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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56화 (56/272)

56화

어느 리그든 상관없이 FA컵 대회에서는 매년 상당한 변수가 벌어진다.

올해 K리그 FA컵 대회도 그랬다.

이번 반전의 주인공은 바로 경기 북부 더비에서 나오고 있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고양 유나이티드가 경기를 뒤집는 득점을 만들면서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 후반전 정규시간은 남아있다.

하지만 파주FC의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더비전이라고 해도, 고양 유나이티드는 2부 리그로 추락한 팀이었다.

그런 팀을 상대로 2실점이나 내주면서 끌려다니는 상황은 1부 리그 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파주FC가 굴욕의 순간을 맛보고 있을 때, 팀을 이끄는 단장 이재신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야!?”

고양 유나이티드의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의문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 영상 속에서는 놀랍게도 김진호가 등장했다.

영상 속 김진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파주FC의 이재신 단장이 하프타임 때 고양 유나이티드의 작전을 훔쳐 오라고 시켰습니다.

“미친 새끼!”

영상을 본 이재신의 입에서는 쌍욕이 터져 나왔다. 옆에서 있던 허재우도 놀라움을 넘어 당혹스러워 했다.

“이봐, 이 단장. 이거 진짜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방법이라는 게…….”

“조용히 해. 나는 모르는 일이야!”

이재신은 발뺌했다.

하지만 허재우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재신이 한 짓이라는 것을.

그 이유로 이재신은 평소와 달리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봐, 허 팀장!”

“왜?”

“이거 누구 작품일 것 같냐?”

허재우가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작품이긴. 내 작품이지.”

“……!”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지태훈이 서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는 지태훈의 등장에 분위기는 순식간 싸늘해졌다.

* * *

김 비서가 영상을 찍어 천지원 부장에게 보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한 천지원 부장에게 상황을 설명해준 뒤 바로 구단 공식 SNS에 올리라고 지시했다.

이후 나는 이재신 단장이 있는 곳을 파악한 뒤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의외의 인물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허재우 단장?”

“지태훈!”

허재우는 살벌한 기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기세만 봐서는 당장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노려보기만 할 뿐 그 이상 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지내고 있나 싶었더니 라이벌 팀에 붙어먹고 있었구나.

그때 이재신이 끼어들었다.

“지태훈 대표님이시군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경기 중에 찾아오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내가 아주 깜찍한 선물을 받아서 말이야. 그래서 돌려주려고 왔지.”

“이보세요. 아무리 대표이사라고 해도 예의 지키세요!”

누가 봐도 한참 어린 내가 반말을 하며 얘기하자 이재신 단장이 예의를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의? 지금 나한테 예의를 찾아?”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흘렸다.

“자꾸 이러시면 경호원 부르겠습니다.”

“부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시고. 김진호라는 친구를 보냈던데, 그리고 그 친구가 여기 파주FC 소속이더라고. 그것도 유소년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 모르겠지. 어차피 발뺌할 줄 알고 찾아왔으니까.”

“……?”

“똑똑히 들어. 내가 여기에 온 건 경고 목적으로 온 거니까. 오늘 사건과 관련해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거니까 그런 줄 알라고.”

“뭔 개소리를……!”

“됐고. 너, 김진호 그 친구한테 함부로 대했다가 내 손에 죽는 거야. 알겠어?”

“……!”

분노에 찬 이재신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 그리고 말이야. 잊고 있었던 게 있는데.”

“…….”

“중간에서 선수 이적료하고 유소년팀 부모들한테서 받은 뇌물들. 참나, 많이도 해드셨더라?”

“……!”

“그, 누구야. 정찬성이던가? 그 친구 충주 갔을 때 3억 꿀꺽 했지? 유진호 부모님한테서도 한 1억 먹었고.”

“……!”

“뭐, 내가 상대하기 전에 먼저 감방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이재신의 두 눈이 떨고 있었다.

마치 어떻게 그것들을 알고 있냐는 듯.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들이기도 하다.

회귀 전에 이재신이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밝혀진 사실들이다. 공교롭게도 그가 벌인 만행들은 뇌물을 준 유진호 부모님의 고발로 밝혀지게 됐다.

“처신 잘해. 그럼 이만.”

그렇게 자리를 떠나려는데 허재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지태훈!”

“…….”

나는 어깨를 잡은 허재우를 쳐다보았다.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당황하며 침을 삼켰다.

“안 치워?”

“……!”

“좋은 말로 할 때 치워라. 뒤지기 싫으면.”

하~ 이거 참. 망나니 시절의 모습이 다시 발동되려고 하네.

간신히 없앴나 싶었는데 이런 놈들 때문에 자꾸 내 과거 모습이 튀어나오려고 한단 말이지.

슥.

결국 허재우가 손을 내렸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곧 그곳을 떠났다.

* * *

후반전 정규시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파주FC는 동점골을 향한 의지로 불타고 있었다.

터치 라인에 선 이반코치비 감독이 불만 어린 목소리로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고, 선수들도 잔뜩 굳은 얼굴로 필드를 누볐다.

반면,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공격보다 지키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곽찬구 감독도 무리하게 라인을 올리지 말고 지키면서 시간을 보내라고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 두 팀의 상반된 경기 운영 속에서 팬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고양 팬들은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파주 팬들은 골을 외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후반 정규시간이 지나서 추가시간이 될 무렵이었다.

