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그게 뭔 소리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스러운 나는 술잔을 비우고 뜨거움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되물었다.
그러자 백태현이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뉴스 기사에 종종 나오더라. 경기장에서 김 비서하고 함께 경기 보는 거.”
“그게 뭐?”
“사람들이 다들 잘 어울린다고 하던데?”
“…….”
“김 비서 정도면 괜찮지 않냐? 외모 훌륭. 능력도 훌륭. 영신 그룹이 키우는 인재라고 소문이 자자 하던데.”
“너, 김 비서가 왜 인재라고 평가받는 줄 알아?”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아냐? 다들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아휴.”
김 비서가 영신그룹 에이스라고 소문이 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영신그룹에는 내부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그동안 회사가 가진 모든 노하우와 외부에 우수한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뽑히면 차기 회사 임원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수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기로 악명 높았다.
회사에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도전해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여기에 김 비서가 지원했었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하게 1위로 프로그램을 통과했다.
내가 잠깐 1년 정도 김 비서와 만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 비서는 그룹은 물론이고 타 회사에서도 에이스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김 비서가 어디로 발령받을지 기대가 컸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녀는 내 비서로 남았다.
내부에서 굉장한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회장의 특별 지시가 있었기에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그녀는 여전히 내 비서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정도야?”
“어.”
“이야~ 대단하네.”
회귀 전에는 그녀가 대단하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녀가 곁에 있었기에 내가 지금도 무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존재가 힘이 된다.
“그럼 더욱 잡아야 하지 않냐?”
“뭐?”
“나 같으면 잡았다.”
“…….”
김 비서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이것이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지 감정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나를 좋게 볼지도 의문이었다.
“김 비서는 가족 같은 존재야.”
“그럼 내가 대시해도 되냐?”
“뭐? 미쳤냐?”
“하하하! 농담이야! 어쨌든 나처럼 후회하지 마라!”
“……술맛 떨어졌다. 이만 간다.”
“야! 벌써 가냐!”
소리치는 백태현을 뒤로한 채 나는 그곳을 떠났다.
* * *
시간은 흘러가서 어느덧 월드컵 시즌이 다가왔다.
『드디어 2026 북중미 월드컵이 개막했습니다!』
처음으로 48개국으로 치러지는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대한민국도 그 어느 때보다 월드컵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
“도련님. 이번 월드컵은 어떻게 될까요?”
“글쎄.”
“저하고 내기하실래요?”
“음? 무슨 내기?”
나는 김 비서와 함께 집에서 월드컵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기하자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우리나라가 어디까지 가는지 내기해요.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어때요?”
“소, 소원 들어주기?”
소원 들어주기란 말에 내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음. 좋아.”
나는 뒤로 빼지 않았다.
그러자 김 비서가 싱긋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럼 도련님은 어디까지 갈 것 같아요?”
나는 내심 이 내기에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나로 인해 여러 가지가 바뀌긴 했지만 원래 월드컵의 성적을 알고 있기에. 적어도 그때보다 못하지는 않겠지.
“최소 32강.”
“조별리그 통과?”
“어. 김 비서는?”
“음.”
김 비서는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저는 최소 16강?”
“16강?”
김 비서는 상당히 높게 걸었다.
정말 그녀는 16강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걸은 걸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가?
무엇이든 그녀가 이렇게 걸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어째서 16강까지 간다고 보는 거야?”
“우리 팀 선수가 있잖아요.”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에 나는 순간 허탈함이 밀려왔다.
진짜 그 이유 때문인가.
뭐, 그래도 상관없다.
“지켜보면 알겠지.”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렀다.
마침내 대한민국의 첫 번째 조별리그 경기가 시작됐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여기는 멕시코시티에 있는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경기장입니다!』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경기장은 8만 7천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이다.
『1970, 1986년도에 이곳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경기장에서 멕시코 월드컵을 치른 전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홈팀 멕시코와 32강을 건 한판 승부를 치르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이번 북중미 월드컵의 홈팀 중 하나인 멕시코였다.
『멕시코는 우리와 상당히 오랜 기간 인연이 있는 팀인데요. 최근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우리가 상당히 열세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모두가 승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때, 대한민국의 선발 라인업이 발표됐다.
『대한민국의 선발 라인업입니다. 골키퍼 김성태. 이어서 백포라인입니다. 고태진, 김영준, 박상영, 황성주. 미드필더에는 장현우, 박기주, 강철인, 그리고 전방에는 최태국, 박형우, 박종우가 있습니다! 감독은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입니다!』
『평가전에서부터 사용했던 박형우 제로톱이죠? 과연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도련님! 저희 팀 선수들이 선발로 나왔어요!”
나와 함께 월드컵을 보고 있는 김 비서는 우리 팀 선수들이 선발로 나오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최대한 흥분을 감추며 경기에 집중했다.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지난번처럼 변수가 올까? 미래가 달라질까? 달라진다면 긍정적으로? 아니면 부정적으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실 지금 이 상황도 내가 아는 미래에서는 없던 그림이기 때문이다.
