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26 더블은행 K리그2 2라운드 고양 유나이티드 대 FC경남의 경기를 중계하게 된 캐스터 이형욱입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박재성 해설위원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K리그2 중계를 집중적으로 맡게 된 스카이라이브에서도 오늘 경기를 생중계했다.
『지난 1라운드에서 고양 유나이티드가 정말 대단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비록 스코어는 3:3 무승부로 끝나긴 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 작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맞습니다. 지난 경기에서 박형우 선수의 해트트릭으로 세 골을 만들어낸 고양인데, 이 득점이 나온 과정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중계 화면에는 지난 1라운드 경기의 주요 장면들이 리플레이 됐다.
그걸 본 박재성 해설위원이 말을 이었다.
『지난 경기에서 고양은 두 개의 전술을 사용했는데요. 전반에는 사무엘을 최전방으로 둔 클래식한 4-2-3-1 전술과 후반에는 박형우를 중심으로 하는 4-3-3 베이스의 제로톱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전술로 제주를 상대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지난 시즌에 곽찬구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김지우와 박요한이 중심이 된 단순한 공격패턴이 잘 될 때는 잘 되다가 두 선수가 막히면 안 풀렸단 말이죠? 어떻게 보면 그러한 부분들이 1라운드 경기에서 해결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음. 아직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무어라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확실히 고양이 달라지긴 했다. 이렇게 볼 수 있겠네요.』
중계위원들이 달라진 고양 유나이티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경기장에서는 레전드 전태호 선수와 고양 시장의 시축 행사가 진행됐다.
이후 지태훈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고양 유나이티드 팬 여러분. 저는 대표이사 지태훈이라 합니다.”
와아아아!
경기장을 찾아온 수많은 고양 팬들이 지태훈을 향해 환호했다.
그러한 팬들 반응에 지태훈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젊은 여성 팬들이 더 크게 환호하기도 했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번에 반드시 승격해서 명가의 자존심을 다시 세웠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 프런트나 선수단도 노력해야 하지만 팬 여러분들의 응원도 필요합니다! 팬 여러분! 다시 한번 함께 합시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
지태훈 대표의 포부 섞인 인사말에 고양 팬들이 환호로 화답했다.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던 선수들도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짧은 개막전 행사가 끝나자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향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한 모든 상황이 중계 카메라에도 고스란히 잡히고 있었다.
『지태훈 고양 유나이티드 대표이사의 발언이 끝났는데요. 현재 K리그 내에 상당한 주목을 이끄는 젊은 대표이사죠? 정말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자, 그럼 선발 명단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홈팀 고양 유나이티드입니다.』
오늘 고양 유나이티드의 선발 명단은 다음과 같다.
『4-3-3입니다. 먼저 골키퍼입니다. 박지원 골키퍼가 장갑을 꼈습니다!』
고양 유나이티드의 살아있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박지원이 이번에도 팀 골문을 지켰다.
『백포 라인입니다. 이진수, 라시모프, 백종수, 정성진 선수가 자리합니다.』
좌우 측면으로 나서는 이진수와 정성진. 그리고 중앙에는 라시모프와 백종수가 섰다.
이진수와 라시모프는 스페인 전지훈련 때와 지난 1라운드까지 주전으로 뛰던 선수다.
그런데 백종수와 정성진은 오늘 처음으로 선발로 나선 어린 선수들이었다. 둘 다 백송고등학교 출신이었다.
백송고는 고양 유나이티드 유소년 팀이다.
심지어 아직 졸업도 안 한 고등학교 3학년들인데, 이번에 곽찬구 감독이 파격적인 선발로 내세웠다.
『이어서 미드필더에는 3명의 선수가 자리합니다. 장현우, 김지우, 석종호입니다.』
장현우, 김지우, 석종호.
모두 1라운드 때 출전한 선수들이다. 석종호는 1라운드 교체로 출전했었는데, 오늘은 선발로 나섰다.
『마지막으로 최전방에는 나탈, 박형우, 박요한 선수가 공격에 나섭니다.』
『사무엘 선수가 벤치로 가고 박형우 선수가 최전방에 위치했다는 건, 이번에도 제로톱 가동하겠다는 곽찬구 감독의 의중인 것 같네요!』
『그렇군요. 제로톱 전술이 이번 경남전에서도 어느 정도 통할지 기대됩니다!』
* * *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되고 나는 VIP 좌석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드디어 기다렸던 홈 개막전이다.
여기서 좋은 모습 보여주지 못하면 홈팬들의 실망은 클 것이다.
오늘 경기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은 선수단도 알고 있다.
곽찬구 감독도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보겠다고 얘기했다.
“두고 보면 알겠지.”
이제 증명만 남겨둔 상태다.
90분이 지나면 결과를 알 수 있을 터.
“도련님. 콜팝 가져왔습니다.”
“아, 땡큐.”
김 비서가 양손에 콜팝을 쥐고 나타났다.
이번 시즌 우리 팀이 홈경기를 진행할 때마다 판매하는 먹거리 중 하나가 바로 콜팝이었다.
노란색에 고양 유나이티드 엠블럼이 박혀 있는 종이컵에 콜라와 치킨팝콘이 들어가 있다.
나는 이쑤시개로 치킨을 하나 집어 먹으며 경기를 관람했다.
옆자리에 앉은 김 비서도 나와 똑같이 콜팝을 먹으며 관람했다.
그런 우리 곁에는 전태호와 최무진도 함께 하고 있었다.
“두 분도 콜팝 하나 드시겠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음. 확실히 나이 드신 분들은 이런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와아아아아!
“오!”
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홈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눈앞에서 고양 선수들이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마침 VIP석에 마련된 TV에서도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남의 아크 정면! 김지우가 볼을 잡는데요!』
『빠지네요!』
김지우의 전매특허 전방 킬패스가 터져 나왔다.
