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파티장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햐~ 어지간한 거물들은 다 왔구만.”
“도련님. 왕자님이 만들어준 기회에요. 스스로 걷어차지 말자고요.”
“그럴 생각이야.”
거물급 인사들을 눈으로 빠르게 스캔했다. 그리고 그곳에 익숙한 인물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천천히 걸었 갔다.
“회장님. 이곳에서 뵙네요.”
“오, 지 대표.”
석정원 회장이 나를 보고 환한 미소를 드러냈다.
“자네도 초대를 받았나?”
“네, 오늘 파티 주최자인 칼리드 왕자하고 친분이 좀 있어서 말이죠.”
“음. 얘기는 들었네. 안 그래도 오늘 자네가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어. 이곳에서 말이야.”
“네?”
“아까 국무총리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자네 이름을 거론하더군.”
“그랬군요.”
“두바이 왕자하고 그런 깊은 관계였을 줄은 몰랐네.”
나는 말없이 웃었다.
그러자 석정원 회장이 말했다.
“나는 오늘 프로축구연맹 회장이 아닌 대한그룹 총수 자격으로 이곳에 왔네.”
“그런가요?”
“자네도 보다시피 느꼈겠지만, 이곳에 정말 대단한 인사들이 다 모였어.”
“맞습니다.”
“마침 자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도 와 있는데, 함께 가겠나?”
“물론입니다.”
나는 석정원 회장과 함께 이동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절모를 쓴 신사가 눈에 들어왔다.
석정원 회장은 그 신사에게 말을 걸었다.
“김 총재. 여기 있었구만.”
“음? 오, 석 회장! 자네도 여기 왔는가?”
두 사람은 반갑게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런 다음 석정원 회장이 자연스럽게 나를 소개했다.
“이쪽은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 앞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친구지.”
“아, 혹시 그 영신그룹의 막내 아드님? 반가워요. 나는 한국은행 총재 김오성입니다.”
“반갑습니다. 지태훈입니다.”
눈앞에 신사의 정체는 바로 한국은행 총재 김오성이었다.
나는 김오성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자잘한 사업을 하더라도 자금이 없으면 하지를 못하지. 하물며 큰 사업을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겠나? 그럴 때 김 총재와 이야기를 나눠 보게. 아마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석정원 회장의 친절한 설명에 나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김오성 총재가 나를 향해 명함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직통 번호가 적힌 명함입니다. 혹 필요하면 언제든 이쪽으로 연락하세요.”
“감사합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확실히 오늘 이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한국은행 총재를 이렇게 마주할 수 있다니.
한국은행.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원’ 단위 화폐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기관이다.
그런 한국은행의 총재는 대통령령으로 임명되는 자리이며, 대한민국 금융 유통에 있어 핵심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을 이렇게 만나서 눈도장을 찍었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김오성 총재와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눈 뒤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나를 향해 석정원 회장이 다가와서 말했다.
“김오성 총재의 임기는 앞으로 1년 조금 남았네. 힘이 빠지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네만, 그가 가진 인맥과 영향력은 여전히 최고야. 특히 돈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말이지.”
“그렇군요.”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일세. 자고로 큰 인물에게는 직접 물고기를 잡아서 주기 보단,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보거든.”
맞는 말이다.
너무 받아먹기만 해도 문제다.
이 정도만 해도 나에게는 크나큰 기회였다.
이 기회를 활용하는 부분은 오로지 내 몫이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게. 나는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네.”
“벌써 가십니까?”
“아아. 이미 여기서 볼일은 다 봤네. 다음에 보도록 하지.”
“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떠나가는 석정원 회장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석 회장을 보내고 난 뒤 잠깐 숨 좀 돌리려는 찰나, 문득 내 옆이 허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라? 김 비서는 어디 간 거야?”
늘 내 곁에 있던 김 비서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바로 김 비서를 찾기 시작했다.
파티장을 쭉 살펴보던 중, 누군가와 함께 있는 김 비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어떤 남자와 함께 있었는데, 상당히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지? 어?”
곁에 있는 남자를 자세히 보니 낯이 익은 얼굴이다.
어디서 봤더라 생각했다가 나는 잊고 있던 옛날 기억을 떠오르고 눈을 부릅떴다.
“저 새끼가 왜 여기에 있어?”
나는 곧장 김 비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지태훈이 석정원 회장과 함께 있는 동안 김 비서는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다.
다시 파티장 안으로 돌아온 그녀의 곁으로 어떤 젊은 남자가 말을 걸었다.
“설마 김유리?”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는 곧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은…….”
“유리 맞구나. 반갑다. 나 기억하지? 서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지후.”
“…….”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곧 그녀는 온몸 구석구석 밀려오는 불쾌감으로 지배당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녀는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서지후가 그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유리야, 왜 그래? 설마 옛날 일 때문에 그래?”
“이 손 놓으세요.”
차가운 말투로 놓으라고 말하는 김유리의 경고에 서지후도 순간 움찔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잡았던 손목을 놓았다.
그러고는 머쓱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이미 오래전에 지난 일로 너무하는 거 아냐?”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정말 그때나 지금이나 싸가지 없는 건 여전하시네요.”
