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서울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코리아네트워크.
그곳에서 나는 박종찬 대표와 만날 수 있었다.
박종찬 대표가 마침 한국에 와 있던 상태여서 만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박종찬입니다.”
“지태훈입니다.”
“요즘 유명하신 분과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를 아세요?”
박종찬이 나를 아는 것처럼 얘기해서 깜짝 놀랐다. 그러자 그가 영업용 미소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제가 축구를 좀 좋아하거든요. 미국에서 유학할 때 MLS 경기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때부터 축구에 좀 빠지기 시작했죠.”
“오, 그러셨구나. 그럼 저를 아시는 걸 보니 K리그도 보시는가 보네요?”
“네. K리그에서는 서울 라이언스 팬입니다.”
“그러셨군요.”
알고 보니 박종찬 대표는 축구 광팬이었다.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는 뉴욕 시티를, K리그에서는 1부 리그 소속팀인 서울 라이언스를 응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공통 분야가 생기니 대화는 수월했다.
“요즘 고양 유나이티드 소식이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거기에 지 대표님 관련된 기사도 종종 올라오고요.”
“혹 불편하신 건 아니시죠?”
“그럴 리가요. 오히려 궁금했어요. 사실 어느 리그에서든 이렇게 구단주나 대표이사가 미디어에 많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거든요.”
“그런가요?”
“네. 미디어에서 언급되는 것도 대체로 부정적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요.”
“…….”
“그래도 지 대표님은 부정적인 것보다 좋은 쪽으로 계속 나오시니까 팬 입장에서 좋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다가 박종찬 대표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저에게 연락하신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고 놀라긴 했는데 제가 이유를 잘 알지 못해서요.”
“음. 저희가 지금 자금 투자를 받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 말에 박종찬 대표의 눈매가 달라졌다.
“투자라…… 저희가 전문 투자업체다 보니 꽤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죠. 그중에는 스포츠도 있고요.”
“네, 얘기 들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 K리그 투자는 진행할 생각이 없습니다.”
박종찬 대표의 마지막 말에 순간 내 얼굴이 굳어졌다.
“이유를 알고 싶네요.”
“개인적으로 K리그 팬이지만, 누구나 다 알 듯, K리그는 투자 대비 이익 창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민구단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구단도 말이 투자지, 거의 기부금처럼 운영되고 있죠.”
“…….”
너무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박종찬 대표가 지적한 대로 K리그는 전북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적자로 운영되고 있었다.
투자 대비 수익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수익화시키기 위해 각 구단에서 다양한 노력이 실행되고 있지만 국내 수익만으로는 판이 작다.
전북처럼 아시아챔피언스리그나 클럽월드컵을 통해 이름을 알리는 경우 해외 시장까지 확대할 수 있으나, 나머지 클럽들은 그러지 못했다.
“저희도 기업이다 보니 손해 보는 투자는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이 부분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뭐,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홍보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까?”
“말씀 주신 홍보는, 저희가 용품 회사같이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라면 홍보 효과를 노려볼 수 있겠죠. 하지만 저희는 그런 회사들과는 다릅니다.”
“…….”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모두 현실적이라서 반박할 말이 없는 것이 더 열 받았다.
“투자를 진행하시려면 저희가 합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뭐가 있을까요?”
“투자 대비 최소한의 수익이 나올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필요하겠죠.”
“흐음.”
“이런 얘기밖에 드리지 못해서 죄송스럽네요.”
확실히 남의 돈 받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구단을 향한 다이랙트 투자가 아닌, 선수를 통한 우회 투자는 어떻습니까?”
“……?”
“K리그는 다른 해외 리그들과 달리 독특한 선수 제도를 가지고 있죠.”
“아!”
K리그는 선수 개인에 대한 권리보다 구단의 권리가 좀 더 강하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선수에 대해 무소불위의 권한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서 선수에게 횡포를 부리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좀 더 수익 쪽으로 연결시킬 생각을 가졌다.
“흥미롭군요.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저희 팀에 있는 선수들 중에서 대표님께서 좀 더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선택해서 그 선수에 관한 지분 투자를 하는 겁니다.”
