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다음 날, 나는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대표님! 지난번 파주FC 관련 징계 결과가 나왔습니다!”
“엇? 어떻게 됐던가요?”
“벌금 500만 원이랍니다!”
“고작 500?”
“네, 그동안 다른 사례들을 검토해서 나온 결과라고 합니다.”
“음. 좀 많이 아쉬운데요.”
지난번 파주FC와 FA컵 경기를 치르면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프로축구연맹에서 조사를 진행했었다.
우리가 공식 SNS 계정에 올리면서 사건을 공식화했기 때문에, 프로축구연맹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파주FC는 벌금 500만 원의 징계를 받게 되었다.
“뭐, 파주FC는 탈락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죠.”
만약 파주FC가 우리를 꺾었다면 모를까, 이미 우리는 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굳이 여기서 우리가 더 뭔가 하기도 애매했다.
“대표님.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음?”
“사무엘도 벌금 확정됐습니다.”
“뭐라고요?”
“그, 파주FC하고 경기하다가 골 넣고 이재신 단장 욕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고.”
“…….”
“그래서 사무엘도 벌금 500만 원 확정입니다.”
나는 미간을 좁혔다.
사무엘 일을 잠깐 잊고 있었다.
그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날 이재신 단장을 향해 욕설을 날린 것을 두고 잘못됐다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그 규칙에 위반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어제 지급할 포상금 500. 그거 사무엘에게 지급하지 말고, 벌금으로 내세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선수들과 맺은 계약서와 관계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갑자기 주지 않겠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죠.”
“그렇기는 한데…….”
“만약에 선수가 뭐라 하면 제 앞으로 데려오세요.”
“아, 넵.”
그렇게 천지원 부장이 사무엘에게 해당 사항을 전달하러 갔다.
다행히 사무엘은 쿨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
“제가 잘못했으니 받아들여야죠. 괜찮습니다.”
사무엘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시원하게 욕설을 하면서 그동안 가졌던 스트레스와 분이 모두 풀렸다고 한다.
“500이면 싼값이죠.”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점심에 요를의 신성한 대표를 만났다.
신성한은 나를 만나자마자 엄청나게 반가워했다.
“어서 오세요~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아유~ 잘 지내다 못해 행복합니다.”
신성한은 여전히 특별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도 복장에 굉장히 시선이 많이 갔었는데 지금도 그랬다.
내가 자연스럽게 옷을 쳐다보자, 신성한이 방긋 웃으며 설명했다.
“이번에 저희가 발매할 리미티드 에디션에 들어갈 티셔츠입니다.”
“혹시 유리구슬인가요?”
“네! 맞습니다. 유리구슬이 북미 월간 1위를 달성했거든요! 기념으로 저희 회사에서 한정판 굿즈를 찍어내는 중입니다!”
“잘 됐네요.”
요를은 마침 자사에서 찍어낸 ‘유리구슬’ 작품으로 글로벌 메가 히트를 치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로맨스 판타지 작품이다.
이미 원작을 기반으로 다양한 OSMU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넓은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죠. 후후후.”
요를은 최근 킨텍스 쪽에 있는 오피스 건물로 이사를 진행했다.
건물 한 층을 다 사용할 정도로 요를은 급속 성장을 하고 있었다.
“직원들도 많이 뽑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최근에 좀 많이 뽑았죠. 이제 한 50명 정도 될 겁니다.”
“50명이라…… 저희보다 많네요.”
우리 구단 직원은 고작 20명 정도뿐이다.
K리그 구단들이 생각보다 직원을 많이 운영하지 않은 편인데, 그중에서도 우리는 적은 편이었다.
그런데 요를은 우리보다 2배는 더 많았다.
경영하는 입장에서 잘 되는 회사를 보면 조금 부럽기는 했다.
“지 대표님도 잘되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 저희도 순항 중이죠.”
“함께 잘 되니 좋네요.”
