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경기 끝났습니다! 고양이 부산을 4:2로 꺾으면서 승리를 거머쥡니다!』
『이렇게 되면 부산은 아쉽게 3위 경쟁에서 탈락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K리그2 우승팀은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고생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다행히 우리는 부산을 꺾고 최종전까지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경기를 마치고 선수들은 승리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는 한편, 마지막 최종전을 위한 마음가짐을 다 잡았다.
“제주 경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데.”
제주는 우리 경기가 끝난 이후 바로 이어서 진행된다.
경기에서 이겨서 그럴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제주의 경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제주는 마지막 홈경기에서 부천을 상대했다.
“부천을 믿어 봐야 하나.”
부천은 현재 바짝 독이 오른 상태였다.
리그 5위인 부천은 플레이오프 진출 커트라인에 위치했다.
지키거나 치고 올라가야 하는 상황인데, 부천은 최근 3경기에서 1무 2패를 겪으면서 플레이오프 진출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6위 전남이 3연승을 거두면서 격차를 불과 승점 1점 차이로 바짝 좁혔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부천이 제주에게 진다면, 플레이오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을 겪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부천은 오늘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만 한다.
“제발 부천이 이겼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부천의 승리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간절한 염원이 하늘에 닿았을까?
『골! 골입니다! 부천의 카데비우 선수가 득점합니다!』
『카데비우 선수가 올 시즌 부진했는데, 오늘 드디어 득점을 만들어 냅니다!』
“좋았어!”
돌아가는 차 안에서 DMD를 시청하던 나는 소리를 질렀다.
부천의 윙포워드인 카데비우가 제주의 단단한 수비를 뚫고 득점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모두의 예상을 깬 깜짝 득점이었다.
“제발! 제발! 이대로만 가다오!”
정말 간절하게 부천의 승리를 바랐다. 남의 팀 승리를 이렇게 바란 적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한 번, 부천이 일을 냈다.
『코너킥 상황인데요! 올라갑니다! 카데비우! 골! 골입니다! 카데비우가 멀티골을 기록합니다! 이렇게 부천이 두 골 차로 달아납니다!』
“그래! 바로 이거지! 부천 잘한다!”
“…….”
하도 방정맞게 구니까 옆에서 김 비서가 가늘어진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부천의 골을 기뻐했다.
기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골! 세상에! 부천이 또 골을 기록합니다! 이번에도 카데비우입니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카데비우!』
『대단합니다! 그동안 득점하지 못한 한을 오늘 경기에서 모두 다 풀어내는 것 같네요!』
전반전에 해트트릭을 달성한 카데비우의 막강 화력 앞에 부천이 3:0으로 격차를 크게 벌렸다.
“와, 하늘이 돕는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덩실덩실 춤까지 추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참았다.
“이거 이미 경기 끝난 거 아냐?”
시작부터 기울어진 경기에 나는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스포츠, 그중에서 축구는 이변이 많은 역동적인 스포츠라는 것을.
『후반전에 제주가 강하게 몰아치는데요! 아크 정면에 장지원! 슈우우웃! 골! 골입니다! 후반 이른 시간 추격골을 만들어 내는 장지원입니다!』
전반전 내내 부천에게 끌려다니던 제주가 후반전에는 이를 갈고 나왔다.
후반 시작 3분 만에 장지원의 추격골이 나왔다.
추격의 불씨를 살린 제주는 이후 폭발적인 기세를 보였다.
『제주가 반칙을 얻어냅니다! 아크 정면에서 굉장히 좋은 프리킥을 얻어냅니다!』
『이 정도 거리면, 제주에는 온주현 선수가 있죠?』
『말씀주신 대로 온주현 선수가 준비하는데요. 자~ 가나요!?… 들어갑니다! 대단히 멋진 프리킥이 완성되었습니다!』
제주의 전담 키커 온주현이 절묘하게 부천의 수비벽 사이를 허무는 프리킥 슈팅으로 부천의 골망을 흔들었다.
순식간에 3:2를 만들어낸 제주를 보며, 나는 강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뭐해! 부천, 이 새끼들아! 똑바로 못해!?”
