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동시에 여러 매치업이 치러지는 오늘 FA컵 경기 중 파주FC와 고양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방송사 메인 중계로 낙점되었다.
무려 4년 만에 치러지는 경기 북부 더비에 기대를 거는 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기를 대한민국 스포츠 중계 전문 채널 STV에서 현장 생중계로 진행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FA컵 3라운드 파주FC 대 고양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중계할 캐스터 이형욱입니다. 박천명 해설위원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STV의 메인 중계진인 이형욱 캐스터와 박천명 해설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무려 4년 만에 치러지는 경기 북부 더비입니다! 경기 시작 전부터 K리그 팬들 사이에서 상당히 이슈가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두 팀이 처한 상황이 많이 달라서겠죠?』
『그렇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4년 전에 치욕적인 강등을 당하고 이후 꽤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었고, 그사이 파주FC는 계속 1부 리그에서 경쟁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고양 유나이티드의 행보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현재 K리그2에서 제주FC와 함께 선두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데, 경기 내용과 결과 모두 좋단 말이죠?』
『네. 겨울 이적 시장 때 각 포지션별로 수준급 선수들이 영입이 되었고, 프리시즌 때 스페인 전지 훈련을 통해서 좋은 경험을 만든 것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지금 리그에서 무패행진이고요.』
『물론 이반코비치의 파주FC도 상당히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죠? 상위 스플릿과 AFC챔피언스리그 티켓 경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부임한 이반코비치 감독은 역습 형태의 4-3-3과 실리주의 축구를 바탕으로 착실하게 승점쌓기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강팀과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어서 오늘 경기에서 힘을 빼지 않을까 싶었는데, 선발 명단을 보니까 나올만한 선수들 다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럼 말씀드리는 김에, 양 팀 선발 라인업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홈팀 파주FC입니다.』
파주FC는 미드필더 최종현과 수비수 나정호 등 정예 멤버들 대부분이 선발로 나왔다.
『골키퍼 윤태준. 백포 라인입니다. 곽두일, 나정호, 레오나르도, 천명훈. 그리고 미드필더에는 3명이 자리합니다. 차성진, 최종현, 세비치. 그리고 최전방에는 용성훈, 산토스, 스즈키가 나섭니다.』
『최근 최종현 선수하고 나정호 선수의 플레이가 상당히 좋습니다. 이반코비치 감독도 두 선수 모두 중용하고 있고요.』
『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곽찬구 감독이 파주FC 감독 시절에 1군 콜업했던 선수들이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산토스 선수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리그 경기에서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하고 있거든요? 특히, 산토스가 골을 넣었던 경기에서 최종현과의 호흡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자, 이번에는 원정팀 고양 유나이티드 선발라인업입니다.』
고양 유나이티드도 최정예 멤버들이 모두 나섰다.
『골키퍼 박지원. 백포 라인입니다. 이진수, 라시모프, 백종수, 정성진이 수비를 맡습니다. 이어서 미드필더입니다. 3명이고요. 장현우, 김지우, 석종호입니다. 최전방에는 나탈, 박형우, 박요한이 나섭니다.』
『곽찬구 감독이 최근 중용하고 있는 포메이션이죠? 박형우를 가짜스트라이커로 두는 제로톱 형태의 433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화제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곽찬구 감독과 사무엘인데요. 사무엘 선수는 오늘 벤치에서 시작합니다.』
양 팀 선수들의 소개가 끝나는 무렵,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팀의 통산 전적은 101경기 39승 30무 32패로 파주FC가 앞서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102번째 경기 북부 더비가 진행됩니다.』
중계 카메라는 양 팀 선수들과 응원하고 있는 팬들의 모습을 잡아주었다. 그러다가 곽찬구 감독과 사무엘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비춰주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를 앞두고 상당히 화제가 되는 인물들이 카메라에 잡히고 있습니다.』
『어쩌면 경기 북부 더비에 기름을 부었다고 할 수 있는 두 선수인데요. 역대 커리어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렇죠. 곽찬구 감독이 주장으로 활약하던 시절, 파주FC가 고양 유나이티드를 꺾고 첫 FA컵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죠. 그리고 사무엘은 현재 경기 북부 더비에서 최다 득점자입니다.』
『네. 사무엘 선수는 현재 12골로 경기 북부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 사무엘 선수가 출전할지 지켜봐야겠네요.』
그러다가 관중석에 앉아 있는 지태훈 대표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지태훈 대표도 경기장을 찾았네요.』
『지태훈 대표 부임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경기 북부 더비인데, 과연 오늘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자, 마침 주심이 경기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노란 상의를 입은 주심이 입에 휘슬을 물고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양 팀 선수들과 팬들 모두 긴장하며 지켜봤다.
그 순간, 주심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길게 불었다.
삐이이이익!
『네! 경기 시작했습니다! 파주FC 대 고양 유나이티드의 전반전 경기를 시작합니다!』
* * *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 팀 선수들 모두 긴장된 얼굴로 경기를 준비했다면, 막상 경기 시작되고 나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와아아아아!
팬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작부터 양 팀은 생각 이상으로 공격적인 터프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팡!
최종현이 왼쪽 측면에 있던 스즈키 쪽으로 전방 패스를 보냈다.
일본 국가대표 출신이기도 한 스즈키는 공을 받고 빠른 발을 이용해서 고양의 측면을 휘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스즈키 앞에는 이진수가 있었다.
‘어림없다!’
이진수는 깔끔한 태클로 스즈키의 발밑에 있는 공을 건드렸다.