우리는 서로를 칭찬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나저나 그 저희가 후원하고 있는 좌석이 상당히 인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네. 사전 예매할 때마다 제일 먼저 예매됩니다.”
“오, 그거 좋은데요?”
“유리구슬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으니까요. 물론 다른 인기 작품도 같이 효과가 있고요.”
우리가 제공하는 VIP 좌석에는 요를의 인기 작품들과 함께 하는 좌석이 따로 존재한다.
사실 그 좌석을 예매하는 사람들은 축구를 보기 위해 예매하는 것은 아니었다.
제공되는 한정판 굿즈를 받기 위해 예매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반드시 현장에서 경기를 관람한 이후에 해당 굿즈가 지급되었다.
그렇게 굿즈를 받기 위해 축구장에 왔다가 우리팀 축구를 보고 팬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즉, 비축구팬을 끌어 당겨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신규 유입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은 많았다.
“지 대표님도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저희도 꽤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네. 축구팬들 사이에서 저희 작품이 소문이 많이 난 모양입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잘 나가고 있다 보니 주목도 많이 받고 있는데, 저희도 그런 낙수효과를 함께 보고 있는 거죠.”
“그건 좋네요.”
“그렇죠? 덕분에 저희 작품들 대부분이 매출이 증가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얘기하는 신성한은 상당히 행복해보였다.
회사 매출이 올라갔으니 행복하지 않을 대표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감사한 마음에 저희가 추가 투자를 진행할까 합니다.”
“네?”
“올해는 조금 어렵고, 내년에 저희 글로벌 매출이 들어오는데, 그때 저희가 추가 투자를 진행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저희야 너무 감사하죠.”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오늘 신성한 대표를 만나려고 했던 것은 투자를 좀 더 늘려줄 수 있는지 문의하고자 왔었다.
그런데 신성한 대표가 먼저 고맙다고 증액 투자를 제안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도 서로 잘해보자고요. 지 대표님.”
“물론입니다. 함께 가시죠.”
우리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남은 이야기들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 * *
그날 저녁.
나는 강남으로 향했다.
강남의 어느 고급 술집으로 들어간 나는 그곳에서 익숙한 인물을 만났다.
“여~ 이게 누구야? 우리 지 대표님 아니야~?”
화려한 복장의 백태현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백태현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 가서 책상을 강하게 쳤다.
쾅!
“아이쿠! 깜짝이야!”
“너 이 새끼! 돈 언제 줄 거냐?”
“으, 오자마자 돈 얘기부터 꺼내냐?”
“100억 준다는 놈이 30억만 주냐? 70억 어디 갔어?”
“아, 나도 100억 한 번에 주고 싶었지. 그런데 올해 내 명의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딱 그 정도더라고.”
“회사 투자로 가면 되잖아?”
“회사 인수합병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분위기가 어지러워. 나라고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야.”
“끙.”
백태현은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네 덕분에 우리 제약 회사가 업계 2위까지 올라가서 고마워. 그런데 막상 사장 자리 올라가니까 이게 막, 뭘 해야 될 게 많더라.”
“…….”
“지 대표! 내가 무슨 말하는지 이해되지? 지 대표는 나보다 먼저 겪었잖아! 응?”
“알아. 안다고. 근데 나도 계속 기다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야.”
“알았어. 돈만 생기면 바로 즐게. 그래도 막 당장 돈이 급한 건 아니잖아. 얘기 들어보니까 너 여기저기서 돈 많이 모았다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니, 그게 아니고. 시간을 좀 달라, 이거지.”
“에휴.”
백태현에게 받아낼 돈이 자꾸 늘어지고 있다.
녀석이 일부러 미루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김 비서를 통해서 미리 알아본 결과, 백태현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으니까.
“요즘 좀 어떠냐?”
“어? 아, 일 배우느라 정신없어! 나 이렇게 나온 것도 오랜만이야! 너 만나는 거 아니었으면 이렇게 나오지도 못했어!”
