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아,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제주FC가 2골 먼저 앞서 나갑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홈구장은 찬물을 끼얹듯 가라앉았다.
전광판 스코어보드를 바라보는 홈팬들은 망연자실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0:2 제주FC]
사실상 1위 결정전 같은 대결로 봐도 무방한 경기였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수단과 팬들 모두 1위로 승격하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여지는 상황은 참담했다.
예상과 다른 상황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정신 차려! 아직 시간 남았다! 따라잡으면 돼!”
곽찬구 감독이 필드에 있는 선수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래! 감독님 말씀이 맞아! 아직 시간 남았어! 전반전이라고!”
주장 김지우도 동료 선수들을 독려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도 어떻게든 기운을 내어 최선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앞서나가기 시작한 제주FC는 여유가 있었다.
촘촘한 수비로 고양 유나이티드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곽찬구 감독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초반에 어이없이 실점을 내준 게 뼈아팠어.’
전반 킥오프가 이루어지자마자 말도 안 되는 실수가 터져 나왔다.
공을 잡은 오세진이 수비수가 있는 뒤쪽으로 패스를 했다.
그런데 공을 받아야 했던 라시모프와 사인이 맞지 않았다.
급하게 공을 잡으려다가 라시모프가 앞으로 넘어졌다.
그사이 제주FC의 공격수 장지원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했다.
『오늘 고양은 어려운 경기가 되겠네요. 제주FC가 경기 시작 1분 만에 득점을 만들어 냈었는데요, 지난번 1라운드 경기에서 고양 유나이티드가 경기 시작 1분 만에 PK를 만들었던 장면이 떠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두 팀이 K리그2에서 가장 강한 팀들이거든요? 실제로 순위 경쟁에서도 굉장히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두 팀 팬들의 입장에서는 재미 보단 긴장되겠지만요.』
『하하, 네. 맞습니다.』
『사실 아까 이어지는 두 번째 실점 장면도 고양 입장에서는 뼈 아팠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전반 10분 코너킥 상황에서 약속한 플레이로 만든 득점인데, 현재까지 제주FC의 초반 전략이 잘 먹혀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곽찬구 감독의 굳은 얼굴이 카메라 화면에 비춰지고 있는데요. 공격의 핵이었던 박형우와 장현우 선수가 모두 빠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곽찬구 감독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하지만 지금은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을 믿어야 할 때였다.
급하게 교체 카드를 사용했다가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진수야! 좀 더 라인을 올려! 지우, 너는 가운데를 지키고, 세진아! 좀 더 적극적으로 공격해! 사무엘! 너도 위에만 있지 말고 내려와서 받아!”
곽찬구 감독은 교체보다 부분적으로 선수들의 위치를 조정했다.
선수들도 감독의 주문을 받고 플레이를 조정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전반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고양 유나이티드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올린다!”
2선과 3선을 오고가던 김지우가 공을 잡고 측면으로 길게 패스를 했다.
공은 절묘하게 제주FC의 오른쪽 측면 뒷공간으로 툭 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진 공을 박요한이 쏜살같이 뛰어가서 낚아챘다.
『측면에 박요한이 뜁니다! 상당히 빠르게 뛰어가는데요! 박요한, 올리나요?』
『여기서 올려야죠~』
『박요한 크로스! 시도하다가 박스 안쪽으로 돌파합니다! 박한빈 선수가 막아서는데요! 박요한 패스합니다!』
『어~ 찬스죠~?』
제주FC 선수들은 당연히 크로스를 올릴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박요한은 그런 생각을 깡그리 뒤집듯, 크로스 대신 과감한 드리블로 측면에서 상대 PK박스 안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과감하게 쇄도하던 사무엘 쪽으로 찔렀다.
『사무엘인데요!』
『때려야죠!』
『슈우우웃! 고오오올! 들어갑니다! 사무엘이 마침내 추격골을 만들어내면서 스코어는 1:2가 됩니다!』
『바로 이거죠~ 김지우 선수의 측면을 향한 전진 크로스 상당히 좋았고요. 거기에 박요한 선수의 측면 드리블에 이은 마무리 패스까지. 아주 좋았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경기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아직 후반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기서 고양 유나이티드가 한 골 더 넣으면 경기는 진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죠. 이제 제주FC는 쫓기는 입장이 되었죠. 제주FC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전반전 막판에 만들어진 추격골.
