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위험……!”
지켜보던 고양 선수단과 팬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절묘하게 수비수 사이를 빠지며 골문으로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공.
하지만 고양의 골문에는 베테랑 문지기가 존재했다.
팡!
바로 박지원이었다.
박지원은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날아오는 공을 쳐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 박지원의 세이브를 본 고양 팬들이 환호와 함께 박수 쳤다.
“나이스!”
“좋았어!”
『결정적인 세이브를 보여주는 박지원 골키퍼입니다!』
『아! 좋아요! 박지원 선수의 기가 막힌 세이브가 나왔습니다!』
『장지원 선수의 슈팅도 너무 좋았는데 박지원 선수의 세이브도 너무 좋았습니다. 두 선수 모두 지원이란 이름을 쓰는데요. 양쪽 지원이 모두 잘 차고 잘 막았습니다!』
아쉬워하는 제주의 장지원과 포효하는 박지원의 모습이 대비되어 카메라에 잡혔다.
이후 이어지는 제주의 코너킥 상황에도 고양은 잘 막아냈다.
“반격해! 어서!”
그때 벤치에 있던 곽찬구 감독이 선수들을 향해 외쳤다.
그 목소리를 들은 고양 선수들이 반격을 시도했다.
『고양이 반격합니다! 박형우가 볼을 잡는데요. 측면으로 빠지는 박요한에게 패스합니다! 쇄도하는 박요한!』
『박요한 선수 굉장히 빠릅니다!』
제주 수비수들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지난 시즌에도 상대의 라인을 무너뜨리는 라인브레이커 모습을 보여줬던 박요한이 빠르게 뛰었다.
『박요한 곁으로 온주현이 달라붙습니다! 막아내나요!?』
『온주현 선수가 피지컬로 밀어붙이는데요!』
『한 번 저지 당하는 박요한, 하지만 공은 뺏기지 않은데요!』
박요한은 온주현의 압박을 견뎌냈다. 그런 다음 온주현의 뒷공간 쪽으로 공을 길게 보냈다.
데굴데굴 빠르게 굴러가는 공을 때마침 쇄도하던 박형우가 잡았다.
『오늘 멀티골을 기록한 박형우가 공을 잡습니다! 박형우, 쇄도합니다!』
제주의 페널티박스 오른쪽 측면에서 박형우가 미사일 같은 슈팅을 때렸다. 슈팅은 단숨에 골망을 뒤흔들었다.
팡!
『박형우 슈우우웃! 들어갑니다! 엄청난 골이 터졌습니다!』
『이야아아앙! 대단합니다!』
중계하던 해설자의 목소리가 삑사리가 날 정도로 환상적인 득점 장면이 터져 나왔다.
지켜보던 고양 팬들과 벤치에 있던 코칭스태프들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대단한 원더골과 함께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고양의 박형우입니다!』
『야, 정말 대단합니다! 10년 만에 복귀한 K리그에서 바로 해트트릭을 만드네요!』
『미디어데이 때 박형우 선수가 ‘클래스가 뭔지 보여주겠다.’ ‘개인상을 받을 정도로 활약하겠다.’ 같은 말을 했었는데요! 오늘 첫 번째 경기에서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이거 기록을 좀 찾아봐야 하는데요. 1R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한 선수가 몇 명 없거든요? 정말 대단합니다!』
기어코 해트트릭을 만든 박형우의 활약에 힘입어 고양은 3:1로 앞서갔다.
고양 팬들은 기쁨과 환호로 가득했다.
반면, 제주FC는 충격을 크게 받았다.
시즌 전부터 우승 후보로 꼽혔던 두 팀의 승부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제주FC도 곧 저력을 보여줬다.
괜히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이 아니라는 것을 결과로 증명했다.
『제주가 다시 한 번 코너킥 상황을 맞이합니다! 온주현 선수가 준비하는데요! 올라갑니다!』
『가나요!』
『떨어지는데요! 들어갔습니다! 제주FC의 장지원 선수가 추격 골을 만들어냅니다!』
박형우의 해트트릭 이후, 불과 3분도 안 돼서 장지원이 추격골을 만들어냈다.