“지분 투자?”
“네. 브라질 에이전트들이 하는 방식을 조금 차용한 형태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저희가 지급해야 할 선수들의 연봉이나 수당을 투자 형태로 일부 보조해 주고, 향후 선수가 이적해서 발생하는 이적료를 정해진 % 선에서 가져가는 거죠.”
“호오.”
“현재 저희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저희는 선수 연봉에 대한 부담을 덜고, 남는 비용으로 좀 더 가성비 있는 투자를 진행할 수 있죠. 그리고 대표님께서는 새로운 수익 창출이 가능해지는 것이고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선수 에이전트 쪽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어차피 구단에서 챙겨야 할 몫에서 회사와 분배하는 거니까요.”
“흐음.”
“브라질 현지 에이전트들이 자국 선수들에게 지분 투자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데, 그건 너무 중구난방으로 하는 경향이 커서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검증된 기관을 통해서 신분 보장이 확실히 이루어진 상태에서 진행한다는 차이가 존재하죠.”
“으음.”
“그리고 이미 몸값이 큰 선수들보다는 제대로 된 에이전트가 없는 신인 선수들에 대한 투자부터 진행하면 부담은 조금 덜 겁니다. 신인이기 때문에 리스크는 있지만, 신인이 받는 연봉과 수당은 그만큼 적거든요. 오히려 잘 되면 저투자 고효율 수익 창출이 가능하죠.”
“확실히 흥미로운 제안이기는 하네요.”
조금 전과 달리 박종찬 대표는 제법 흥미를 보였다.
K리그는 수익 규모 대비 선수 연봉이 비싼 편.
연봉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이득이다.
나는 거기에 결정타를 날렸다.
“이 방식은 K리그 최초입니다. 성공하면 향후 이런 식의 투자가 늘어날 겁니다. 그때 대표님께서 이 분야의 선두 주자로 나설 수 있는 거죠.”
“호오.”
박종찬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런 그를 기다려주었다.
어느샌가 계산을 끝낸 박종찬 대표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긍정적으로 한 번 진행해보는 것으로 해보죠.”
그 말에 나도 방긋 웃었다.
* * *
그날 저녁, 나는 박종찬 대표와 함께 강남의 어느 고급 식당가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우리 모두 술이 좀 들어간 상태였다.
박종찬 대표가 생각보다 말술이었다.
“제가 미국에 있었을 때 말입니다.”
술이 좀 들어가다 보니 일적인 얘기보단 사적인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때 하버드 다니면서 동기들하고 스타트업을 시작했었는데, 그땐 정말 별 볼 일 없는 자그마한 회사였거든요. 정체성도 모호했고.”
“그랬습니까?”
“네. 확실히 어렸을 때니까 가능했던 거죠. 지금 그렇게 하면 못 합니다. 하하하!”
“그렇죠.”
“음, 하여튼 그때 제 나이가, 음, 대표님보다 좀 더 어렸죠. 무작정 운영하던 회사가 뭐,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거의 맨땅에 박치기하면서 했지.”
“…….”
“뭐, 그러다가 친했던 사람들도 몇 잃고 그랬습니다. 되게 잘 맞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좋다. 그냥 서로 갈 길 가자. 그러고 합의하고 각자 길을 갔죠.”
“그때 헤어졌던 분하고는 아직 알고 지내십니까?”
“그럴 리가요. 아! 오 년 전인가, 그때 헤어졌던 친구 중 한 놈이 미국에 무슨 대형 회사에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몸값도 좋게 받았다고 들었는데, 뭐,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고, 그놈 외에 딴 놈들은 어떻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술을 잔뜩 마시고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는 박종찬 대표.
그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로웠다.
때론 내가 새롭게 배우는 부분도 있었다.
“그렇게 한창 방황하고 있었는데 그때 엄청난 사람을 만났죠.”
“누군가요?”
“들으면 놀랄 겁니다. 낄낄. 바로 두바이 왕자!”
“두바이 왕자?”
설마?
“칼리드 왕자?”
“어? 그 사람을 압니까?”