이 골은 고양 유나이티드에게 희망을 주는 득점이 되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이 찾아왔다.
곽찬구 감독은 하프타임에 진행된 짧막한 인터뷰를 마치고 선수들이 있는 드레싱룸으로 들어왔다.
땀을 흘리며 힘겨워하는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치며 외쳤다.
“자! 자! 아주 잘하고 있어! 솔직히 전반 초, 중반만 해도 실망스러운데, 이렇게만 쭉 가자! 알겠어?”
“네!”
“후반전에 제주FC는 지키는 척하다가 역습으로 한 방 날릴 수도 있을 거다! 우리는 그 한 방만 조심하면 돼! 알겠어?”
“네!”
“좋아! 후반전에 우리 한 번 큰일 내보자!”
“네!”
그렇게 분위기를 정돈한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후반전에 임했다.
* * *
나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만만치 않네.”
“제주FC도 어떻게든 우리를 밀어내고 1위로 올라서고 싶을 겁니다.”
천지원 부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대가 작정하고 준비한 모습이 보였다.
전반 시작하자마자 실수로 1골 먹혔지만 두 번째 골은 코너킥 상황에서 내준 실점이었다.
상대는 약속된 플레이로 완벽하게 우리 수비를 속이고 득점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전반 막판에 한 골 따라잡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기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도련님, 콜팝 가져왔어요.”
“어, 땡큐.”
매경기마다 시켜 먹는 콜팝을 손에 들고 온 김 비서.
나는 김 비서에게 콜팝을 받고 이쑤시개로 튀긴 치킨을 푹푹 찌른 다음 우걱우걱 먹어댔다.
“음. 이 집에서 만든 콜팝은 진짜 맛있다니까? 다른 업체는 모르겠는데 이 집은 진짜 계약 연장 해야 돼.”
“조만간 재계약 기간이니까 그때 진행하면 되겠네요.”
“엉.”
나는 천지원 부장에게 콜팝 한 조각을 내밀었다.
“천 부장, 드실래요?”
“아, 저는 괜찮습니다. 요즘 몸관리 하느라 튀긴 음식들을 잘 안 먹고 있거든요.”
“음. 그럼 천 부장 몫만큼 제가 먹죠.”
“…….”
콜팝을 먹으면서 후반전을 기다렸다.
두둥! 두둥!
곧 웅장한 BGM과 함께 양 팀 선수단이 중앙 게이트 통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늘 생각했던 건데, 우리 구장 BGM 너무 오그라드는 것 같아.”
“……대표님, 저희 구단한테 있어 상징 같은 BGM입니다.”
“알아요. 그래서 안 건드리잖아요.”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홈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노란색의 구단 머플러를 머리 위로 높게 들고 응원가를 불렀다.
고양~ 승리를 위해~
너의 뒤에 우리가 있어~
메인 응원가를 부른 서포터스가 이어서 선수들을 위해 격려의 함성을 내질렀다.
힘을 내라! 고양!
힘을 내라! 고양!
서포터스들의 힘찬 응원에 선수들도 박수를 치며 화답했다.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나도 침을 삼켰다.
“지면 안 된다. 진짜.”
이기는 것이 가장 베스트다.
상황에 따라 비겨도 어쨌든 1위는 유지한다.
하지만 지면 안된다.
여기서 지면 자칫 팀 분위기가 추락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남은 일정을 치르는 동안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결코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삑! 삐익! 삑!
주심의 휘슬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됐다.
그 순간 나도 주먹을 쥐고 경기에 집중했다.
* * *
경기를 뒤집느냐.
아니면 경기를 굳히느냐.
양 팀이 원하는 결과는 달랐다.
만약 축구의 신이 있다면, 과연 이 두 팀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놀랍게도 경기를 굳히려는 팀에게 먼저 손을 들어주었다.
『고오오오올! 골입니다!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새로 영입한 제주FC의 용병, 잭슨이 데뷔골을 만들어냅니다!』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제주FC의 강석훈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콜롬비아 청소년 대표팀과 성인 대표팀에서 모두 뛰어본 경험이 있는 잭슨은 강석훈 감독이 찾은 마지막 퍼즐이었다.
