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부산은 전직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채진환과 세르비아 U23 대표 출신 알렉산더 등이 존재했다.
K리그2 내에서 꽤 좋은 공격력을 갖춘 팀이었다.
지난번 2번의 맞대결에서 고양과 부산은 각각 3:2와 4:2의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두 번 다 고양이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모두 다득점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이번 경기도 다득점이 예고되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드러났다.
툭-.
『홈팀 부산이 소유권을 갖고 전진합니다!』
K리그1과 K리그2를 합쳐 통산 300경기 이상을 출전한 베테랑 미드필더 유종찬이 공을 잡았다.
부산의 중원 사령관이 불리는 그의 최대 장점은 바로 전방 침투 패스였다.
팡!
유종찬의 발끝을 벗어난 공이 순식간에 고양의 뒷공간을 꿰뚫었다.
“막아!”
“위험해!”
올 시즌 고양의 수비를 탄탄하게 맡고 있는 라시모프와 백종수가 순간적으로 당황할 정도로 한 방이 있는 패스였다.
절묘하게 수비 두 명 사이를 빠진 공을, 채진환이 낚아채듯 잡은 뒤 바로 슈팅을 때렸다.
팡!
낮고 강력한 슈팅!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박지원 골키퍼가 공을 쳐냈다.
손에 맞고 튕겨져 나간 공을 백종수가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 선수가 있었다.
바로 알렉산더였다.
『맞고 나오는데요! 하지만 알렉산더가 공을 잡습니다! 알렉산더! 슈우우웃!』
『와써요오오!』
출렁-.
우와아아아!
알렉산더의 벼락같은 슈팅이 고양의 골망을 흔들었다.
박지원과 라시모프가 몸을 날려보았지만 알렉산더의 슈팅이 너무 강했다.
『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일찌감치 선제골이 나왔습니다! 선제골은 홈팀 부산입니다!』
『이야~ 유종찬 선수의 감각적인 패스! 이 패스 한 번에 고양의 수비가 순간적으로 뚫렸고요! 여기서 채진환 선수의 슈팅이 막히긴 했는데, 알렉산더 선수가 바로 골까지 만들어내네요!』
『우승을 향해 가야 하는 고양 선수들의 앞길에 먹구름이 낍니다!』
『부산 선수들도 이대로 가면 3위 싸움을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선제 실점에 고양 선수들과 벤치 모두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곽찬구 감독은 굳은 얼굴로 필드를 주시했다.
“포기하지 마! 아직 시간 많아!”
주장 김지우가 선수들을 독려했다.
선수들도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경기에 바로 집중했다.
이번 시즌 고양은 지속적인 승리로 위닝 멘탈리티가 제대로 잡혀 있었다.
“이번에 우리가 한두 번 역전해 보냐? 이번에도 할 수 있어!”
“맞아! 할 수 있다고!”
“다시 가자!”
선수들이 다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로 돌아오자 벤치에서도 격려가 쏟아졌다.
“힘내라!”
“파이이이튀이이잉!”
오늘 교체로 벤치를 지키고 있는 박요한이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한 선수들의 분위기를 읽은 고양 서포터스들도 더욱 목소리를 높여 응원했다.
챔피언을 향해!
우리의 고양!
오오오~ 너희 뒤에는 우리가 있어!
선제골 이후 오히려 전의가 더욱 불타오르게 된 고양이었다.
그리고 곧 반전이 일어났다.
『고양 선수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좋은데요!』
『선제골 이후 의기소침하지 않은 모습이 상당히 보기 좋습니다! 이게 올 시즌 고양의 주무기죠!』
『지난 FA컵에서 파주를 꺾을 때도 그랬고, 고양 유나이티드의 저력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툭.
오늘 중앙에서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는 김지우가 공을 잡았다.
‘누구에게 줄까?’
오늘 고양의 미드필더에는 장현우, 오세진, 김지우 이렇게 세 명이 편대를 이루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의 특징은 바로 상당히 공격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세진이와 현우 모두 전진 패스를 잘해. 차이점이라면 세진이는 숏패스. 현우는 롱패스가 장기지.’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 모든 생각을 하는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초.