촤악!
공이 뒤쪽으로 빠졌다.
놀란 스즈키가 바로 몸을 돌려 공을 되찾으려고 했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공을 가져간 인물이 있었다.
바로 장현우였다.
장현우는 앞에 있던 김지우에게 패스했다. 이미 동료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김지우는 전방 오른쪽 측면쪽으로 공을 길게 걷어찼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파주FC 진영 쪽으로 뚝 떨어졌다.
그렇게 뚝 떨어지는 공을 박형우가 잡았다.
그런 박형우에게 수비수 나정호가 붙었다.
나정호가 등뒤에서 박형우를 압박했다. 하지만 박형우는 이 악물고 압박을 버텨낸 뒤, 기술적인 턴 동작으로 몸을 돌려서 측면 쪽으로 돌아들어가는 박요한을 향해 패스했다.
특기인 라인브레이커 능력으로 상대 수비 라인을 부수고 들어간 박요한이 상대 골문을 향해 폭풍 질주하기 시작했다.
“막아!”
파주FC 선수들이 당황했고, 지켜보던 파주FC 서포터스들은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우우우우-.
귀가 따가울 정도로 거센 야유에도 불구하고 박요한은 거침없이 상대 골문 근처까지 향했다.
그런 박요한을 막기 위해 레오나르도가 나섰다.
브라질 국적의 수비수인 레오나르도는 기술적으로 상대 플레이를 막는 능력을 가졌다.
박요한도 이미 훈련 때 그런 레오나르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일대일로 덤비지 말랬지?’
레오나르도의 일대일 기술은 K리그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상위급이다.
곽찬구 감독도 그런 레오나르도를 상대로 함부로 일대일 승부를 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박요한도 그걸 기억하고 돌파보단 동료를 활용했다.
툭.
레오나르도를 앞에 두고 짧게 내준 패스.
레오나르도가 발을 길게 뻗으려는 그때, 반대편 측면에서 중앙 쪽으로 빠르게 쇄도해 오던 나탈이 먼저 슈팅을 시도했다.
팡!
빨랫줄 같은 슈팅이 펼쳐졌다.
하지만 공은 아쉽게도 골대 위로 향하고 말았다.
“아!”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는 나탈.
나탈-! 나탈-! 나탈-!
그런 그를 향해 고양 유나이티드 서포터스들은 박수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파주FC 선수들과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첫 번째 슈팅은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나왔습니다!』
『방금 고양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보여준 연계플레이가 상당히 좋았는는데요. 전방에서 박형우 선수가 한 번 버텨준 뒤에 이어지던 박요한의 플레이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곽찬구 감독이었다.
그는 나탈의 슈팅이 나왔을 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
어떤 경기를 치르더라도 이렇게까지 손에 땀을 쥐고 지휘해본 적은 드물었다.
여전히 마음속 한 편에 남아 있는 불편함.
하지만 점점 경기에 집중할수록 그런 불편함도 없어지고 있었다.
‘집중하자.’
오늘 반드시 이긴다.
* * *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나와 김 비서.
우리 모두 손에 처음 겪어보는 더비 경기의 화끈함에 주먹을 쥐고 있었다.
“김 비서, 왜 사람들이 경기 북부 더비에 대해 칭찬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아.”
“그렇네요. 저도 이런 분위기일 줄은 몰랐어요.”
우리 모두 놀라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경기장을 거의 가득 채운 팬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야유.
그런 상황에서 플레이하는 양 팀 선수들의 내뿜는 뜨거움이 밀려왔다.
“다른 더비 경기도 이럴까?”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때였다.
“죽여! 그냥 확 죽여버려!”
“그래! 더 밀어붙여!”
“다 깨부숴라!”
일부 거친 팬들이 내지르는 목소리에 나와 김 비서는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어휴. 진짜 장난없네.”
“그러게요.”
팬들의 반응도 대단했지만, 경기 내용도 차원이 달랐다.
평소에 선수들의 플레이를 현장에서 직접 보던 나는 평소와 다른 플레이에 놀라고 있던 참이었다.
그건 김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도련님. 어쩐지 선수들이 평소보다 더 잘해 보이는 것 같지 않아요?”
“으음. 그런 것 같아.”
그렇게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어!?”
공격 기회를 잡은 파주FC.
공을 잡은 최종현의 눈이 빛났다.
순간적으로 고양 선수들 수비 사이가 넓게 벌어져 있는 틈을 확인한 것이다.
그런 빈틈으로 최종현의 전매특허 전방 킬패스가 터져나왔다.
수비를 무너뜨리는 패스 끝에는 산토스가 있었다.
브라질 출신 공격수 산토스는 신장은 173cm 불과하지만 빠른 발과 정확한 슈팅 능력이 일품인 선수였다.
공을 잡은 산토스가 고양의 페널티박스 안쪽까지 침투한 후,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팡!
낮고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오는 공을 박지원이 보고 손을 길게 뻗었다.
“제길!”
공은 아슬아슬하게 손에 걸렸지만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궤적이 바뀌며 골키퍼 뒤로 공이 흘렀다.
“위험해!”
그때 누군가가 외치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박지원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쇄도해오는 용성훈과 그런 그를 막기 위해 경합하는 라시모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 잃은 공을 향해 라시모프가 발을 길게 뻗고, 박지원이 다시 한 번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용성훈 또한 발을 길게 뻗었다.
세 명의 선수가 거의 동시에 공을 건드리는 순간, 공이 위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튀어오른 공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