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고양 유나이티드 프런트는 시끌벅적했다.
“와, 파주 놈들하고 만났네?”
“아무리 힘들어도 파주는 이겨야지! 아힘파이!”
FA컵 3라운드 대진표가 발표되면서 파주FC와 격돌하게 고양 유나이티드.
‘거의 4년 만에 다시 만나는 건가.’
천지원 부장은 팀이 1부 리그에 있던 시절부터 직원으로 있었다.
그랬기에 파주와 대진이 성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부하 직원 한 명이 그를 불렀다.
“천 부장님! 대표님께서 찾으십니다!”
“대표님께서?”
“네! 지금 바로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알았다.”
천지원 부장은 바로 대표실로 향했다.
마침 인터넷 기사를 보던 지태훈은 가까운 자리에 천지원 부장을 앉게 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파주FC하고 FA컵에서 붙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두 팀이 어느 정도로 격한 관계인지 잘 알지를 못해서 말이죠.”
“두 팀이 왜 이런 관계가 된 건지 궁금하신 모양이시군요.”
“자세히 말해 주세요.”
천지원 부장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두 팀의 악연은 00년대로 올라가야 합니다.”
고양특례시와 파주시는 지리적 특성상 옛날부터 갈등 관계가 존재했다.
서울 근교에 있는 고양시는 지리적 특징을 이용하여 다양한 이득을 취해왔었다.
하지만 고양시 바로 위에 있는 파주시는 고양시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양시가 1차 신도시 사업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파주시와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뒤늦게 파주FC가 창단되었다. 이때만 해도 K리그 창립 멤버였던 고양 유나이티드는 코웃음을 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에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상당히 앞선 전력을 보유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2002시즌 파주FC가 사상 첫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이다.
팀 역사상 첫 우승 트로피이기도 했다.
이 역사적인 멤버에는 현 고양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곽찬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장으로 활약하던 곽찬구는 공교롭게도 결승전에 올라온 고양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결승골까지 기록했다.
양 팀 모두 사상 첫 우승 타이틀이 걸려있던 경기에서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결과로 남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양 팀의 갈등에는 불이 붙었다.
그 이후에 또 한 번 사건이 터지는데, 파주FC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고양 유나이티드 팬들이 분노하면서 경기장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파주스타디움 일부가 불에 타며 뉴스에도 나왔을 만큼 큰 사건이었고, 해당 사건의 주동자들은 모두 법적 처벌을 받았다.
고양 유나이티드도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위 사건 후 파주시 야당역 근처에 놀러 갔던 고양 유나이티드 팬이 파주FC 팬들에게 둘러싸여 집단 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야당은 고양시와 바로 인접해 있는 동네였는데, 당시 파주스타디움이 불에 타면서 민감해진 일부 파주FC 팬들이 벌인 보복행위였다.
거기까지 들은 지태훈 대표가 황당하다는 듯 반응했다.
“무슨 훌리건들입니까?”
“음. 부끄러운 말이지만 과거에 두 팀은 다른 구단들에 비하면 상당히 격한 서포터스를 보유했었죠. 지금은 많이 얌전해졌지만요.”
“…….”
“경기 내적으로만 봐도 우리 팀은 파주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역대 전적만 봐도 증명이 되죠.”
통산 101경기 32승 30무 39패
고양 유나이티드는 파주FC와의 역대 전적에서 밀리고 있었다.
“K리그에 많은 더비 매치들이 존재하는데, 개인적으로 TOP3 안에 드는 더비 매치는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와 수원 블루버드와 수원 유나이티드의 ‘수원 더비’가 있고 마지막으로 고양 유나이티드와 파주FC의 ‘경기 북부 더비’라고 봅니다.”
경기 북부 더비.
고양 유나이티드와 파주FC의 경기를 지켜본 팬들이 붙여준 더비전 명칭이다.
“대표님께서도 곧 겪게 되실 일이지만, ‘경기 북부 더비’는 그때마다 엄청난 숫자의 팬들이 경기장을 찾습니다.”
K리그 TOP3 더비 매치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엄청난 관중 숫자.
“평균 3만 5,000명 이상의 관중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죠.”
“3, 3만 5,000명이요?”
