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구단에서의 내 역할은 적지 않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대표 이사 자리만 해도 요구되는 업무량과 책임이 다르다.
문제는 고양 유나이티드 내부에 있었다.
다른 구단은 대표이사와 사장이 주요 업무를 분담하는데, 고양 유나이티드는 현재 단장직이 공석이다.
내부에서 언제까지 단장직을 공석으로 둘 것이냐는 얘기가 여러 차례 나왔다.
하지만 비어 있는 단장직은 쉽게 채울 수 없었다.
프로축구에서 단장은 선수 영입 부분에서 최고 책임자이다. 구단 상황에 따라 전반적인 구단 경영 관리를 맡아 진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단장직을 맡길 수 없었다.
최소한 축구 관련 경영 지식이 있는 사람이 단장직을 맡아야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런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단장직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었다. 제아무리 전직 축구 선수라고 해도 경영은 다른 문제였다.
그렇다고 경영만 잘한다고 뽑아 놓을 수도 없었다.
적절한 예로 허재우 같은 인물이 있다.
모기업인 영신 그룹에서 나름 능력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뽑아서 단장직에 앉혔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구단이 무너져 내릴 뻔했다.
사실 나 혼자서 대표와 단장 일은 전부 다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 옆에 김 비서가 있었기 때문에 업무가 가능했다.
김 비서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많은 것들이 꼬였을 것이다.
“어디 괜찮은 단장 후보 없을까.”
운전하는 김 비서 옆에 앉아 있던 나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운전에 집중하고 있던 김 비서는 혼잣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띵! 전방 300m 앞 톨게이트입니다.
“도련님. 곧 목적지에 도착하겠는데요?”
“좀 더 빨리 가자. 배고프네.”
“안전 운전 해야죠.”
“그건 그렇지.”
우리는 울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곽찬구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내가 직접 울산으로 향한 것이다.
“에이전트 이름이 데이비드 박이라고 했나? 이름이 왜 이래? 외국인인가?”
“한국인인데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이름을 바꿨다고 하더군요.”
“그래?”
“네. 주로 미국MLS 리그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작년부터 K리그를 비롯한 아시아 주요 리그로 영역을 확장했다고 해요.”
“흠. K리그 쪽에 담당하고 있는 선수들 명단도 알아봤어?”
“네. 이번에 저희가 영입 시도할 오세진 선수 외에 경남에 롯사 선수하고 부산에 박용호 선수 정도로 파악됐습니다.”
“어라? 주로 경상도 쪽 팀들이네?”
“네. 데이비드 박의 원래 고향이 부산이기도 하고, K리그 내에 경상도 팀들이 많으니까 활동하기 좋았을 겁니다.”
“그렇구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울산 시청 근처에 있는 고급 음식점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예약하셨나요?”
“데이비드 박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입구에서 깔끔한 복장을 하고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확인되셨습니다. 따라오세요.”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식당 안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데이비드 박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데이비드 박이라 합니다. 그냥 데이빗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반갑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지태훈 대표입니다. 이쪽은 제 비서 김유리 비서고요.”
“아! 아름다우시네요. 반갑습니다.”
데이비드 박이라는 이름과 달리 말투는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금발로 염색한 짧은 머리에 살짝 태닝한 피부까지 곁들이니 느낌이 묘했다.
“그 써울에서 울싼까지 오시느라 욕보셨습니다~”
“괜찮습니다. 혹시 오래 기다리시지 않으셨나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아입니다~ 저도 좀 전에 왔습니다.”
데이비드 박은 생각보다 호탕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기 이 집이 울싼에서 소문난 맛집 아입니까. 그래서 이쪽으로 모셨습니다~”
“그렇군요.”
“주문은 제가 임의로 했는데 괜찮지요?”
“네. 괜찮습니다.”
곧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한상 크게 차려진 음식들을 보니 절로 군침이 흘렀다.