미래에서 박형우와 강철인이 공존하는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래에 출전하던 선수들과 선발 구성도 많이 달랐다.
그렇기에 이 상황이 과연 어떤 미래를 불러올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홈팬들의 압도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멕시코 선수들입니다! 시작부터 상당히 빠르게 몰아붙이는데요!』
홈팀답게 멕시코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초반부터 힘차게 몰아붙였다.
초반부터 위기 상황들이 찾아왔지만 김성태 골키퍼의 선방과 수비수들의 육탄 방어로 무사히 넘겼다.
그렇게 전반 15분 정도가 지나갈 무렵,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강철인이 공을 잡습니다! 바로 전방으로 길게 내주는데요! 박형우가 공을 잡습니다! 박형우, 멕시코 선수들을 앞에 두고 때립니다! 슈우우웃!』
『이걸 때리나요!』
멕시코 선수들이 박스 앞에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박형우가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팡!
박형우의 발끝을 벗어나 궤적을 그리며 강하게 날아가는 공.
놀랍게도 멕시코 선수들을 교묘하게 스치고 지나가더니 그대로 골망으로 향했다.
놀란 멕시코 골키퍼가 몸을 휙 날렸지만, 반박자 대응이 늦었다.
출렁-.
우와아아아!
『골! 골입니다! 엄청난 중거리 득점이 나왔습니다! 대단합니다! 대한민국의 박형우가 첫 번째 득점을 만들어냅니다!』
『이야~ 정말 대단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때릴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했는데요! 이걸 이렇게 만드네요!』
지켜보던 모두가 환호했다.
포효하는 박형우와 축하해주는 동료들.
그리고 득점 장면을 지켜보다가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기뻐하는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꺄아아아! 도련님! 골이에요! 골!”
“좋았어!”
지켜보던 우리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김 비서는 나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나도 김 비서를 끌어안고 기뻐하다가 순간 흠칫했다.
김 비서도 머쓱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박형우 선수의 득점은 과거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가 러시아를 상대로 조별리그 1차전을 상대했을 때 만들었던 그 득점을 떠올리게 하네요!』
『우리가 시작부터 조금 밀리고 있던 상황인데요!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 우리가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슈팅이 그대로 득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박형우의 벼락같은 중거리 득점으로 대한민국이 리드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멕시코가 동점골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지만, 리드를 되찾은 대한민국은 쉽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치맥이 맛있네. 역시 축구에는 치맥이지.”
“그렇네요. 한잔할까요?”
“그러지.”
나와 김 비서는 배달시킨 생맥주와 치킨을 기분 좋게 먹으면서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한국 코너킥 준비합니다! 강철인 선수가 준비하는데요!』
“오, 또 골 넣나?”
“제발! 제발!”
우리는 완벽하게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아까 했던 고민은 모두 날아간 지 오래였다.
『올라가는데요! 헤디이이이잉! 아! 아깝습니다! 장현우 선수의 헤딩이 아깝게 골대 위로 벗어납니다!』
『오늘 박형우 선수와 장현우 선수의 몸놀림이 아주 좋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경기 때도 그렇고 지난 최종 평가전 때도 그렇고, 이 두 선수의 활약이 정말 눈이 부십니다!』
『아마 지태훈 대표도 집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고 계실 거 같은데, 흐뭇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겠죠?』
“쿨럭!”
치킨 먹다가 사례가 들렸다.
뭐야. 공중파 중계에서 내 이야기가 왜 나와?
갑자기 중계위원들이 내 이름을 언급해서 깜짝 놀랐다.
옆에서 같이 치킨 먹던 김 비서도 화들짝 놀란 건 덤이다.
“도련님 이러다 유명인 되시겠어요.”
“이런 식으로 유명인이 될 생각은 없는데…….”
“정말요?”
“아, 그러니까. 음, 됐어!”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다 튀어나왔다.
『경기는 아까와 달리 대한민국이 완벽한 리드 속에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멕시코 현지팬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보이는데요.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안 좋을 수밖에 없죠. 멕시코가 이번 월드컵에서 기대했던 바가 컸거든요. 게다가 이번 월드컵은 예전과 달리 1패라도 하면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면 대한민국은 32강 토너먼트로 올라갈 확률이 크다는 뜻이죠?』
『그렇습니다.』
결국 멕시코전 경기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다.
추가 득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박형우의 결승골로 대한민국이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로 대한민국은 32강 토너먼트를 향한 9부 능선을 넘게 되었다.
나와 김 비서는 경기의 여운을 만끽하며 즐거운 앞날을 상상하며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만 해주면 우리 구단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겠지?”
“그렇겠죠? 월드컵 스타가 나온 구단의 매출 증가는 예전부터 있어 왔으니까요.”
그런 우리의 예측은 정확했다.
멕시코전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박형우와 장현우는 경기가 끝나고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과 관련 굿즈 구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박형우와 장현우를 영입한 일은 대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 맛에 구단 대표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