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막내 구단주-45화 (45/272)

45화

이어지는 후반전.

고양은 여전히 공격적으로 경남을 몰아붙였다.

공격적으로 플레이한다고 해서 수비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라시모프와 백종수는 통곡의 벽처럼 단단한 수비를 자랑했다.

“뚫을 수가 없네!”

“중앙이 안 되면 측면으로 퍼지거나 중거리라도 때리라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은 경남 선수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도 마찬가지.

반면, 고양은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신나게 상대를 몰아붙이며 기회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기회를 만들어가던 중, 후반전 교체로 투입된 사무엘이 기회를 잡았다.

『장현우가 뒤 공간으로 빠지는 절묘한 패스를 내줍니다! 수비수 사이로 공을 잡는 사무엘!』

『아! 사무엘! 기회인데요!』

『슈팅 하나요!? 사무엘 때립니다! 고오오오올! 들어갑니다! 사무엘이 4번째 골을 만들어냅니다! 더불어 이번 시즌 리그 1호골을 만드는 사무엘입니다!』

두 번째 경기 만에 이번 시즌 리그 1호골을 신고하는 사무엘.

득점 후 카메라 앞으로 달려간 사무엘은 양팔을 올리더니 ‘뎁’을 선보였다.

그런 사무엘 곁으로 다가간 고양 선수들이 축하해주었다.

그렇게 스코어가 4:0으로 격차가 벌려진 경남 선수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고양은 계속해서 공격을 주도했지만 더는 득점이 나오지 않았다.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붑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고양이 경남을 4:0으로 대파하며 홈 개막전에서 승리를 가져갑니다!』

『아~ 제주전에 이어서 오늘 경남 전까지. 고양의 기세가 정말 무섭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저희는 다음 경기에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2경기 동안 1승 1무.

7득점 3실점.

현재 순위 1위.

비록 2경기 정도만 진행했을 뿐이지만 시작이 좋았다.

“작년에는 1무 1패였지?”

“네. 1무 1패 1득점 5실점이었죠.”

“후후후.”

작년과 올해 확실히 달라졌다.

달라진 팀의 모습을 보며 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옆에 있던 김 비서도 웃고 있었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지. 제주도 이번에 대승을 거뒀다며?”

“네. 서울 다이너스티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네요.”

서울 다이너스티.

작년에 제주와 함께 강등당했던 팀이다. 그리고 올 시즌 고양, 제주와 함께 강력한 승격 후보로 거론되는 팀이다.

그런 팀을 상대로 제주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1라운드에서도 느꼈지만 만만치 않은 팀이라고 느꼈어요.”

“그래? 아마 제주도 우리보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걸?”

“그럴까요?”

“응.”

김 비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날세.

“아, 회장님!”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석정원 회장이었다.

갑작스런 석정원 회장의 전화에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대한축구협회에서 다가오는 국가대표 A매치 경기에서 사용할 경기장을 고르는 모양이야. 그래서 자네 팀이 있는 고양종합운동장을 추천할까 하네만. 괜찮겠나?

“네? 정말이십니까?”

-K리그2 일정을 살펴보니까 고양 같은 경우에는 A매치 전후로 원정 경기 일정으로 잡혀 있더군.

“아, 맞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봤을 때 경기장 후보지가 서울, 고양, 울산 이렇게 세군데인데, 서울은 지난번 11월 A매치 때 사용했기 때문에 연속해서 쓰기는 어렵고 울산은 팬들이 왕래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어.

“그래서 남은 곳은 저희가 쓰는 경기장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팀의 경기장을 쓴다면 여러 가지로 메리트도 있을 테고 말이야.

“그렇군요.”

내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긴 해도 내게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떤가?

“저희는 환영입니다.”

-알겠네. 그럼 자네의 의사를 내 직접 축구협회 쪽에도 전달해주겠네.

* * *

개막 후 고양의 질주는 매서웠다.

2라운드에서 경남을 꺾은 고양은 이어지는 주말 리그 3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남에게 5:2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 박형우와 사무엘이 멀티골을 넣고, 장현우의 데뷔골이 터졌다.

다만 수비 과정에서 19살 신예 측면 수비수인 정성진이 수비 과정에서 PK를 내주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아쉽기는 해도 경기 중에 나올 수 있는 실수였다.

이렇게 3번째 경기마저 대승을 거둔 고양은 3경기 동안 2승 1무를 기록했다.

그리고 12득점 5실점으로 리그 전체 득점 1위를 질주했다.

전체 순위에서도 제주를 득실차에서 앞서며 1위를 유지했다.

그렇게 3경기를 끝낼 무렵, 대한축구협회에서 A매치에 참여할 선수들을 발표했다.

여기서 경사가 생겼다.

“대표님!”

“음?”

“떴습니다! 국가대표 명단에 저희 선수들이 들어갔습니다!”

“어? 정말요?”

“네! 박형우 선수와 장현우 선수입니다!”

“오!”

3라운드 경기를 할 때 크리스토퍼 제이든 국가대표 감독이 경기장을 찾아왔었다.

조용히 경기를 관찰하고 갔던 그가 우리 팀 선수를 2명이나 뽑았다.

어떻게 보면 그 두 명은 뽑힐 수밖에 없었다.

박형우는 주기적으로 국가대표에 뽑혔고, 장현우는 최종예선 때부터 기용되어 왔던 선수였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선수단 분위기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팀은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었고, 그런 팀 내 선수 2명이 국가대표로 뽑혔으니까.

“이번 A매치도 평가전이죠?”

