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60화 (60/272)

60화

“만나서 반가워요. 최경환이라고 합니다.”

“네, 김유리입니다.”

종신 그룹은 중견급의 제약 회사이다. 오랜 시간 대한민국의 국민 약품으로 인정받아온 ‘엄마손’과 홍삼 제품으로 유명했다.

최경환은 최용호 이사의 둘째 아들이었다.

“사진으로 보긴 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 미인이시네요.”

“감사합니다.”

최경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재벌가 사람으로 보이는 인상을 지녔다.

왁스를 발라 정돈한 머리에 비싸 보이는 뿔테 안경과 명품 정장. 손목에는 명품 시계가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차키와 명품 지갑을 꺼내 올렸다.

김유리는 그런 행동을 곁눈질로 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최경환이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차를 새로 뽑았거든요. 독일에 팍스바겐 아시죠? 제가 거기 VIP라서 한정판 차를…….”

김유리는 최경환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그녀도 지금 이 자리가 상당히 불편했다.

‘혹시 도련님께서 알고 계셨던 걸까?’

맞선 비슷한 자리가 정해지고 난 뒤, 자신을 대하는 지태훈 대표의 행동이 묘하게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혹시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 듣자 하니 지금 무슨 축구팀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상념을 깨우는 최경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영신 그룹에서 밀어주는 최고 인재라고 하던데, 축구팀에서 썩는 건 아깝지 않나요?”

“…….”

“아, 실수. 실수. 그러고 보니 거기에 지태훈 대표가 있다면서요?”

최경환의 무례한 행동에 김유리는 순간 기분이 상했다. 그런데 거기에 기름 붙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딴 망나니 밑에서 일하지 말고 저한테 오시는 게 어떠세요? 조만간에 저도 종신그룹 본부장으로 승진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취소하세요.”

“으음!?”

“취소하시라고요.”

김유리의 얼굴이 냉랭하게 바뀌었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그녀의 태도에 최경환이 당황해했다.

“왜 그러시죠? 제가 뭘 했다고?”

“도련님께 망나니라고 말씀하신 거 취소하시라고요.”

“하!”

최경환이 코웃음을 쳤다.

“뭐, 틀린 말 했습니까? 지태훈 대표가 영신그룹 망나니라는 거 알만한 사람들 다 아는데. 사람 그렇게 쉽게 안 변합니다?”

“그 말을 제가 그대로 최경환 씨에게 돌려주고 싶네요. 사람 안 변한다는 걸요.”

“뭐라고요!?”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미 좋은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둘 사이에는 냉랭함과 분노만이 감돌았다.

“하! 망나니 밑에서 일해서 그런가, 끼리끼리 노는구만!”

최경환의 한 마디에 참고 있던 김유리가 격분했다.

“뭐라고요? 당장 사과하세요!”

“뭐? 감히!”

김유리가 벌떡 일어나며 목소리를 높이자 식당에 있던 사람들의 깜짝 놀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최경환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앉으시죠.”

“더이상 그쪽하고 볼일 없네요. 이만 가볼게요.”

“이보세요! 김유리 씨!”

화가 난 김유리가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최경환이 그런 그녀의 손목을 확 붙잡았다.

놀란 김유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최경환을 쳐다보았다.

“김유리 씨, 이런 식으로 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때였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난 인물은 바로 지태훈 대표였다.

갑작스러운 지태훈 대표의 등장에 김유리와 최경환 모두 화들짝 놀랐다.

지태훈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최경환을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최경환이 그녀의 팔을 잡고 있는 걸 보았다.

탁!

지태훈은 강하게 최경환의 손목을 쳤다. 결국 김유리의 손목을 놓게 된 최경환이 잔뜩 화를 냈다.

“당신 뭐야!?”

“나?”

지태훈은 그 어느 때보다 살벌했다.

김유리는 알 수 있었다.

진심으로 분노했을 때만 볼 수 있는 지태훈의 모습을 지금 보고 있다는 것을.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 지태훈.”

“……!”

“종신 그룹 내에 벌레 새끼가 감히 내 비서를 건드려?”

“너……!”

“닥쳐!”

“……!”

“지금부터 뚫린 입이라고 한 마디 더 하면, 감당 못 할 일이 벌어질 거야. 알겠어?”

“…….”

최경환은 기겁했다.

아무리 그가 종신 그룹 이사의 아들이라고 해도, 영신 그룹 회장의 아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그 정도 개념은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망나니.

미담(?)처럼 들려오는 그의 과거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꿀꺽.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 있는 최경환을 뒤로 한 채, 지태훈이 시선을 돌려 김유리를 쳐다보았다.

마침 김유리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반가움과 고마운 감정들이 한데 뒤섞였다.

그리고 그 이상의 감정들이 그녀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가자.”

지태훈은 그렇게 말하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김유리도 아까와 달리 순순히 그를 따라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우리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식당 안에 홀로 남아 있는 손지영한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녀보다 김 비서가 더 신경 쓰였다.

식당 밖으로 나왔지만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

“설마 김 비서가 거기서 나올 줄은 몰랐어. 그 새끼 이름 뭐야? 생긴 것도 싸가지없게 생겼더만.”

