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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55화 (55/272)

55화

후반전이 시작된 파주스타디움은 전반전 때보다 더 큰 열기에 휩싸였다.

양측 서포터스들이 부르는 응원가와 함성이 경기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운 가운데 나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년의 팔을 붙잡고 외쳤다.

“따라와!”

소년은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몸짓을 보였다.

옆에 있던 김 비서도 잔뜩 화가 난 나를 말리고 나섰다.

“도련님! 잠깐 진정하세요!”

“김 비서! 이 녀석은 파주에서 보낸 스파이야! 당장 이 녀석을……!”

“도련님! 흥분해서 해결할 일이 아니잖아요!”

평소 차분한 스타일로 얘기하던 김 비서가 이번에는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그제서야 나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우악스럽게 잡았던 소년의 팔을 놓았다. 소년은 내게 잡힌 팔을 감싸며 인상을 찌푸렸다.

김 비서가 그런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니?”

“…….”

“정말 네가 파주FC에서 보낸 스파이니?”

“…….”

소년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소년의 반응에 순간 다시 울컥할 뻔했지만 김 비서 때문에 참았다.

아무런 대답 없는 소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그녀가 돌연 차갑게 경고했다.

“정말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겠다면 너도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

“네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얘기하는데, 여기 계신 분은 영신 그룹 막내 도련님이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

“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1시간 내에 우리는 네가 누군지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야.”

“……!”

“너희 집으로 영신 그룹 법무팀이 찾아갈 거야. 그리고 너희 부모님과도 이야기를 나누겠지. 그런 다음…….”

“죄, 죄송해요!”

결국 소년이 항복했다.

김 비서의 싸늘한 경고는 옆에서 듣고 있는 나조차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나조차 그러는데 눈앞에 소년이 버틸 수 있겠나?

“그럼 다시 물을게. 이름이 뭐니?”

“기, 김진호.”

“말이 짧네?”

“김진호입니다!”

“그래. 그럼 우리 팀 라커룸 앞에서 보인 수상한 행동은 뭐니?”

“그, 그게…….”

“괜찮아.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김 비서는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시도했다.

“네, 이 변호사님.”

영신 그룹 법무팀에 진짜로 전화를 걸어버린 김 비서.

지켜보던 소년과 나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년이 다급하게 외쳤다.

“네, 맞아요! 다, 단장님이 시키셨어요! 이번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 유소년팀에서 성인팀으로 승격시켜주시겠다고 해서 그만…….”

“…….”

소년의 말은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와 김 비서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소년이 이실직고한 이상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축구에서 종종 상대 팀에 스파이 보내서 정보 유출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도련님, 어떻게 할까요?”

“글쎄…….”

아까 잔뜩 흥분했을 땐 당장 이재신 단장을 찾아가서 행패를 부릴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조금 달리 접근해야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조금 고민한 끝에 나는 기가 막힌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야, 김진호라고 했냐?”

“네? 넵!”

“그래. 그럼 나하고 뭐 하나 같이 하자.”

“네?”

소년을 바라보는 나는 사악한 미소를 드러내고 있었다.

* * *

『여기는 파주 스타디움입니다. 경기 북부 더비는 후반전에 들어서면서 더욱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후반전 들어서 양 팀 모두 과감한 맞불 작전으로 서로를 상대했다.

마치 뒤는 없다는 식으로 모두 라인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러다 보니 양 팀 모두 계속해서 결정적인 찬스들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찬스가 아직 득점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고양이 먼저 카드를 꺼냈다.

『지금 고양 유나이티드가 교체를 준비하는 것 같은데요. 누가 나올까요.』

중계 카메라가 고양 유나이티드 벤치를 잡았다. 그 순간, 중계 위원들이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아! 사무엘이 준비하고 있네요!』

『이야, 이렇게 되면 사무엘은 고양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첫 번째 경기 북부 더비가 되겠네요.』

『파주의 심장이었던 사무엘이 이제는 고양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교체를 준비하는 사무엘에게 곽찬구 감독이 말했다.

“준비됐지?”

“네, 감독님!”

“좋아. 그럼 긴말하지 않을게. 평소에 네가 하던 대로 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넵!”

“아마 너 들어가면 정호하고 종현이가 널 집중적으로 괴롭힐 거다. 다 아는 사이들이니까 더 거침없을 거고.”

“…….”

“다 옛날 동료들이야. 지금은 이 순간은 적이야. 알겠지?”

“네!”

“좋아. 그럼 행운을 빈다!”

“넵!”

곽찬구 감독과 대화를 마친 사무엘이 대기심이 있는 터치라인 앞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양팀 서포터스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우우우우우-.

파주FC 팬들은 교체를 기다리는 사무엘을 향해 거침없이 야유를 보냈다.

『자, 지금 교체가 이루어집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첫 번째 교체 카드는 사무엘입니다!』

『박형우 선수를 빼주네요. 이러면 곽찬구 감독도 나름대로 강수를 두겠다는 소리인데요. 제로톱이 아닌 사무엘 원톱 체제로 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와~ 사무엘 선수가 들어가니까 파주FC 팬들의 야유가 엄청납니다.』

죽어!

배신자!

우우우우-.

유럽의 강성 팬들 못지않게 파주FC 팬들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

그 순간,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이 나섰다.

사무엘-! 사무엘-! 사무엘-!

비록 숫자가 적기는 해도,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은 일당백으로 사무엘의 이름을 외쳤다.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도 사무엘이 투입된 순간 박수를 보냈다.

“사무엘! 잘해봐!”

“응. 고마워, 형우.”

교체아웃된 박형우도 사무엘을 응원했다.

