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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71화 (71/272)

71화

“그날 잘 돌아갔어?”

전에 봤던 때와 달리 분홍색 정장을 입고 나온 손지영이 나를 향해 싱긋 웃고 있었다.

“난 좀 서운했어. 그날 갑자기 날 버리고 나가 버려서.”

손지영은 진심으로 서운한 표정을 드러냈다.

으음.

그날 김 비서의 일로 휑하니 두고 간 것은 맞으니 사과는 해야겠지.

“미안.”

“농담이야. 그것보다 그날 일은 잘 해결됐어?”

“어. 덕분에.”

“잘됐네.”

손지영도 그날의 일을 더이상 꺼내지 않았다.

“그나저나 평가가 대단한걸?”

“……?”

“회장님 생신을 잘 안 챙겼나 봐? 다들 막내 도련님의 출연에 놀라고 있는데?”

“뭐, 그 부분에 있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네.”

“풋.”

돌연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웃음에 저절로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도 그런 내 모습을 봤는지 황급히 대답했다.

“비웃는 건 아니고. 그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너는 재미있는 남자야.”

“내가?”

“어. 막 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도 않고. 숨기는 것 같아 보이면서도 숨기지도 않는 것 같고. 하여튼 그래.”

“원래 나란 사람이 그래.”

“그래?”

그때였다.

뒤에서 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고개를 돌리자 김 비서가 어리둥절하면서 날 보다가 곧 손지영을 보고 경계했다.

“누구시죠?”

평소와 달리 경계 섞인 말투로 묻는 김 비서의 모습이…… 낯설다.

손지영은 개의치 않고 옅은 미소를 보이더니 곧 놀랄만한 말을 꺼냈다.

“저요? 저는 이 남자하고 맞선 봤던 여자예요.”

“……!”

갑작스러운 말에 나와 김 비서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지영은 말을 이어갔다.

“죄송해요. 애인이 있으실 줄은 몰랐어요. 알았다면 맞선을 보지도 않았을 텐데.”

“네? 애, 애인요? 저는 그……!”

평소와 달리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횡설수설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김 비서의 모습이…… 낯설다.

“도련님! 설명 좀!”

그때 김 비서의 호통이 아니었다면 계속 멍하니 있을 뻔했다.

나는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이쪽은 내 비서, 김유리 비서. 그런 사이 아니야.”

“그래? 아~ 그럼 다행이네.”

“그리고 김 비서. 이쪽은 벽수그룹 회장님의 딸이자 본부장인 손지영 본부장.”

“아, 넵. 안녕하세요.”

김 비서는 떨떠름한 얼굴로 손지영에게 인사했다. 손지영도 그녀의 인사를 웃으며 받아주었다.

“난 또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인 줄 알았지. 아니었다면 아직 나한테 기회가 있는 거지?”

“이봐, 그런 말은…….”

손지영에게 뭐라 한마디 하려는데 옆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도련님. 죄송하지만 일정이 있으십니다. 이동하셔야죠.”

“어? 일정?”

“지금 가셔야 해요!”

“어, 음. 맞아. 일정. 그래. 있었지!”

여기서 ‘무슨 일정? 그런 거 없잖아?’라고 했다가는 봉변당할 것 같았다.

나는 일정이 있는 척하며, 황급히 손지영에게 인사했다.

“다음에 보자고.”

“어? 응. 연락할게.”

그렇게 나는 김 비서의 손에 이끌려 파티장 바깥 쪽에 인적이 드문곳으로 이동했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김 비서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부릅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도련님!”

“어?”

“저 몰래 맞선 보셨어요?”

“어, 음. 그게 있잖아.”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지난번에 있던 일들을 모두 얘기하자 김 비서는 뾰로통해진 표정을 풀었다.

“그랬어요?”

“응. 미안. 말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어.”

“알았어요. 도련님이 저를 일부러 속이고 할 그런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으니까요.”

뭐랄까.

김 비서가 갑자기 천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음부터 손지영 본부장은 혼자 만나지 마세요.”

“어?”

“그 여자, 위험해 보여요!”

“위험해……?”

위험하다니.

보통 인물은 아니라고 느꼈지만, 위험해 보이지는 않은데?

“하여튼 그래요! 제 말 따라주실 거죠?”

평소와 다른 김 비서의 행동들이 낯설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런 행동들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나는 싱긋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깜짝 놀란 그녀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김 비서가 걱정할 일은 만들지 않을게.”

“……!”

“자, 그럼 갈까?”

“‘……네.”

김 비서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풀지 않고, 그대로 함께 파티장으로 이동했다.

* * *

“회장님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역시 대기업 회장의 탄생일 기념날은 급이 다르다.

어림잡아 수백명이 찾아온 행사장에서 모두가 회장님의 탄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단순한 생신 파티가 아니었다.

다양한 볼거리들이 즐비했다.

마치 기획 행사라도 하듯, 행사를 진행할 메인 MC를 섭외했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다.

그중에 백미는 역시 선물 증정식.

초대 받아서 온 사람들이 회장님에게 직접 선물을 드리는 시간을 따로 마련한 것이다.

“회장님. 제 사랑을 받아 주십시오!”

“허허. 이거 참.”

업체 사장님들의 진심이 담긴 선물에 아버지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선물의 크기가 작든 크든 자신을 위해 이렇게 신경 써준다는 것에 큰 기쁨을 만끽하고 계신 것이다.