전반에 크게 리드하던 부천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반면 기세가 바싹 오른 제주는 동점골을 위해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제주가 또 한 번 일을 냈다.
『제주의 코너킥 상황입니다! 온주현이 올려주는데요! 그대로 슈우웃! 들어갑니다! 주장 박한빈의 득점이 나왔습니다! 팀을 위기에서 구해 주는 주장의 득점입니다!』
“아! C8!”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이 멍청한 것들! 결국 동점골까지 내주냐!”
과연 제주도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우리와 우승 경쟁을 하는 팀답게 제주는 스스로 위기를 탈출하고 있었다.
반면 부천은 휘청거렸다.
정신적으로 심한 내상에 결국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아! 퇴장입니다! 부천의 측면 수비수 이규민이 거친 태클로 퇴장을 받습니다!』
『아! 부천이 무너지네요!』
해설자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보는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곧 중계를 꺼버렸다.
* * *
제주는 결국 추가 시간에 결승골을 기록하면서 4:3 대역전승을 거두었다.
결국 고양 유나이티드와 제주FC의 우승 경쟁은 마지막 최종전에서 가려지게 되었다.
고양은 무조건 승리를 거두어야만 자력 우승이 가능했고, 제주FC는 무승부만 거두어도 우승이 가능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고양 유나이티드의 모든 이들이 최종전에 집중했다.
“내가 뭘 해주면 좋을까?”
나는 볼펜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내 곁으로 김 비서가 스윽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김 비서. 다들 마지막 경기 준비하느라 바쁘잖아? 그렇지?”
“그렇죠?”
“근데 내가 여기서 뭘 해주면 좋을까?”
“음.”
내 말에 김 비서도 조금 고민하는 눈치였다. 조금 생각하던 그녀가 내놓은 답변은 나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것?”
“……진심이야?”
“음. 도련님께서 이것저것 솔선수범 나서는 것도 좋지만,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부담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럴까?”
“네.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럼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
“으음. 그냥 평소 스타일로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평소 스타일이라.”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아! 그래, 바로 그거야!”
“……?”
“고마워, 김 비서!”
“뭐, 뭐가요?”
“평소하는 대로! 김 비서가 말해준 대로 나는 평소대로 할게!”
“……?”
김 비서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그런 그녀를 뒤로 한 채 나는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백태냐?”
-갑자기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갑작스러운 전화에 백태현이 놀란 목소리로 반응했다.
“너 돈 언제 줄 거냐?”
-아, 그거 곧 마련해서 줄게! 조금만 기다려줘!
“후, 약속 안 지키지?”
-야, 야, 섭섭하게 그게 무슨 소리야. 약속 반드시 지킨다니까!
“진짜 지킬 거냐?”
-아! 진짜라니까!
내가 변했듯, 이 녀석도 뭔가 많이 변했다. 전에 이 녀석 성격이었으면 ‘내가 언제?’ 아니면 ‘뭐! 어쩌라고!’ 같은 반응이 나왔을지도 몰랐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지금 일부 받자.”
-뭐?
“일부 받자고. 한 10억 줘.”
-……!?
* * *
다음 날, 기사 하나가 떴다.
【단독】지태훈 대표, 최종전 앞두고 돈 푼다! 우승할 경우, 선수단에게 보너스 20억!
고양 스포츠 단독 보도로 나간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가 최종전을 앞두고 또다시 돈 보따리를 풀었다. 금액은 무려 20억이다. 최종전 앞둔 선수들의 사기 증작 차원에서 20억의 현금을 푸는 것이다. 이에 고양 유나이티드는……』
지금까지 이런 구단주는 없었다.
K리그의 대부분 팀은 열악한 재정 사정으로 돈을 푸는 일에 인색한 편이었다.
유럽 리그나 가까운 중국 리그만 봐도 구단주가 목표 달성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푸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K리그 팀들이 그러기에는 환경이 열악했다.
그런데 고양 유나이티드는 달랐다.
-고양 유나이티드는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진짜 확실하게 돈 쓰는구나. 재들 프리시즌 때도 돈 풀지 않았냐? 계속 돈 푸네.
