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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 구단주-47화 (47/272)

47화

김진철 이사의 싸늘한 눈빛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사내에서도 김진철 이사를 두고 ‘냉혹한 얼음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그만큼 카리스마 있고 냉정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직원들은 그 앞에서 숨도 못 쉴 정도다.

현 영신 그룹의 총수인 지종윤 회장의 오른팔이기도 한 김진철 이사는 과거 수많은 업적을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일본 도쿄 대첩이라 불리는 사건이 있었다.

영신 그룹이 일본에 진출하여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던 중, 일본 야쿠자 세력과 충돌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됐던 인원이 바로 김진철 이사였다.

혈혈단신으로 야쿠자 보스를 찾아간 그는 일대일 대면을 통해 사건을 해결시켰다.

영신 그룹 내에서는 그 일을 두고 도쿄 대첩이라고 불렀다.

회귀 전 망나니로 통용됐던 나도 김진철 이사 앞에서만큼은 얌전한 고양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 음. 안녕하십니까?”

“망할 놈.”

“…….”

김진철 이사의 한 마디에 나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김진철 이사는 나를 싫어했지.’

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김진철 이사의 가장 소중한 딸을 내가 데리고 있으니까.

철혈의 김진철 이사라도 김 비서 앞에서는 흔한 딸바보 아빠였다.

그걸 증명하듯, 옆에 있던 김 비서가 김진철 이사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푹 찌르면서 눈치를 줬다.

“아빠!”

“큭!”

그사이 잠깐 자리를 비웠던 지종윤 회장이 돌아왔다.

“하하하! 우리 넷이 이렇게 모인 일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마지막으로 모인 적이 아마 5년 전인가?”

한 손에 지팡이를 집고 나타난 아버지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커다란 식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상석에는 아버지가 앉았다.

그런 아버지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내가 앉았고, 오른쪽에는 김진철 이사와 김 비서가 앉았다.

“유리야, 네가 요즘 우리 아들 곁에서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들었다.”

“아, 네. 고생은요. 대표님께서 워낙 업무를 잘해주고 계셔서 저는 옆에서 조금씩 돕는 정도뿐입니다.”

“하하하. 그래? 유리,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란 말이지?”

평소와 달리 오늘은 김 비서를  ‘유리’라고 부르는 아버지였다.

요즘 김 비서는 예전처럼 아버지에게 따로 보고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도 오래간만에 만난 것이다.

그때, 김진철 이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오늘은 어쩐 일로 저희 부녀를 부르신 겁니까? 그것도 회사가 아닌 별장에서 말이죠.”

“아아. 딱히 큰 이유는 없고, 모처럼 다 같이 밥이나 먹으면 어떠할까 싶어서 불렀네. 혹시 내가 자네를 불편하게 만들었나?”

“그런 건 아닙니다.”

아무리 김진철 이사라도 대놓고 불편하다고 얘기는 못 하겠지.

김진철 이사보다 더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바로 우리 아버지였으니까.

딱히 성격뿐만 아니더라도 위치상 회장님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 건 어렵다.

“그럼 식사부터 할까?”

“네.”

아버지는 음식들을 미리 준비한 모양이었다.

별장에서 일하는 관리인들이 준비한 음식을 테이블 위에 놓기 시작했다.

금방 한 상이 차려졌다.

“들지.”

그렇게 식사가 시작됐다.

식사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조용한 분위기를 깨는 말을 꺼냈다.

“이보게, 진철이.”

“네.”

“박 이사에 대한 일은 어떻게 됐나?”

그 말에 열심히 손을 놀리며 음식을 먹던 내가 멈칫했다.

박 이사라면, 설마 박종수 이사?

이어지는 말을 듣고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박종수 이사 사망과 관련하여 아직 조사 중입니다. 의심쩍은 정황이 있는데, 누군가가 제법 손을 쓴 모양입니다. 검찰과 경찰에서도 별문제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고요.”

“흐음.”

대외적으로는 박종수 이사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뺑소니 사고로 사망했다고 되어 있다.

영신 그룹 내부에서도 박종수 이사와 관련된 일로 시끌벅적하긴 했지만 금방 묻혔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인 것 같았다.

“분명 뭔가 있어. 누군지 몰라도 종수, 그놈이 그렇게 갈 놈이 아니야.”

“…….”

“김 이사, 아니, 진철아. 부탁한다. 종수가 왜 죽었는지 제대로 파악해다오.”

“예.”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잠시나마 생각에 잠겼다.

일전에 장례식장에서 봤던 형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무언가 섬뜩한 기분을 느꼈었다.

왜 그랬던 걸까?

형이 했다고 하기에는 증거가 없다.

어쩌면 내가 형에 대한 의심 때문에 순간적이나마 느꼈던 감정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형이 너무 고약해.’

내가 아는 지태완은 무서운 인물이다. 자신의 계획을 위해 철저하게 그림자 속에서 진행 시켜 왔다.

‘조사를 해봐야 하나?’

마음 같아서는 형의 뒷조사를 해보고 싶지만 지금 당장 내 코가 석 자다.

당장 구단 운영만 해도 벅찬데 이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훈이, 요즘 네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더라.”

“네? 아, 넵.”

“우리 막내가 언제쯤 철이 드나 싶더니, 이제야 좀 철이 들었나 보구나. 애비로서 참 기쁘다.”

“…….”

“조만간에 내가 한 번 구단에 방문을 좀 할까 싶은데, 어떠냐?”