지금은 과감한 선택이 필요할 때다.
“현우야!”
“넵!”
장현우가 공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측면으로 길게 로빙 패스를 넘겼다.
장현우가 공을 잡을 때부터 마치 기다렸다는 듯 움직인 나탈이 공을 잡았다.
나탈은 측면 라인을 타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측면 뭐해!”
이 단 한 번의 플레이로 부산의 측면이 우르르 무너졌다.
터치 라인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부산 감독이 화가 나서 외쳤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순식간에 부산의 측면을 허문 나탈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패스를 찔러넣었다.
데구르르.
빠르게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들어간 공을 박형우가 잡았다.
올 시즌 가장 위력적이고 파괴적인 플레이를 보이는 박형우가 잡는 순간, 부산의 선수 3명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모든 패스와 슈팅 길목이 차단된 상황.
하지만 박형우는 월드컵에서 보여준 월드클래스급 기량을 아낌없이 보였다.
“어엇!?”
『박형우를 둘러싸는데요! 아! 박형우! 뚫어냅니다! 기횝니다! 박형우!』
『다시 와써요오오!』
『박형우 슈우우웃! 아! 골입니다!』
출렁-.
힘차게 출렁이는 부산의 골망.
상대 골키퍼가 손 쓸 틈도 없이 정확한 궤적과 파괴적인 슈팅으로 골망을 뒤흔들었다.
그걸 본 고양의 팬들이 거대한 함성을 만들었다.
우와아아아아!
『엄청난 득점이 나왔습니다! 실점 이후 단 5분 만에 고양이 동점골을 만들어 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시간은 겨우 5분이었습니다!』
『이야! 이거 아까 부산의 선제골 장면하고 비슷한데요! 장현우 선수의 장점이죠? 측면으로 빠지는 긴 로빙패스에 이은 나탈 선수의 측면 돌파! 거기에 박형우 선수의 파괴적인 마무리! 과정과 결과 모두 훌륭합니다!』
『굳은 얼굴로 지켜보던 곽찬구 감독도 박수를 치며 기뻐합니다!』
스코어는 1:1.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 * *
“와, 정말 미치겠네!”
경기를 보는 동안 나는 계속 주먹을 쥐고 있었다. 꽉 움켜쥐고 있는 주먹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만큼 몰입해서 보고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괜찮으세요?”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어둘 걸 그랬나 싶네.”
“하나 드려요?”
“……있어?”
“네.”
“아니, 그걸 왜 가지고 있어?”
“혹시 몰라서요.”
“…….”
“정말 드려요?”
“아, 아니야. 됐어.”
진짜로 청심환을 주려고 하는 김 비서였다.
“어쨌든 이대로 끝인가 했네.”
“도련님이 제일 불안해하시면 어떻게 해요.”
“…….”
“잘 될 거예요.”
평온한 김 비서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 * *
동점골 이후, 경기 주도권은 팽팽해지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런 팽팽한 분위기도 얼마 안 가 균열이 일었다.
『부산이 볼을 소유한 상태에서 공격을 시도합니다.』
『지금 고양의 수비가 탄탄하거든요? 보시면 지역 수비가 상당히 좋단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부산이 고양의 수비를 무력화시키려면…… 어?』
『오세진의 커팅! 이어지는 패스! 박형우가 바로 받고 달립니다!』
『아~ 역습 찬스죠!』
유종찬이 시도한 전진 패스를 오세진이 정확하게 길목에서 차단한 뒤, 바로 전방에 있는 박형우 쪽으로 짧게 내줬다.
『고양의 역습! 빠릅니다!』
『이러면 부산이 위험합니다!』
『고양은 공격수 3명! 부산은 2명입니다!』
공격하는 고양의 숫자가 한 명이 더 많았다.