“일단 우리 일 야기는 먹고 난 다음에 하는 게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처음 보는 음식들이 제법 많았다.
나와 김 비서는 어리둥절하며 한 입씩 맛을 보았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본 데이비드 박이 말했다.
“음식들 전부 처음 보시죠? 여기 나온 음식들 전부 울산 향토 음식들입니다.”
“그래요?”
“네, 요 앞에 놓인 국은 간국이라고 하고, 요건 털게 수제비 그리고 요건 오징어 선젖 그리고 요 접시에 담긴 고기는 고래고기입니다.”
“고래 고기요?”
“네, 원래 우리나라에서 포경은 금지인데 가끔 고래 입장에서 재수 없게 그물에 걸려 죽는 경우들이 있지요. 그런 고래를 잡아다 만든 고래 수육입니다.”
“그렇군요.”
“함 맛보이소.”
음식들은 전반적으로 입에 잘 맞았다. 맛있게 음식을 먹은 후 어느 정도 배가 차오르자 우리는 식당에서 내준 후식을 먹으며 본격적인 업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쩌다 저희 오세진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신 건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저희 곽찬구 감독님께서 강력히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드렸던 거고요.”
“오~ 곽 감독님이요? 정말입니까?”
데이비드 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영업용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곽 감독님께서 오세진 선수를 굉장히 좋게 봐주신 모양입니다.”
“…….”
“설마 그 박형우나 장현우의 땜빵 정도로 생각하고 평가하진 않으셨겠지요? 그렇지요?”
갑자기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는 데이비드 박의 말에 순간 당황할 뻔했다.
하지만 나는 간신히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럴 리가요. 자세한 건 곽찬구 감독님으로부터 직접 들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저한테 얘기할 땐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랬군요.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데이비드 박은 자신 앞에 있는 매실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 세진이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군요.”
“오세진 선수의 계약 기간이 어느 정도 남았습니까?”
“흐음, 어디 보자. 2년 정도 남았던가? 뭐, 좀 남아 있습니다.”
데이비드 박은 아리송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가 일부러 이렇게 대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흥정하는군.’
뭔가 확실한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 데이비드 박은 이런 태도를 보여줄 확률이 컸다.
‘어설프게 할 바엔 차라리 과감하게 오픈해서 진행해보자.’
고민했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우리는 완전 이적을 원합니다. 완전 이적이 어렵다면 임대 후 이적도 원하고요.”
“흐음.”
“현재 오세진 선수가 받고 있는 연봉과 계약 기간을 정확히 알려주십시오. 그래야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겁니다.”
데이비드 박은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주 잠깐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우리 사이를 감돌았다.
그러다가 곧 데이비드 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솔직하게 오픈해 버리시니 조금 난감하군요. 음, 아직 대표님께서 젊고 어리셔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
“뭐, 좋습니다. 이렇게 오픈한 상대에게까지 제가 뭐 간재비를 하겠습니까? 그럼 오세진 선수에 대한 상세 정보를 알려드리죠.”
그렇게 말한 데이비드 박이 오세진 선수의 정보가 담긴 프로필 파일을 내게 넘겼다.
“한번 보시죠.”
서류를 받자마자 나는 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2년 반에 연봉 1억. 바이아웃 20억?”
선수 연봉 부분은 생각보다 적었다.
하지만 높은 바이아웃이 걸림돌로 보였다.
바이아웃으로 20억은 K리그 내에서 적지 않은 금액이다.
“지금 오세진 선수는 U22에 해당되기 때문에 선발과 교체를 오고 가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죠.”
K리그1은 U22 규정이 존재했다.
22세 이하 선수들을 의무적으로 스쿼드에 넣도록 하는 규정이다.
어린 유망주들의 발전을 위한 조항인데 해당 사항을 따르지 않으면 교체 제한 같은 불이익이 주어진다.
오세진의 나이는 22세.