“네?”

갑자기 찾아오시겠다고요?

나는 아버지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난 몇 년 동안 아버지는 구단에 발걸음을 안 했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강등을 당하던 때였다.

승패에 따라 리그 강등이 결정되는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낸 아버지는 팀이 눈앞에서 패하는 모습을 본 후, 다시는 구단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아버지가 갑자기 다시 방문하겠다고 하신다니.

“왜? 싫으냐?”

“음. 저야 상관은 없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팬들이 항의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 말을 끝낸 순간, 갑자기 무릎 쪽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김 비서가 눈치를 주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해요.’

마치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회장님의 방문을 막는 것 같이 보였던 모양이다.

나도 딱히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간의 일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달랐다.

“그건 내 업보라고 받아들여야겠지.”

“…….”

“사실 반쯤 포기하고 있던 상태였다. 한편으로 매각도 고려하고 있었지.”

“……!”

아버지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구단을 매각할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니.

여태까지 큰형만 구단을 매각하려는 줄 알았다.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챈 것일까?

아버지께서 갑자기 형 이야기를 꺼냈다.

“네 큰형이 구단을 매각할 계획이 있는 건 알고 있다. 태완이뿐만이 아니야. 그룹 내에서 구단 매각에 동조하던 사람들이 많았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아무리 큰형이라도 마음대로 일을 추진할 수 없다.

아버지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암묵적 동의가 있다고 해도 형은 총수가 된 이후에서야 구단을 팔아넘겼다.

“그럼 지금도 구단을 매각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이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

“태훈이 네가 잘해주고 있고, 내부에서도 구단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존재해.”

다행이다.

만약 아버지가 구단을 팔아버리겠다고 했으면 그간 내 노력은 허공에 붕 뜨는 셈이다.

다행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 당장의 생각은 그렇다는 거다. 네가 조금이라도 방만한 경영을 한다면 생각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겠지.”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새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눈 적은 처음이었다.

뭔가 조금은 인정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김 이사. 자네가 봤을 땐 어떤가?”

그 말에 나는 살짝 긴장하며 김진철 이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김진철 이사도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달싹여지더니 곧 말문을 열었다.

“아직은 지켜봐야 됩니다.”

“…….”

“하지만 기대가 없지는 않습니다.”

“……!”

매번 날 죽일 듯 대했던 김진철 이사가 이렇게 말해 주다니.

정말 놀랄 일이다.

아버지도 놀란 것 같았다.

“김 이사가 이렇게 말하는 건 처음인걸? 우리 막내가 그래도 제법 하는 모양이군.”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김 비서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김 비서도 나를 보며 작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니 확실히 잘한 것 같다.

아니, 잘했다.

앞으로 더 잘해야지.

* * *

별장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은 김진철은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가운데 뒷자리에 탑승한 부녀는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김유리가 먼저 조용한 분위기를 깼다.

“아빠.”

“음?”

“도련, 아니, 대표님 많이 달라졌죠?”

그녀의 물음에 김진철 이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김진철 이사는 처음부터 지태훈에게 적대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서자 출신이기는 해도 능력은 갖춘 인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망나니가 되면서부터 그는 지태훈을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망나니 곁에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붙어 있었다.

당장이라도 딸을 빼내 오고 싶었다.

하지만 회장의 간곡한 부탁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회만 되면 언제든 빼내올 생각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지태훈이 어느 날 갑자기 구단 대표이사가 되었다.

내부에서도 걱정과 우려로 가득했다.

하지만 회장과 지태완의 강력한 요청으로 지태훈이 대표가 됐다.

이후 지태훈은 예상과 다른 파격적인 행보들을 보이며 기대 이상의 결과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아직 부임한 지 1년도 안 된 신임 대표이사가 만들어낸 결과치고 엄청난 결과들이다.

무엇보다 피로와 슬픔으로 가득했던 딸의 모습이 달라졌다.

어느샌가 딸에게서 웃음과 미소로 가득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변화된 모습들이 김진철 이사의 생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아까 내가 했던 말들 기억하느냐?”

“네. 기억해요.”

“모두 내 진심이다.”

“……!”

김유리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걸 본 김진철의 마음은 어째서인지 복잡해졌다.

“너, 혹시 망할 놈에게 마음을 둔 거냐?”

혹시나 해서 던진 한마디.

예전 같으면 그냥 아끼는 동생이라고 대답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

딸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딸의 반응에 김진철 이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망할 놈이야.’

* * *

어느덧 휴가 마지막 날.

대한민국 대표팀은 세르비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이어지는 남아공과의 평가전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남아공전을 앞두고 강철인의 부상 정도를 체크한 결과 그리 심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로 다음 경기에 출전이 가능하다는 진단에 남아공과의 경기에 당연히 강철인의 선발 출전이 예상되었지만, 예상과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지난 경기 때 선보였던 박형우를 중심으로 한 제로톱 전술을 가동한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

그리고 박형우는 상당히 좋은 활약을 펼치며 1개의 도움을 올리고 후반 15분에 교체되었다.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가동된 제로톱 전술이 주목받는 가운데,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들을 보였다.

대표팀에 함께 차출되었던 장현우도 무난한 활약을 보이며 평가전을 마쳤다.

그렇게 성황리에 평가전 경기가 끝나고 다시 K리그2 일정이 시작되려는 무렵,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일인고!?”

『[단독보도] 박형우 아버지, 수십 억대 사기 의혹으로 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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