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팟!
3명의 선수 사이로 튀어 오른 공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향한 그 순간!
산토스가 공을 향해 이마를 댔다.
출렁-.
와아아아아아!
골망이 흔들림과 동시에 파주FC 팬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득점에 성공한 산토스가 카메라 앞으로 뛰어가서 멋진 세리모니를 펼쳤다.
산토스-! 산토스-! 산토스-!
산토스의 이름을 외치는 파주FC 서포터스.
반면, 실점한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은 순간 침묵하고 말았다.
“모두 정신 차려요! 아직 경기 안 끝났습니다!”
박태준이 서포터스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다시 응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힘을 내라 고양!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도 아쉬움을 달랬다.
“아직 시간 남았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그래! 집중하자!”
주장 김지우와 박형우가 필드 위에 있는 선수들을 독려했다.
곽찬구 감독은 수석코치와 함께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수비 위치를 조금 조정하고, 공격 쪽에서는…….”
나는 굳은 얼굴로 이 모든 상황을 조용히 눈에 담고 있었다.
* * *
파주FC의 이반코비치 감독은 선제 득점이 터지기 전까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제기랄!’
경기 전에 이재신 단장과 허재우 팀장이 경기 북부 더비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반코비치는 그런 두 사람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었다.
그래 봤자 상대는 한낱 2부 리그 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고양 유나이티드와 붙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위기의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한낱 2부 리그 팀의 실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했다.
이반코비치 감독 입장에서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산토스의 골이 터지면서 이반코비치 감독은 안도할 수 있었다.
“역시, 2부 리그에서 잘해 봤자지.”
조금 전까지 불안했던 마음은 사라져 버린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반코비치 감독의 이런 마은은 오래가지 못했다.
* * *
한편, 이재신 단장과 허재우 팀장 모두 VIP 좌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위험하긴 했어도 역시 예상했던 대로군.”
이재신 단장이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혹시나 반전을 일으킬까 싶었지만 반전은 없었다.
그러자 허재우 팀장이 말했다.
“아직 시간 남았다. 겨우 1점 들어간 거고.”
“흥. 그래도 친정팀이라고 변호해주는 거냐?”
“그럴 리가. 그저 방심하지 말자는 거지.”
“뭐, 방심은 금물이지. 만약을 대비해서 이것저것 준비해뒀으니까.”
“준비?”
“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 소리야.”
“…….”
허재우 팀장은 파주가 이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뭐지, 이 거지 같은 느낌은?’
파주FC는 선제 득점 이후 고양을 상대로 파상공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오히려 그가 원하던 모양새로 가고 있었다.
분명 즐거워야 하는데 오히려 속이 답답했다.
하지만 허재우는 그 이유를 찾지 못하였다.
* * *
『102번째 경기 부북 더비의 선제골 주인공은 파주FC의 산토스입니다!』
『선제골 직전까지 양 팀 모두 팽팽한 경기력을 보여줬었는데요. 결국 선제골은 파주FC가 만들어내는군요.』
중계 카메라에는 양 팀 벤치 상황이 잡혔다.
『이반코비치 감독이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고, 반면 곽찬구 감독의 표정은 좋지 않네요.』
『고양 선수들이 공격 과정 자체는 나쁘지 않거든요? 오히려 경기 템포 면에서는 고양 선수들이 파주FC 보다 나았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결정력 부분에서 아직 아쉬움이 있네요.』
『기세가 살아난 파주FC가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선제 득점의 주인공 산토스인데요! 산토스, 슈웃! 박지원 골키퍼의 선방에 막힙니다!』
몰아붙이는 파주FC의 파상공세에 고양 유나이티드가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고양 유나이티드 위깁니다!』
『파주FC가 저력을 보여주네요. 지금 대부분의 파주 선수들이 고양 유나이티드 진영 쪽으로 넘어와서 싸우고 있는데요. 고양 선수들도 최전방에 박형우를 제외하면 모두 내려와서 파주FC의 파상공세를 막고 있습니다!』
1부 리그의 저력인 것일까?
파주FC의 파상공세에 당하고 있는 고양 유나이티드의 모습을 지켜보는 고양 팬들은 불안과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더 흐르고, 전반전 경기가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산토스의 슈팅을 얼굴로 막아내는 라시모프! 라시모프 쓰러지는데요! 상당히 고통스러워합니다! 그 사이 장현우 선수가 공을 잡습니다.』
『어, 주심이 어드벤티지를 주네요!』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라시모프를 뒤로 한 채, 장현우는 전방으로 길게 공을 넘겼다.
마침 전방에는 박형우 혼자 있었다.
장현우로부터 공을 받은 박형우의 곁에는 나정호가 붙었다.
팍!
나정호가 박형우의 옷깃을 손으로 잡았다.
하지만 박형우는 그런 나정호의 손길을 뿌리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박형우 달립니다!』
『찬스죠!』
『파주FC 선수들 대부분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수비 숫자가 부족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박형우 곁으로 나정호와 레오나르도가 뒤따라 붙었다.
두 선수 모두 박형우와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팔을 길게 뻗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골문을 지키던 윤태준 골키퍼도 앞으로 튀어나와 거리를 좁혔다.
자칫 삼각형으로 둘러싸여 막힐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박형우의 슈팅이 한발 빨랐다.
