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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70화 (70/272)

70화

“쉽지 않네.”

아버지, 아니, 회장님의 선물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거의 30년 만에 선물을 고르는 일이었다.

“회장님께서 술을 좋아하시잖아요? 술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요?”

“술? 흐음.”

김 비서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지간한 술은 다 맛보셨을 정도로, 술을 굉장히 좋아하신다.

내가 과거에 술을 진탕 먹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핏줄이 어디 가지 않은 셈이다.

다만 차이점은 아버지는 즐기는 수준에서 멈춘다는 것 정도?

“어지간한 귀한 술들은 집에 다 있을걸? 김 비서도 알잖아. 회장님 집에 술창고 따로 있는 거.”

“그렇네요. 그럼 직접 담그는 건 어떠세요?”

“당장 주말인데, 술을 담그라고? 게다가 나는 해본 적도 없어.”

“으음.”

정말 고민된다.

아버지가 다른 일반적인 아버지였다면 고르기 쉽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톱기업 회장님을 아버지로 둔 이상 선물을 고르는 일도 쉽지 않다.

“아버지 생신 때 사람들도 많이 오겠지?”

“그렇겠죠.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요.”

“김 비서는 되게 잘 알고 있네?”

“도련님 대신 제가 꾸준히 대신 다녀왔었으니까요.”

“……뭐?”

“도련님께 말씀드렸어도 크게 관심 없으셔서 그냥 혼자 조용히 다녀왔었어요.”

“…….”

괜히 미안해지네.

“미안해.”

“이제라도 하면 되죠. 도련님이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선물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한참을 고민하는데, 김 비서가 돌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꺼냈다.

“혹시 저희 아빠한테 물어보는 건 어떠세요?”

“엥? 아버님? 아니, 김 이사님?”

“네.”

아버님이라고 말했다가 후다닥 김 이사로 호칭을 바꿨다.

다행히 김 비서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아니, 관심 없을 수도 있다.

“저희 아빠가 회장님을 곁에서 오래 모셔왔으니까 조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나만 보면 으르렁거리는 김진철 이사가 퍽이나 좋다고 조언을 해줄까?

김진철 이사는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내뿜는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김진철 이사하고는 아주 오래전에 꽤 큰 사건 하나를 겪은 적이 있었다.

김 비서도 모르는 그런 사건.

“도련님? 괜찮으세요?”

“어? 아니야.”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반응했다.

하지만 내가 김진철 이사를 극도로 어려워했던 사건을 떠올리니 식은땀이 절로 났다.

『이런 정신 나간 애송이를 봤나!』

콰아아앙!

아주 오래전, 강남에서 신나게 술을 먹으며 방탕하게 놀던 중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출두한 김진철 이사와 마주쳤다.

재벌가 도련님들만 가던 강남 클럽 한복판에서 마주한 김진철 이사는 나한테 당장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김진철 이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꺼지라고 했다가 역으로 분노한 그에게 엎어치기를 당했다.

그날 이후 나는 김진철 이사만 보면 꼬리를 말고 다녔다.

이 사건은 김 비서도 모르는 일이다.

“괜찮을 거예요.”

“어?”

“아버지도 옛날하고 다르세요.”

“그, 그래?”

“네. 그리고 저도 함께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으실 거예요.”

“…….”

딱히 방법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김 비서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니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알았어.”

그렇게 우리는 김진철 이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뭐? 회장님의 선물?”

여전히 호랑이 같은 매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김진철 이사였다.

그는 회장님에게 줄 선물과 관련해서 조언을 구한다고 하자 눈을 부릅뜨며 날 노려봤다.

‘헐, 심장 터지겠다.’

지난번에는 아버지하고 함께 있어서 견딜 만했지, 지금은 전혀 아니다.

“하하하!”

김진철 이사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이상한 말을 꺼냈다.

“철부지 애송이가 정신 차렸다고 하더니, 철까지 들려는 모양이군.”

“…….”

“회장님에게 줄 선물. 정말 쉽지 않을 거다.”

“…….”

“회장님 생신날에 찾아오는 사람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나?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야. 정치, 법조계, 재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온다고. 심지어 해외에서도 회장님을 뵈러 찾아온다.”

“으음.”

“네가 그런 사람들을 뚫고 과연 회장님의 마음에 들 선물을 드릴 수 있을까?”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김진철 이사가 주는 압박이 상당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김 비서가 끼어들었다.

“아빠!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요!”

“크흠!”

김 비서의 호통에 김진철 이사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뭐,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아무리 그 사람들이 호화스러운 선물을 회장님에게 준다고 해도, 너는 회장님의 아들이다. 자식이 주는 선물은 그 어느 때보다 뜻깊지.”

“아, 그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님의 눈은 높다. 특히 많은 이들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 선물이라면 회장님도 흡족해하시겠지.”

“……!”

“네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김진철 이사가 비릿한 미소를 드러내었다.

확실히 그런 선물을 준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도 여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해낼 겁니다.”

“호오.”

“어쨌든 조언 감사합니다.”

나는 김진철 이사를 향해 허리숙여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옆에 있던 김 비서도 인사를 하고 곧바로 내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김진철 이사는 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 * *

그날이 왔다.

우리는 최대한 단정한 차림으로 호노캄 호텔로 향했다.

호노캄에 도착하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중에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야~ 여기서 보네?”

“백태현. 네가 여긴 왠일이냐?”

“아버지가 형들 대신해서 나보고 다녀오라고 하시더라.”

“그래?”

