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대한민국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일정에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이번 월드컵은 기존에 해왔던 월드컵까지는 완전히 다르다.
FIFA에서 좀 더 다양한 국가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기존 32개국 시스템에서 48개국으로 대폭 늘였기 때문이다.
사상 첫 48개국 본선 시스템에 개최국도 기존 단일국가 개최가 아닌, 북중미(캐나다, 미국, 맥시코) 3개국 개최로 바뀌었다.
본선도 기존 32개국에서는 1조에 4개 국가가 16강 진출을 위해 경쟁했다면, 이번에는 1조에 3개국이 참여해 32강 진출을 위해 싸운다.
그 말은, 32강부터 토너먼트 대결이라고 볼 수 있었다.
축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유로파 리그’를 떠올리면 된다.
한편, 월드컵 본선에 참여하는 48국들은 막판 담금질을 진행하고 있었다.
대한민국도 마지막 5월 평가전에서 코스타리카, 프랑스, 아르헨티나와 만나 맞대결을 펼쳤다.
『이번 평가전에서 사실상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선수들이 정해질 텐데요.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이 새로운 전술로 코스타리카를 상대합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사령탑,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은 마지막 평가전을 앞두고 과감한 전술로 나섰다.
그 예로, 강철인과 박형우의 선발 출전이었다.
여태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과감한 선발라인업에 모두가 놀랐다.
『대한민국의 선발라인업입니다! 골키퍼 김성태! 이어서 수비는 백포라인입니다. 고태진, 김영준, 박상영, 황성주가 나섭니다. 이어 미드필더인데요. 3명의 선수가 나섭니다. 장현우, 박기주, 강철인이 나섭니다. 마지막 최전방에는 최태국, 박종우가 좌우로 서고 박형우 선수가 톱으로 나섭니다.』
『지난 3월 평가전에서 재미를 봤던 ‘박형우 제로톱’으로 나섰네요.』
코스타리카전을 시작으로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은 과감하게 박형우를 제로톱으로 두는 파격전술로 나섰다.
그리고 그 효과는 제대로 나왔다.
『최전방에 박형우 선수와 좌우 날개로 서 있는 최태국과 박종우 선수 모두 발이 상당히 빠른 선수들인데요!』
『강철인 선수! 찔러 줍니다! 전방에 박형우! 박형우인데요! 엄청난 속도로 코스타리카의 수비 뒷공간을 크게 흔들고 있습니다! 좌우에는 최태국과 박종우가 빠르게 뛰고 있습니다!』
『아~ 좋아요!』
『박형우~ 최태국에게 내줍니다! 최태국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골! 최태국의 선제골로 대한민국이 앞서나갑니다!』
제로톱 박형우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은 정확하고 날카로운 패스플레이와 빠른 역습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뒤흔들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었다.
이어서 치러진 프랑스전에서는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우리를 상대로 패배하면서 탈락했던 프랑스인데요!』
프랑스는 유럽 조별리그 예선에서 조1위로 통과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이 내세운 박형우, 강철인의 공존 플레이는 그런 프랑스마저 흔들어 버렸다.
『박형우가 다시 강철인에게! 강철인 슈우우웃! 들어갔어요! 환상적인 중거리 골입니다!』
프랑스를 무너뜨리는 강철인의 결승골로 대한민국은 평가전 2연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러진 아르헨티나전.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역대전적은 묘했다.
청소년 대회에서는 대한민국이 앞서지만, 성인 전적에서는 대한민국이 압도적 열세였다.
그런 아르헨티나를 만난 대한민국이 또 한 번 일을 냈다.
『아르헨티나는 우리가 다가올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만날 콜롬비아를 대비하는 상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만나게 될 콜롬비아를 대비해서 만난 까다로운 상대, 아르헨티나였다.
그런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번에도 대한민국은 큰일을 냈다.
『강철인이 찔러주는 패스! 박형우 슈우웃! 골! 골입니다!』
결과는 3:2, 대한민국의 승리였다.
아르헨티나의 공격수들에게 수비가 고전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도 박형우와 강철인을 포함한 공격진의 파괴력을 앞세웠다.
박형우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평가전에서 존재감을 알렸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평가전 3연승을 거두며 다가올 월드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태훈의 회귀로 인한 나비효과라고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지태훈뿐이었다.
* * *
“좋구만.”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구단 선수들의 활약 소식을 듣고 나는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도련님. 준비되셨습니까?”
“어. 다 됐어.”
나는 칼리드 왕자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도련님. 옷 좀 똑바로 입으세요.”
김 비서가 옷매무새를 정돈해 주었다.
그런 다음 그녀가 내 가슴을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오늘 모임, 중요한 거 아시죠?”
“어. 그렇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 맞아요?”
“그럼 뭐, 어떻게 할까. 덜덜 떨어야 하나?”
“그건 아니죠.”
나는 김 비서에게 얼굴을 훅 내민다음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 중요한 자리인 거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마.”
“…….”
김 비서가 얼굴을 획 돌려버렸다.
그런데 김 비서의 머리카락 사이로 빨개진 귀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걸 보고 뭐라 하지는 않았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하여튼 의외이기는 해. 오늘 박종찬 대표하고 셋이서만 볼 줄 알았는데, 정재계 모임에 나를 초대할 줄이야.”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 칼리드 왕자가 주요 업무를 본 후, 본인이 주도해서 파티를 개최했다.
