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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62화 (62/272)

62화

“아, 속 쓰려.”

말술인 박종찬 대표를 거의 아침까지 상대하고 가까스로 집에 왔다.

자고 일어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어제 김 비서에게 미리 출근은 못 한다고 얘기해 뒀기 때문에 회사 일정은 문제없었다.

“해장 좀 해야겠는데…….”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근처 순댓국집에서 배달 주문을 한 뒤, 간단하게 씻고 나왔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열자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어, 김 비서. 전화했어?”

-속은 좀 어떠세요?

“아, 미칠 것같아. 안 그래도 근처 순댓국집에 배달 주문했어.”

-제가 조금 이따 집으로 갈게요.

“그럴래?”

김 비서가 집으로 온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건 그렇고 칼리드 왕자가 온다면서?”

-네. 오늘 온다고 했…… 어?

“음? 왜 그래?”

-저, 도련님. 지금 TV 좀 켜보실래요?

“TV?”

나는 어리둥절하며 TV를 켰다.

커다란 벽걸이 TV 화면에서 마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를 본 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

『오늘의 뉴스입니다. 두바이의 칼리드 왕자가 오늘 이태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내한했습니다.』

화면 속에서 흰색 두바이 프린스 복장을 하고 있는 칼리드 왕자가 환한 얼굴로 전용기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곧 마중 나온 이태호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허, 허허, 허허허.”

그 장면을 본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왜 형이 거기서 나와?

* * *

그날 저녁, 나는 칼리드 왕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묶고 있는 호텔로 올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흔쾌히 그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김 비서와 함께 서울의 한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1층에 대기하고 있는 칼리드 왕자의 경호원들과 마주쳤다.

그 안에서 익숙한 인물과 만났다.

“어서 오십시오.”

“아흐메드씨. 잘 지냈습니까?”

칼리드 왕자의 최측근 비서이자 경호원인 아흐메드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아흐메드는 특유의 무뚝뚝한 태도로 대응했다.

“왕자님께서는 안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우리는 아흐메드의 안내를 받아 칼리드 왕자가 머무는 방에 도착했다.

“아! 나의 형제! 지태훈! 오랜만이야!”

“잘 지냈습니까?”

“물론! 아우도 잘 지내고 있나?”

“물론이죠.”

김 비서와 아흐메드가 곁에서 통역을 해줬다.

사실 전과 달리 통역 없이도 대화가 가능한 상태지만, 일부러 김 비서를 통역으로 활용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국빈으로 방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우께서 놀란 모양이군. 사실 나도 이번 방문이 너무 갑작스럽게 정해져서 말이야.”

대한민국과 두바이는 현재 우호국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업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칼리드 왕자의 아버지이자 현 두바이 국왕인 알 나흐는 고령이기에 장거리 비행이 어려웠다.

그래서 왕자들이 대신 진행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 방문에 칼리드 왕자가 지목받게 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이긴 해도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 아버지가 나에게 큰일을 맡기는 셈이니까.”

“잘 되셨네요. 축하드려요.”

“축하는. 뭐, 아우에게 축하받으니 기분이 좋구만.”

칼리드 왕자는 포도주를 내밀며 말했다.

“가볍게 한잔할 텐가?”

“저야 상관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도 상관없네. 어차피 1잔 정도야.”

칼리드 왕자는 빈 와인 잔에 포도주를 따른 다음 내게 건네줬다.

곧 자신의 잔에도 포도주를 가득 채운 뒤, 내 앞으로 내밀었다.

가볍게 잔을 부딪친 뒤 우리는 포도주를 홀짝였다.

“조만간에 아우를 한번 만나 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는군.”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 마음이 통했군요.”

“하하하! 역시 나와 아우는 통하는 게 있어!”

칼리드 왕자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나는 오늘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3일 정도 이곳에 더 머무를 예정이야.”

“그렇군요.”

“오늘은 가볍게 얼굴을 보는 정도고, 내일 이른 아침에 청와대에서 일을 보고 나면 시간이 비는데, 혹시 그때 괜찮은가?”

“저야 없던 시간도 내서 만들어야죠.”

“하하하! 역시 아우야! 좋아. 그럼 내 소개시켜 줄 사람도 있고 하니, 내일 보세.”

소개시킬 사람이 있다는 말에 나는 문득 어제 만난 박종찬 대표가 떠올랐다.

“아, 어제 박종찬 대표를 만났습니다.”

“음? 박 대표를?”

“네. 투자업체를 알아보다가 만나게 됐는데, 박종찬 대표가 왕자님을 안다고 얘기하더군요.”

“음. 나도 잘 알고 있지. 우리는 지금도 같이 함께 일하는 사이니까. 사실 소개시켜 줄 사람이 바로 박종찬 대표였는데, 이미 먼저 만난 사아였구먼.”

“그러셨군요.”

“잘 됐군. 그럼 내일 박 대표하고 셋이서 보면 되겠어.”

“좋군요.”

칼리드 왕자는 다시 포도주 한 모금을 홀짝였다. 그러고는 아까와 다른 기운을 풍기며 말했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나?”

“네?”

“아우가 약속을 지키면 추가로 우리가 지원해 주겠다고 했던 거 말이야.”

“기억하고 있죠.”

칼리드 왕자는 씩 웃었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우의 구단에 추가 투자를 진행하려고 해.”

“어? 정말이십니까?”

“그래. 생각보다 아우가 잘 해내고 있더라고. 이럴 때 우리 아우가 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을 다해 감사하다고 외쳤다.