“뭐라고?”
“소란스럽게 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이만 가시죠. 경고입니다.”
“야, 김유리!”
서지후가 한마디 하려는 그때, 그의 뒤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서지후.
곧 그의 두 눈이 확 커졌다.
그의 앞에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는 지태훈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 * *
서지후.
서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으로 과대를 맡을 정도로 능력이 있었다.
매사 친절하고, 겸손한 언행으로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서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그는 김 비서의 전 남자친구이기도 하다.
겨우 1개월 정도였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첫 번째 남자친구였다.
그래서 나는 서지후를 좋게 볼 수 없었다.
단순히 그녀의 전 남자친구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보여준 이중적인 모습들.
그러한 모습들로 고통받았던 김 비서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서지후. 그 거짓말 같은 면상으로 상당히 뻔뻔하게 잘 돌아다니네?”
“지태훈……!”
서지후는 나를 두려워했다.
그럴 만도 하다.
서지후가 김 비서를 강제로 범하려고 했을 때, 내가 현장에서 두들켜 팼으니까.
진짜 옆에 있던 김 비서가 울면서 말리지 않았다면 이 새끼는 그날 죽었다.
“범죄자가 올 곳이 아닌데 말이야.”
“이미 지난 일이야!”
“그래. 지난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그래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네. 내가 그때 얘기했지? 내 눈에 띄면 죽여버릴 거라고.”
“……!”
“아, 생각났다. 법무부 장관님께서는 잘 계시나?”
“…그, 그건 왜 묻는 거야?”
“왜 묻긴. 잘나신 네 아버지인 법무부 장관님 덕분에 내가 학교 그만뒀잖아. 너는 심신미약으로 무죄받았고.”
“그, 그건……!”
“나는 내가 한 말을 지키려는 스타일이거든? 잘 됐다. 오늘 네 인생은 여기서 끝이야. 알겠어?”
무시무시한 기세로 협박하자 서지후도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한 걸음 앞으로 움직이자 겁 먹은 서지후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때였다.
“도련님.”
“…….”
“오늘은 안 돼요.”
김 비서가 나를 말렸다.
그제서야 나는 기세를 거두고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겠어?”
“네. 지난 일이에요.”
지난 일이라.
오늘 같은 자리를 본인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아서 나를 막는 거겠지.
그런 김 비서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운 좋은 줄 알아.”
“…크윽!”
서지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누군가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
지태선이었다.
그는 우리 사이에 도는 험악한 분위기를 읽고 당황스러워 했다.
“아는 사이십니까?”
내 물음에 지태선이 머쓱해하며 대답했다.
“서지후 보좌관은 현재 나하고 함께 일하고 있네.”
“보좌관… 그렇군요.”
“두 사람 서로 아는 사이인가?”
“잘 알죠. 저 새끼가 범죄자라는 것을요.”
“뭐?”
내 말에 지태선이 상당히 당황해했다.
“서 보좌관. 이게 무슨 말인가?”
“의원님, 그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지태선은 서지후의 과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지태선의 강한 추궁에 당황해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내가 차갑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보좌관을 새로 뽑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지태선 의원님.”
“끄응.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미안하네. 나중에 연락해도 되겠나?”
“그러십시오. 저희도 오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얘기한 뒤, 나는 조심스럽게 김 비서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 안은 뒤 말했다.
“갈까?”
“네.”
* * *
한편, 고양 유나이티드는 여전히 순항 중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K리그1은 월드컵 브레이크를 가동한 가운데, K리그2는 계속해서 시즌을 이어가고 있었다.
『골! 골입니다! 앞서나가는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이야~ 박형우와 장현우가 빠진 빈자리에는 사무엘과 새롭게 이적해온 오세진 선수가 제대로 채워주고 있네요!』
고양 유나이티드는 월드컵으로 인해 일찌감치 문이 열린 여름 이적시장에서 울산의 오세진을 임대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완전이적이 포함된 임대 영입이었다.
그렇게 합류한 오세진은 장현우의 자리에서 뛰며 사무엘과 꽤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다.
김지우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도 고양 유나이티드 상승세 유지에 힘을 보탰다.
그 결과, 고양 유나이티드는 계속해서 K리그2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고양 유나이티드를 위협하는 팀이 있었으니, 바로 제주FC였다.
제주FC는 고양 유나이티드와 승점 동률 상황에서 득실차에 밀려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K리그2는 역대급 승격 전쟁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팀에게 아주 중요한 고비가 찾아왔다.
바로 두 팀이 외나무다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2026 더블은행 K리그2 21라운드, 고양 유나이티드와 제주FC의 경기를 중계해드리겠습니다.』
『두 팀이 지난 1라운드 경기에서 맞대결을 펼치고 난 뒤 2번째로 만나는 경기인데요. 그때 두 팀이 3:3 무승부를 거뒀지요?』
『네, 맞습니다! 이후 두 팀이 무패 행진을 하면서 역대급 승격 경쟁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서 두 팀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습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경기였다.
두 팀 모두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 향후 일정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작한 경기는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