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A매치 휴식기 이후 재개한 K리그2.
고양 유나이티드도 선두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A매치 후 터져버린 박형우의 일로 선수단 분위기가 조금은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흔들리지 마라.”
곽찬구 감독은 선수단 분위기를 다 잡는 한편, 박형우와 일대일 면담을 가졌다.
“형우야. 네가 원한다면 이번 경기는 휴식할 수 있게 해주마.”
“그럴 수는 없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팀을 위해서라도 뛰고 싶습니다.”
가장 혼란스러울 당사자인 박형우는 높은 출전 의지를 보였다.
곽찬구 감독은 그런 박형우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감독의 입장에서도 지금 선두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박형우가 필요했다.
3경기 6골.
현재 박형우가 보여주는 클래스는 남다르다.
원래 1부 리그에서 뛰어도 될 정도로 높은 수준을 가진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네가 어떤 상황이든, 네가 우리 팀 선수인 것을 떠나 내 지도를 받고 있는 이상 나는 네 편이 되어줄 거다.”
“고맙습니다. 감독님.”
“힘내라.”
“네!”
일대일 면담 후, 곽찬구 감독은 경기 전 기자회견을 통해서 박형우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됐다.
“감독님. 박형우 선수의 출전에 문제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선수가 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합니다. 저는 선수의 의견에 최대한 존중하는 편이고요. 또한, 형우는 현재 우리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곽찬구 감독은 쏟아지는 박형우에 관한 질문들을 담담한 자세로 대처했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선수를 보호하며 취재에 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로부터 상상 이상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결국 보다 못한 곽찬구 감독이 기자들에게 부탁했다.
“형우에 관한 이야기는 이 이상 언급을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허리 숙여 가며 부탁하는 감독의 대응에 기자들도 더 이상 박형우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이후 치러진 경기에서 박형우가 선발로 나왔다.
* * *
『박형우 선수가 선발로 출전했는데요. 현재 박형우 선수는 상당히 논란이 되고 있단 말이죠.』
『아직 명확하게 드러난 부분은 없습니다. 우선은 지켜봐야 됩니다.』
중계위원들은 선발로 나온 박형우에 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박형우의 아버지가 피소가 되긴 했으나 아직 나온 결과는 없었다.
방송사에서 잘못 이야기를 하게 되면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조심해야만 했다.
『박형우 선수 패스합니다! 박요한이 받는데요! 안산의 수비가 무너집니다!』
『오늘 수차례 킬패스를 넣는 박형우입니다. 지금 화면에 통계가 나오고 있는데요. 와, 패스 성공률이 무려 90%입니다.』
『전진 패스 10개 중에 7번 성공했네요. 대단합니다. 역시 현재 고양 유나이티드의 에이스를 꼽자면 박형우 선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논란 속에서도 박형우의 활약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이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전 경기보다 더 무서운 플레이를 선보였다.
드리블 한 번에 상대 선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가고, 전진 패스 한 번이면 상대 수비 라인이 맥없이 무너졌다.
이런 박형우의 활약에 팀 동료들도 함께 자극을 받았다.
『김지우가 위로 올려주는데요! 전방으로 길게 갑니다! 전방에는 나탈이 있습니다! 나탈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나탈의 선제골로 앞서 나가게 된 고양 유나이티드.
이후 고양은 파상공세를 펼치며 안산을 압박했다.
그러던 중, 엄청난 플레이 하나가 나왔다.
『박형우, 공을 잡습니다!』
안산의 페널티박스 외곽 쪽에서 공을 잡은 박형우.
박형우는 빠르게 달라붙은 상대 수비 한 명을 벗겨낸 뒤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우와아아아! 들어갔어요! 박형우에요!』
대각선에서 때린 대포알 같은 슈팅이 안산 골키퍼를 지나쳐 그대로 골망을 크게 흔들었다.
박형우의 슈퍼플레이에 응원하던 팬들과 함께 뛰던 동료들까지 환호했다.
“형우야, 너 좀 대단하다?”
“하하.”
시종일관 굳은 얼굴이었던 박형우가 드디어 환하게 웃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나탈과 박형우의 골로 고양이 2:0 승리를 기록합니다.』
결국 그날 경기는 고양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 * *
“그게 무슨 소리야? 만날 수가 없다니?”
“조남수 기자의 행방이 묘연해졌답니다. 기사를 낸 후에 회사에 휴가를 제출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조남수 기자를 만나려던 내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조남수 기자가 잠수를 탄 것이다.
미래일보에서도 조남수 기자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기자를 찾지 못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가 없어.”
“아무래도 방법을 우회해야 할 것 같네요.”
“어떻게?”
“박동준 씨를 고소했다는 사람을 만나보는 것은 어떠세요?”
“음.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우리가 직접 접촉해도 문제가 없을까?”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우리가 직접 만났다가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김 비서도 내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감돌았다.
“방법이 있어요.”
“어떻게?”
“이광진 대표를 활용하는 거죠.”
“이광진? 아!”
나는 김 비서의 계획에 감탄했다.
“좋아! 당장 시행하자고!”
* * *
이광진은 기자 신분을 적극 활용해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황선호 씨 맞으시죠?”
“네. 제가 황선호입니다.”
“그 박동준 씨를 고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기를 당하셨다고.”
“아, 네.”
황선호라는 사람은 평범하게 생긴 40대 남자였다.