칼리드 왕자로부터 본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고양 유나이티드는 지금보다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럼 여기서 우리 아우의 배포가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구만.”

“……?”

칼리드 왕자는 아흐메드에게 손짓하며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아흐메드가 내게 백지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칼리드 왕자와 백지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러자 칼리드 왕자가 웃으며 말했다.

“원하는 금액을 한번 적어 보게.”

“……!”

나는 순간 탄성을 지를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백지수표!

가끔 남들 입에서나 듣던 아랍 왕족의 백지수표!

그걸 내가 직접 겪게 될 줄이야!

순간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좋아할 때가 아니야.’

여태까지 보았던 칼리드 왕자의 성격상, 여기서 허투루 금액을 적으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신뢰가 무너질 수 있었다.

선택을 잘해야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 비서를 쳐다봤다.

김 비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상당히 놀란 듯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고 눈빛으로 이야기 했다.

‘도련님, 믿어요.’

마치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좋아.

그럼 한 번 적어보자.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과감하게 액수를 적었다.

그렇게 적은 액수를 아흐메드에게 건넸다.

아흐메드는 바로 칼리드 왕자에게 종이를 건넸다.

그리고 종이에 적힌 액수를 본 칼리드 왕자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곧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

“이거,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구만! 우리 아우가 대단해!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봤어!”

만족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칼리드 왕자는 갑자기 펜을 쥐더니 내가 건넨 백지에 뭔가를 적었다.

“이 금액은 우리 아우에게 주는 이 형님의 선물일세.”

“……!”

그렇게 되돌려 받은 종이에 적힌 액수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30,000,000]

이건 내가 적은 액수다.

그런데 그 밑에 또 다른 액수가 추가로 적혀 있었다.

[+$20,000,000]

3,000만 달러는 현재 한화로 약 346억 정도 된다.

여기에 2,000만 달러는 한화로 약 230억 정도 된다.

그럼 두 액수를 합치면?

한화로 약 576억.

믿기지가 않은 액수다.

내가 적은 액수도 분명 적지 않은 액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상의 금액이 내 손에 떨어졌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이 정도 금액은 사실 적은 액수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아우가 관리하는 K리그에서는 제법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자금이 될 게야.”

놀란 나를 향해 칼리드 왕자가 그렇게 말했다.

분명 그 말대로다.

K리그가 운용하는 자금 수준을 생각한다면 이 액수는 어마어마하다.

시즌 중 가장 많은 금액을 사용하는 전북도 1년에 500억이 되지 않았다.

“물론 이 금액을 일시불로 지급되지는 않을 거야.”

“예?”

“계산해 보니 아우의 나라가 쓰는 돈으로 환산하면 500억 정도 되더군.”

“그렇죠.”

“나는 이걸 5년에 나눠서 지급할 거야.”

“……!”

일시불이 아닌 5년.

조금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연간 100억이 넘는 액수가 들어온다.

이것도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칼리드 왕자 외에 추가 투자를 더 받는 것도 생각해야 하니까.

게다가 이 금액이면 더 이상 영신그룹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은 즉, 지태완의 방해공작에 더 이상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게 끝이 아니라네. 아우님.”

“네?”

“아우가 1년마다 내게 어떤 목표를 달성할 건지 얘기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수당 지급을 하지.”

“……!”

그러니까 576억은 기본급에 가까운 투자고, 성과에 따라서 매년 추가 투자가 별도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나한테는 엄청나다 못해 파격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조건이면, 분명 칼리드 왕자도 내게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왕자님께서는 제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내가 다음 두바이 왕이 될 수 있도록 곁에서 나를 돕게.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야.”

“……!”

칼리드 왕자의 말에 나와 김 비서 모두 놀랐다.

심지어 왕자 옆에 있던 아흐메드도 깜짝 놀랐다.

아마 이 얘기는 최측근인 아흐메드와도 이야기되지 않은 부분인 것 같았다.

나는 좀 당황스러운 반응을 드러냈다.

“어째서 그런 제안을 하시는 거죠?”

칼리드 왕자는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나는 사람 보는 눈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래서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

“…….”

“자네는 분명 재능이 있어. 야망도 제법 있고. 그래서 자네라면 나를 내가 원하는 자리에 올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왕자님 곁에는 굳이 제가 아니라도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인재라면 놓치고 싶지 않아. 사람 욕심이 좀 있거든.”

“…….”

“그리고 대부분 사람은 그 능구렁이 같은 나바드에 속고 있고.”

“제가 과연 왕자님을 왕위에 오를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가능해.”

칼리드 왕자는 진지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이 상황에 큰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약 칼리드 왕자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달콤한 과실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내가 알기로 칼리드 왕자가 왕위에 오르지 못해.’

흐릿하기는 해도 회귀 전 기억 속에서 알 나흐 왕이 얼마 안 가 죽고, 첫째 아들인 나바드가 결국 두바이 왕으로 등극한다.

뒤늦게 칼리드 왕자가 왕위 계승에 싸움에 참전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칼리드 왕자의 제안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회귀로 인해 달라졌듯, 그에게도 어떤 기회로 인해 운명이 바뀔 수 있다면?

어쩌면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까.

‘그리고 두바이의 왕자를 곁에 둬서 나쁠 건 없지.’

현재로서 나도 축이 될 세력이 필요하다.

완벽한 홀로서기는 아직 불가능한 상황.

내가 완벽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할 동안 곁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칼리드 왕자는 완벽한 내 편이다.

“좋습니다. 왕자님의 제안 받아들이죠.”

내 대답을 들은 칼리드 왕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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