올해가 끝나면 22세 의무 출전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오세진 선수가 내년이면 23세가 됩니다. 생일도 3월이라 빠르죠. 제가 알기로는 현재 오세진 선수와 같은 포지션 경쟁자에 국대 출신 고유원과 독일 출신 토마스가 주전으로 꽉 잡고 있는 걸로 압니다.”
울산은 2020년대 들어서 매년 우승 경쟁을 하는 강팀이다.
그러다 보니 울산 스쿼드에는 쟁쟁한 선수들로 가득했다.
U22 조항이 아니었다면 어린 선수들은 기회조차 밟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자 데이비드 박이 불편한 심기를 과감하게 드러내며 말했다.
“오세진 선수는 울산에서 미래를 생각해서 데려온 선수입니다. 선수도, 팀도 서로에게 꽤 애정이 있고요.”
“그렇습니까?”
“아시겠지만 울산은 리그뿐만 아니라 매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일정도 소화하는 팀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세진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요.”
“그랬군요.”
“오세진 선수는 울산에 남아 있어도 결국 주전 선수로 도약할 겁니다.”
데이비드 박은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슬쩍 미소를 드러냈다.
“정말 그럴까요?”
“……?”
“저희 쪽 정보에 의하면 울산은 오세진 선수를 대체할 신인 선수를 알아보고 있다고 하던데요?”
“……!”
“뭐, 오세진 선수라면 어떠한 경쟁자가 와도 나중엔 이겨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동안 버리는 시간을 생각해 본다면 손해일 수도 있겠네요.”
“…….”
“음. 그러고 보니까 오세진 선수가 2시즌 반 동안 울산에 있으면서 기록한 공격포인트가 3골 5도움이죠? 이번 시즌만 하면 1골 2도움이고.”
“…….”
“저라면 좀 더 가능성 있는 곳에서 경쟁해보겠습니다.”
데이비드 박의 얼굴에 금이 갔다.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세수를 했다가 남아 있던 매실차를 비워 버렸다.
“다 알고 오셨군요?”
“뭐,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습니까?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하는 내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반면 데이비드 박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 * *
“후아~ 끝났다~”
“고생하셨어요. 도련님.”
데이비드 박과의 미팅은 순조롭게 끝낼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마지막에 오세진 선수가 이적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대답했다.
“U22 조항이 이럴 땐 좋단 말이지.”
“조항의 맹점을 이용하는 전략인가요?”
“어허. 나쁜 거 아냐. 다 좋게 좋게 하자고 하는 거 아냐. 안 그래?”
내 말에 김 비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그렇고 울산에서 오세진을 보내주겠지?”
“바이아웃이 걸리기는 해도, 중간에 데이비드 박이 얼마만큼 해주냐에 따라 갈리겠죠.”
“흠. 결국 기다려봐야 된다는 거군.”
선수 이적에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시장에서 물건 사듯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와 에이전트 그리고 선수가 속한 팀과 모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원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협상 테이블을 움직여야 했다.
“우리 말고 오세진 선수를 노릴 만한 경쟁팀이 있을까?”
“음, 몇 팀 예상되기는 하는데 지켜봐야겠지요?”
“그렇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끝냈다.
곧바로 서울로 돌아갈 수 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김 비서. 오늘 하루 자고 갈까?”
“네!?”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응하는 김 비서.
그런 그녀의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왜, 왜 그래!?”
내가 뭘 실수했나?
평소 김 비서와 어디를 가도 아무렇지 않게 자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랬기에 별 생각없이 얘기했건만 이런 반응을 보이니 응당 당황스럽다.
“그게, 음, 그러니까요.”
얼마나 당황했으면 횡설수설하나.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음. 됐어. 김 비서가 싫으면 바로 올라가자.”
“그건 아닌…….”
“아니야. 내가 괜히 곤란하게 한 거 같네. 일산으로 가자.”
그후 조용히 우리는 다시 일산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