“네. 거의 마지막 국내 평가전이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올해 6월에 북중미 월드컵이 치러진다.

대한민국은 월드컵 본선 최종예선에서 A조에 속했다.

A조에서는 이란, 이라크, 중국 등이 포함되었다.

대한민국은 치열한 예선전 끝에 조 2위로 본선 진출을 확정하게 됐다.

이후 1년 정도 남은 기간에 다양한 나라들과 평가전을 치르면서 월드컵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세르비아하고 남아공이네요?”

“네. 꽤 괜찮은 팀들하고 붙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팀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여기 있는 모두가 아마 같은 마음일 겁니다.”

나는 이번에 첫 경기인 세르비아 경기만 직관할 예정이다.

관련해서 미리 대한축구협회와 이야기를 나눠서 자리 배정을 받았다.

아무리 내가 대표이사라고 해도 A매치 경기는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하기 때문이다.

“A매치 기간에 직원들 휴가 승인했나요?”

“네. 일부 대기 인원들을 제외하고 휴가 승인했습니다.”

직원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하다.

프로축구 특성상 공휴일과 주말에도 경기를 치르다 보니 별도의 쉬는 날을 정해주지 않으면 쉴 수가 없다.

그래서 배려차원에서 A매치 기간에 휴가를 보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천 부장님은 휴가 때 뭐하십니까?”

“음. 특별하게 어딜 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연애는 안 하십니까?”

천지원 부장은 갔다가 돌아온 남자.

충분히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는 천 부장은 일만 하는 것 같았다.

“별로 관심 없습니다.”

“그래요?”

“대표님이야말로 연애 안 하십니까?”

“음?”

예상치 못한 역공에 입을 다물었다. 이어서 천지원 부장이 말했다.

“대표님하고 김 비서님하고, 두 분 사귀는 사이 아니십니까?”

“……네?”

“구단 직원들은 두 분이 사귀는 사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나하고 김 비서, 서로 사귀는 사이로 보인다고?

정말로?

나는 부정해야 하는데, 왠지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보였습니까?”

“네. 설마 아니었습니까?”

눈치 빠른 천지원 부장마저도 그렇게 보였다니.

그때였다.

“도련님, 저 왔…… 음? 부장님도 계셨네요.”

볼일을 보고 돌아온 김 비서가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의아해했다.

“두 분 무슨 일 있으세요?”

“음. 국가대표 관련해서 보고를 드리고 있던 참입니다.”

“…….”

“보고 끝났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천지원 부장은 내 눈치를 보더니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나와 김 비서 둘만 남았다.

나는 말 없이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만 바라보았다.

그런 내 곁으로 김 비서가 쓱 다가오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움찔!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스킨십.

하지만 아까 천지원 부장의 말을 듣고 기분이 이상해진 나에게는 평소보다 민감하게 다가왔다.

“도련님?”

“음. 저, 김 비서? 가서 일해야지?”

“도련님, 귀가 빨개요.”

“…….”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어, 없어!”

나도 모르게 김 비서의 손을 탁 쳐내며 외쳤다.

그런 내 반응에 놀란 김 비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련님?”

“미안.”

도저히 이 분위기를 수습할 수 없던 나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김 비서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 * *

짝! 짝! 짝!

대~한~민국~!

짝! 짝! 짝!

대한민국을 외치는 소리로 가득한 고양종합운동장.

고양종합운동장은 붉은색 물결로 출렁거렸다.

그런 관중들을 VIP좌석에서 지켜보는 나는 기분이 묘했다.

“김 비서. 우리 팀도 나중에 팬들로 가득 채울 수 있을까?”

“글쎄요. 가능하지 않을까요?”

종합운동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팬들이 모이는 상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지태훈 대표?”

“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어떤 중년 남성이 나를 보고 있었다.

딱딱한 인상을 지닌 그가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종무 협회장님 맞으시죠?”

“나를 압니까?”

“알죠. TV와 기사로 봤었습니다.”

“하하. 그랬군요.”

이종무 대한축구협회장.

축구선수 출신으로 협회장이 된 인물이다.

크리스토퍼 제이든 감독을 선임하고 대표팀을 위해 다양한 인프라를 제공하며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았다.

간단히 얘기하면 일 잘하는 인물이다.

다만 그만큼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깐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대표팀 평가전에 경기장을 사용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영광이죠. 국가대표팀을 홈구장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줄은 몰랐습니다.”

“지 대표님께서 최근 주목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네?”

“석 회장님이 칭찬을 많이 하시더군요. 한국 축구에 젊은 인재 한 명이 나왔다고.”

“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종무 회장 옆에 앉았다.

“제가 여기 앉아도 괜찮은가요?”

“음? 안 될 이유가 있겠습니까? 여기에 지 대표님 말고 누가 앉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는 이종무 회장 말고도 다양한 인물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지난번 개막전 행사 때 불렀던 전태호도 있었다.

“대표님! 여기서 또 뵙네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태호는 밝은 얼굴로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아, 종무가 초대해줬습니다.”

“그랬군요.”

전태호와 이종무는 동갑이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시기에 K리그에서 활약했던 선수 출신이었다.

“요즘 대표님 덕분에 경기 보는 맛이 있습니다.”

“네?”

“비록 제가 몸은 떠나 있지만,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고양을 응원하고 있거든요. 저희 팀이 이번에 꼭 승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대표님께서 반드시 목표를 이루는데 도와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전태호는 내 손을 잡고 눈을 반짝였다.

그런 기습적인 행동에 내가 당황스러워하는 사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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