“지금 회장님하고 인사한 길이야. 안에 계신다. 들어가 봐.”

“어.”

백태현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봐도 어울린단 말이야.”

“…….”

수많은 인파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회장님.”

“음? 뭐야? 네가 여기 왜 왔어?”

“왜 왔긴요. 생신 축하드립니다.”

“허어.”

지종윤 회장은 진심으로 놀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만 놀란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도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입니다. 여기 계신 지 회장님의 막내아들이고요.”

놀라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제야 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내게 악수를 건네왔다.

“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영신텔레콤 사장으로 임명된 민제국이라 합니다.”

“민 사장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저는 영신식품 사장 강민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강 사장님.”

역시 아버지 곁에 있는 인물들 모두 거물들이었다.

그룹 사람들하고 많은 교류를 하지 않다 보니 얼굴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김 비서도 왔네?”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강민수 사장이 김 비서를 보고 알은체했다.

김 비서도 그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사장님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미처 연락드리지 못했네요.”

“아니야. 아니야. 김 비서도 바빴을 텐데 말이야.”

내가 눈빛으로 서로 무슨 관계냐고 묻자 김 비서가 서둘러 대답했다.

“예전에 제가 내부 교육 프로그램 이수했을 때 책임자셨어요.”

“오, 그랬군.”

아마 유망주 프로그램을 말하는 건가 보다. 그 프로그램의 책임자면 상당히 대단한 인물일 것이다.

“그럼 저희는 이만 자리를 비켜드리죠. 부자간에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민제국과 강민수는 자리를 비켰다.

그러자 김 비서도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도련님, 저는 잠시 김 이사님 뵈러 갈게요.”

“알았어.”

그렇게 김 비서까지 자리를 비우면서 나와 아버지 둘만 남았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돌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먼저 말문을 여셨다.

“대표 노릇은 할 만하냐?”

“네, 음, 아니요. 어렵네요.”

어렵지 않다고, 할 만하다고 호기롭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내 성격상 그렇게는 못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허허 웃음을 흘리셨다.

“원래 사업이란 게 그런 거다. 사업뿐이더냐? 세상만사 쉬운 일 하나 없다. 남들은 잘만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잘 안 되는 것 같고.”

“…….”

“하지만 그건 네 착각이다. 너도 잘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큰 사람으로 성장하는 거지. 과정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아버지.”

진심 어린 아버지의 조언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더 나아가 그간의 생각을 꺼냈다.

“얼마 전만 해도 너를 볼 때면 안타까웠다. 내 잘못인가 싶었지. 흔들리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먼저 보낸 부인에게도 미안하고.”

“…….”

“하지만 지금의 너를 보면 점점 안심되는구나. 잘하고 있다. 그래서 고맙고 더 미안하다.”

“아버지, 저는…….”

“오늘 와줘서 기쁘구나.”

순간 울컥할 뻔했다.

하지만 감정대로 할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막무가내로 반응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아버지, 드릴 선물이 있어요.”

“음? 선물?”

“네. 이따가 보여드릴게요. 지금은 안 돼요.”

“……?”

나는 잠시 아버지 곁을 벗어났다.

오늘 아버지 생신이 가장 중요했지만,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사실 이곳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아, 있군.”

역시나 있을 줄 알았다.

“의원님.”

“오! 태훈아!”

지난번 칼리드 왕자가 주최했던 파티에서 만난 지태선 의원이었다.

그는 날 보며 환한 얼굴을 드러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 잘 지냈지. 그것보다 태훈이,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할 이야기요?”

“어. 그때 일은 정말 미안했다. 나도 그 녀석이 그런 몹쓸 놈인지 몰랐어.”

서지후는 그날 이후 보좌관직에서 잘렸다고 한다.

그놈은 시민당 내에서 장래가 유망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 특성상 요즘은 국회 내에서도 이성 문제에 민감한 편이었다.

지태선 의원은 바로 시민당 내부 책임자들에게 서지후의 과거를 이야기했고, 시민당은 조용히 서지후를 내보냈다.

공교롭게도 대선도 얼마 남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시민당은 다음 정권 지속을 위해 내부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때였다.

그랬기에 서지후를 내보내는 데 막힘이 없었다.

“그럼 그놈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적어도 우리 시민당과는 함께 할 수 없을 거야. 공화당 쪽에서 서지후를 탐내는 것 같기는 한데, 그쪽도 사실을 알게 된다면 쉽지 않을 거야.”

“그럼 사실상 정치 생명은 끝났다고 보면 되겠군요.”

“그렇지.”

“그거 참 잘됐네요.”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김 비서한테도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건 그렇고 요즘 태훈이 네 주가가 많이 높아졌더구나.”

“제가요?”

“그래. 시민당 내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재벌가들이 있는데, 그들 사이에서 네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모양이야.”

“나쁜 얘기던가요?”

“반반이지. 어쨌든 너도 주목을 받고 있으니까 대외적 이미지도 많이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명심하죠.”

“아, 그리고 혹시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하고. 이럴 때 서로 돕고 도와야지. 안 그래?”

“저도 바라던 바였습니다.”

“하하! 그래, 우리 서로 통하는 게 많구만! 그럼 조만간 한번 만나는 게 어떤가?”

“좋습니다. 제가 좋은 곳 알고 있습니다.”

“오! 그거 기대되는구먼!”

지태선 의원과 다음을 기약하며 웃으며 헤어졌다. 그런 나를 향해 예상치 못한 인물이 덥석 찾아왔다.

“오랜만이야?”

“어?”

바로 손지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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