그렇게 돌고 돌다가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김 비서. 준비됐나?”

“네. 마침 도착했네요.”

“좋아.”

준비를 마친 나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아버지에게 걸어갔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막내 도련님이 뭘 준비하셨을까?”

“회장님 생신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지?”

“요즘 되게 잘나간다던데, 대단한 걸 가져왔으려나?”

“뭐, 별거 아니겠지.”

주변 사람들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앞에 서자 눈을 빛냈다.

“흠. 우리 막내가 뭘 준비했는지 기대가 되는구나.”

“제가 곰곰이 생각을 좀 해봤어요.”

“……?”

“아버지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상대로 활약하는 대기업 총수잖아요? 원하는 건 뭐든 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말이죠.”

“흐음.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그래서 돈이나 물건보단 뭔가 그보다 기억에 남길 수 있는 추억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추억?”

“네. 제가 준비한 건 추억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김 비서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김 비서가 대기하던 호텔 직원과 함께 움직였다.

“영상 하나 감상하시죠.”

갑자기 파티장 한쪽에 스크린이 내려왔다.

그리고 곧 준비한 영상이 스크린을 통해 나타났다.

『하루 24시간, 남들과 다른 세상 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큼지막한 문구와 함께 시작한 영상.

불이 꺼진 파티장 안은 조용했다.

모두가 영상에 시선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겸손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곧이어 어린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어린아이가 누군지 단숨에 알아차렸다.

영상이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회장님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에게는 아버지입니다.』

어린 시절, 나와 아버지가 함께 찍은 몇 없는 사진이 영상을 통해 공개되었다.

『남들에게는 회장님으로 보이는 그도 누군가의 가장입니다.』

곧이어 나타난 사진 한 장.

그걸 본 사람들은 모두 두 눈을 부릅떴다. 그중에서 아버지가 가장 격한 반응을 드러냈다.

“저건!”

영상에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가 뜨겁게 연애를 하던 시기에 찍은 사진이었다.

그것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사진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유산처럼 남겨준 사진이었으니까.

“민경아.”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안 가 영상이 곧 끝났다.

영상이 끝났음에도 파티장은 조용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박수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함께 박수를 쳤다.

“고맙다. 덕분에 옛날 생각이 다 나는구나.”

“만족스러우셨으면 좋겠네요.”

“만족했다. 고맙다.”

혹시나 반감을 사면 어쩔까 싶었다.

다행히 아버지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큰형이 있었다.

어느샌가 자리에 앉아 있던 큰형이 나를 보고 있었다.

큰형뿐만이 아니다.

큰형 주변에 앉아 있던 큰형의 사람들도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선이 곱지 않다.

“후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곧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아버지에게 말했다.

“사실 선물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음?”

“영상 하나가 더 있습니다.”

다시 김 비서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준비한 영상이 하나 더 나왔다.

이번 영상은 짧았다. 하지만 짧은 것치고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영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대표님께 소식을 들었습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어? 저 사람 박형우 아니야?”

영상 속에는 다름 아닌 박형우였다. 박형우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영상 속에는 박형우 혼자만 있지 않았다.

『야! 야! 다들 이리와봐! 준비됐지? 자, 하나, 둘,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현재 북중미 월드컵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회장님의 생신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모두가 멍한 얼굴로 그 영상을 보고 있을 때, 내가 웃으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이렇게 제 선물은 두 개입니다.”

아버지도 멍하니 영상을 보다가 곧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한참을 웃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을 잡고 함께 번쩍 위로 들어올리며 말했다.

“여러분, 이 녀석이 바로 내 아들입니다! 하하하!”

그런 회장님의 반응에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나는 그런 상황에 놀랐다가 곧 머쓱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환호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속에 서 있는 김 비서와 눈이 마주쳤다.

웃고 있는 김 비서를 보고 있으니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렇게 회장님의 생신 파티는 이렇게 잘 마무리되었다.

* * *

“같잖군.”

집으로 돌아온 지태완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곧장 부엌으로 향한 그는 양주 하나를 꺼낸 뒤, 벽장 안에 있는 크리스탈 잔을 꺼내 술을 따랐다.

그러고는 빠르게 양주를 한 잔 비운 그는 거칠게 잔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하나같이 다 지태훈! 지태훈! 제길!”

아버지의 생신 파티다.

매년 그가 공들여서 준비하는 기념일이기도 했다.

지태완이 승승장구하고 있어도 아직까지 권력자는 아버지인 지종윤 회장이었다.

그에게 잘 보이려면, 매년 찾아오는 기념일을 잘 챙겨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단 한 번도 회장님의 생신에 참여하지 않았던 막내가 갑자기 참여했다.

파티에 참여한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막내에게 향했다.

안 그래도 요즘 막내에 관한 이야기가 뜨겁게 돌고 있던 상태였다.

지태완을 향한 시선도 단숨에 지태훈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어버린 그였다.

지태훈은 아버지에게 ‘추억’을 선물하며 큰 기쁨을 드렸다.

사실 어린아이 같은 선물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의 것보다 별것 아닌 선물이다.

하지만 선물을 받아든 아버지는 크게 웃으며 만족했다.

그 상황이 지태완을 몹시 신경 쓰게 만들었다.

“이렇게 둘 수는 없지.”

지태완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황 실장.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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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서 황 실장이 불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 실장, 처리해 줘야 할 일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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