비록 성인 대표팀은 딱 1경기 뛰어본 것이 전부지만, 콜롬비아 리그를 평정하고 이후 프랑스 랑스에서 2시즌을 뛴 다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3시즌 정도 활약하다가 이번에 제주FC로 이적했다.
잭슨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기에 국내 팬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조금은 있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제주FC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모두가 놀랐다.
능력이 입증된 잭슨인 만큼 바로 데뷔전을 치를 것이라고 예상되었지만 생각보다 늦어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늘 고양 유나이티드 전에서 데뷔해서 데뷔골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3:1”
“아.”
쫓아가도 모자랄 판에 격차가 더 벌어지자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은 괴로워했다.
반면 제주FC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제주! 제주! 제주!
오렌지색의 유니폼을 입은 몇 안 되는 제주FC 팬들이 원정석에서 들썩였다.
특히 제주FC의 유명한 아저씨 삼인방 팬들이 가장 즐거워했다.
그런 제주FC 팬들을 향해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우우우우-.
거의 유럽 축구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에 경기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만큼 양 팀 모두에게 오늘 경기는 중요했다.
“제기랄!”
한편, 오늘 선발로 출전한 오세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여름 이적 시장에 고양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온 오세진.
그는 오늘 경기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몸값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이대로 가면 모든 것이 물거품 될 터.
‘어떻게든 경기를 뒤집어야 해! 그래야 내년에 울산에서 비벼볼 수 있어!’
그는 원소속팀인 울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러한 열망 때문일까?
오세진이 각성하기 시작했다.
팡!
공을 잡은 오세진의 발끝에서 환상적인 패스가 터져 나왔다.
『자, 고양 유나이티드가 상당히 밀리는 모양새가 되었는데요…… 오세진이 공을 잡고 전방으로 길게 패스하는데요! 어어!』
『열리죠!』
『단 한 번의 패스로 제주FC의 수비가 무너집니다! 이번에는 나탈입니다! 나탈, 가는데요!』
절묘하게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대지를 가르는 패스 앞에 제주FC 수비가 흔들렸다.
그 틈에 측면 공격수로 출전한 나탈이 공을 잡고 슈팅까지 만들어냈다.
『고오오올! 들어갑니다! 실점하자마자 다시 한 번 추격골을 만들어내는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나탈의 추가골로 스코어는 2:3이 됩니다!』
『와~ 이게 이렇게 만들어지네요! 리플레이 한 번 보시죠. 자, 여기 오세진 선수로부터 시작된 이 결정적인 패스 한 방! 곽찬구 감독이 원했던 것도 바로 오세진 선수의 이런 한 방이 있는 패스였거든요! 이 패스 한 방에 나탈의 마무리까지 너무 좋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벤치에서도 반응이 뜨겁습니다.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면서 기뻐하는 곽찬구 감독입니다!』
절망적인 1:3 스코어에서 2:3까지 추격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고양 유나이티드.
이 치열한 경기 속에서 결국 방점을 찍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 인물은 바로,
“라시모프!”
모두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라시모프가 상당히 좋은 수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반전에 자신이 실수한 것 때문일까요? 라시모프가 몸을 아끼지 않은 파이터적인 수비로 제주FC의 공격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그간 제주FC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기회를 봉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기여했던 선수가 바로 라시모프였다.
라시모프 특유의 파이터 수비 앞에 장지원이나 잭슨 모두 고전했다.
그러다가 이 승부를 뒤집는 결정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쿵!
라시모프가 경합 과정에서 어깨로 잭슨을 강하게 밀쳤다.
그 순간, 잭슨이 욱하는 감정을 막지 못하고 돌발행동을 벌였다.
『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러면 안 돼죠! 이게 무슨 짓입니까!』
계속해서 라시모프의 수비에 고전하던 잭슨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라시모프에게 보복 행위를 가한 것이다.
그 상황을 주심도 바로 코앞에서 보고 말았다.
『주심이 레드카드를 꺼내 듭니다! 강석훈 감독의 회심의 카드였던 잭슨이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고 퇴장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해진 건 제주FC네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잭슨.
그런 잭슨의 모습을 굳은 얼굴로 지켜보는 강석훈 감독.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고양 유나이티드에게는 막판 대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