종신그룹 사람하고 만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이 정확히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김 비서는 한참 조용히 있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

“도련님은 여기에 무슨 일로 오신 거에요?”

“어? 아, 그게 말이야. 그러니까, 음. 일 때문에 왔어! 일!”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허우적댔다.

이 상황에서 ‘응. 나도 김 비서처럼 맞선~’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마워요.”

다행히 김 비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이야기해서 놀랐다.

“오늘 일로 괜히 피해가 가면 어쩌죠?”

어느 정도 현실 감각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김 비서는 불안해하며 혹여나 피해가 오면 어쩌나 걱정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안심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걱정하지 마. 만약 그놈이 이상한 짓 할 것 같으면 내가 모든 걸 걸고 응징할 거야.”

“도련님.”

“나를 믿어.”

김 비서는 내 사람이다.

내 사람이 이런 일로 다치게 할 수는 없다.

그 누구보다 지켜줘야 할 사람.

그게 바로 김 비서니까.

“돌아가자.”

“네.”

그렇게 함께 돌아가려다가 문득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 김 비서. 차는 가져왔어?”

“네. 가져왔어요.”

휴, 다행이다.

또 대중교통 이용해서 돌아갈 생각하니 아찔했다. 다행히 김 비서에게 차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일산으로 돌아갔다.

* * *

며칠 후.

나는 은행에 갔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주거래 은행인 ‘더블은행’ 고양지점에 가서 지점장을 만났다.

“아이고, 지 대표님.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중후한 풍채를 가진 나이 든 지점장이 내게 커피를 내줬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갖춘 VIP 실에는 나와 지점장 둘만 있었다.

“돈을 좀 빌릴 수 있을까 싶어서 왔습니다.”

“대출 문의이신 겁니까?”

“네.”

대출이란 말에 지점장의 태도가 달라졌다.

“어느 정도 필요하십니까?”

“얼마나 가능합니까?”

역질문을 던지자 지점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 숫자 계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존에 받고 있던 대출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아마 많이 나오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될까요?”

“그건 심사를 진행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걸리죠?”

“요즘 대출 심사를 받는 분들이 부쩍 늘어나서 언제까지 된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할 대화는 없다고 느꼈다.

남은 커피를 비운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잘 마시고 갑니다.”

“엇? 가십니까?”

“예. 수고하세요.”

은행 밖으로 나온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 끝에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다.

-무슨 일이냐?

“아버지. 지금 은행 다녀오는 길인데요. 원래 대출 받기 까다로워요?”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냐?

“돈이 필요해서 대출 좀 받아보려고 은행에 갔는데, 잘 안 빌려주려고 하네요.”

-어디로 갔는데?

“더블은행이요.”

-쯧쯧.

지종윤 회장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곧 내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너 같으면 그냥 돈 빌려주겠냐!

“아이쿠! 깜짝이야!”

-모자란 놈. 은행을 그냥 돈 나오는 ATM 기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놈들이 얼마나 계산적인데! 우리보다 더한 장사치가 그놈들이라고!

“그래요?”

-그래 이놈아! 그리고 왜 더블은행으로 갔어! 그쪽 애들이 얼마나 짜게 대하는데.

“그야 우리 구단의 주거래 은행이 더블은행이니까 간 거죠.”

-쯧쯧. 주거래 은행이라고 해서 더 잘 될 거란 보장은 없다.

지종윤 회장은 내게 온갖 조언과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러다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돈이 얼마나 필요해서 은행 대출까지 알아본 것이냐?

“음. 여름 이적 시장 때 맞춰서 추가 투자를 좀 해보려고 했죠. 곽 감독도 우승하고 싶으면 추가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고요.”

-흐음.

내 말에 그는 조금 고민하더니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던졌다.

-돈 필요하면 차라리 내가 사람 하나 만나게 해주마.

“네?”

-코리아네트워크 대표 박종찬이란 사람을 찾아가봐라.

“박종찬? 뭐하는 사람인데요?”

-자세한 건 스스로 알아봐라.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 * *

“도련님. 조사해 보니까 코리아네트워크란 회사는 전문 투자업체더라고요.”

“그래?”

“네. 대표인 박종찬은 미국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MBA 과정까지 다 마친 후 뉴욕에서 투자업체를 시작했다고 해요. 그래서 다양한 회사에 투자해서 꽤 괜찮은 결과들을 얻어냈나봐요.”

“그럼 회사가 미국에 있어?”

“본사는 미국에 있는데 최근 한국에서 지사를 설립한 모양이에요. 그게 코리아네트워크인 셈이고요.”

“그렇군.”

“회장님께서 괜히 추천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잘만 이용하면 우리한테도 좋은 파트너가 생길지도 모르겠는데요?”

김 비서를 시켜 코리아네트워크와 박종찬 대표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생각보다 규모 있는 투자업체라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근데 스포츠도 투자해 주려나?”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조사해 보니까 캐나다에 있는 프로 아이스하키팀에도 투자한 모양이더라고요.”

“흐음.”

“어떻게 만나 보시겠어요?”

사업을 하다 보면 대표이사는 계속해서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특히 이런 스포츠팀 운영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아직 우리 팀은 정상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투자부터 이루어져야 할 때였다.

그렇게까지 생각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좋아. 한번 만나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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