경남 선수 4명을 뚫는 전진패스 한 방에 측면에서 라인을 부수고 들어가던 박요한의 발밑에 정확히 안착했다.
『박요한, 기회입니다!』
“오!”
나와 김 비서 모두 손에 콜팝을 쥔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팡!
박요한이 날린 회심의 슈팅!
하지만 공은 아깝게도 상대 골키퍼를 넘어 골대마저 넘어가고 말았다.
지켜보던 홈팬들은 아쉬운 탄성을, 경남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깝네!”
지켜보던 나도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래도 잘했어!”
“박요한 선수가 아직 골이 없죠?”
김 비서의 물음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마침 박요한에 대한 이야기가 중계화면에서도 흘러나왔다.
『지난 시즌 득점 기근에 시달리던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유일하게 득점을 만들어내던 선수가 바로 박요한 선수였는데요. 이번 시즌에서는 아직 골이 없습니다.』
『작년에 박요한 선수가 대단했죠. 리그에서만 12골이던가요? 신인 공격수가 이렇게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나 싶었는데, 이번 시즌도 팀에서 박요한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할 겁니다.』
『곽찬구 감독도 기회를 날린 박요한의 플레이에 상당히 아쉬워하네요.』
아쉬워하는 곽찬구 감독의 모습을 화면을 통해 보던 나는 이어지는 장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지태훈 대표도 아쉬워하는데 손에 쥔 게 뭐죠? 콜팝인가요?』
『하하. 저 모습을 보니까 지태훈 대표님이 작년에도 팀에서 판매하는 굿즈로 도배해서 본 기억이 나네요.』
“…….”
순간 말 못 할 부끄러움을 느꼈다.
“푸훗.”
“……?”
어디선가 들려온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김 비서가 숨죽여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뭐라 말하지 못하고 그저 경기장만 바라봤다.
* * *
경기는 고양 유나이티드가 주도했다.
거의 일방적이었다.
지난 1라운드에서 경남은 전남을 상대로 4골을 퍼부으며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지난 1라운드 때와 달리 경남은 우리를 상대로 제대로 된 플레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박형우가 측면으로 패스합니다! 나탈이 받고 달립니다!』
『아, 또 기회죠! 오늘 경남, 여러 차례 측면이 흔들립니다!』
기회를 잡은 나탈이 코너플레그 근처까지 갔다가 크로스를 올렸다.
팡!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간 공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빠져 들어갔다.
어느샌가 중앙까지 온 박요한이 상대 수비수 한 명을 달고 펄쩍 뛰었다.
『박요하아아아안! 고오오오올! 골입니다!』
『이야아아아! 박요한이 드디어 하나 만들어 내네요!』
박형우의 측면 패스를 시작으로 나탈의 크로스와 박요한의 깔끔한 헤딩 마무리까지.
오직 전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득점이었다.
완벽한 과정과 득점에 홈팬들 모두 크게 환호했다.
와아아아!
『전반 12분 박요한의 헤딩골로 고양 유나이티드가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박요한의 득점이 터지자 VIP좌석에 앉아 있던 전태호도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정말 멋진 골이야!”
전태호의 칭찬에 나와 김 비서도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박요한의 득점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득점 릴레이가 펼쳐졌다.
오늘 여러 차례 수비 실수가 나온 경남이 제대로 흔들린 것이다.
『이번에는 김지우입니다! 앞으로 향하는 패스! 이번에도 선수 4명을 가로지르는데요! 나탈! 나탈입니다!』
『아! 기회죠! 이거 기횝니다!』
『골키퍼와 일대일! 나탈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첫 골에 이어 불과 3분 만에 나탈의 추가 득점이 터졌다.
순식간에 2:0으로 앞선 고양 유나이티드는 이어 전반 40분에 또 한 번 골을 만들어냈다.
『코너킥 상황인데요. 경남 선수들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계속 수비 실수가 나오는데요. 지금 길성찬 감독도 화가 많이 났어요. 이거 빨리 극복해야 됩니다. 경남 입장에서는요,』
『자, 김지우 선수가 코너킥 찰 준비를 합니다.』
팡!
『올라가는데요! 아! 골입니다! 이번에는 박형우입니다!』
『이거 보세요! 박형우 선수가 뛰어올 때 경남 선수들 그 누구도 마킹조차 안 됐어요!』
『오늘 고양이 전반부터 폭격하고 있습니다! 스코어는 벌써 3:0입니다!』
박요한, 나탈, 박형우.
오늘 공격으로 나선 최전방 자원들이 모두 득점포를 가동했다.
제로톱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셈이다.
삑! 삐익! 삑!
전반전 경기가 끝나는 휘슬이 울렸다.
경남 선수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라커룸으로 향했다.
반면, 고양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라커룸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신이 난 고양 홈팬들도 계속해서 응원가를 불렀다.
그렇게 하프타임이 오자 나도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다.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진 찍어주시면 안 돼요?”
“음?”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소녀 팬들이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3명의 소녀 팬들이 우물쭈물하면서 내게 사진을 찍어줄 수 없겠냐고 말을 걸었던 것이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뭐, 좋아요.”
그렇게 말하고 사진을 찍어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소녀 팬들이 내 옆으로 와서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겠는가.
멍하니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정신을 차려보니 소녀팬들은 사진을 보고 꺅꺅대고 있었다.
“도련님. 좋으세요?”
“……어?”
고개를 돌려보니 김 비서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왜 그렇게 쳐다봐?”
“뭐가요? 굉장히 좋아 보이는데요. 얘들하고 같이 사진도 찍고.”
“…….”
“김 비서, 혹시 불편해?”
“네. 조금 불편하네요.”
“…….”
왠지 죄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