공격을 진행하던 부산 선수들 대부분이 고양 진영으로 넘어가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부산 선수들이 황급히 진영을 넘어오기는 했지만, 박형우와 나탈, 최전방 사무엘의 역습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팡!
『박형우가 나탈에게! 나탈이 사무엘에게 패스합니다! 사무엘! 골키퍼와 일대일!』
『기횐데요!』
상황을 지켜보던 고양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벤치에 있던 고양 선수단과 스태프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서 상황을 주시했다.
사무엘 앞에는 골키퍼 한 명만 있었다.
그 순간, 사무엘의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렀다.
‘보인다!’
단 한 번의 찬스.
베테랑인 사무엘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왼쪽 옆구리!’
팡!
거리를 좁혀오는 골키퍼의 왼쪽 옆구리 쪽으로 슈팅을 때렸다.
빠르게 날아간 공이 정확하게 골키퍼의 왼쪽 옆구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곧…….
출렁-.
우와아아아!
『골! 골입니다! 고양이 역전에 성공합니다!』
구덕 경기장에는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팬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
경기를 지켜보던 부산의 팬들은 망연자실했다.
실점한 부산 골키퍼는 낙담하며 벌렁 드러누웠다가 일어났다.
『전반 22분! 고양이 역전에 성공하면서 완벽하게 리드를 가져옵니다!』
『이게 바로 고양이죠! 고양의 무서움이 바로 이겁니다!』
『정말 고양 유나이티드는, 이름은 고양이지만, 호랑이네요!』
『네? 아하하. 네.』
중간에 이형욱 캐스터의 애드리브가 들어가긴 했지만, 그만큼 고양 유나이티드의 저력은 무시무시했다.
* * *
역전골에 들어간 순간, 나와 김 비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환호했다.
“이야아아아! 대박!”
“꺄아아악!”
바로 이거지!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기다렸던 역전 골이다.
“이제 리드만 하면 돼! 리드만!”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같은 시각.
지종윤 회장과 박준후 비서팀장이 회장실에서 함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박준후 팀장은 기어코 경기를 뒤집는 득점을 보고 감탄했다.
옆에 있던 지종윤 회장은 더 격하게 반응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이게 바로 우리 고양 유나이티드지! 암! 으하하하!”
평소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의 모습은 없었다.
아마 그룹 내 다른 관계자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굉장히 놀랄 것이다.
“응?”
한창 몰입해서 경기를 보고 있는데 중계 화면에 익숙한 사람이 잡혔다.
지태훈과 김유리였다.
“두 사람도 아주 열심히들 하고 있구만.”
지종윤 회장은 흡족한 미소를 드러냈다.
그는 아들이 열심히 경기장을 직관하며 일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박 팀장.”
“네, 회장님.”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건데 말이야. 저 두 사람, 잘 어울리지?”
“…….”
“왜 대답이 없어? 아니야?”
“……그건 아닙니다만.”
박준후 팀장은 씩씩대는 김진철 이사를 떠올렸다.
회장님 곁에서 동고동락하며 다사다난한 일을 겪었어도, 김진철 이사는 어려운 존재였다.
“진철이 때문에 그래?”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뭐, 진철이도 옛날과 다르게 무작정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렇습니까?”
지종윤 회장은 허투루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박준후 팀장의 눈이 커진 것이다.
“그나저나 태완이 녀석은 좀 어때?”
“지태완 사장은 최근 영신전자 내부 정리를 끝낸 모양인 것 같습니다.”
“흐음.”
“곧 새로운 인사 발표를 진행할 모양이더군요.”
“그 놈아도 이제 시작이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지종윤 회장의 태도에, 박준후 팀장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다가 곧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회장님.”
“음?”
“아무래도 지태완 사장 말입니다. 왠지 위험…….”
박준후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와아아아아!
『고양이 또 득점에 성공합니다! 스코어는 3:1이 됩니다!』
“오오오! 좋았어! 경기는 완전히 끝났구만!”
“…….”
“그나저나 박 팀장 할 이야기가 뭐라고? 태완이가 뭐?”
“……아닙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싱겁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