“네. 제가 말단 직원으로 있었을 때 역대 경기 북부 더비전 최다 관중 기록도 수립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정확히 58,361명이었습니다.”
“어, 엄청나군요.”
“현재 고양 특례시가 된 고양시 인구수는 110만이 넘습니다. 파주시도 50만이 넘고요. 이렇게 인구수가 많은 두 지역의 더비전인데, 사람이 적게 올 수가 없죠.”
“단순히 사람만 많다고 많이 오는 거면 광역시에 위치한 팀들은 매번 만원 관중이어야 하는데요?”
“그렇죠. 하지만 여기에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지태훈 대표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건드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두 팀의 경기가 언제죠?”
“정확히 2주 후에 있습니다.”
“4년 만의 더비전인가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만나지 못했으니까요.”
리그에서도 FA컵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두 팀이 4년 만에 다시 마주쳤다.
“이거 꽤 흥미진진하겠군요.”
지태훈 대표가 미소를 드러냈다.
천지원 부장은 저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무언가 크게 사고 치려고 할 때 보이는 미소.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치시려는 걸까?’
신임 대표가 사고치는 내용이 아직까지는 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뒷수습을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었다.
‘부디 대형 사고만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지원 부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라시모프.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 출신이면서 아직 21세밖에 안 된 기대주이기도 하다.
이번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서 고양 유나이티드로 이적해왔다.
우즈벡이 기대하는 선수답게 이적하자마자 주전을 꿰찼다.
그런 그가 지금 고양시의 어떤 식당에 와 있었다.
“라시모프. 여기 닭갈비가 끝내준다고.”
“달…… 뭐?”
“닭·갈·비!”
라시모프 곁에는 나탈과 사무엘이 함께 하고 있었다.
세 명 모두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었다.
오늘은 모처럼 외국인 선수들끼리 함께 밥 먹는 시간을 가졌다.
“주문한 음식 나왔습니다.”
직원이 조리된 닭갈비를 들고나왔다.
세 명의 시선이 모두 닭갈비로 향했다.
커다란 은색 철판에 담겨 나온 닭갈비에서 맛있는 향이 흘러나오면서 코끝을 자극했다.
라시모프의 코가 벌렁거렸다.
“향은 좋은데?”
“응. 먹어보면 또 다를 거야. 엄청 맛있다구!”
“맞아. 맞아.”
사무엘은 닭갈비 마니아였다.
오랜 시간 한국 생활을 하며 그에게 닭갈비는 삼겹살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라시모프, 시즌 끝나면 삼겹살에 소주 사줄게. 그것도 끝내줘.”
“삼…… 뭐?”
“삼·겹·살·에·소·주!”
사무엘은 모국어인 포르투갈어와 한국어 그리고 영어까지 모두 능통했다.
반면, 나탈과 라시모프는 언어에 있어 서투른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이 바로 사무엘이었던 것이다.
사무엘은 경기장에서는 동료로서, 밖에서는 큰형으로서 두 사람을 대했다.
사무엘이 아니었다면 라시모프도 빠르게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탈도 그동안 나 홀로 외국인이라는 설움에서 벗어나며, 같은 국가 출신인 사무엘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무엘의 도움을 받으며 어설프지만 한국어로 대화를 나눴다.
“여기 상추를 펼쳐서 이 안에 닭갈비하고 야채를 넣고 싸서 이렇게 먹으면 아주 끝내줘!”
사무엘을 따라서 닭갈비에 상추 쌈을 싸서 먹은 라시모프.
곧 그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시떠!”
미처 쌈을 다 먹지 못한 상태에서 말한터라 발음이 셌다.
하지만 그만큼 라시모프는 문화적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는 곧 미친 듯이 닭갈비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 라시모프를 바라보는 사무엘은 미소를 지었다.
순식간에 닭갈비 한 판을 비운 라시모프는 부른 배를 쓰다듬었다.
“너무 맛있어!”
그런 그를 향해 사무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드러내며 말했다.
“이봐, 라시모프. 아직 더 남았어.”
“음?”
“이모! 여기 밥 볶아주세요!”
“……!”
닭갈비를 먹었으면 그 양념에 볶음밥을 먹는 것은 국룰이었다.
사무엘 또한 이런 국룰을 매우 잘 지키는 사람이다.
곧 눈앞에서 볶음밥이 만들어졌다.