그는 이 상황을 상당히 껄끄러워하는 눈치였다.
“그, 인터뷰 꼭 해야 합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 그게, 좀.”
뭔가 내키지 않은 듯한 황선호의 태도에서 이광진은 촉이 왔다.
‘뭔가 있군.’
숨겨진 뭔가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황선호를 좀 더 구슬렸다.
“그러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저는 황선호 씨 편이니까요.”
“네? 정말입니까?”
“그렇고 말고요. 사실 황선호 씨가 굉장히 곤란한 일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아!”
황선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물었다!’
이광진 입장에서는 사실 떠보기 위해 던진 말이었는데, 황선호가 덥석 물어버렸다.
“사실은…….”
이어지는 황선호의 이야기를 들은 이광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말이 정말입니까?”
“네.”
인터뷰를 마친 황선호가 자리를 떠난 뒤, 이광진은 인터뷰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하아.”
이광진은 답답함을 느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했다.
황선호는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조남수 기자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혼자만 오지 않았다.
옆에는 변호사까지 있었다.
변호사까지 대동한 조남수는 황선호를 협박했다고 한다.
“황선호 씨. 탈세를 제법 많이 하셨더군요.”
“어떻게 그걸……!”
“기자인 제가 그걸 알아내는데 뭐 어렵겠습니까?”
“사, 살려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면 이번 탈세 의혹은 없던 걸로 만들어 드리죠.”
그렇게 조남수에게서 협박에 가까운 부탁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바로…….
“박동준 씨에게 사기당했다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다니.”
이광진은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조남수는 이런 일을 벌일 정도로 간 큰 인물은 아니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냐. 남수야.”
* * *
“일이 복잡해져 가는데…….”
이광진 기자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황선호의 증언으로 애초에 이 일 자체가 거짓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사실 확인이 드러난 이상, 우리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고양 유나이티드 “박형우 아버지 사건은 조작!” 발표.』
이광진 기자가 쓴 기사는 앞선 기사를 반박하며 박형우의 아버지인 박동준 씨는 조남수 기자의 조작된 기사로 피해를 봤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가 올라간 뒤 박형우의 일로 불안에 떨고 있던 고양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박형우에 대해 불신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팀을 위해서 강경하게 대응했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선처 없이 법적 처벌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이례적으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발언을 증명하듯 조남수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조남수 기자의 행방이 아직도 묘연하다고?”
“네. 계속 연락이 안 된다고 합니다.”
나는 뭔가 싸늘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가 얼마 안 가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행방불명된 조남수 기자, 거주하던 동네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
“이게 무슨 일이야!”
조남수 기자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 나는 분노했다.
“왜 갑자기 기자가 죽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기사를 낸 기자가 죽었다.
사인은 자살.
“도대체 왜!?”
조남수 기자의 사망 소식에 고양 유나이티드 프런트와 선수단 모두 당혹스러워했다.
이광진 기자는 급히 현장으로 갔다고 한다.
이 사건은 K리그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도련님. 이광진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뭐라고 하던데?”
“조남수 기자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본인은 그 뒤에 누가 있는지 조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
그 말에 내 눈이 크게 떠졌다.
뒤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뒤통수를 크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설마…….”
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 * *
며칠 전.
영신전자 사장실.
결재 서류들을 보고 있던 지태완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사장님. 이종윤입니다.”
“이 형사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이종윤 형사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지태완은 변함없이 결재 서류에만 시선을 뒀다.
그런 지태완의 태도에 기분 나쁘기도 하건만, 그는 개의치 않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꼬리가 붙었습니다.”
“…….”
“조남수 기자 사건 관련해서 뒷조사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처리할까요?”
“이 형사님.”
지태완은 그제서야 하던 일을 멈추고 이종윤 형사를 똑바로 보았다.
차갑게 식은 눈빛에 베테랑인 이종윤 형사도 움찔했다.
“왜 이렇게 말이 많습니까? 제가 그동안 해드린 것들, 이런 것들 알아서 좀 처리하라고 해드린 것 아닙니까?”
“…….”
“이런 일로 자꾸 귀찮게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이 끝나고 보고하겠습니다.”
“음. 이제야 말 통하시네. 그럼 수고하세요.”
이종윤 형사는 허리 숙여 인사하고 사장실에서 나갔다.
지태완은 그러거나 말거나 결재 서류에만 신경을 썼다.
* * *
박동준 사기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사건을 처음 보도했던 조남수 기자가 죽고, 겁을 먹은 황선호가 모든 사실을 실토했기 때문이다.
이로서 박형우와 그의 아버지는 억울함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은 해결되었어도 찜찜함은 계속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분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순항에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 유나이티드가 제노스FC와의 FA컵 2라운드 경기에서 6:0 대승을 거둡니다!』
리그 경기에서 순항을 거듭하던 고양 유나이티드는 FA컵에서도 대승을 거두었다.
벤치 멤버들을 대거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아마추어팀이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이겼다.
대부분 이길 만한 팀들이 이겼다.
그렇다고 이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경남과 안산이 하부리그 팀들을 상대로 패배하며 일찌감치 대회를 마감했다.
이후 2라운드 경기까지 모두 끝나고 3라운드 대진표가 발표되었다.
그와 동시에 K리그 팬들의 주목을 받는 대진이 성사되었다.
[파주FC VS 고양 유나이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