직원들도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직원들이 받을 보너스는 선수들에 비하면 적지만, 그래도 만만히 볼 액수는 아니다.
“김 비서한테도 얘기해 주면 기뻐하겠지?”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올렸으니 분명 김 비서도 기뻐하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환한 얼굴로 회사를 빠져나가려는데,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물과 마주하게 되었다.
“음?”
“태훈이, 너 본사에 왔던 거냐?”
지태완이 굳은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났다.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큰형을 마주한 나도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