그 파티에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여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 칼리드 왕자는 나와 박종찬 대표를 모두 불렀다.
“출발할까?”
“네.”
김 비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서울의 어느 고급 호텔에서 진행되는 파티장에 도착했다.
“어마어마한데?”
“입구에서부터 들어가는 것도 일이네요.”
확실히 VIP들이 참여하는 파티라서 그런지, 호텔 주변부터 입구 그리고 그 안까지 경비가 삼엄했다.
까다로운 절차를 걸쳐 입구를 통과한 나는 마침내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다.
타고온 차는 자연스럽게 발렛파킹으로 맡겼다.
“오셨습니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흐메드가 나를 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러고는 나와 김 비서를 곧장 칼리드 왕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아우님, 어서 오게.”
평소 입는 정통 복장이 아닌 화려한 색의 정장을 입은 칼리드 왕자.
이렇게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어? 혹시 영신그룹의 막내 아드님이 아니신가?”
“어?”
칼리드 왕자 곁에 어떤 나이든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나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그 남자를 몰랐다.
그때, 김 비서가 슥 다가와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지난 시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신 지태선 의원님이십니다.”
지태선?
아, 기억났다.
예전에 친척 중에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 사람인가?
내 생각이 맞았다.
“반갑구만. 지태선이야. 이번에 초선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지. 큰아버지께서는 잘 지내시고 계신가?”
“네, 잘 지내고 계십니다. 이렇게 뵙네요.”
“얘기는 많이 듣고 있었어. 요즘 활약이 대단하다지?”
“뭐,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니긴. 그나저나 여기는 어쩐 일로 온 거냐?”
“초대를 받았습니다.”
“초대?”
나는 슬쩍 칼리드 왕자를 봤다.
그러자 지태선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했다.
“칼리드 왕자의 초대를 받았다고?”
“네. 저희 꽤 친한 사이거든요.”
“허어.”
지태선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지켜보던 칼리드 왕자가 끼어들었다.
“아우님. 소개해 줄 사람이 있으니 잠시 따라오게.”
“네? 아, 넵.”
칼리드 왕자가 내게 ‘아우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그 대단한 두바이 왕자하고 형님 동생 하는 사이인가?”
놀라고 있는 지태선을 뒤로한 채 나는 칼리드 왕자를 따라 어딘가로 향했다.
그렇게 그의 뒤를 졸졸 따라 도착한 곳에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아, 칼리드 왕자. 반갑습니다.”
“파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무총리님.”
국무총리 이현승.
현 이태호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대한민국 실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반곱슬머리에 안경을 쓴 건장한 체구를 가진 50대였다.
차기 대선 후보로도 이름이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정치적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칼리드 왕자가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되어 온 것이다.
이현승은 웃으면서 칼리드 왕자와 인사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음? 그쪽은…….”
이현승이 반응하자, 칼리드 왕자가 기다렸다는 듯 냉큼 반응했다.
“여기는 지태훈 대표입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아우님이죠.”
“네?”
놀랍게도 칼리드 왕자는 직접 한국말을 사용해서 나를 소개했다.
억양이나 발음이 어설프기는 해도, 분명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얘기했다.
그러자 이현승이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현승입니다.”
“네. 지태훈입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입니다.”
“고양 유나이티드?”
“K리그 팀 이름입니다.”
“아!”
대화 몇 마디만 나눠도 나는 이현승이라는 사람이 K리그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나는 현직 국무총리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는 중이다.
칼리드 왕자는 다시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아우입니다. 앞으로 K리그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활약할 인재이기도 하고요.”
“그, 그렇습니까?”
“네. 제가 봤을 때, 두 사람이 훗날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거든요.”
칼리드 왕자의 말에 이현승이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한마디 툭 던졌다.
“나중에 제가 연락드리죠.”
“예? 아, 넵.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국무총리는 만날 사람이 있다고 얘기하며 정중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렇게 떠나는 이현승의 뒷모습을 보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 칼리드 왕자에게 말을 걸었다.
“왕자님.”
“왜 그러신가?”
“갑자기 국무총리를 제게 소개시켜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 후후. 아우님도 잘 알지 않은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일들을 추구할지.”
“…….”
“지금 우리가 만난 저 국무총리는 꽤 야망이 큰 인물이야. 향후 우리가 각국의 정상으로 다시 만날지도 모르지. 그렇게 되면, 우리 아우님이 나와 저 인간 사이에서 꽤 중요한 다리가 되어줄 거야.”
칼리드 왕자는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그가 보여주는 큰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이 회귀 전에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아우님. 오늘 이 자리는 사실 우리 아우님을 위해 만든 자리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
“네?”
“현재 아우님이 혼자 이런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불가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지위나 재력도 없다.
영신그룹을 내세운다면 다르겠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내가 영신그룹의 총수면 모를까.
그러자 칼리드 왕자가 웃으며 말했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존재. 그게 바로 나일세.”
“……!”
“오늘 이 자리에서 아우님이 꿈꾸는 것들을 해내 보시게. 아마 이 자리가 우리 아우님이 계획하고 있는 목표를 10년 이상 앞당겨 줄지도 모르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