라시모프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자, 이렇게 숟가락으로 떠서…….”
사무엘이 알려주기가 무섭게 바로 숟가락을 이용해 볶음밥을 한 입 떠먹었다.
“……!”
몸을 부르르 떠는 라시모프.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미쳤다!”
그런 라시모프의 반응에 사무엘과 나탈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볶음밥까지 모두 해치운 세 사람은 식당을 나와서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3잔을 주문한 뒤, 대화를 나눴다.
“라시모프. 처음 해보는 한국 생활은 어때?”
“음. 괜찮다. 아직. 그, 그, 아! 친절한, 어, 사람들 친절해.”
“그렇구만.”
“나탈, 너는 어때?”
“나도. 좋아.”
마침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사무엘이 일어나서 커피를 가져오려는데, 나탈이 빠르게 먼저 일어나서 주문한 커피를 가져왔다.
그런 나탈의 행동에 사무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탈?”
“앗.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이러면 좋아한다. 한국 사람.”
“아아.”
사무엘은 깨달았다.
나탈은 어느 정도 한국 문화에 적응이 됐다는 것을.
‘나탈은 벌써 3년 차에 접어들긴 했어도 한국 문화에 상당히 빠르게 적응한 편이야.’
사무엘은 알고 있었다.
K리그를 밟은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 특유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떠난 경우도 많다는 것을.
하지만 팀 동료인 나탈과 라시모프는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사무엘은 속으로 안도할 수 있었다.
아무리 사무엘이 한국 생활을 오래했어도 외국인으로 가지는 외로움이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야. 너희들은 어쩌다 한국까지 온 거야?”
사무엘이 궁금하다는 듯 묻자, 나탈과 라시모프는 살짝 당황스러워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이내 나탈이 먼저 대답했다.
“사실 나는 사기 계약을 당해서 한국에 오게 됐어.”
“엥? 사기 계약?”
한국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로 이야기하다 보니 라시모프만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다.
어리둥절해하는 라시모프를 뒤로 한 채 나탈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브라질에서 뛸 때 에이전트가 나를 유럽으로 보내준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조항을 내세워서 한국으로 가게 됐다는 거야.”
“그래?”
“응.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됐어.”
야심 차게 도전한 첫 외국행이 공교롭게도 에이전트 사기 계약을 통한 한국행이었다.
그래서 나탈은 처음엔 불만이 컸다.
하지만 그런 불만은 오래가지 않았다.
“급여도 제때 나오고, 치안도 좋더라고. 다만, 언어와 음식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그 부분은 신임대표가 온 뒤로 적응할 수 있었어.”
“그랬구먼.”
나탈에게 이런 속사정이 있는 걸 처음 알게 된 사무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K리그로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는 각양각색의 사연들이 존재했다.
그저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나도 알고 싶다. 궁금하다.”
여전히 라시모프만은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 라시모프를 향해 나탈이 어색하게 웃으며 나중에 따로 알려주겠다고 얘기했다.
“라시모프. 너는 어쩌다 여기로 온 거야?”
이번에는 라시모프 차례였다.
라시모프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성공.”
“음?”
“성공하고 싶어서 왔다.”
라시모프는 오래전부터 K리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축구 선배들이 K리그로 진출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다.
“제파로프 이상의 선수가 되고 싶다.”
세르베르 제파로프.
우즈베키스탄의 전설적인 축구선수였다.
“그리고 돈 많이 벌고 싶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라시모프는 성공해서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하지만 일반인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성공하기란 힘들었다.
축구선수로서 어느 정도 실력에 자신이 있던 라시모프는 마침 한국에서 좋은 조건이 오자 바로 도장을 찍었다.
“그래서 나의 형제, 자매, 먹여 살려야 한다.”
“그렇구나.”
사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시모프도 사연이 있었다.
이러한 사연은 본인들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사무엘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엘. 당신은 왜 한국으로 왔나?”
이번에는 라시모프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생각지도 못한 당돌한 질문에 사무엘은 깜짝 놀랐다가 곧 씨익 웃었다.
“궁금해?”
“알고 싶다.”
나탈과 라시모프 모두 눈을 반짝이며 사무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본 사무엘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아. 그럼 알려줄게. 내가 어떻게 한국까지 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