스코어는 3:2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고양도 방심할 처지가 되지 않았다.
“집중해!”
고양 선수들은 방심하지 않고 플레이에 집중했다.
하지만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한 제주FC의 반격은 매서웠다.
『온주현이 밀어주는 패스! 장지원 달리는데요! 라시모프가 달려듭니다!』
치열한 공방전이 오고가던 중, 한순간에 고양의 수비라인이 무너지는 제주의 킬러패스가 나왔다.
온주현이 만든 킬러패스 한 방에 장지원이 순식간에 득점 기회를 잡게 되었다.
깜짝 놀란 라시모프가 황급히 쇄도하던 장지원 옆으로 강한 태클을 시도했다.
하지만 불운하게 라시모프의 태클은 공이 아닌 장지원의 발목을 향했다.
우당탕!
“아악!”
비명과 함께 잔디 위를 구르는 장지원.
그 모습을 마침 주심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었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고 바로 오른손으로 고양의 페널티 지역을 가리켰다.
『찍었습니다! 제주FC가 페널티킥를 얻습니다!』
『아, 이건 라시모프의 실책이죠. 지금 리플레이 화면이 나왔는데요. 온주현 선수의 패스 한 번에 고양의 수비라인이 무너지면서 라시모프가 무리하게 수비 플레이에 들어갔거든요? 근데 이게 공이 아닌 발목을 건드렸네요.』
『고개를 떨어뜨리는 라시모프입니다.』
제주의 페널티킥 키커는 온주현이 준비했다.
공 앞에 선 온주현과 박지원 골키퍼 사이에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모두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주심이 페널티킥을 차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 순간, 온주현은 망설이지 않고 공을 찼다.
팡!
“……!”
박지원이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킥의 방향을 예측하고 몸을 날린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은 정면으로 향했다.
『골! 들어갑니다! 온주현 선수 찬 공이 과감하게 가운데로 향하면서 득점으로 이어집니다!』
『와~ 제주FC도 대단한데요! 순식간에 3:3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왜 양 팀이 이번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지 알 수 있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3.
보는 이에게는 굉장히 즐거운 스코어다. 하지만 고양과 제주 선수들한테는 모두 만족할 수 없는 스코어였다.
양 팀 모두 결승골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삑! 삐익! 삑!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붑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제주FC와 고양 유나이티드의 경기는 스코어 3:3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1R부터 굉장한 경기력을 보여줬던 양 팀이었습니다. 비록 양 팀 선수단 입장에서는 아쉬울만 하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 그럼 오늘 중계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 * *
“아쉽네.”
제주 원정에서 돌아온 나는 강한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기대해볼 만하지 않나요?”
김 비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1R에서 우리 팀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곽찬구 감독과 선수들은 스페인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로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 성과가 1R에서 잘 나타난 것 같았다.
물론 보완할 부분도 존재했다.
“변칙적인 상황에서 취약한 모습들이 있다는 것만 빼면 괜찮긴 해.”
우리 팀의 전체적인 공수 밸런스는 좋았다. 특히 다양한 패턴의 공격은 우리 팀의 장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변칙적인 플레이를 보여줄 땐 지나칠 정도로 허점이 드러났다.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마지막 페널티킥 실점 상황이었다.
온주현이 갑작스럽게 찌른 패스 한 방에 우리 팀 수비가 일순간 무너졌다.
이 부분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면 의외의 한 방에 팀이 계속 무너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도련님, 공부 많이 하셨네요?”
“어?”
“업무가 끝나고 전술 교본 책 읽으시더니. 많이 성장하셨네요.”
“뭐, 아직 갈 길은 멀어.”
예전에는 보라고 해도 안 봤던 전술 교본 서적 같은 축구 자료들.