그렇게 아군이 아닌 적으로 파주스타디움의 잔디를 밟게 된 사무엘.

그런 사무엘 곁으로 나정호가 바짝 붙으며 말을 걸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오랜만이야, 정호.”

“닥쳐! 배신자!”

“…….”

나정호는 사무엘과 함께 뛰던 시절 가장 친했던 선수였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고양 유나이티드를 싫어하는 파주FC의 원클럽맨이기도 했다.

사무엘이 고양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정호는 그와 연락을 끊었을 정도였다.

“내가 너만큼은 막는다!”

“해볼 수 있으면 해봐.”

그 순간, 사무엘이 장현우로부터 패스를 받았다.

공을 받은 사무엘은 나정호를 앞에 두고 기술적인 플레이를 선보였다.

『사무엘! 처음으로 패스를 받습니다! 나정호가 붙어 있는데요! 사무엘, 돌파합니다!』

기술적이면서도 깔끔한 드리블로 나정호를 너무나도 쉽게 벗겨냈다.

“이런……!”

당황한 나정호가 허겁지겁 사무엘의 뒤를 쫓았다.

거침없이 파주FC 진영을 휘젓는 사무엘.

그런 사무엘 앞을 이번에는 레오나르도가 막았다.

“사무엘!”

“레오.”

과거 같은 동료였던 사무엘과 레오나르도. 둘 다 같은 브라질 출신이기도 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감정은 미묘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사무엘은 침착하게 좌우를 살폈다.

이미 나탈과 박요한이 빠르게 좌우에서 쇄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동료의 위치를 파악한 그는 결론을 내렸다.

툭.

공이 짧게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레오나르도의 키를 넘기는 절묘한 로빙패스.

‘젠장! 큰일이다!’

놀란 레오나르도가 황급히 몸을 돌려 공을 소유하려고 했다. 이대로 넘어가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공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윤태준 골키퍼가 있다고 해도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레오나르도는 어떻게든 몸을 날리듯 움직였다.

하지만 고양 유나이티드에는 발 빠른 측면 공격수들이 존재했다.

“땡큐, 사무엘!”

레오나르도보다 먼저 공을 잡은 박요한.

공을 소유한 박요한은 이미 페널티박스 안쪽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그의 뒤에는 레오나르도, 앞에는 윤태준 골키퍼가 있었다.

팡!

박요한은 과감하게 슈팅을 때렸다.

낮고 묵직하게 날아가는 공이 골문을 향했다.

“위험해!”

누군가의 외침.

골문을 지키고 있던 윤태준도 날아오는 공을 보고 힘껏 몸을 날렸다.

팡!

아슬아슬하게 공을 쳐내는 데 성공한 윤태준.

골문과 가까운 거리에서 시도한 슈팅을 괴물 같은 선방 능력으로 막아낸 것이다.

박요한은 저도 모르게 아쉬운 탄성을 내며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바로 그 순간.

『고오오오올! 사무엘! 고양의 두 번째 득점을 만들어내는 사무엘의 골이 나왔습니다!』

『이거죠! 곽찬구 감독이 노렸던 사무엘 효과입니다!』

『윤태준 골키퍼의 손에 맞고 흐른 공을 재차 슈팅으로 득점을 만드는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득점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3분도 걸리지 않았네요!』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도 환호하는데요! 득점을 한 사무엘은 세리모니를…… 합니다!?』

모두의 예상을 깬 반전 상황.

보통 이적한 팀에서 옛 친정팀을 처음 상대해서 득점을 한 경우, 예의상 세리모니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런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 누구보다 화려한 세리모니를 펼쳤던 것이다.

“Fuck You! 이재신!”

코너에 자리잡고 있던 중계 카메라 앞에서 사무엘은 가운데손가락을 올렸다.

이 상황은 파주스타디움 내에 있는 대형 전광판에도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순간 양 팀의 모든 이들이 멍한 얼굴로 사무엘을 보게 되었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주장 김지우가 사무엘의 등을 강하게 치며 외쳤다.

“야! 미쳤냐!?”

“으하하!”

하지만 사무엘은 아무렇지 않게 웃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 광경은 중계화면에도 고스란히 잡혔다.

『어, 음. 방금 사무엘 선수가 흥분해서 욕을 했는데요. 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하하. 네. 아무래도 사무엘 선수가 파주FC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인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사무엘의 역전 골이 나오면서 고양 유나이티드가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스코어는 2:1입니다.』

그렇게 경기는 절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 *

“이런, 젠장!”

추가 실점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 이재신과 허재우 모두 신경질을 드러냈다.

“어떻게 저걸 먹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

젠장, 이럴 줄 알았다.

싸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던 허재우는 기어코 역전에 성공한 고양 유나이티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법이 있다며?”

허재우의 물음에 이재신은 입술을 깨물었다.

‘김진호 이 자식은 후반전 시작하기 전에 나한테 작전 알려주기로 해놓고 어디로 간 거야?’

파주FC 유소년팀에 소속되어 있는 김진호는 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밀린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축구만 해오던 그로서는 삶의 기로가 찾아온 셈이다.

성인팀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김진호는 자칫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런 절박함을 알고 있는 이재신 단장은 김진호를 이용했다.

‘돈도 없는 거지 녀석 주제에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들킨다고 해도 문제없었다.

이미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제기랄. 지금은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지금 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돼.’

이재신 단장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작전 시작해.”

시작하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이재신.

그런 그를 허재우가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정말 뭘 준비했나?”

“…….”

그때였다.

그들 곁으로 파주FC 직원이 뛰어왔다.

“단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이야!”

“이, 이것 좀 보십시오!”

직원이 건넨 스마트폰.

스마트폰 화면을 본 이재신은 곧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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