헉.
나와 박종찬 모두 깜짝 놀랐다.
서로 어떻게 그 사람을 아느냐는 반응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이거 오늘 뭔 날인가? 오늘 저하고 대표님 서로 통하는 게 많네요!”
박종찬 대표는 그렇게 말하고 웃으면서 비어버린 내 술잔을 채웠다.
나도 그의 술잔을 채워주며 웃었다.
“어떻게 만나시게 됐습니까?”
“5년 전이었죠? 그때 MBA를 마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을 때였는데요. 영국으로 갔었거든요. 영국 런던에서 진행하던 경제 포럼이었는데, 그때 우연히 만났죠.”
“오.”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제법 똑똑하더라고요. 야망도 컸고. 그 사람이 두바이 왕자란 건 한참 뒤에 알았는데,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인데 생각하는 수준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확실히 대단하죠.”
“그때 인연이 돼서 나중에 제가 투자업체를 차렸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알게 모르게 뒤에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었던 거고요.”
“그랬군요.”
나는 조금 놀라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자 박종찬 대표가 웃으며 물었다.
“그럼 이제 제가 물어보죠. 대표님은 어떻게 해서 칼리드 왕자를 만났던 겁니까?”
“그게…….”
나는 칼리드 왕자와 만났던 일화를 이야기해줬다. 이야기를 다 들은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짠 한 번 하시죠.”
나는 그와 술잔을 나눴다.
또다시 알코올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갔다.
취기가 제법 오른 상태에서 내가 말했다.
“나중에 칼리드 왕자하고 셋이서 함께 보는 건 어떻습니까?”
“아, 그거 좋군요. 근데 왕자가 되게 바쁘던데, 만나주겠습니까?”
“글쎄요. 그건 해봐야 알겠죠?”
“하하. 역시 대표님. 패기가 있으시네요.”
언젠가 셋이서 만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생각보다 그때가 빠르게 다가왔다.
슬슬 박종찬 대표와 자리를 마무리하려는데 갑자기 김 비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으응. 비서님~ 무슨 일이세요~?”
나도 술에 잔뜩 취했던 상황이기에 혀가 살짝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술 많이 드셨어요?
“으응. 조오오금.”
-조금이 아닌데요? 혀가 많이 휘어지셨어요.
“휘어지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제가 모시러 갈게요.
“아니야~ 일산에서 강남까지 멀어~ 택시 타고 들어가면 돼~”
-…….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내 걱정돼서?”
-아! 그 전달 드릴 소식이 있어서요.
“무슨 일?”
-조금 전에 칼리드 왕자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내일 한국으로 온다는데요?
“……어?”
갑작스러운 소식에 순간적으로 술이 깼다.
“갑자기?”
-아, 네. 갑자기 한국에 볼일이 생겨서 오게 됐다고. 시간 되면 얼굴 좀 보자고 연락이 왔네요.
“어, 음. 내가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알았어. 그럼 일정 한번 잡아봐.”
-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갑작스러운 칼리드 왕자의 한국 방문 소식에 놀라기는 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내가 머나먼 중동으로 비행기 타고 날아가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그때 잔뜩 취기가 오른 박종찬 대표가 등장했다.
“대표님~?”
“아! 박 대표님.”
“화장실 앞에서 뭐 하고 계세요?”
“아! 잠깐 전화가 와서요.”
“그러셨구나~ 그, 뭐야, 여기 계산은 제가 했습니다~”
“네!?”
계산을 했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원래 내가 계산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박 대표가 계산을 먼저 해버릴 줄은 몰랐다.
“이거 다~ 제가 지 대표님에게 보이는 성의! 같은 겁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2차 어떠십니까? 한잔 더 하고 가시죠?”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괜찮고 말고요! 가시죠! 제가 괜찮은데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내고 조용히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계획대로 되긴 그른 듯했다.
나는 김 비서에게 조금 더 늦게 들어가게 될 것 같다고 문자 한 통 보낸 뒤, 웃으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럼 2차는 제가 쏘죠!”
“캬! 우리 지 대표님 화끈해!”
우리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