이제는 내가 직접 찾아다니면서 보고 있다.
명색이 프로축구팀 대표인데, 축구 지식이 없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더군다나 나는 영신그룹 총수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든 고양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을 크게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빈약한 지식을 채워야 뭐라도 해볼 수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우리 홈 개막전 준비는 잘 되고 있나?”
“네. 예정된 이벤트도 순차적으로 준비되고 있고, 가상 리허설도 무리 없이 진행 완료했습니다.”
“좋군.”
“최종 리허설을 진행할 때는 도련님께서도 참여해 주셔야 합니다.”
“당연하지.”
2R 경기는 우리의 홈에서 개최된다.
“2R 상대가 경남이지?”
“네. 맞아요.”
경남은 지난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던 팀이다. 하지만 성남을 만나 패배하면서 아쉽게 승격하지 못했다.
올 시즌 경남도 충분히 승격을 노려볼만한 팀이다.
지난 시즌 주축 선수들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고, 새롭게 선수들을 보강하기까지 했다.
“1R에서 꽤 대단하던데. 전남 상대로 4골이나 퍼부었지?”
“네. 4:0으로 이겼죠.”
이제 막 시즌이 시작됐기 때문에 당장의 순위는 크게 의미는 없다.
그래도 경남은 1R 대승을 통해서 현재 1위로 올라선 상태였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전남이 전체적으로 허술했다는 평가가 많아요.”
“어, 나도 기사 올라온 건 봤어.”
경남이 잘하긴 했으나 전남이 너무 못했다는 평가도 많았다.
아직 1R여서 아직 지켜봐야 한다.
“뭐, 어떤 팀이든 다 이겨야지. 우승하려면 말이야.”
“맞아요.”
지는 경기보다 이기는 경기가 압도적으로 많아야 우승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누구든 다 꺾어야 한다.
“우리는 선수들을 믿으면 돼.”
* * *
천지원 부장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주어진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 알겠지?”
“넵!”
새로운 시즌의 첫 홈 개막전.
이번 개막전은 보통의 개막전과 다르다.
새롭게 바뀐 구단의 진정한 첫 시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어떤 개막전보다 더 중요했다.
“시장님 시축은 어떻게 됐지?”
“네. 다행히 일정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이번 홈 개막전에서 최무진 고양특례시장의 시축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장의 시축 행사는 그 뒤에 진행할 이벤트의 전주에 불과했다.
“전태호 선수 사인회는 어떻게 됐어?”
“네.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좋아.”
전태호는 과거 고양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선수였다.
지금은 은퇴하고 어린이 축구 교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은퇴하기 전까지 고양에서만 뛰던 원클럽맨이기도 했다.
고양의 올드팬들이라면 전태호 선수에 대한 호감은 높을 수밖에 없다.
팀을 위해 헌신하며 팬들과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었다.
“반응은 어때?”
“폭발적입니다. 특별 유니폼 같은 경우에는 판매 시작 30분 만에 다 팔렸습니다.”
“뭐? 진짜야?”
“네! 곧 관련 보도자료 보내셔야 합니다.”
“상상 이상의 반응인데?”
“네. 진즉에 이런 행사들을 할 걸 그랬나 봅니다.”
신진호 대리, 아니 이제는 과장으로 승진한 그의 말에 천지원 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런 행사를 개최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존에 구단을 운영해오던 관리자들은 이러한 행사를 돈낭비로 여겼다.
하지만 천지원의 생각은 달랐다.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진정한 팬이라면 이런 행사는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고.
과거 팀을 위해 활약했던 이들을 위한 존중과 존경.
영어로 이야기하면 ‘리스펙’.
이것은 앞으로 그라운드를 누빌 후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정말 작년에 대표님 바뀐 이후로 팀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네요.”
“그래.”
신진호 과장의 진심 어린 말에 천지원 부장은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신 과장. 최선을 다해보자고. 개막전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모르지는 않겠지?”
“당연하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같이 힘내보자.”
“네!”