『박형우 때립니다! 고오오오올! 박형우! 어메이징한 골을 만들어내는 박형우입니다!』
『이야아아!』
단 한 번의 카운터어택에 파주FC 팬들은 침묵했고, 이번에는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
박형우-! 박형우-! 박형우-!
팀 에이스 박형우가 만들어낸 환상적인 동점골에 고양의 모든 관계자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가 막힌 동점골이 나왔습니다! 파주FC와 고양유나이티드의 스코어는 1:1 동점이 되었습니다!』
『라시모프가 산토스의 슈팅을 막아내고 장현우 선수의 깔끔한 전방 패스에 이은 박형우 선수의 마무리까지! 이게 바로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중계 카메라에는 오른 손을 주먹을 쥐고 들어 올리며 기뻐하는 박형우와 그런 그를 뒤에서 끌어안고 함께 기뻐하는 동료 선수들의 모습이 잡혔다.
『경기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 *
박형우의 동점골이 터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다.
“이야아아아! 그래 바로 이거지!”
너무 기쁜 나머지 옆에 앉아 있던 김 비서를 끌어안았다.
김 비서도 나를 꽉 안고 함께 기뻐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확 떨어졌다.
“흠흠.”
머쓱한 얼굴로 옆에 뒀던 생수를 손에 쥐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나저나 다행이었다.
이대로 꼼짝없이 파주FC에게 끌려다니는 상황이 올까 봐 걱정했었다.
한창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팀에게 자칫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내 앞으로의 계획들이 어그러질 수 있었다.
삑! 삐익! 삑!
박형우의 동점골 이후, 얼마 안가서 주심이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휘슬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몸을 돌려나가려고 했다.
“도련님, 어디 가세요?”
“화장실.”
경기장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본 다음 밖으로 나왔다.
그대로 다시 자리로 돌아갈까 생각하던 나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것을 보고 고민했다.
“시간 남은 김에 응원이라도 하고 올까?”
구단 대표로서 조금은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럴 때 응원이라도 해주면 좋지 않을까?
“음. 그게 좋겠다.”
간만에 좋은 생각했다고 생각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원정팀 라커룸으로 향했다.
원정팀 라커룸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쯤 작전 회의하고 있으려나?”
괜히 작전회의 타임 때 들어가면 분위기 흐트러질 수 있으니, 선수들 나올 때 맞춰서 응원해 줘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라커룸 앞에 거의 도착할 때쯤 나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음?”
원정팀 문 앞에서 어떤 남자가 수상한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얀색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를 본 내가 외쳤다.
“이봐! 거기 뭐야?”
그 순간, 내 목소리를 듣고 놀란 남자가 후다닥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야! 거기서!”
딱 봐도 수상한 인물이었다.
나는 바로 그 남자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야! 거기 안 서!?”
도망치는 남자는 굉장히 빨랐다.
나도 학창 시절에서 달리기 속도 제법 나온다고 생각했었는데, 저 남자는 달랐다.
“헉! 헉! 제, 젠장!”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차고 뛰기 힘든 순간까지 오고 말았다.
반면, 눈앞에 남자는 여전히 잘 달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끝낼 수는…… 어?”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돌연 나타난 김 비서가 도망치던 남자와 충돌한 것이다.
쿵!
“꺅!”
“크윽!”
충돌한 두 사람이 바닥을 굴렀다.
“김 비서!”
나는 바닥을 구른 김 비서부터 챙겼다.
“괜찮아!?”
“네, 저는 괜찮아요. 근데 무슨 일이죠?”
“아! 잠시만!”
나는 김 비서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바로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침 남자는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바로 남자에게 뛰어가 그대로 발차기를 날렸다.
퍽!
발차기에 당한 남자가 다시 바닥을 굴렀다.
“크윽!”
“너, 뭐야?”
누워 있는 남자의 멱살의 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한 손으로 모자를 벗겼다.
그러자 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소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애잖아?”
“도련님!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앗, 애잖아? 설마 사고 치셨어요?”
“아니야! 우리 팀 응원하려고 갔다가 수상하게 행동하고 있어서 쫓다가 잡은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차갑게 소년을 내려다 봤다.
소년은 여전히 내 밑에 깔린 상태에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너 나하고 경찰서 갈래? 나는 애라고 해서 안 봐준다?”
“자, 잘못했어요!”
경찰서 얘기를 꺼내자 뒤늦게 소년이 잘못을 구했다.
“그럼 너 왜 그랬는지 얘기해! 문앞에서 왜 그러고 있었어?”
“그, 그게…….”
소년이 울먹거리자 보다 못한 김 비서가 한 마디 던졌다.
“도련님. 일단 일어나시죠? 애 깔고 뭐하는 거예요!”
“혹시라도 도망갈까봐 그런 거지.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어서 일어나요!”
쳇.
솔직히 싫었지만 김 비서 말을 거역할 수도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말해 봐. 왜 문 앞에서 그러고 있었는지.”
“그, 그게…….”
소년이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경기장에서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펑! 퍼펑! 펑!
“후반전 시작했나 보네요.”
김 비서의 말대로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폭죽 소리였다.
하지만 그 폭죽 소리를 들은 소년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걸 본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를 느꼈다.
“설마 너 파주FC에서 보내온 스파이냐?”
“……!”
소년은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소년의 반응에 순간 내 머릿속에 퓨즈가 끊겼다.
“너,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