『추가시간 3분이 주어집니다.』

3분.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끝까지 집중해!”

누가 외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양 팀 모두에게 해당 되는 외침이기도 했다.

“산토스!”

추가시간 기회를 잡은 파주FC의 산토스.

이미 그는 많이 지쳐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고 있었다.

산토스는 이를 악물고 골문을 향해 슈팅을 때렸다.

팡!

빨랫줄처럼 날아가는 슈팅.

하지만 공은 라시모프의 몸을 날리는 수비 앞에 막히고 말았다.

“젠장!”

기회를 날려버린 산토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이후 파주FC는 몇 번 더 기회를 잡았지만 모두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추가시간도 거의 끝나갈 무렵,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의 입에서 어떤 노래가 흘러나왔다.

저기 허접 파주

우리의 밥이구나

승점자판기 허접 파주

승점 고맙구나~♬

라라라라 라라라

어떤 K리그 팀이든 더비전에서 이기고 있을 때 나온다는 전설의 승점자판기송(밥송)이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 쪽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파주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밥송에 파주FC 서포터스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비록 리그가 아닌 FA컵이긴 해도 치욕스러운 상황은 분명했다.

“XX!”

파주FC 홈팬 좌석에서 강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분을 이기지 못한 욕설이었다.

그 순간, 기다렸던 휘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삑! 삐익! 삐이이익!

우와아아아아아!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에 고양 유나이티드의 모든 이들이 환호성을 지었다.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자들도 한 목소리로 고양의 승리를 알렸다.

『경기 끝났습니다! 대반전이 일어났습니다! 4년 만에 치러지는 경기 북부 더비의 승자는 바로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2부 리그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양 유나이티드가 대단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통산 102번째 경기 북부 더비의 결과는 2:1 고양 유나이티드의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오늘 결승골의 주인공인 사무엘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카메라도 그런 사무엘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비춰주었다.

『결승골을 넣은 사무엘이 눈물을 흘리고 있네요. 오늘 경기 이후로 많은 이야기가 오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김지우 선수를 비롯한 동료 선수들이 어깨를 두드려 주네요.』

이반코비치 감독과 짧게 악수를 나눈 곽찬구 감독이 그라운드 위로 올라왔다.

그는 선수들을 한 명씩 끌어 안아주며 수고했다고 말했다.

“다들 고생했다.”

경기 내내 굳은 얼굴로 있던 곽찬구 감독의 입가에서는 마침내 미소가 피어올랐다.

카메라는 그런 곽찬구 감독의 모습을 잡아준 뒤, 이번에는 서포터스 쪽으로 향했다.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샌가 웃통을 벗은 남자 서포터스들이 서로 어깨 동무를 하며 응원가를 부르고 방방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함께 웃통을 벗고 방방 뛰고 있는 지태훈도 있었다.

그는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로 서포터스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고양의 날~

내일의 걱정 따위는 모두 날려버려~

언제나 이곳에서~

우리는 너희와 함께 해~

이러한 지태훈 대표의 모습에 지켜보던 모두가 놀라고 있었다.

한 구단의 대표이사가 이렇게 팬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기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 이 모든 광경은 수많은 K리그 팬들에게 각인되었고, 얼마 안 가 K리그를 넘어 해외로 나아갔다.

* * *

이번 라운드 FA컵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동 시간대에 열렸던 경기에서 K리그1에 소속된 팀들이 대거 탈락했기 때문이다.

K리그2 소속이던 고양 유나이티드가 파주FC를 잡고, 이어서 제주 유나이티드가 울산을 잡는 대이변을 선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시즌 K리그2를 제패하고 올라갔던 안양이 서울 다이너스티에게 대패하며 탈락했다.

이로 인해 팬들은 K리그2의 저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는 반응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경기들 중에서 단연 주목받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지태훈이었다.

┗ 저런 사람이 대표로 있는 곳이라면 팬질도 할만 하겠는데?

┗ 솔직히 요즘 고양 유나이티드 부러움.

┗ 하. 우리팀은 정말…… 할말하않.

웃통을 벗은 지태훈 대표의 모습은 의외로 여성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우리 지대표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고 몸도 좋았네?

┗ 나는 요즘 지 대표 보러 직관하고 있음.

┗ 지 대표 굿즈는 안 내주나? 하다못해 포카라도…….

“좋으시겠어요.”

“아, 또 왜 그래!”

한편, 여성 팬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 지태훈 대표에게 김유리 비서가 뾰로통한 반응을 보인 것은 덤이다.

* * *

FA컵 경기가 끝나고, 곽찬구 감독이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대뜸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여름 이적 시장 때 사람 좀 영입할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요?”

갑작스러운 영입 요청에 나는 당혹스러웠다.

지난 겨울에 충분히 필요한 만큼 지원해 줬다고 생각했었다. 설령 부족하다고 해도 여름 이적 시장까지 아직 시간이 한참 남지 않았나?

“박형우, 장현우. 이 두 사람이 다가올 월드컵에 차출되면 전력손실이 불가피합니다!”

“……!”

박형우와 장현우.

이 두 선수는 우리 팀에 오기 전부터 국가대표에서 활약해오던 선수들이다.

다가올 여름에 치러질 월드컵 본선 무대에 차출될 확률이 컸다.

“지금 있는 선수들로는 부족할까요?”

“물론 기존 선수들은 잘해 주고 있습니다. 다만, 형우가 너무 잘합니다!”

“…….”

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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