“사장 자리 쉽지 않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백태현 앞에 놓인 양주를 손에 쥐고 빈 잔에 따라줬다.
자연스럽게 백태현도 빈 잔에 양주를 따라준 뒤, 우리는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크으. 오랜만에 양주 마시니까 독하다.”
“너 툭하면 강남 클럽이나 고급 바 다니지 않았냐?”
“아, 이제 그건 다 옛날 일이야! 사실 몰래 가고 싶긴 한데 저번에 걸렸거든.”
“…….”
“정말 서럽다.”
백태현은 진심으로 서글퍼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다시 빈잔을 채워주었다.
“그건 그렇고 너는 좀 어때? 잘나간다며?”
“분위기는 좋지. 하지만 그만큼 힘들어.”
“그거 배부른 소리 아냐?”
“듣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잘나가는 걸 유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하긴.”
백태현도 내 잔을 채워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태현아. 요즘 너희 회장님은 뭐 하시냐?”
“우리 아빠? 요즘 일 많이 줄이셨어.”
“그래?”
“어. 안 그래도 우리 그룹 내부에서 조만간에 아빠가 후계자 발표할 것 같다고 난리야.”
“어떻게, 네가 될 거 같냐?”
“모르지. 근데 어떻게든 되게 해야지.”
백태현은 천산 그룹 셋째 아들이다.
아무리 그가 최근 제약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지만, 위에 두 형들을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뭐, 굳이 회장 안 돼도 크게 미련은 없어.”
“뭐?”
뜻밖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놀란 나와 달리 백태현은 제법 진지했다.
“전에는 형들을 이기고 총수 자리에 올라가는 게 꿈이긴 했는데, 막상 내가 사장 자리에 올라가고 보니까 그룹 전체를 관리하는 총수에 어울릴까 생각이 들더라고.”
“…….”
“마음 같아서는 지금 있는 위치라도 잘 관리하고 싶다.”
백태현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뜨거움이 확 밀려왔다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상황에서 말했다.
“백태현, 너 많이 달라졌다?”
“뭐, 살다 보니 그렇게 됐지.”
“내가 알던 백태현은 망나니 주제에 허황된 꿈을 꾸던 놈이었는데.”
“뭐? 하~ 자식. 그건 내가 할 말이거든? 너도 만만치 않아!”
“시끄러.”
우리는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취기가 들어간 상태에서 옛날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백태현이 혀가 살짝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야, 태훈아. 너 혹시 윤희라고 기억하냐?”
“윤희? 걔가 누군데?”
“아, 왜. 그 우리하고 같은 고등학교 다니던 여자애.”
“음.”
기억이 날 듯 말 듯하다.
“어쨌든 그 친구가 왜?”
“그 친구 이번에 결혼한덴다.”
“결혼? 누구하고?”
“벽수 그룹 사람하고 결혼한데.”
벽수 그룹이란 말에 순간 일전에 만났던 손지영이 떠올랐다.
하지만 모르는 척하고 말했다.
“근데 그 얘기는 왜 꺼내냐?”
“내가 윤희 좋아했거든.”
“뭐?”
천하에 망나니 중 쌍망나니였던 백태현이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다고?
여태 그와 가까운 사이였던 나는 왜 몰랐지?
“하~ 사랑했다. 윤희야!”
“……미친놈.”
갑작스러운 고백에 먹었던 술이 순간적으로 깰 정도다.
“좋아하면 붙잡지 그랬냐.”
“그러게 말이다. 붙잡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네.”
“뭐, 누가 됐든 너 같은 녀석하고 결혼할 여자가 불쌍하긴 하다.”
“이 새끼가!?”
“하하. 농담이야, 농담.”
순간적으로 도끼눈을 하던 백태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그가 갑자기 공격을 해왔다.
“야, 태훈아. 너는 김 비서하고 결혼 안 하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