-어지간한 상위권 구단보다 낫다.
-구단주가 미친 걸까?
-지태훈 대표가 나이는 어려도 깡이 미쳤네. 깡춤 한 번 추셔야 할 듯.
국내 축구 팬들의 반응도 상당히 뜨거웠다.
단순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최종전 상대인 제주FC도 기사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진짜 미쳤나! 애들 왜 이래!”
제주FC 프런트는 작정하고 돈을 뿌리는 지태훈 대표의 행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저, 사, 사장님! 고양 유나이티드가 돈을 풀었습니다!”
“뭐?”
제주FC의 사장 임무호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기가 막혀 했다.
“이 친구 제정신인가?”
제주FC의 모기업인 선경오일에서 수십 년을 근무했던 임무호.
최용일 회장의 최측근이기도 한 그는 회장의 특명을 받고 제주FC의 사장으로 부임했다.
부임하자마자 그는 돈줄부터 점검했다.
재정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살피고, 잘못된 부분은 찾아내서 모두 잡아냈다.
재정의 안정화를 이룬 후, 최대한 가성비 있게 구단을 꾸려나갔다.
현재 제주FC가 훌륭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데 임무호 사장의 능력이 컸다.
그런 그가 봤을 때, 지태훈은 정상이 아니었다.
“어린 친구가 혈기에 치우쳐서 돈을 퍼붓고 다니는구먼!”
임무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식의 경영은 방만 경영으로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회사의 재정에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서 결국 큰 부담이 된다.
“이런 녀석이 이끄는 구단하고 경쟁한다니. 허, 참. 어이가 없군.”
임무호는 지태훈을 무시했다.
‘지종윤 회장의 도움을 받아서 자금을 좀 땡겨 왔겠지. 어차피 망나니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
최근 재벌가 사이에서 지태훈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었지만, 임무호는 믿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생긴 일시적인 효과라고 보고 있었다.
“사장님.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부하 직원의 물음에 임무호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어떻게 하긴. 그냥 하던 대로 해. 그리고 필요하면 기자들에게 기사 좀 뿌려. 우리도 잘하고 있다고 언플 좀 하고.”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직원의 뒷모습을 보는 임무호는 작게 웃었다.
“천둥벌거숭이가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만, 그것도 곧 끝이다. 애송아.”
* * *
“2, 20억!”
“한 사람한테 20억은 아니잖아.”
“그, 그래도 이거 인당으로 계산하면…….”
“7700만 원.”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도 지태훈이 돈 푼다는 소식을 듣고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고양 유나이티드에 소속된 선수는 26명이었다.
20억을 26명이 나눠 가지면 인당 약 7700만 원 정도가 된다.
“7700이면…… 이번에 차 바꿀까?”
“크으, 잘하면 이사 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지금 살고 있는 곳 전세가 곧 만료되거든요.”
“나는…….”
선수들은 부푼 상상에 젖어들었다. 그런 상상을 단번에 깨뜨리는 이가 있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앗! 감독님!”
바로 곽찬구 감독이었다.
“상상하는 건 좋다 이거야. 그런데 너희들이 그 상상을 현실로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겠어? 우승해야겠지?”
곽찬구 감독은 선수들에게 현실을 알려줬다.
“제주는 정말 강하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이번에 우리가 2번 붙어서 모두 승리를 거두지 못했어.”
공교롭게 2번 모두 3:3 무승부를 거뒀다.
선수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서서히 현실을 깨닫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곽찬구 감독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달리 말하면 상대로 우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거지!”
“……!”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이 마지막 남은 1경기를 통해서 우리의 농사가 정해질 거다.”
“…….”
“나는 여기 있는 너희보다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래서 잘 알고 있어. 무엇을?”
“……?”
“바로 우승하는 법을 말이야! 명심해라! 이번 같은 상황은 언제 올지 모른다!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해! 태어나서 지금까지 비축해 뒀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 알겠나!”
“네!”
곽찬구 감독의 언변에 감정이 고조된 선수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훈련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